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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피털리즘 - 표류하는 개인과 소멸하는 열정
리차드 세넷 지음, 유병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삶은 하나의 서사라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노후를 준비한다. 그러나 최근 경제위기로 약혼자들은 결혼을, 신혼부부들은 출산을 미루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노후 문제도 펀드의 수익률이 곤두박질치면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이번 위기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서사’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삶을 불확실성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오늘날의 ‘새로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리처드 세넷의 『뉴캐피털리즘』이 출간됐다.
노동사회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계급의 숨겨진 상처』(1972),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1998)를 저술한 바 있는 세넷은 이번 저서에서도 노동현상을 통해 사회를 통찰하며 삶의 서사를 파괴한 주범을 지목한다. 이른바 MP3형 조직이 그것인데, 듣고 싶은 노래 순서를 그때그때 바꿀 수 있는 MP3처럼 유연한 노동조직을 추구하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의 미래를 불확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새로운 자본주의 신봉자들은 노동유연화가 개인의 자유로움을 증진시킨다고 역설하지만, 세넷은 오히려 증폭된 불확실성이 삶의 서사를 파괴한다고 비판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변화무쌍한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을뿐더러 당장 자신의 일자리부터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부제처럼 ‘개인을 표류시키고 열정을 소멸시키는’ 새로운 자본주의 문화에 맞서기 위해 세넷은 책의 말미에서 ‘장인정신’이라는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그는 장인정신을 한마디로 ‘일 그 자체를 위해 어떤 일을 잘 해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세넷은 “자신의 이해득실을 초월한 헌신만이 사람들을 정서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며 “그런 헌신이 없다면 사람들은 생존경쟁의 살벌함 앞에 무릎 꿇고 말 것”이라고 역설한다. 시시각각 담당업무가 변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문화에서 ‘장인’형 인간은 외곬이라며 홀대받고 있지만 장인정신은 오히려 새로운 자본주의가 빠뜨린 ‘헌신’이라는 기본 덕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현대사회가 ‘쓰레기’와 다를 바 없는 지위를 가진 계층을 끊임없이 배출한다고 비판했다. 바우만의 지적에 따르면 세넷이 말하는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표류하는 현대사회의 개인들도 언젠가 쓰레기 신세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아쉽게도 세넷은 단지 국가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그들이 표류하지 않을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닻’을 제공하자는 정도에서 논의를 끝내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의 서사가 뒤흔들린 상황에서 ‘어떻게’ 서사를 회복시킬 수 있는 지가 관건이기에 그의 결론은 다소 궁핍하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현대사회가 파괴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동’을 논의의 중심에 재등장시킨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의의를 갖는다. 마르크스는 인간을 ‘노동하는 존재’로 보고, 자아실현을 성취하는 노동 행위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의 이윤을 생산하는 행위로 바뀌면서 인간소외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세넷이 제시하는 ‘장인’의 모습은 이러한 소외를 극복한 본래의 ‘노동하는 인간’과 상통한다. 저자는 마지막 말에서 “사람은 누구나 일을 제대로 해내려 노력함으로써만 자신의 삶이 아무렇게나 흘러가지 않도록 단단히 붙들어 맬 수 있다”고 재차 강조한다.
(대학신문, 2009년 4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