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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 - 2007 올해의 청소년 도서 ㅣ 조선 지식인 시리즈
고전연구회 사암.한정주.엄윤숙 지음 / 포럼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의 고전문학을 살펴보면 너무나 멋스러운 문장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한문이라는 언어의 벽에 가려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힘들고 그 표현 또한 난해하여 어느 순간부터 쉽게 접하기엔 부담스러운 상대가 되어버렸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점점 대중과 멀어져가는 고전문학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함께 즐기자는 취지 아래 고전연구회 사암은 그 문장들을 국역하고 원문의 뜻을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고치고 다듬었다. 그 결과 나처럼 고문에 무지한 일반 독자들도 어렵지 않게 옛글을 감상할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탄생했다.
포럼에서 나온 '조선 지식인 시리즈' 네 번째인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은 제목 그대로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저술이나 문집에서 아름답고 훌륭한 문장들을 골라 엮은 책이다. 이 글의 대부분이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의 실학자의 것임을 감안할 때 '조선 지식인'이란 아마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조선 후기의 지식인들을 뜻하는 듯 하다. 책에 담긴 글들은 각각의 문집에서 뽑은 글들이라 그런지 일정한 주제나 양식을 갖고 있진 않고 그 길이도 짤막하다.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은 일상 생활의 사소한 것들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나 풍류를 즐기며 자연친화적인 삶의 자세,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한 감흥을 적은 기행문 등 다양한 내용의 글들을 담고 있다. 크게 보면 수필집인 셈이다. 그러나 그 시대의 대부분의 글들이 그러하듯 이 책 속의 글들 또한 궁극적으로 자신을 다스리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전하는 교훈적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현대의 모습으로 다듬어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글들이 몇 편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읽기 편해서 부담이 없었다. 책을 통해 지금과는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이 다른 그들과 시대를 초월해 교류하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다. 담긴 글들 중 재미있는 글들이 많았는데 그 중 게으름을 풍자한 이규보의 글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고려시대 명문장가 이규보가 왜 '조선 지식인' 속에 끼여있나~하고 의아했는데, 아마 이 글이 실려있는 <동문선>이 조선 중기에 나온 것이라 포함한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규보는 조선 지식인이라기 보단 고려 지식이이라 칭함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와 웃음으로 글을 전개하지만 마지막에 가슴 속 깊이 박히는 날카로운 교훈을 던지기로는 이규보가 으뜸인 듯 하다. 학창시절 읽었던 '슬견설'처럼 이 책의 '게으름을 풍자함'에서도 그러한 그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자신의 게으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규보를 깨치게 하려 응대하는 손님의 기지나 손님의 재치에 속아 얼굴을 붉히는 이규보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모든 욕심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다는 마지막 그의 말은 가슴에 오래 남았다.
그 밖에 어린 벗 이서구와의 우정을 이야기한 연암 박지원, 경춘전에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정조 대왕, 자신을 다스리고 지키는 것을 논하는 다산 정약용, 벼룩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나 자신의 아들을 향한 당부와 교훈을 담은 강희맹 등등 내 눈과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글들이 많았다.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은 그간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먼 글들로만 여겨졌던 우리의 옛글들을 새롭게 손질하고 다듬어 그 속에 담고 있는 감동을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의 독자들에게 전해준다. 이 책을 통해 어렵고 고리타분하게만 느껴져 멀리했던 우리의 옛글들을 편안하고 친숙하게 접하며 그것들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멋스러운지 새삼 느끼게 해준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고 본다. 정신없이 바쁜 요즘, 옛 선조들의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 그들과 교류하며 마음의 여유를 한껏 누려보는 것도 즐거운 일일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