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작와작 꿀꺽 책 먹는 아이 - 올리버 제퍼스의 특별한 선물 그림책 도서관 33
올리버 제퍼스 글.그림, 유경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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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는 매일, 계속, 끊임없이 책을.. 먹.는.단.다!
처음엔 글자 하나를, 그 담엔 한 줄, 한 장을 거쳐 어느새 책을 통째로 다 먹어버릴 수 있게 되었어.
헨리는 책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책들을 다 좋아해, 물론 먹는 걸로!
이젠 한꺼번에 여러 권의 책을 먹게 된 헨리는 점점 똑똑해졌어.
책을 먹을수록 똑똑해졌고, 더 똑똑해지려고 더 많은 책을 먹어댔어.
그러던 어느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단다..


'책을 먹는다'라는 소재를 들으면 곧바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책 먹는 여우>다. 유아서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책 먹는 여우>는 책을 먹기 위해 집안 가구까지 파는 여우 아저씨를 통해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놓는다. 어른인 내가 봐도 정말 재미있었는데, 선물받은 조카는 한동안 그 책만 껴안고 있을 정도였다. 짜식~ 좋은 책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ㅎㅎ

<책 먹는 여우>와 제목도 비슷한 <와작와작 꿀꺽 책 먹는 아이>는 책을 먹는 주인공이 헨리라는 '아이'다. 여우 아저씨가 책을 까다롭게 골라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해서 먹는 것과 달리 헨리는 모든 책을 가리지 않고 다 먹는다. 먹을 책이 없어 광고나 전단지를 먹고 배탈이 났던 여우 아저씨와 달리 헨리는 너무 많은 책을 가리지 않고 먹은 탓에 배탈이 난다. 자신의 기준으로 양서를 골라 먹은 여우 아저씨와 가리지 않고 책을 먹어댄 헨리의 차이일 것이다.

더 똑똑해지고 싶어 마구 책을 '먹어대다 탈이 난' 헨리의 모습은 많은 지식을 얻더라도 그것을 적절히 소화시키지 못하면 별다른 쓸모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 책을 먹지 않고 '읽는' 헨리의 모습은 책을 통해 알게 된 지식들을 드디어 자신의 지식으로 변화시켜 받아들일 수 있는 좀 더 성숙한 독서의 자세를 나타낸다. 이 책은 책을 많이 먹기에만 급급하던 헨리가 책을 읽는 재미에 빠지게 되는 모습을 통해 아이들에게 올바른 책읽기의 방법을 재미있게 알려준다.


<와작와작 꿀꺽 책 먹는 아이>는 '책을 먹는다'라는 비상식적인 행위을 통해 아이들에게 재미를 준다. 조카들의 반응을 살펴볼 때 아이들은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에 더욱 즐거워한다. <책 먹는 여우>가 알록달록한 원색으로 그려진 그림책이라는 점 외에 그녀석들에게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소재의 비일상성이었다. 하물며 자기와 비슷해 보이는 아이가 책을 먹는다니 어찌 신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이들은 책을 먹는 일에 열중하다 책을 읽게되는 헨리의 여정에 눈을 반짝이며 기쁜 마음으로 함께 동행하길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이 책은 그림의 설명도가 높다. <책 먹는 여우> 만큼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채나 색감으로 이루어져 있진 않지만, 그림만으로도 작가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특히 책을 먹어서 지식은 뇌로 가고 배는 부르다는 그림은 너무 재미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과 뒷표지는 책을 한 입 베어 먹은 것처럼 한쪽 귀퉁이가 없다. 진짜로 헨리가 이 책을 먹은 것일까? 아이들은 까르르 넘어간다. 

지금 책을 주문하면 책과 함께 독서기록장과 스티커가 들어있는데, 스티커에 읽은 책 제목을 적어 책 먹는 헨리의 뱃속 그림이 그려진 독서기록장에 붙이게 되어 있다. 독서기록장은 아이들이 직접 자신의 독서목록을 작성하고 그것을 완성해가는 재미를 느끼게 해줘 좀 더 책읽기에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꽤 유용한 부록이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책 먹는 여우>와 <와작와작 꿀꺽 책 먹는 아이>는 '책을 먹는다'는 기발한 발상으로 재미와 교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고 영리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이다. 책 속의 그림체는 완전 다르지만 둘 다 이야기의 흐름을 훌륭하게 뒷받침 해준다. 두 권 모두 너무 좋은 책들이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기에 여유가 된다면 두 권을 함께 읽으며 서로 비교해봐도 좋을 듯 하다. 그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다.

<와작와작 꿀꺽 책 먹는 아이>와 함께 세상에서 책이 가장 맛있다는 헨리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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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정원 - 아버지의 사랑이 만든 감동의 수목원, 세상과 만나는 작은 이야기 13
고정욱 지음, 장선환 그림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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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정원>은 구필화가 임형재 님의 실제이야기를 바탕으로 씌여진 책이라고 한다. 스무살의 나이의 건강한 청년이었던 그는 불의의 사고로 목뼈를 다치면서 전신이 마비되어 버렸고, 순식간에 건강한 청년에서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그의 곁에는 안타까운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계셨고, 그분들의 변함없는 사랑이 그를 좌절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냈다.

'몸은 움직이지 못하지만 보고, 듣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기쁨이 남아 있지 않느냐'라는 어머니의 말씀으로 살기를 결심한 그는 움직이지 못하는 몸으로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입과 발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의 모임인 '세계 구족화가 협회'를 알게 되었고, 힘겨운 노력 끝에 구필화가가 되었다. 그림은 그에게 살아갈 이유이며 목표인 셈이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그림을 전시할 미술관을 만들고 그 주변을 수목원을 꾸미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탄생한 미술관이 있는 수목원인 '그림이 있는 정원'에는 절망의 늪에서 벗어나 다시 삶의 희망을 되찾은 아들을 향한 격려가 깔려있다. 또한 언젠가 부모인 자신이 죽은 후 혼자 제 몸도 추스르기 힘든 아들의 생활을 염려해 그에 대비한 생계 수단을 마련해 두려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담겨 있다. 이래서 부모의 사랑은 끝이 없다고 하나 보다.


이야기는 초등학생인 나래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부모님의 해외 여행으로 2주간 수목원을 하시는 할아버지 댁에 머물게 된 나래는 내내 뾰로퉁하다. 그러나 개학을 앞두고 방학숙제로 식물채집을 하는 나래에게 식물의 이름이나 채집본을 만드는 방법과 이야기가 있는 특별한 그림을 그리는 법 등 많은 것을 알려주는 큰아빠와 곧 친하게 되고, 큰아빠에게 장애를 준 사고와 구필화가로 활동하는 이야기 듣거나 뜻밖의 사고에 리더십을 발휘하는 큰아빠의 색다른 면을 보며 큰아빠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

작가는 어린 나래의 시선을 통해 보통의 사람들이 갖는 '장애우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를 벗겨낸다. 자신의 능력 안에서 열심히 노력하며 그림을 그리는 큰아빠의 모습을 통해 장애우에게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들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큰아빠에 대한 할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남들보다 힘든 삶을 살아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마음과 깊은 사랑을 보여준다. 입에 붓을 물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큰아빠의 모습 뿐만 아니라 큰아빠를 향한 할아버지의 깊은 사랑에서 나도 모르게 가슴 찌릿하며 슬며시 눈물이 배어나왔다. 


<그림이 있는 정원>은 글을 읽는 아이들과 같은 또래인 '나래'의 눈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써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불러 일으키며, 변화되는 나래를 통해 장애우에 대한 아이들의 편견을 없애준다.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의 짜임은 이 책의 독자인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무엇보다 <그림이 있는 정원>의 가장 큰 힘은 진정성이다. 장애를 극복한 아들이나 아들을 위해 수목원을 가꾸는 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그대로 담겨 있는 감동 실화를 바탕으로 한 까닭에 이 이야기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 더불어 책 밖의 이야기이지만, 주인공 '큰아빠'처럼 소아마비라는 자신의 장애를 이겨내고 좋은 글로 사람들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이 책의 작가 고정욱 님의 이야기도 감동이었다.


책의 말미엔 '그림이 있는 정원'의 실제 모습이나 구필화가 임형재 님의 작업 모습을 찍은 사진들이 담겨 있고, 마지막 장엔 수목원 '그림이 있는 정원'의 입장료 50% 할인권도 붙어 있다. 붓을 물고 입으로 힘겹게 그린 임형재 님의 그림과 아들을 향한 사랑으로 일군 아버지의 수목원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 꽤 멀리 있지만(충남 홍성군)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또한 그들 부자의 이야기를 전국에 보여준 <인간 극장> - '아버지의 정원' 편도 구해서 볼까 한다.

따뜻한 글과 그림이 어울어져 가슴 뭉클한 이야기를 엮어가는 <그림이 있는 정원>.
나이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읽어야 할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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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떠나는 짬짬이 세계여행 - 평범한 직딩의 밥보다 좋은 여행 이야기
조은정 지음 / 팜파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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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행은 누구에게나 로망이다. 비슷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잠시나마 잊고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처럼 쉽게 떠나질 못한다. 돈이 없다, 시간이 없다, 같이 갈 사람이 없다 등등 우리가 늘어놓는 변명은 매번 비슷하다.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의 저자는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떠나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는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짬짬이'라는 표현이 유난히 눈에 띄는 이 책은 <일하면서 떠나는 짬짬이 세계여행>라는 제목을 통해 하고픈 말을 모두 드러내 보인다. 여행은 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일을 접고 떠날 수도 없는 당신, 이제 '짬짬이' 여행을 즐겨보자!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땐 시중에 쏟아지는 그냥 그런 여행책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더구나 표지를 넘기자마자 줄줄이 늘어서 칭찬을 날려대는 추천사들을 내리 4개나 만나니 책을 읽기도 전에 힘이 빠졌다. 과한 칭찬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법. 많은 추천사는 오히려 책의 완성도에 의심의 칼날을 품게 했다. 그러나 정작 본문에 한 발 들어서자 앞선 염려가 나의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큼직큼직한 글자와 곳곳에 곁들여주는 사진은 우선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주제별로 분류된 책의 내용 또한 상세하고 꼼꼼하다. 혼자하는 여행, 일행이 있는 여행, 패키지 여행의 장단점 등 여행 방법의 종류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가고 싶은 여행지를 정하고 동선 짜기, 숙박 예약, 경비 예산 짜기 등 여행을 계획하는 방법과 여행 떠나기 전에 챙겨야 할 준비물, 여행 가방 싸는 법, 환전 싸게하는 법, 꼭 가져가야 할 필수품 등의 실제적 준비과정으로 이어진다. 각 내용들은 그간의 여행 노하우를 바탕으로 친절하고 자세하다. 

또한 여행책에서 빠지면 섭섭한 '베스트 여행지'도 취향과 형편에 따라 주말용, 일주일용, 가족용, 먹거리나 미술관ㆍ박물관 등 테마여행으로 분류하여 알맞은 여행지를 소개하고 있다. 그중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 관한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또한 가난한 직장인을 위해 저비용으로 최고의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알뜰 관광법과 자신이 직접 다녀왔던 여행 루트 등도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잘만 찾아본다면 무료나 저렴한 비용으로 즐길 수 있는 곳이 널려 있음에 적잖이 놀라며 즐거워 했다. 마지막으로 각 테마의 말미엔 쇼핑에 관한 방대한 정보나 실시간 여행 정보, 여행 중 자주 사용하는 영어 표현 등을 덤으로 선사하고 있다.


<일하면서 떠나는 짬짬이 세계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의 현실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행서로선 최고의 미덕을 갖춘 셈이다. 이 책은 나같은 초보라도 바로 여행을 떠날 준비에 착수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준비과정과 그에 관한 정보를 꼼꼼하고 자세하다. 어느 책에나 흔히 있는 그런 정보들을 좀 더 특별하게 만드는 건 아마 지난 10여년간 직접 발로 뛰며 쌓은 그의 여행 노하우일 것이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로 인해 축적된 그녀의 노하우는 책 속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까닭에 여기에 실린 방법들이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그녀가 제시한 방법을 자신에게 맞춰가며 나만의 여행 노하우를 쌓아가는 게 가장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이런 점은 어느 여행서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책의 중간중간 매끄럽지 못한 문장들이 눈에 밟혔다는 것. 내용도 좋지만 그걸 표현하는 문장에도 조금 더 신경을 써줬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일하면서 짬짬이 떠나는 세계 여행>은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빼곡한 가이드북도, 여행을 통한 여러 감상들을 엮은 기행문도 아니다. 떠나고 싶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여행으로 향하는 길을 알려주는 일종의 '여행준비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여행의 준비 방법부터 여행지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제공해 초보자도 거뜬히 다녀올 수 있는 여행방법을 알려주기에, 책을 읽다보면 마음 한 구석에선 벌써 여행계획을 세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이런 거라면 나도 떠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은, 최소한 내게는 통한 셈이다.

10여년의 직장생활 동안 짬나는 대로 틈틈이 세계 각곳을 누비고 다닌 저자 조은정은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돈과 시간이 아니라 '열정'이라고 말한다. 강렬한 열정이 있으면 불가능한 일도 가능한 일로 바꾼다는 그녀의 말은 그녀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공감이 된다. 그간 여행을 가지 못하는 핑계를 대기에 급급했기에 내게 이 책은 새로운 설렘으로 다가왔다. <일하면서 짬짬이 떠나는 세계 여행>, 떠나고 싶고 떠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든든한 친구가 되어줄 '실속만점의 실전 여행준비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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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2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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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으면서 한 마디..
오호! 이제껏 읽은 이사카 고타로 책 중에서 최곤데! (그러나~ 이 책이 겨우 세 번째 만남이라는 거; ^ ^;)

요즘 독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두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와 이사카 고타로는 비슷한 듯 다르다. 오쿠다 히데오는 강렬한 웃음 폭탄을 투여로 정신없이 웃게 만들며 강렬한 첫인상을 심어주는 작가라면, 이사카 고타로는 예상치 못했던 엉뚱함으로 은근슬쩍 웃음이 내보이며 그 매력의 강도를 점점 높여가는 작가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두 작가 모두 웃음을 매개로 우리의 아픈 곳을 콕콕 찌르는 멋진 글을 쓴다는 점은 무척 닮았다.


이사카 고타로. 그의 글은 언제나 부담없이 가볍고, 부담없이 재미있다. 배꼽 빠질 정도의 폭소는 아니지만 예의 기대를 깨주는 돌출반응으로 독자를 웃음짓게 한다. 또한 복잡하든 단순하든 대게 미스테리 형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이야기 진행에 궁금증을 품게 만든다. 그리고 크든 작든 항상 매력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가볍지만 무겁다. 시간 때우기용 소설마냥 가벼워 보이지만 세상에 무심해 보이는 주인공들 사이로 사회의 어둡고 씁쓸한 한 단면이 함께 공존한다. 그리고 그는 가벼운 척, 무관심한 척하다가 적절한 틈을 봐 자신이 말을 쏟아낸다. 아아~ 어찌 그의 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를 만난 지 이제 겨우 세 번만에 나는 진정한 그의 팬으로 거듭났다!

나오키상 후보에 무려 5번이나 올랐지만 매번 미끄럼을 타야했다는 이사카 고타로는 이 작품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로 제 25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을 수상했다. 어느 작품이든 수상경력이 작품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이는 효과가 있음은 말이 필요없다. 그러나 그런 수식어가 없더라도 이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 무척 흥미롭다. 이사카 고타로란 작가가 왜 매력적인지를 보여주는, 그런 작품 중 하나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각각 두 가지의 시점(시나-고토미), 시간대(현재-2년 전), 사건(서점털이-고양이 살해범)이 공존한다. 새내기 대학생인 나(시나)가 옆집의 가와사키를 만나고 얼결에 황당한 그의 범행에 동조하게 되는 현재. 잃어버린 개를 찾으러 다니던 나(고토미)와 부탄에서 유학 온 애인 도르지가 우연찮게 대면한 고양이 살해범들로 인해 사건에 휘말리고 뒤늦게 가와사키가 개입하면서 진행되는 과거(2년 전). 그렇게 두 가지의 이야기는 서로 교차되며 교묘하게 연결되어 진행된다. 

별다른 공통점이 없이 독립적으로 진행되던 사건들은 책의 후반부로 이어지면서 감추고 있던 베일을 하나둘씩 벗는다. 그동안 점점 커져오던 의문이 풀려가고 두개의 시간은 어느 한 지점에서 서로 맞물린다. 그리고 그 중심엔 미스테리의 인물 '가와사키'가 있다. 두 시간대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며 각각 사건의 주동자나 동조자로 활약한 그가 바로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조금 더 있으면 그로 인해 다시 한 번 놀랄 일이 생긴다. 입이 근질거리지만 예비 독자들을 위해 비밀! ^ ^;)


교차되는 두 시간대를 뛰어넘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는 그 얼개가 잘 짜여져 있고, 복선과 암시가 촘촘히 박혀있다.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다가도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지는 사건들은 도중에 책을 덮어버릴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시나가 관찰하는 가와사키의 행동은 의문스러웠고, 고토미의 목을 점점 조여오는 동물살해범으로 인해 조바심이나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묘사되는 그들의 살해수법이 너무 잔인했다;>_<;) 

무엇보다 후반부에 불어닥치는 극적인 반전이, 쓰나미급은 아닐지라도 폭풍급은 됐다. 특히나 추리엔 큰 소질이 보이지 않는 내겐 꽤나 충격적이었다.(고수들은 대략 짐작했겠지만;) 왜 진작 그걸 눈치채지 못했을까. 사건의 정황이 대부분 정리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는 눈 뜬 봉사였던 자신을 잠시 질타했다.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책의 반전이 더 흥미롭긴 했지만.  ^ ^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제목이 참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대체 저게 의미하는 건 뭘까. 오리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라는데 대체 '집오리'와 '들오리'가 왜 나오며 또 그것들이 '코인로커'랑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내내 궁금하던 그 의문은 책의 중반쯤 고토미와 도르지의 대화를 통해 어느정도 해결되고, 책을 덮을 때쯤 그 숨겨진 뜻까지 대충 이해가 된다. 

집오리와 들오리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은 완전히 다르단다. 그 둘의 관계가 도르지와 가와사키의 관계 같기도 하고, 도르지(이방인)와 일본인과의 관계 같기도 하다. 그 애매모호하고 수상한 관계는 거기에 고토미의 대답을 실천함으로써 '코인로커'에서 정리된다. 정말이지 책을 읽은 자만이 이해가 가능한 난해한 제목이다. (그러나~ 읽은 사람도 이해 못할 수도 있다는 거~;; ^ ^;;)

- "하여간 집오리는 외국 새고, 들오리는 일본 새라고 생각하면 틀리지는 않으니까." 집오리와 들오리라. 나쁘지 않은 표현이군, 하고 생각했다. 흡사한 동물로도 여겨지지만 사실은 완전히 다르다. 그런 관계다. (226쪽)


짧은 독서 편력으로나마 짐작하건데,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은 대게 황당한 사건들로 시작된다. 현실엔 있을 것 같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을 것 같지도 않은.. 그런 사건들 말이다. 이 책 속 사건들도 그렇다. 우울해하는 옆집 외국인에게 줄 대사전을 훔치기 위해 서점을 습격한다거나, 얼결에 그 범행에 동조한다거나, 단순히 재미로 동물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살해범에게 살해 협박을 받는다는 건 일상에게 쉽게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해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당황스런 사건들도 그 속내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물론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여기서 고타로는 그것들을 들춰내며 은근슬쩍 자신의 목소리를 섞는다. 사회에 만연한 이방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 동물 학대, 나만 생각하는 개인이기주의 등의 문제와 함께 악행을 저지른 자와 그들에게 복수하는 자를 나란히 대비시킨다. 과연 그들에게 '정의'라는 게 있는 걸까. 대체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까. 또한 그들의 방식으로 '하느님을 가둔다면' 정말 모든 것을 슬쩍 눈 감아줄 수 있을까. 극중 도르지는 일본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거나 이해할 수 없거나 또는 달리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지금 그 대답이 내 머리에 맴돈다. ... '그렇군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440쪽이 넘는 꽤 튼실한 두께를 자랑하는 책이지만 흥미진진한 전개에 앉은 자리에서 꼼짝않고 다 읽어버렸다. 그간 이사카 고타로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약간은 음울하고 어두운 톤이 짙은 지도 모르지만(그러나 그의 책은 기본 색깔이 밝고 가벼운 경쾌함이다. 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은 내게는 반짝이며 빛을 내는 고타로의 작품 중 하나로 남을 것 같다.

특유의 느긋한 웃음으로 신을 가뒀다고 말하는 가와사키. 코인로커에서 끝없이 반복재생 될 밥딜런의 Blowin' In The Wind을 나도 같이 흥얼거려 본다.









# 286쪽 : 잉꼬 → 일본말을 그대로 쓰는 것보다 우리말로 순화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사전을 찾아보니 '사랑앵무'란다. (어느새 일본말이 너무 익숙해져서 그 느낌이 그대로 안 전해지긴 한다;;) 그러나~ '잉꼬부부'라는 표현은 '원앙부부'로 순화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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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 - 2007 올해의 청소년 도서 조선 지식인 시리즈
고전연구회 사암.한정주.엄윤숙 지음 / 포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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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의 고전문학을 살펴보면 너무나 멋스러운 문장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한문이라는 언어의 벽에 가려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힘들고 그 표현 또한 난해하여 어느 순간부터 쉽게 접하기엔 부담스러운 상대가 되어버렸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점점 대중과 멀어져가는 고전문학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함께 즐기자는 취지 아래 고전연구회 사암은 그 문장들을 국역하고 원문의 뜻을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고치고 다듬었다. 그 결과 나처럼 고문에 무지한 일반 독자들도 어렵지 않게 옛글을 감상할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탄생했다.

포럼에서 나온 '조선 지식인 시리즈' 네 번째인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은 제목 그대로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저술이나 문집에서 아름답고 훌륭한 문장들을 골라 엮은 책이다. 이 글의 대부분이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의 실학자의 것임을 감안할 때 '조선 지식인'이란 아마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조선 후기의 지식인들을 뜻하는 듯 하다. 책에 담긴 글들은 각각의 문집에서 뽑은 글들이라 그런지 일정한 주제나 양식을 갖고 있진 않고 그 길이도 짤막하다.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은 일상 생활의 사소한 것들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나 풍류를 즐기며 자연친화적인 삶의 자세,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한 감흥을 적은 기행문 등 다양한 내용의 글들을 담고 있다. 크게 보면 수필집인 셈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대부분의 글들이 그러하듯 이 책 속의 글들 또한 궁극적으로 자신을 다스리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교훈적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현대의 모습으로 다듬어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글들이 몇 편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읽기 편해서 부담이 없었다. 책을 통해 지금과는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이 다른 그들과 시대를 초월해 교류하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다. 담긴 글들 중 재미있는 글들이 많았는데 그 중 게으름을 풍자한 이규보의 글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고려시대 명문장가 이규보가 왜 '조선 지식인' 속에 끼여있나~하고 의아했는데, 아마 이 글이 실려있는 <동문선>이 조선 중기에 나온 것이라 포함한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규보는 조선 지식인이라기 보단 고려 지식이이라 칭함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와 웃음으로 글을 전개하지만 마지막에 가슴 속 깊이 박히는 날카로운 교훈을 던지기로는 이규보가 으뜸인 듯 하다. 학창시절 읽었던 '슬견설'처럼 이 책의 '게으름을 풍자함'에서도 그러한 그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규보를 깨치게 하려 응대하는 손님의 기지나 손님의 재치에 속아 얼굴을 붉히는 이규보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모든 욕심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마지막 그의 말은 가슴에 오래 남았다. 

그 밖에 어린 벗 이서구와의 우정을 이야기한 연암 박지원, 경춘전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정조 대왕, 자신을 다스리고 지키는 것을 논하는 다산 정약용, 벼룩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나 자신의 아들을 향한 당부와 교훈을 담은 강희맹 등등 내 눈과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글들이 많았다.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은 그간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먼 글들로만 여겨졌던 우리의 옛글들을 새롭게 손질하고 다듬어 그 속에 담고 있는 감동을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의 독자들에게 전해준다. 이 책을 통해 어렵고 고리타분하게만 느껴져 멀리했던 우리의 옛글들을 편안하고 친숙하게 접하며 그것들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멋스러운지 새삼 느끼게 해준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고 본다. 정신없이 바쁜 요즘, 옛 선조들의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그들과 교류하며 마음의 여유를 한껏 누려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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