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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미래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6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발상의 전환
개인적으로 두번째로 본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이다. 전작을 워낙에 재미있게 본 터라 이 책 또한 한껏 기대감을 가지고 보게 되었다. 결과는 어느 정도 만족한 편이었다. 그의 쇼트 쇼트 스토리는 여전히 부담없이 읽기에 최고로 적합하다. 출,퇴근길 버스안에서 한꼭지 한꼭지씩 밥을 기다리며 또 한꼭지 그러다 보면 어느덧 책 한권이 뚝딱이다. 이젠 시테크를 넘어 초테크의 시대라는데 그런면에서 플라시보 시리즈는 바쁜 직장인들을 위한 맛춤형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제목인 '한 줌의 미래'가 암시하듯이 일전에 보았던 '흔해빠진 수법'에 비해서 각각의 이야기마다 SF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것이 특징이라 생각된다. 호시 신이치는 과연 그 많은 이야기들을 어떻게 창작해낼까 또는 시리즈만 거창하게 많지 다 거기서 거기인 비슷비슷한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각각의 책들마다 차별화되는 주제나 소재 그리고 작품 전반에 흐르는 어떠한 기조등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 말미에 아라마키 요시오가 쓴 해설을 보더라도 이 책은 그러한 면에 많은 초점을 맞춘것으로 보여진다. 요시오는 해설에서 발상의 전환을 항상 끊임없이 시도하는 호시 신이치야말로 진정한 '상식 분쇄기'란 표현을 썼다. 필자도 그 말이 신이치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는데 공감하는 바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들은 개인적으로 '괴독X'와 '의뢰인'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약간 비슷한 구조를 지닌 두 이야기는 충분히 모방범죄의 우려가 들게 만들 정도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 섬뜩하다. 그 좋은 머리로 소설을 썼기에 망정이지 실제로 범죄에 악용했더라면?
그 외 '새로운 장치', '감사의 나날', '진보', '번호를 불러주세요' 등등의 작품에서는 지금보다는 훨씬 더 편리해진 머나먼 미래사회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역시 호시 신이치의 풍부한 상상력에 기초한 산물들이다. 흥미롭다. 일견 한없이 편리해 보이기도 한다. 나 대신 회사에 출근하는 로봇이라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지만 모든 이야기들이 끝은 항상 씁슬하다. 편한것만이 능사는 아닌 모양이다. 작자의 그런 테크놀로지와 대책없는 성장지향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매력적인 조소가 돋보였다.
끝으로 필자가 가장 인상깊게 본 이야기는 '성숙' 이었다. 이례적으로 분량이 여덟장이나 되는 미들 미들 스토리이다. 같이 범죄를 저지른 3인조가 한 집에 머무르면서 안에 있는 두명이 끊임없이 밖에 나가있는 보초 1인을 해치고자 모의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계속 보초를 서야하는 이가 교대되니 쉽사리 살인을 저지르질 못한다. A,B,C 중 누가 누구와 짜고 결국엔 누구를 제거할지 또는 이들의 운명은 어찌될지 꽤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각가의 이야기가 나름대로 다들 반전의 묘미를 지니고 있는지라 여기서 다 밝히지는 못하지만 '불신이야말로 안전에 대한 최고의 보장인 셈이다.'란 말을 상기하며 열심히 추리해보는 시간은 나른한 오후 퇴근길에 큰 활력을 주었었다.
대체 몇 편까지 시리즈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호시 신이치의 다른 작품도 기다려 본다. 그리고는 갈망한다. 내 뒷통수 빵꾸나도 좋으니 마구마구 쳐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