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남자 1
이림 글.그림 / 가치창조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남은 80일이 궁금하다

 

 

이 책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이림씨는 소위 말하는 '비전공자'이다. 10대때와 공과대학 재학시절에도 그는 머릿속으로 항상 만화만을 생각했다고 한다. 대학졸업 후 남들처럼 평범하게 일년간 직장을 다니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모 포탈사이트를 통해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이제 어엿한 만화가가 되었다. 그런 이력을 지닌 탓인지 '작가의 말'이 유난히 내 마음을 울렸던 책이다. 책의 내용을 떠나서 난 이런 사람들이 좋다.

 


'항상 마주하고 있어 볼 수 없는 달의 뒤통수.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는 마주할 수 없는 태양.

 

'꿈'이란 걸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녀석은 제 등 뒤에서
항상 제가 돌아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더군요.

 

(중략)

 

잘 업어서 한 발 한 발 내딛어 봅니다.
등 뒤에 있어서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제 앞만 잘 보고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히 걸어가야겠습니다.'

 

(작가의 말 中)

 


그림이 참 예쁘다. 전반적으로 책도 예쁘다. 종이질 마저도 맨질맨질하니 기분이 좋다. 하지만 제목은 섬뜩하다. 죽는 남자라니.. 우리 회사 신은자 부장 딸내미와 이름이 같은 주인공 서영이는 악성뇌종양 3기로 100일 밖에 못 산다는 진단을 받는다. 돈 많은 아버지 덕택에 좋은 집에 좋은 차에.. 뚜렷한 직업도 없이 흥청망청 살던 주인공. 그랬던 그도 당장 100일밖에 못산다는 사형선고를 받으니 변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여자친구를 매정하게 차버리는 것이었다. 그녀의 세번째 남자친구였던 그는 첫번째, 두번째 남자 친구처럼 먼 훗날 자신도 그렇게 잊혀지길 원했다. 그래서 매몰차게 돌아섰다. 하지만 그녀가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그녀를 평생동안 지켜줄 좋은 남자친구를 만들어 주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그 친구는 영 못마땅하다. 사람은 진국이데 자신감이 너무 없고 체력도 약하다. 그래서 새벽운동을 시킨다. 자기처럼 건강상의 이유로 그녀를 떠나게 되면 안될 노릇이니 말이다. 이미 제멋대로이던 그는 이렇게 서서히 '좋은 방향'으로 변해가며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

 


그리고 일전에 만났던 노숙자 영감을 찾아가 이빨을 드러내고 손톱을 세워 세상을 향해 당당히 맞서도록 자극을 준다. 앞으로 살 날은 100일밖에 남질 않았는데 엎친데 덮친격으로 새엄마가 아버지의 회사를 홀랑 해먹을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정보도 입수하게 된다. 죽는 남자는 참 바쁘다.

 


그러다 보니 이제 80일이 남았다.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남기고 이렇게 1부는 끝이 난다. 자신에게 남은 생의 소중한 100일을 온전히 타인을 위해 쓰기로 결심한 남자. 잠시나마 필자도 이런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내게 100일의 시간만이 존재한다면 물론 지금처럼 태평스럽게 집에서 책이나 보고 글이나 쓰고 이러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주인공 처럼 남을 위해서 그 시간을 다 써버리진 못할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강풀씨가 평한대로 '100일후에 죽는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100일을 더 사는 남자의 이야기였다.'란 말이 더욱 더 가슴깊이 와닿았나 보다. 흔히 우리는 시간을 죽인다는 표현을 쓴다. 정신 차리자. 소모하지 말고 창조하며 하루 하루를 소중히 살아가자. 만화라고 우습게 보았다가 새삼 큰 교훈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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