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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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을 꽤 여러 편 읽어왔지만 이제껏 접한 요시다 슈이치의 작품이라곤 전혀 다른 분위기의 중편이 함께 담긴 <워터>와 한 인간의 흥망성쇄를 담담하게 보여주던 <나가사키>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워터>는 나중에서야 그의 작품이란 걸 알게 됐으니, 세상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그는 내게 있어서는 비주류인 셈이었다. 한때 에쿠니 가오리의 담담하고 서정적인 문체를 좋아했었지만, 이상하게도 요시다 슈이치는 서정적이긴 하나 그 문체가 너무 건조하게 느껴져 약간은 우울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동경만경>, <퍼레이드>같은 그의 대표작들을 칭찬하고, 역시 요시다 슈이치!를 외쳐도 별로 궁금하지 않았었다. 고작 두 작품으로 그를 단정짓는 나의 편견이 섣부른 짓인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어쩌랴, 마음이 동하지 않은 것을.

그런 연유로 나와는 친해지지 않을 것 같았던 그를 새롭게 보게 한 것이 바로 <악인>이었다.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의 이름값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악인'이라는 제목도, 2007년 일본 최대 화제작이란 카피보다도 가장 나를 솔깃하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작가 스스로 이 작품을 '자신의 대표작'이라 평했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스스로 대표작이라 평할 만큼 이 작품에 자신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 한 마디에 다시 한 번 요시다 슈이치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러길 정말 잘 했다, 싶다.



236번 미쓰세 고개에서 한 여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목이 졸린 채 살해된 그녀는 보험설계사인 요시노 이시바시.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밤 그녀가 남자친구인 마스오를 만나러 갔다는 친구들의 증언을 토대로 경찰은 마스오를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해 수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요시노가 친구들에게 남자친구라 속여왔던 부잣집 아들인 대학생 마스오는 그녀의 일방적인 짝사랑 상대였고, 그날 밤 그녀가 만나기로 한 상대는 마스오가 아니라 만남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또 다른 남자 유이치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수사는 다른 양상을 띈다. 그리고 이야기는 독자들의 예상대로, 그러나 예상과는 다른 방법으로 진행된다.

요시다 슈이치는 사건의 촉발자이자 희생양인 요시노, 경찰에 의해 살인용의자로 지목된 대학생 마스오, 또다른 용의자이자 전체를 관통해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유이치, 평범한 싱글녀지만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미쓰요를 중심으로 요시노의 아버지, 유이치의 할머니, 마스오의 친구 등 지극히 평범하지만 한편으론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주변인물들을 통해 사건을 확대해간다.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만 부각되는 사건 뒤에 감춰진 여러 은밀한 진실들을 끄집어내어 사건 그 자체가 아닌 그 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악인>의 전체를 아우르는 주요 사건은 물론 요시노의 살해사건이다. 보통 이런 경우엔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그 범인을 찾아가는데 주력하지만 요시다 슈이치는 처음부터 독자들에게 범인의 윤곽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야기를 크게 네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진행하되 전체를 이어가는 하나의 사건을 각 단락마다 다른 인물을 중심으로 내세워 각각의 시선에서 바라본다. 또한 이야기 중간중간 인물들의 독백들이 번갈아가며 등장해 그들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즉 <악인>에서는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가,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그는 왜 범인이 되었는가,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에 집중한다. 그리고 작가는 독자들을 그런 논의로 이끌기 위해 다양한 입장에 처한 인물들의 독백과 각기 다른 시선으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결과보다 과정을 면밀히 보여준다. 



책 속의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만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평범한 사람들이 때론 순간적이고 극적인 계기로 인해 미처 상상도 못하는 악인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작가는 주인공과 그의 주변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또한 악인(미처 본인이 악인인도 모르는 그런 악인들까지 포함해서)이 또다른 악인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너무나 담담하게 보여준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우리는 대게 결론만을 보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누어 비난한다. 걔중에는 정말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가끔 억울하거나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그럴 때면 너무나 명확해 보이던 악의 기준이 순간 모호해지곤 한다. 과연 그들 모두는 진짜 악인들일까. 어쩌면 그들이 악인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고간 숨겨진 진짜 악인은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악인>을 읽는 동안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진정한 악인은 누구일까. 물리적으로 누군가에게 해를 가한 사람은 물론 죄가 있다. 그렇다면 그가 그런 행동을 하기까지 직간접적으로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물리적인 결과가 없으니 아무런 죄도 없는 걸까. 그들은 과연 그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알 것 같지만 또 모르겠다.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은 하나의 살인사건과 그에 얽힌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간의 다중적인 내면과 인간심리를 담담한 시선으로 치밀하게 묘사한 수작이다. 이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진정한 그를 만나지 못했던 셈이다. 그래서 책을 덮는 순간 그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올해 나의 책목록에 그의 작품을 몇 권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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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왼쪽 무릎에 박힌 별 마음이 자라는 나무 14
모모 카포르 지음, 김지향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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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헤어지자는 은수에게 상우는 쓸쓸한 표정으로 그 유명한 대사를 날린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뜬금없이 영화 대사를 왜 운운하느냐 하면, 세르비아에서 날아온 이 독특한 책 <내 왼쪽 무릎에 박힌 별>을 읽는 동안 내내 상우의 저 대사가 머리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애원하듯 말하던 상우의 슬픈 목소리가 바냐로 인해 점점 작아지는 싸냐를 통해 내 귀에 들리는 듯 했기 때문이다.


어느날 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별이 갓 태어난 아기 싸냐의 왼쪽 무릎에 살포시 내려 작은 점이 된다. 그리고 아기 싸냐는 그곳에서 같은 날 태어난 아기 바냐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병원에서 나와 유모차와 놀이터에서 다시 재회한 싸냐와 바냐는 모든 것을 함께 하며 완벽한 사랑을 꿈꾸는 연인이 된다. 싸냐에게 청혼하는 바냐에게 싸냐는 그녀만을 영원히 사랑할 것을 맹세하냐고 묻는다. 그리고 바냐의 맹세를 듣고 난 후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고 그들은 드디어 결혼을 한다. 그러나 자신의 맹세를 지키지 못하는 바냐로 인해 싸냐는 시련을 맞게 된다.

자신만을 사랑하겠다던 바냐가 다른 여자에게 한 눈을 팔거나 마음 속으로 잠시나마 그녀들을 떠올리기라도 하면 그때마다 싸냐의 키는 줄어든다. 바냐는 싸냐만을 사랑하고 예전보다 더욱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끊임없이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주고 머리속으로 그녀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바냐의 끊임없는 곁눈질로 인해 싸냐는 점점 더 작아지고 작아져 어느 순간 미니스커트가 롱스커가 되고, 아동복마저 커서 인형옷을 입어야 하며, 반지를 팔찌처럼 차고, 뻐꾸기 시계 안에서 잠을 자야 할 정도로 작아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진다.

- 내 아내가 되어주겠니?
- 응! 하지만 조건이 있어. 나를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맹세할 수 있니? (중략) 그건 매우 중요한 거야. 왜냐하면 말이지, 내가 만약 다른 여자를 좋아한다면 난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난 네가 나를 사랑하는 그때까지만 살 수 있을 것 같아. (중략) 바냐, 널 믿어. 제발 네가 한 맹세를 평생 잊지 말아줘. 내 삶을 송두리째 거기에 걸었으니까! (45쪽)

싸냐는 바냐가 자신만을 영원히 사랑해 줄 것을 원했고, 바냐의 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러나 바냐는 그 사랑의 맹세를 너무 자주 잊어버렸고, 그럴 때마다 싸냐는 조금씩 조금씩 작아지더니 어느 순간 그의 눈 앞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린다. 싸냐의 왼쪽 무릎에 박힌 별은 왜 그녀를 계속 작아지게 만들었을까. 계속해서 작아지는 그녀의 키는 바냐를 향한 싸냐의 믿음의 크기가 줄었기 때문일까, 아님 바냐에게서 싸냐의 존재감이 적어졌기 때문일까.


<내 왼쪽 무릎에 박힌 별>은 손에 든 자리에서 다 읽어버릴 만큼 작고 얇은 책이다. 작가가 직접 그린 큼지막한 그림들은 책 전체에 적지 않게 등장해 활자가 전하지 못하는 미묘한 느낌을 전해주고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마치 동화책 보듯 쉽고 부담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왼쪽 무릎에 별을 박고 있는 소녀 싸냐와 그녀의 운명적 상대인 바냐의 사랑이이기라는 단순한 플롯 속에 일흔을 훌쩍 넘긴 노작가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우리는(또는 당신은) 그 사랑을 지금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라는 심오한 주제를 깔고 독자들에게 그 답을 묻는다. 그런 까닭에 책을 읽는 데는 수십 분이면 충분하지만, 작가가 던지는 물음에 대한 답을 곱씹는데는 족히 그것의 몇 배(또는 몇 십 배)가 걸린다. 이책의 분류가 청소년 문학으로 되어있지만 그런 까닭에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보아도 무난할 듯 하다.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지만 그들의 사랑은 변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하지만 우리들의 사랑 또한 완전하지 못하기에 변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물론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바꾸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할 테고. 바냐가 한 눈을 팔 때마다 줄어드는 것은 싸냐의 키 뿐만 아니라 바냐에게 있어 그녀의 존재감일 것이다. 그에게 그녀의 존재가 자꾸만자꾸만 작아져 완전히 사라져버리기 전까지 그들이 기울인 노력은, 어쩌면 본질을 겉도는 표면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다 그녀가 자취를 감춘 후에야, 사랑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후에야 그녀를, 사랑을 애타게 찾는 바냐의 모습은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사랑을 제대로 대하지 못하고 그것을 놓친 후에야 후회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아닐런지. 그래서인지 싸냐를 찾아 땅만 보며 걸어가는 바냐의 뒷모습이 담긴 마지막 장을 보는 입맛이 씁쓸하다. 그리고 그 장면에 불현듯 '있을 때 잘해'라는 유명한 유행가 가사가 떠오른다. 이건 너무 언밸런스한가, 훗.







☞ 구시렁구시렁 - 내용과 캐릭터에 대한 나만의 딴지걸기. 
(참고로.. 아래의 생각들은 상징을 띠고 있는 캐릭터와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드러난 '전체(숲)'에 관한 생각이 아닌,
'그녀'와 '그'에 초점을 맞춘 지극히 '지협적(나무)'인 것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들일 뿐이다. 오해마시길.)


- 하나, 바냐가 다른 여자를 보거나 그녀들에 대한 생각을 품을 때마다 싸냐는 거침없이 작아진다. 그렇다면 그가 그녀만을 사랑하고 바라볼 때는 반대로 좀 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줄어들기만 하냐고. 이건 애초부터 결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는 불리한 게임이 아닌가.

- 둘, 싸냐는 바냐의 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그리고 그가 사랑의 맹세를 어길 때마다 마치 천형을 받은 듯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줄어든다. 줄어들다 줄어들다 못해 나중엔 엄지손가락 정도가 되어도 그녀는 그 상황에 별다른 불만을 토하지 않는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는 좋지만, 어떻게 그의 바람으로 자신의 삶이 변해가는 데 매번 좋은 점만 찾을 수 있는지, 어떻게 전혀 그를 원망하거나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는지 의문이 든다.

- 둘 반, 더구나 그녀는 자신의 삶조차 바냐에게 모두 걸어버린 듯 하다. 몸이 자꾸 줄어들어 빵조각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그릇의 물 속에서 수영을 하는 삶은 과연 그녀가 기대했던 자신만의 삶일까. 왜 그녀는 자신만의 삶을 생각하지 않는 걸까. 왼쪽 무릎에 박힌 별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일까..

- 셋, 싸냐는 바냐가 다른 여자에 대한 생각을 잠시만 떠올려도 줄어든다. 어떤 구체적인 행동을 취한 것이 아니라 단지 생각만 할 뿐인데도. 솔직히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더라도 가끔씩 다른 사람을 보거나 떠올려보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때로는 자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물론 엄격히 보자면 그건 마음속으로 행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냐의 머리속의 바람만으로 줄어드는 싸냐는 조금 억지스러워 보인다. 적어도 내가 공감하기엔 좀 그랬다. 그들의 사랑처럼 그런 작은 일탈조차 허락치 않는 그런 사랑만이 과연 완전한 사랑일까. 글쎄, 잘 모르겠다.



☞ 주절주절

- 하나, 책을 읽다보면 아주 상큼한 표현들이 쓩쓩~ 튀어난온다. 예를 들면,, [유모차 안에서 파란 하늘 밖에 볼 수 없었답니다. (중략) 그런데 바냐는 좀 게을렀나 봅니다. 싸냐보다 유모차를 오래 타고 다녀서 눈이 유난히 파래졌거든요. (26쪽)] 같은 표현. 멋져!

- 둘, 작가가 직접 그렸다는 그림은 꽤 독특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책 속의 싸냐의 모습은,, 사랑스럽기 보단 무섭게 보이더라는(괴기스럽기도;).. 나만 그런 건가;;

- 셋, 위에 적어둔 26쪽 구절 중에.. '하늘밖에' 는 '밖에'가 의존명사라서 띄워쓰는 게 원칙일 듯. → '하늘 밖에'
문맥상 '바깥'을 뜻하는 '밖'은 아닌 듯. 그러나 의존명사는 띄워쓰기가 원칙이다 붙여쓰기도 허용하니 틀린 건 아닐 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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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이야기 2 - 변화의 힘 마시멜로 이야기 2
호아킴 데 포사다.엘렌 싱어 지음, 공경희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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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이야기>가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높이던 때 그책을 만났다. 사실 그때까지 자기계발서는 딱딱하고 뻔한 이야기들만 늘어놓은 지루한 책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던 터라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내게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을 때 누군가 그책을 권했다. 자기는 꽤 괜찮게 읽었다면서(그렇다고 사주진 않더라;ㅎㅎ). 그래~ 속는 셈치고 한 번 읽어보자,라는 마음으로 책을 샀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힘들었던 것도 있지만, 솔직히 워낙 화제가 되던 책이라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책도 얇은데 글자도 크다. 그림도 적지 않다. 뭐야, 애들 책이야?하며 시큰둥하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거,, 재미있다. 미심쩍은 눈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책 속으로 푹 빠져든다. 하루하루 허송세월하며 보내는 찰리의 모습에서 나를 보았기 때문일까.

첫인상처럼 책의 이야기도 참 단순하다. 그런데 그 단순함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잘난척하며 구구절절 어려운 말만 읊어대던 기존의 책들에 비해 단순하지만 명쾌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한순간의 달콤함을 위해 오늘이라는 마시멜로를 먹어치우지 말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나만의 마시멜로를 모으라는 이책의 주제는, 사실 모두가 아는 내용이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사실을 호아킴 데 포사다는 독자들이 보다 현실적으로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풀어놓았다. 찰리의 변화를 통해 마치 나도 그렇게 변할 수 있을 거란 자기최면을 건다고나 할까. 그런데 그 최면이 나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다시 작지만 큰 용기를 움켜쥘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시멜로 이야기>는 내게 나름의 의미를 지닌 책으로 남았다.

<마시멜로 이야기>를 읽은지 일년 반이 지난 얼마전 그 속편 출간소식을 들었다. 제목 정말 심플하다, <마시멜로 두 번째 이야기>. <마시멜로 이야기>의 폭발적인 성공 이후 나온 호아킴 데 포사다의 <피라니아 이야기>는 좀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내심 '마시멜로 이야기'의 속편은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기도 했고, 새책에서 조금 더 성장했을 찰리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해 예약판매 때 주문해 책을 받했다. 예쁜 선물상자에 <마시멜로 이야기> 오디오북 시디와 함께 담겨온 <마시멜로 두 번째 이야기>는 여전히 얇고, 큰 글자에, 그림도 많다. 그래서 이번에도 책을 잡자마자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두 번째 이야기 역시 전편과 비슷한 구조로 진행된다. <마시멜로 이야기>에서 조나단의 운전기사로 일하며 그에게서 '마시멜로 법칙'을 전해들은 찰리는 눈 앞의 유혹을 참고 마시멜로를 모아 '대학'이라는 자신의 목표에 다다른다. 그리고 <마시멜로 두 번째 이야기>는 '마시멜로 맨'으로서 성공적으로 대학생활을 마친 찰리가 졸업을 앞두고 근사한 직장에 취직하면서 시작된다. 대학 졸업과 취업이란 눈 앞의 작은 성과를 맛보는데 여념이 없던 찰리는 첫 월급도 타기 전에 돈을 쓰고 결국 경제적 위기에 처한다. 자신만만했던 직장생활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거기에 회사 사장 아들인 브라이언의 진로문제로 곤란한 상황에 직면한다.

'마시멜로 법칙'을 알고 실천한 이후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찰리는 '직장'이란 새로운 환경에 처하면서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때 뒤죽박죽이 된 찰리의 삶에 구원의 손길이 등장하니, 바로 찰리의 멘토인 조나단과 이책에서 새롭게 등장한 제니퍼다. 하루하루 의미없는 삶을 살던 찰리에게 '마시멜로 법칙'을 들려줌으로써 삶의 목표를 제시해줬던 조나단은 변화 앞에서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찰리에게 '성공퀴즈'라는 6개의 문제를 줌으로써 그 스스로 길을 찾게 도와준다. 또한 찰리가 전해준 마시멜로 법칙으로 제 2의 찰리가 되려고 노력하던 제니퍼는 방황하는 찰리에게 직접적으로 충고하며 그가 다시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이끌어준다. 그리고 '마시멜로 법칙'을 함께 실천해가는 동료이자 동반자가 된다.


조나단의 운전기사로 일할 때 세웠던 '대학'이란 목표에 성공적으로 다다른 찰리는 '직장'이란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서 거기에 맞는 또다른 목표를 세우기에 앞서 눈 앞의 성공을 즐기며 그 상황에 안주한 까닭에 잠시 목표를 잃고 주춤한다. 그러나 조나단과 제니퍼의 도움으로 다시 '마시멜로 법칙'을 기억해낸 찰리는 조나단이 내준 성공퀴즈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과정에서 마시멜로 법칙의 '구체적인 실천방법'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6개의 실천방법들이 바로 <마시멜로 두 번째 이야기>의 핵심이다.

찰리가 조나단의 성공퀴즈를 하나씩 풀 때마다 나도 내 자신에게 하나씩 질문을 했다. 나라면 세상을 바꾸는 걸 선택할까, 아님 나 자신을 바꾸는 걸 선택할까? 신념이 중요할까, 행동이 중요할까? 조나단의 질문을 볼 때마다 나만의 답을 생각해보고, 그 답을 찰리의 답안지와 비교해 본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공개된 퀴즈 답안을 보며 내 답안지를 평가하고 나의 생각을 다시 세워본다. 6가지의 성공퀴즈 중에 가장 가슴에 박힌 것은 바로 신념과 행동에 대한 질문이었다. 신념이 중요할까, 행동이 중요할까. 머리속으로 세우는 결심이 중요할까, 직접 실천하는 행동이 중요할까. 나는 찰리와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그런데 왜 이제껏 오답을 행하며 살아왔던가. 하나하나 반성해본다.


<마시멜로 이야기>가 목표없이 사는 찰리를 통해 '마시멜로 법칙'에 대해 들려주었다면, <마시멜로 두 번째 이야기>는 잠시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찰리를 통해 마시멜로 법칙의 '구체적인 실천 방법'들을 보여준다. 우리는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정한 뒤 그것을 이루어가는 각 단계마다 중간 목표들을 설정한다. 그리고 작은 목표에 다다를 때마다 나름의 성취감을 느끼며 그것을 바탕삼아 더 큰 목표를 향해 나아갈 힘을 얻는다. 그러나 우리는 작은 목표의 성취감에 빠져 그곳에 안주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인생이라는 큰 목표에서 하나의 작은 목표에 불과한 대학 졸업을 성취한 뒤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유혹에 빠져든 찰리가 바로 그런 경우다.

그러나 찰리는 방황을 접고 다시 일어났다. 멘토인 조나단과 동반자인 제니퍼의 도움이 컸지만, 대학진학 문제로 불화를 겪던 브라이언과 그의 어머니인 슬로우 부인을 설득하는 쉽지 않은 과정에서 얻은 교훈 또한 찰리를 성장하게 했다. 그들을 대하며 찰리는 성공퀴즈의 답을 찾아갈 수 있었고, 마시멜로의 법칙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조나단이 마련한 만찬에서 다같이 자리한 그들은 제시한 목표들은 모두 예상 밖이었지만 또한 모두 아름다웠다. 잊고 있었던 나의 꿈들이 그들의 다짐을 통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랄까.


<마시멜로 이야기>가 그랬던 것처럼 <마시멜로 두 번째 이야기> 또한 아주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스토리가 조금 허술하긴 하지만 자기계발서의 스토리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부수적인 장치에 불과하기에 그리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속편의 운명이 그러하듯 전작의 뼈대를 그대로 가져와 변형한 까닭에 참신함은 전작보다 떨어지고, 책 속의 예시들은 이미 다른 곳에서 접했던 내용이 적지 않았다(특히 공항의 쿠키 이야기). 그가 제시한 실천전략 또한 <피라니아 이야기> 만큼 실망스럽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전작만큼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아마도 <마시멜로 이야기> 이후 워낙 이런 류의 자기계발서가 쏟아졌고 그것들을 많이 접한 까닭에 이책의 감동이 덜한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자기계발서가 담고 있는 내용들의 핵심은 대부분 비슷하며 대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그렇기에 당연한 사실들을 어떻게 요리해 독자들로 하여금 감흥을 일으키느냐에 따라 그책의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 더불어 그책을 읽는 사람이 현재 어떤 심정이고, 어떤 자세인지에 따라서도. 때마침 새해를 맞아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던 내게 이책은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목표를 잃고 헤매는 찰리가 이번에도 나와 겹쳐져 다시 훌훌 털고 일어서는 그를 통해 새로운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이책의 단순한 구조와 저자가 전하는 너무도 당연한 메시지는 '찰리'라는 캐릭터를 거침으로 나를 동하게 만든다. 그게 이책의 매력인가보다.

<마시멜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라면 <마시멜로 두 번째 이야기>를 통해 한층 성숙해진 찰리를 만나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다만 형만한 아우 없다고(물론 실제로 형보다 나은 아우도 많지만!), 속편에 대한 기대치를 한 풀 꺾고 읽는다면 훨씬 즐거운 책읽기를 할 수 있을 듯 하다.





* 우리도 함께 풀어보자, 조나단의 성공퀴즈~!

1) 세상을 바꾸는 방법과 자기 자신을 바꾸는 방법이 잇다면, 둘 중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2) 삶에서 멋진 일이 생긴다면 먼저 누구에게 전화하겠는가? 나쁜 일이 생길 경우에는?
3) 여행할 때 머릿속에 있는 한 군데 목적지가 중요할까, 트렁크에 든 백 장의 지도가 중요할까?
4) 숲에서 '큰곰'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 두 가지를 동시에 만났는데 하나만 죽일 수 있다면 어느 쪽을 죽일 것인가?
5) 신념과 행동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6) 찰리가 마시멜로의 길에서 방향을 바꾸었다면, 그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일까?



** 구시렁구시렁~! 

그런데 한 가지 불만이 생겼다. 제니퍼의 목표만 '레스토랑 사업'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으로 바뀌었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은 물론 그 어느 것보다 가장 중요하고 고귀한 것이지만, 그것은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닐까. 조나단과의 만찬자리에서 '남자'인 찰리나 미구엘이 자신의 꿈을 계획하고 확장시켜가는 반면, '여자'인 제니퍼는 자신의 꿈에서 '사랑'으로 회귀한다. 이야기의 흐름상의 제니퍼와 찰리를 엮기위한 매개가 필요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작가가 제니퍼의 꿈을 '사랑'으로 묶어버리는 걸 보고 그의 태도에 못내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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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랩]▶50% DOWN↓◀ 멀티 비타민 아쿠아 에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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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겨울만 되면 건조해져서 얼굴이 막 당기고 각질도 생기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세안 후 스킨으로 피부결 정돈하고 로션대신 에센스를 충분히 발라주고 아이크림으로 눈가를 두드려줘요. 그리고 겨울 피부를 위한 필수품, 고수분 영양크림을 듬뿍 발라준답니다. 복합성 피부라서 U존이 건성처럼 당겨서.. 당기는 것보단 좀 번들거리는 게 나을 것 같아 크림을 자꾸 많이 바르게 되더라구요.

그러다 네이처랩의 비타민 에센스를 사용하게 되었는데요. 오! 요거요거~ 물건이네요! 사실 처음엔 에센스치곤 너무 묽어서 반신반의했는데 웬걸! 아주 촉촉해요! 스킨처럼 묽어서 바를 때는 아주 부드럽게 잘 발리고, 손으로 톡톡~ 두드려주면 흡수도 꽤 빨리 되지만 손으로 만져보면 쫀득쫀득한(?) 느낌이 들면서 볼이 아주 촉촉하네요. 크림 안 발라도,, 비타민 에센스만 바르고 있어도 한동안은 얼굴이 거의 당기질 않네요. 물론 자기 전엔 크림을 발라줘야 하지만요.



우선 용기는 갈색 병이에요. 비타민 성분이 파괴되지 않게 갈색으로 빛을 차단한 게 마음에 드네요. ^^ 또한 스포이드 형태로 되어 있어요. 30ml라서 용기의 크기가 아담하지만, 스포이드 형태로 되어있어서 낭비없이 아껴쓸 수 있네요. 저는 스포이드로 한 번 펌해서 이마, 양볼, 턱에 한 방울씩 떨어뜨려 바르는데 그정도로도 충분하답니다. 또한 점도가 묽어서 퍼짐성이나 발림성이 좋아서 적은 양으로도 넓게 펴바를 수 있네요.

위에서도 말했듯이 비타민 에센스는 기존의 다른 에센스보다 많이 묽어요. 거의 스킨보다 조금 더 점도가 있는 정도?? 그래서 스포이드로 얼굴에 떨어뜨리면 딱~ 뭉쳐있지 않고 주르륵~ 흘러내려서 얼굴에 떨어뜨려 바르기가 그리 수월하지가 않네요. 이 제품의 유일한 단점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자꾸 쓰다보면 익숙해지고 또 요령도 생기겠지만요. ^^

하지만 그렇게 묽은 덕분에 발림성은 아주 좋아요. 아주 부드럽게 잘 퍼져서 적은 양으로도 넉넉하게 얼굴 전체에 바를 수가 있어요. 흡수 또한 빨라서 펴바르고 손으로 두드려주면 금새 흡수가 된답니다. 흡수가 빨라서 건조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구요. 표면상 거의 흡수된 두에도 손으로 만져보면 촉촉해요. 그 촉촉함이 꽤 오래가더라구요.

아, 그리고 에센스 색깔은 사진처럼 노란 빛을 띠고 있어요. 폰카라 화질이 그리 좋진 않은데, 사진보다 더 진한 노란색이랍니다. 보기만 해도 비타민이 듬뿍 들어있는 느낌이 들 정도랍니다. ^^



손에 발라봤어요. 역시나 한 방울 떨어뜨리고 사진 찍으려고 하니 그새 흘러내리네요;; 잘 보이실지 모르겠군요; ^^; 2,3,4 번은 흡수 중간중간 찍어봤는데요. 2번은 펴바른 직후, 3번은 흡수중, 4번은 완전히 흡수가 된 이후의 사진이에요. 색조가 아닌 기초제품이라 사진으로 제대로 보여드리기 어렵네요. ^^;

제 피부는 여드름에 뾰루지들이 마구 지나간 까닭에 피부톤이 좀 칙칙해요. 게다가 게으른 제가 관리를 잘 안 하기도 하구요. 이제라도 맑고 촉촉한 피부를 가꾸고 싶은데.. 비타민 에센스 덕분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ㅎㅎ 피부톤이 맑아지는 건 몇 번 사용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서 앞으로 꾸준히 사용해 봐야 알겠지만, 에센스 속에 듬뿍 들어있는 비타민 덕분에 올핸 좀 더 맑은 피부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







- 개인적으로 제품기능과 상관없이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요. 제품 용기나 제품상자에 이 제품 사용에 대한 설명이 제대로 안 나와있다는 거예요. 제품 용기엔 영어와 일어만 잔뜩 써있고 정작 한글은 제조원, 판매원 정도 밖에 없네요. -_-; 그리고 제품 상자에도 역시 영어와 일어가 거의 대부분이고 맨 밑에 한글로 간략한 설명이 적혀있어요. 

요즘 우리나라 제품임에도 영어로 도배된 화장품들을 어렵잖게 만나는데요. 이제품도 역시 그 점이 아쉽습니다. 제품의 정보를 영어, 일어, 국어로 3개국어로 게시하는 것도 좋지만, 전체적으로 좀 과도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네요. 제조원과 판매원이 모두 우리나라 기업인데 왜 이렇게 표기해야만 하는 건지;;

회사차원에서 꼭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면,, 최소한 사용자를 위해 제품의 사용방법이나 성능, 주의사항 등을 내용을 따로 첨부라도 해주는 배려라도 해주었더라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네이처랩의 비타민 에센스를 [저녁에만 사용하고 낮에 사용시엔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야 한다]는,, 사용상 중요한 정보를.. 제품상자나 용기에선 절대 찾을 수 없다는 건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홈피에 적혀있는 제품 설명을 보고 순간 좀 당황스러웠답니다..;; 네이처랩에선 이 문제를 조금 더 고려해주셨음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결과적으로.. 비타민 에센스 제품은 아주 맘에 들었는데 이런 제품 외적인 사항이 아쉬웠습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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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1 - 아프리카.중동.중앙아시아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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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편안한 삶을 포기한 대가와 단신 오지 여행이라는 달콤하지만 혹독한 수업료를 치르고서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라는 바다를 헤쳐 나가는 내 인생이라는 배의 선장은 바로 나라는 것.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대신하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 바다가 고요할 때나 폭풍웅가 몰아칠 때나 나는 내 배의 키를 굳게 잡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지금과 같은 깊은 행복감을 내내 맛보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 (37쪽, 서문 中)


가장 닮고 싶은 여성인 중의 한 명이자 세계 오지 여행가에서 우리땅과 중국을 거쳐 지금은 월드비전 긴급구호단체 팀장으로 지구 곳곳을 누비는 여전사, 한비야.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세계여행을 위해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 배낭을 꾸려 무려 7년이나 세계 곳곳을 누비며 오지여행을 했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 그자체였다. 많은 이들이 막연한 꿈으로만 간직할 뿐 삶에 치여 마음속에만 꼭꼭 담아놓았던 꿈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준 그녀의 여행기는 경이롭기까지 했다. 아하, 세상엔 이렇게 멋지게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한비야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출간된 그녀의 세계오지여행기는 세간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녀의 책은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서 한결같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한비야,하면 '바람의 딸'이란 멋진 별명과 '진짜 여행'이란 단어가 함께 떠오를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의 씩씩한 무용담과 걸출한 입담이 맛깔스런 이책은 출간된지 십여년 만에 다시 새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러나 표지와 중간중간 편집이 조금 바뀌었을 뿐 글의 내용은 바뀐 것이 없다. 저자는 개정판의 서문에서, 거칠고 부족하지만 그시절의 모습 그대로 남겨두고 싶어 책의 본문에는 손대지 않았다,라고 밝혀놓았는데 개인적으론 그래서 더 좋았다. 덜 세련되었더라도 그시절의 감흥을 싱싱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홀로 떠나는 여행. 이것은 내 자신과의 여행이다. 여행이란 결국 무엇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서 수많은 나를 만나는 일이니까. (33쪽, 서문 中)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1권>은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에서의 그녀의 여행담이 담겨있다. 책의 포문을 여는 이야기는 이란의 테헤란에서 반정부지도자와 나눈 열흘간의 로맨스였다. 오지여행가로 유명한 그녀였기에 이름도 생소한 땅의 원주민 이야기로 시작되지 않을까 기대했던 터라 낯선 여행지에서의 로맨스라니. 다소 의외였지만 사랑이야기만큼 재미있는 것이 또 있으랴. 그녀의 사랑이야기에 함께 빠져들어 그들이 헤어질 땐 내 마음도 알싸해졌다. 그러나 아쉬운 이별로 로맨스가 끝나고 글의 단락이 바뀌자, 어느새 예의 그 씩씩한 그녀로 돌아와 활기차게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이란에서는 입을 다물지 못한 유적지보다 그녀의 로맨스가 더 진하게 남았고, 전쟁중이라 살벌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사진 한 장으로 벌어진 긴박한 상황에 가슴이 콩닥거렸다(요즘같은 디카라면 그녀는 바로 변을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그시절 필카였던 게 천만다행인 셈이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투르크메니스탄의 알렉산더도 놀랐다는 도시 사마르칸트는 여행객의 천국이라는 말라위와 함께 정말 궁금한 곳이었다(사진이라도 좀 실어주지!). 케냐의 대낮 강도의 무모함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고, 킬리만자로를 등반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새삼 산과 삶의 관계를 생각나게 했으며, 아프리카 원주민 부족의 사회에서 아직도 공공연히 행해지는 여성의 불평등한 지위는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외 에티오피아, 나일강,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시리아, 시베리아 횡단열차 등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여행의 묘미는 역시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녀가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책의 재미를 더욱 북돋아줬다. 길에서 만나는 여행자들과의 만남도 멋졌지만, 그녀를 가족처럼 대해준 현지인들과의 우정은 무척 이상적이었다. 이란에서의 로맨스 주인공은 물론 투르크메니스탄 시장에서 만난 고려인 무채 아줌마들, 눈물의 지우개를 선물했떤 터키의 누리네 가족, 진짜 딸과 친구처럼 대해줬던 케냐의 로즈 엄마와 그녀의 딸 비다, 잔지바르 해변의 조나단, 따뜻함이 넘치던 이집트의 함디네 가족,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룸메이트 조선족 미란씨 등과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준 현지의 한국인들까지.. 계산되지 않은 그들의 순수한 우정이 마음 한 켠을 훈훈하게 해줬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이책이 여행책임에도 사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각국의 숨겨진 보석같은 유적지에 감탄하는 글이나 따뜻함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사진으로나마 보고 싶은 게 당연지사. 그러나 각 단락의 제목 밑에 실린 사진 외엔 빽빽한 글만 이어지니 조금은 답답하다, 물론 충분히 매력적인 글이지만. 십년 전 처음 출판될 땐 그렇다고쳐도 개정판은 좀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레이아웃이 조금 달라진 것 빼곤 별로 변한 게 없어 아쉬웠다. 

또한 책을 읽기 전엔 글이 여행 시간순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조금 혼란스러웠다. 1권의 첫머리에 실린 이란이 첫 여행지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 뒤에 이어지는 나라들도 다녀온 순서대로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나라에 대한 내용도 시간의 차이가 있어 처음에 좀 헷갈렸다. 각 나라별 여행담의 분량도 생각보다 많지 않고 기대보다 깊이 다뤄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긴, 7년이란 긴 세월 동안 다닌 곳을 시간 순으로, 각 나라별로 세밀하게 풀어놓으려면 4권으론 어림도 없겠지. 그래도 볼거리보단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아 그건 좋았다.


-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 그리고 어떤 일에 최선을다했다면 나타나는 결과와 상관없이 후회나 미련이 없다는 것을. 내가 이 기간을 통해서 얻은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란, 목표는 자신의 능력에 비해 약간 버겁다 싶을 정도로 높게 잡고, 계획은 치밀하게, 실천은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후부터 지금까지 나의 인생원칙이 되었다. 이 원칙이 없었다면 지금의 내 세계여행은 다른 사람이 그러하듯 여전히 꿈으로만 남아 있을지 모른다. (22쪽, 서문 中)


이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사실 그녀가 쓴 서문이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이후 오년간 아르바이트로 용돈과 생활비를 벌다가 대학 입학을 결심하고 노력해 좋은 결과를 얻었고, 또 유학을 다녀온 후 입사한 직장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 승승장구하는 그녀의 모습은 멋졌다. 그러나 그런 세상적인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에 담아왔던 자신의 꿈을 향해 과감하게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그녀의 결단력은 감동이었다. 또한 장기 오지여행을 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어려움들을 피하기보다 직접 맞서 돌파해내는 용기가 그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삶과 꿈을 향해 매진하는 그녀의 모습은 흐지부지 삶을 낭비하고 있던 내게 아주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책을 쓴지 십여년이 지난 지금은 그녀가 밟았던 장소 중 많은 곳은 그때만큼 낯설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이책이 아직도 의미가 있는 것은 단순히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아닌, 낯선 곳으로 나아가는 호기심과 흥분, 그리고 여행을 하는동안 얻은 성숙함이 가득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 여행을 한 그녀만큼은 아니겠지만, 나 또한 그녀의 글을 통해 한 뼘 더 클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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