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심리학 2 - Yes를 끌어내는 설득의 50가지 비밀 설득의 심리학 시리즈
노아 J. 골드스타인 외 지음, 윤미나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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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 년 전에 도서관에 들렀다가 우연히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을 만났다. 심리학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입소문이 꽤 좋아서 제목을 기억하고 있었던지라 바로 집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더 흥미진진한 내용이 담긴 책이었다. 알쏭달쏭한 사람들의 심리를 엿보는 재미도 있고, 아주 작은 차이에도 확연히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행태나 나 또한 그런 일반적인 심리와 별반 다르지 않음이 우습기도 했다.

그뒤 심리학이란 분야에 약간의 관심이 생겨 몇몇 대중심리학 책들을 찾아 읽었는데 대부분 <설득의 심리학>이 다루었던 내용을 넘어서질 못했다. 역시 <설득의 심리학>만한 책이 없군,이라는 생각이 다른 책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이어져 그 후 점점 관심이 옅어졌던지라 <설득의 심리학 2>가 나왔다는 소식이 더욱 반가웠다. 전작에 대한 신뢰도가 컸기에 2권 또한 그에 따른 믿음과 기대감 만발, 이번엔 설득심리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을까 하는 설렘으로 책장을 하나둘 넘기기 시작했다. 


로버트 치알디니가 전작 <설득의 심리학>에서는 '6가지 불변의 법칙'이라는 '설득이론'에 대한 개념적인 설명을 들려주었다면, <설득의 심리학 2>에서는 그 이론들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심리학 실험들을 통해 입증된 '실천적 설득전략'들을 풀어낸다. 한마디로 설득의 노하우에 집중한 '실천편'이라고나 할까. 저자는 다양한 실험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전작의 '6가지 불변의 법칙'을 '50개의 설득전략'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각종 사례와 실험결과, 통계들을 통해 이책에 제시된 설득전략들이 어떤 상황에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독자들이 실생활에 적용하는 방안에 대한 설명도 친절히 곁들여 놓았다.

그럼 전작과 이책의 밑바탕이 되는 6가지 불변의 법칙에 대해 먼저 알아보자. '6가지 법칙'이란, 다수의 행동이 '선(善)'이라는 「사회적 증거의 법칙」, 호의는 호의를 부른다는 「상호성의 법칙」, 하나로 통하는 기대치를 만들라는 「일관성의 법칙」, 끌리는 사람을 따르고 싶은 이유를 밝히는 「호감의 법칙」, 부족하면 더 간절해지는 「희귀성의 법칙」, 전문가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을 설명한 「권위의 법칙」을 말한다. 


그럼 이 6가지 법칙들은 우리 생활속에서 어떻게 작용되고 있을까? 옵션이 많아질수록 의사결정률이 낮아지고(사회적 증거의 법칙), 기록할수록 약속이행률이 높아지며(일관성의 법칙), 작은 약점을 먼저 언급한 후에 큰 장점을 거론하면 상대방을 설득하기가 쉬워지거나(호감의 법칙), 설득 전에 먼저 차를 대접하면 성공확률이 높아진다(권위의 법칙)고 한다.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들이지만 제시된 과학적 사례들을 살피는 것은 또다른 맛이 있었다.

또한 원칙적인 설명은 힘들지만 우리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흥미로운 한 단면을 보여준 '뉴 코크'와 '오리지널 코크'에 대한 미국 소비자들의 극렬한 반응은 사람들은 익보다는 손실에 더 민감하다'는 심리를 보여준 재미있는 사례였고(희귀성의 법칙), 어떤 부탁을 할 때 포스트잇 같은 작은 정성만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거나(상호성의 법칙), 파괴적 메시지(돌을 가져가지 마시오)가 오히려 부정적인 사실(다른 사람들이 돌을 가져간다는 사실)을 알리는 역할을 해 더 나쁜 반응(돌을 가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사회적 증거의 법칙)는 사실은 뜻밖의 내용들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사람들이 자기 이름과 비슷하거나 생일과 일치하는 숫자가 들어간 주나 도시로 이사하거나 성이나 이름이 비슷하게 들리는 사람들과 결혼하는 경향이 있고 자기 이름의 첫 글자와 같은 글자로 시작하는 제품을 선호하는 등 은연중에 자신의 이름과 연관성이 있는 것을 선호한다는 심리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들이 제시한 통계자료를 보면서도 선뜻 믿기지 않는, 그러나 믿기지 않는 만큼 더 신기했던 내용이기도 했다.


보통 '설득'이라고 하면 사업상의 거래같은 거창한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설득의 연속아닌가. 물건을 하나 사거나, 부모님에게 용돈을 얻거나, 아이들에게 어질러놓은 장난감을 치우게 하거나, 친구에게 뭔가를 부탁하는 일 등 일상적인 일들 또한 설득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우리는 설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타인을 잘 설득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내게 가해지는 설득을 제대로 파악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라도 이책에 담긴 설득의 심리와 전략들은 무척 유용하다.

로버트 치알디니는 설득은 기술이 아닌 '과학'이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설득에 능숙하지 못한 사람들도 설득의 심리학을 이해하고 실험을 통해 과학적으로 그 효과가 입증된 설득의 전략들을 잘만 사용하면 설득의 고수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설득의 심리학 2>는 풍부한 사례와 쉬운 설명으로 심리학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심리학 책이다. 또한 설득에 능숙하지 못한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활용할 수 있는 설득전략들과 그것들을 우리의 실생활과 연계할 수 있는 팁들이 풍성한 책이기도 하다. 실천적인 설득의 노하우가 가득한 <설득의 심리학 2>, 전작 못지 않게 흥미진진한 재밌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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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위한 독서클럽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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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쿄 도심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여학교 성마리아나 학원이 있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시설을 갖춘 이 학원은, 20세기 초 파리의 수도원에서 파견온 성마리아나 수녀에 의해 설립된 이후 명문가 자녀들이 거쳐가는 영향력있는 재원들의 산실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세상과 완벽하게 차단된 성마리아나 학원에도 세월이 지나면서 다양한 성향을 가진 소녀들이 등장하고, 조신한 소녀들의 낙원에서 그녀들은 성마리아나 학원의 '전설'로 남게 되는 여러 사건들을 일으킨다.

매년 소녀들의 최고의 선망과 흠모의 상대인 미소녀를 뽑는 '왕자'에 치밀한 계획하에 만들어진 '가짜 왕자'가 뽑히는가 하면, 명문가 규수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파격적인 패션과 구호를 앞세워 학원을 장악한 장악한 '귀족'을 향해 쿠데타를 일으키는 신흥재벌인 '부채소녀'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때론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한 소녀가 미셸의 딸기 향수가 보여준 환상에 취해 자신의 또다른 내면을 만나 록밴드의 스타로 변신하고, 평범한 소녀가 재미삼아 한 일이 '의적'이 되어 소녀들 사이에 최대의 이슈로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특히 파리에서 건너와 학원을 세우고 한평생 학원을 위해 일해왔던 성마리아나 수녀의 실종사건은 성마리아나 학원의 최대 미스터리다.

학원의 공식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런 '전설'들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독서클럽'이다. 권력의 변두리에 쥐죽은 듯이 존재하는 독서클럽은 학원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몇몇 사건들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무대의 중심 또는 가장자리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목격한 사건의 전모를 자신들의 '비밀일지'에 기록해 보관함으로써 한때 성마리아나 학원을 휩쓸었던 암흑의 역사를 보존해간다. 최대 이슈인 성마리아나 수녀 실종사건의 비밀 역시 그들에 의해 밝혀져 독서클럽의 비밀일지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이 소설은 학원의 설립자 성마리아나 수녀의 개인적인 비밀과 학원의 소녀들이 벌이는 네 개의 에피소드가 더해져 모두 다섯 개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모두 다른 시간대에 다른 인물들이 등장해 벌이는 사건들은 제각각 독립적으로 진행되지만, 다섯 편의 에피소드 모두 '독서클럽'과 성마리아나 수녀가 받은 '미래의 계시'와 미묘하게 연결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다양한 '전설'들을 목격했거나 글로 남겼던 특이한 소녀들이 오랜 세월 지난 후 다시 한 자리에 모여들어 마지막 비밀일지를 남기면서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띠로 크게 묶여진다.

<청년을 위한 독서클럽>은 우선 '소녀들의 낙원'이라는 독특한 배경으로 남자들은 제거된 '소녀'들의 이야기라는 점과 특정한 소녀들의 세계를 이야기하면서도 그속에 복잡한 세상의 이야기들을 담아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또한 사건을 파헤쳐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독서클럽의 비밀일지라는 형식에 맞춰 전개된다거나 다소 황당한 사건 전개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오버 행각을 펼치는 소녀들의 모습 속에 뜻밖의 심오한 철학들이 곁들여진다는 것도 이책의 매력이다.

책속이 소녀들은 세상과 격리된 자신들의 세계에서도 세상의 모습을 드러낸다. 대중의 이목을 끌거나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진실을 조작하거나 자신의 배경을 내세우고 언론을 이용한다. 정치 권력을 독점한 기득권자와 그것을 빼앗으려는 신흥세력의 암투가 발생하고, 대중스타들은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가십거리를 던지고, 때론 자신의 인기를 위해 주변의 친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소녀들의 이 작은 세계에서 경험하는 시끌벅적한 일련의 사건들은 곧 그들이 맞닥뜨리게 될 세상사의 축소된 한 부분인 셈이다.

이책을 읽으며 이제는 아련해진 나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봤다. 너무나 범생이스런, 기껏해야 야간자율학습을 조금 일찍 탈출(?)하는 정도의 스릴밖에 즐기지 못했던 조용한 학창시절을 보냈었기에 이책의 시끌벅적 요란한 사건사고들처럼 추억할 거리가 별로 많지 않음이,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좀 더 즐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진다. 그 아쉬움을 이책 속의 유별난 소녀들의 소란스런 사건들을 통해 대신 채워본다.

사쿠라바 가즈키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그 느낌이 꽤나 독특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품이 소녀를 주인공으로 소녀들의 이야기에 천착한다는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언제 기회가 닿는다면 더 만나보고 싶다. 흥미로운 작가다.


- 젊은이들은 슬프도록 먼 길을 헤매면서도 씩씩하게 살아간다. 우리는 이토록 늙었지만, 내일은 언제나 누군가의, 다시 말해 당신의 빛나는 미래인 것이다. 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것은 살아있다는 것이 아닌가? (중략) 소녀여, 그리고 청년이여, 영원하라! 세상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시궁쥐처럼 계속 달려라. 티끌이 되어 사라질 그날까지. 슬퍼도 씩씩하게 서로 도우며 살아라.(269쪽)






+ 오탈자

- 55쪽 2째줄 : 씌 → 씌 ( * 참고 : http://blog.naver.com/tea119/130032384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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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펭귄클래식 43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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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는 몰라도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 하다. 구두쇠 스크루지는 어렸을 땐 크리스마스만 되면 티비에 등장하는 단골 만화영화로, 학창시절에는 교과서에서 각색된 희곡의 일부로 만날 수 있었다(내 기억으론 '희곡'이었던 것 같은데 확신하진 못하겠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 이렇게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스크루지를 만났다.

이번에 새롭게 출간되기 시작한 「펭귄 클래식」으로 너무나 익숙한 이야기지만 정작 원작은 읽어보지 못했던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만났다. 이책에는 디킨스의 대표작인 중편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비롯해 「교회지기를 홀린 고블린 이야기」, 「가난한 일곱 여행자」 등 7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처음엔 7편 모두 소설인 줄 알았던 터라 크리스마스를 맞은 사람들의 행복한 풍경을 늘어놓는 네 장 남짓한 이책의 첫 이야기 『크리스마스 축제』에서 다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건 뭣이여?하며 앞의 서문을 다시 들춰보니(「펭귄 클래식」의 서문은 책속의 내용을 상당부분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길이 또한 적지 않고, 또한 작품도 읽기 전에 서문에 지쳐버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나는 책을 다 읽은 후에야 서문을 읽으며 새로운 해석을 저하고 책의 내용을 정리한다), 대표작인 「크리스마스 캐럴」 외에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 ' 단편소설과 소품글들을 함께 실어놓은 거란다.

오랜 세월 알고있었던 이야기지만 원작으로 다시 보는 「크리스마스 캐럴」은 또다른 맛이 있었다. 세 명의 유령을 통한 스크루지의 변화 만큼이나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평범하지만 사랑스런 사람들의 모습은 이책의 또다른 즐거움일 것이다. 진심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감사할 줄 아는 소시민들의 모습은 냉소적인 스크루지 뿐만 아니라 세상사에 시달려온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준다. 전반적으로 '교훈적'인 면모가 강하긴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와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은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또한 냉소적인 교회지기 가브리엘이 크리스마스 전날 고블린에게 지하세계로 끌려가 일련의 영상을 보고 삶의 자세를 바꾼다는 내용의 단편소설 「교회지기를 홀린 고블린 이야기」는 읽는 내내 「크리스마스 캐럴」이 연상됐는데, 역시나 「크리스마스 캐럴」의 원형이 된 단편이란다. 또다른 단편 「'험프리 님의 시계'에 실린 크리스마스 에피소드」는 크리스마스에 선술집에 쓸쓸히 앉아있던 귀머거리 신사에게 온정을 베푸는 험프리 씨의 이야기를 통해 크리스마스의 자선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준다. 그외 소품들도 '크리스마스'의 여러가지 모습과 의미에 대해 들려준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인색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철저히 혼자였던 스크루지는 과거ㆍ현재ㆍ미래를 보여주는 세 명의 유령을 통해 삶의 새로운 가치를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을 적극적으로 맞이한다. 찰스 디킨스는 스크루지나 가브리엘, 험프리 씨 등 <크리스마스 캐럴>속의 여러 인물들을 통해 크리스마스가 가진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고, 평범한 소시민들의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통해 나눔과 베품의 미덕을 보여준다.

그의 말처럼 1년 365일이 모두 크리스마스라면 이 세상은 행복으로 넘칠 것이다. 안타깝게도 크리스마스가 내내 계속될 수는 없다. 그러나 매일매일을 크리스마스처럼 행복하게 보낼 수는 있을 것이다. 행복하기에도 짧은 인생 아닌가. 크리스마스 전의 스크루지로 남느냐, 아니면 크리스마스 이후의 스크루지로 변하느냐는 온전히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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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아이 김홍도 보림 창작 그림책
정하섭 지음, 유진희 그림 / 보림 / 199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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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수많은 화가들 중 대중의 가장 폭넓은 사랑을 얻고 있는 화가를 꼽아보라면 단연 단원 김홍도가 최고가 아닐까 싶다. 평범한 백성들의 모습이 익살맞게 표현된 김홍도의 대표작들을 보고 있자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림의 여러 장르를 오가며 재능을 뽐냈던 단원이기에 오늘날의 '풍속화가'의 이미지가 다소 억울할지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의 여러 작품들 중 풍속화가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을 어쩌랴. 장난기 머금은 서민들의 모습이 담긴 그 그림들을 보고 있자면 그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은 평범한 백성들을 바라보는 단원의 따사로운 눈길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 하다. 그것은 단원을,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는 고사하고 남편도 없는 싱글이지만 조카를 넷이나 둔 덕에 조카들에게 선물할 그림책을 종종 살펴보곤 한다. 그중에서 재미난 그림책들을 펴내는 출판사 몇몇이 눈에 띄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보림'이다. MBC 느낌표 도서였던 <정민 선생의 한시 이야기>를 비롯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의 하나인 <책만 보는 아이> 또한 이곳에서 나온 책들이다. 어린이 도서 전문 브랜드인 만큼 꽤나 재미있고 알찬 책들이 많이 보여 눈여겨 보고 있다. 이책 또한 '김홍도'라는 이름의 프리미엄과 '보림'이란 출판사에 대한 믿음이 더해져 별다른 망설임없이 선뜻 구매했다. 결과는 역시나 만족.

홍도는 서당에서 꾸벅꾸벅 졸다가도 서당 밖으로만 나오면 친구들에게 장난을 일삼는 개구쟁이다. 또한 책만 보면 졸음이 쏟아지지만 그림 앞에서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그 매력에 빠져든다. 그런 홍도를 아버지는 탐탁찮아 하시지만 어머니는 아들의 행동을 눈여겨 보고는 화가인 외삼촌 집에 데려간다. 외삼촌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본 홍도는 더욱 그림에 몰입하게 되고, 그날부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자신만의 꿈'을 품는다. '그림'이라는 꿈을 좇는 홍도는 틈만 나면 열심히 그림 연습을 했고, 아버지의 반대라는 시련을 맞닥뜨리긴 했지만 꿈을 향한 의지와 열정으로 어려움을 이겨낸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가 존경하는 훌륭한 화가가 된다.

제목에 있는 '김홍도'라는 이름만 보고는 단순히 김홍도에 대한 전기가 담긴 위인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책은 김홍도를 소재로 삼고 있지만, 그 인물의 위대함과 업적을 강조하기보다 훌륭한 화가가 되고 싶다는 '자신만의 꿈'을 품고 그 꿈을 향해 열심으로 노력한 과정에 중점을 둔다. 즉, 위대한 인물 김홍도가 아니라 평범하지만 찬란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소년 김홍도에 이야기의 초점을 맞춘 것이다. 어린시절에 갖는 '꿈'의 중요성을 단원의 예를 통해 들려주는 셈이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를 읽은 아이들이 '그림'이라는 꿈을 마음에 담은 김홍도처럼 가슴 한 켠에 저마다의 원대한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룬 김홍도처럼 그 아이들도 그렇게 자신들만의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 그림책의 그림 맛보기 ^ㅂ^


서당 밖에선 개구쟁이 홍도..


화가인 외삼촌이 그림 그리는 걸 보고 본격적으로 그림에 빠져든 홍도.


성공하려면 미쳐야 한다고.. 슬슬 그림에 미쳐가는(?) 중인 홍도.
남의 집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일명.. 벽화? ㅋ


아버지의 반대를 꺽은 그림이라는 꿈을 향한 홍도의 열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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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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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의 첫 번째 단편집 <펭귄뉴스>의 표제작 「펭귄뉴스」를 읽으며 ’bit와 beat’의 현란한 변주에 정신이 혼미해져 미련없이 책을 덮었던 내가, 이번에 또 그의 두 번째 단편집을 펼쳐들었다.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너무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조금은 난해하게 느껴졌던 그의 첫 단편집과 달리 그의 두 번째 단편집 <악기들의 도서관>은 조금 힘을 뺀 듯 한결 편안하고 따뜻하다. 단편 하나하나가 전해주는 감동이 가슴에 번져와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지는 느낌이란! 작가 김중혁을 다시 보게 됐다.


<악기들의 도서관>은 표제작인 「악기들의 도서관」을 비롯해 총 8편의 단편들이 실려있다. 그런데 각자의 노선을 향해가고 있는 것 같은 단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들을 꿰고 있는 공통분모가 보인다. 바로 ’음악’이다. 「자동피아노」의 피아노, 「메뉴얼 제너레이션」의 오르골, 「비닐광 시대」의 LP, 「악기들의 도서관」의 여러 악기들, 「나와 B」의 전기기타, 「엇박자 D」의 콘서트에 이르기까지 음악을 전면에 내세우느냐, 부수적인 소재로만 사용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직간접적으로 모두 음악과 연결된다.

또한 각 이야기들은 주인공과 장단을 맞출 단짝을 등장시킨다(마지막 평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성 짝패’). 「자동피아노」의 ’나와 비토 제네베제’, 「비닐광 시대」의 ’나와 DJ 코알라’, 「유리방패」의 ’나와 M’, 「나와 B」의 ’나와 B’, 「엇박자 D」의 ’나와 엇박자 D’까지 짝을 이뤄 출연한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세계를 상대와 함께 나누거나 상대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해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대개의 단편집들은 재밌는 이야기와 그저그런 이야기들이 적당히 섞여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모든 이야기가 다 맛나는 단편집을 찾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런 책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책이 로알드 달의 <맛>이다. 그런데 이제 함께 떠올릴 책이 생겼다. 바로 이책 <악기들의 도서관>이다. <맛>처럼 짜릿한 반전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독특한 소재나 뛰어난 표현들이 시선을 사로잡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너무나 평범한 인물들을 통해 뜻밖의 훈훈한 감동을 전해준다.

이책에 수록된 8편의 단편들 하나하나가 정말 좋았다. 첫등장부터 묘한 울림을 주며 연주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져줬던 「자동피아노」, 메뉴얼이란 딱딱한 글을 통해 추억을 이야기하는 「매뉴얼 제너레이션」, 신나는 리믹스에서 사이코드라마로 변해가던 「비닐광 시대」, 의미없는 집착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악기들의 도서관」, 한바탕 신나는 웃음을 전해준 갈림길의 청춘들의 이야기인 「유리방패」, 전기기타를 통한 꿈의 이야기 「나와 B」, 미스터리 극장을 보는 듯한 「무방향 버스」 등 각각 매력적인 이야기라 어느 하나만을 꼽기가 힘들 정도다.

그래도 그중 꼭 하나만 택하라면 주저없이 「엇박자 D」를 꼽고 싶다. 8편 중 단연 압권이다. ’2008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엇박자 D」는 평범한 시작과 달리 마지막에 최고의 감동을 전해준다.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혼자 엇박으로 노래를 불렀던 ’엇박자 D’, 그는 세상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소외당하는 이들을 대표적 인물이 아닐까 싶다. ’엇박자 D’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와 함께 콘서트 기획하고, ’엇박자 D’는 콘서트의 말미에 또다른 이벤트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 깜짝 이벤트는 그의 동창인 ’나’를 비롯해 이책을 읽는 독자들에게까지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 쉽진 않았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고, 노래방 아르바이틀르 하면서 방마다 귀를 들이대기도 했어. 그렇게 음치들을 찾아내면 무반주로 부르는 노래를 녹음했어. 웃기는 게 뭔지 알아? 나는 음악선생에게 맞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내가 음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대부분의 음치들은 자신이 음치라고 생각하더라. 자신이 알아낸 게 아니고 들어서 아는 거지. 평생 그렇게 세뇌를 당하는 거야. 나는 음치다, 나는 음치다. (270쪽, 「엇박자 D」中)


의미없이 표류하거나 목적없이 방황하던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각자의 꿈을 찾아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한다. 화려한 길은 버렸지만 진정한 연주를 찾아가는 「자동피아노」와 진짜 메뉴얼을 쓰고 싶어하는 「메뉴얼 제널레이션」, 막막한 집착에서 뜻밖의 길을 찾은 「악기들의 도서관」이 그렇고, 충격을 이기고 다시 LP판과 전기기타를 잡는 「비닐광 시대」와 「나와 B」, 사회적 규정을 벗어나 자유롭게 노래하는 「엇박자 D」가 그러하다. 유리방패를 놓아야 할 때를 맞은, 소년과 어른의 경계에 방황하는 「유리방패」의 두 소년 또한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은 ’꿈’을 찾아가는 성장소설인 셈이다.

따뜻한 이야기가 목마르다면 DJ 김중혁이 들려주는 음악 속으로 빠져보는 건 어떨까. 그가 건네주는 <악기들의 도서관>이란 녹음 테이프를 집어들었는가. 그렇다면 이제 파란색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그저 기다리면 된다. 그가 세상에서 붙잡은 이야기들이 음악과 함께 변주되어 곧 당신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테니.







☞ 책의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말.
이야기의 공통분모가 ’음악’임에 착안해 소설가인 DJ 김중혁은 이책을 자신이 녹음한 하나의 앨범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재치있는 작가의 말 페이지인 듯. ^ ^


☞ 자~ DJ 김중혁이 들려주는 소리의 세계로 빠져보자. PLAY 버튼을 눌러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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