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포기의 순간
필립 베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3월
평점 :
p.243
어쩌면 지금 이순간, 나는 여전히 메리앤의 남편이었을지 모른다. ... 행복하지는 않았겠지만,
조용히 살 수는 있었을 것이다. 조용히 사는 것 외에, 무엇을 더 열망하겠는가?
루크는 아량 넓은 남편, 믿음직한 사위, 견실한 측근이 되었을 것이다. 매사에 열성을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믿고 기대는 것 외에, 사람들이 무엇을 더 갈망하겠는가?
추방된 자들이고 더럽혀진 자들인 우리는 지금 이렇게 나란히 함께 있다.
그러니 기가 죽고 위축되어 우리를 참아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는 대신 오욕을 향해 떳떳하게 걸어간다.
...우리가 그 반대로 저주에서 벗어났다고 선언한다고 해도 어차피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
우리는 둘이서 함께, 우리가 되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되었고
떨어져 있어서는 결코 되지 못했을 사람들이 되었다.
-
1. 마지막 장에 이르러 작가는 친절하게도 요약을 해준다. 이랬단 말이야! 하고, 마치 참아온듯이.
분명히 끌리면서도 이렇게 느릿느릿 책을 읽는 순간은 행복하다.
2. 일인칭은 이 소설에서 단순한 화자의 시점 이상이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혼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
라지브가 나타날 때까지는 일인칭에서 그 흔한 따옴표도 등장하지 않는다.
3. "만일 강제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팰머스를 떠나지 못했을 거에요. 사건이 필요했어요."
그래, 어쩌면 우리 모두 안에 있을 토마스는- 노라고 말하지 못하고 삶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마음이 아프지만 그 사건,을 통해서 그 궤도를 이탈 할 수 있었다. 여기서 포인트는 할 수 있었다, 하는 긍정적 결과.
아들을 죽인 범인으로 몰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그것을 성찰로 극복 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거짓된 삶을 어떤 계기로 인해 벗어날 수 있었다,라는 발상자체가 아예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
필립베송은 분명 매력적인 작가다.
아니, 지금 몇페이지 째인데 집에 와서 술집 한번 갔어? 하고 친구에겐 농담을 했지만
액션에 비해 생각이 많은, 그건 바로 나였다.
마음 약하고, 주변을 신경쓰지 않으려 하면서도 그 모든 소리를 듣고 있고 또 생각하고 그려내는
주인공이 바로 나이기도 하다.
차이가 있다면 나는 궤도를 살아가는 소시민.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
필립베송, 궁금해지는 작가다! 이사람 내면에 뭐가 든 걸까.
덧. 띄엄띄엄한 편집은, 원래 문체인가 편집자의 센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