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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김중혁의 첫 번째 단편집 <펭귄뉴스>의 표제작 「펭귄뉴스」를 읽으며 ’bit와 beat’의 현란한 변주에 정신이 혼미해져 미련없이 책을 덮었던 내가, 이번에 또 그의 두 번째 단편집을 펼쳐들었다.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너무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조금은 난해하게 느껴졌던 그의 첫 단편집과 달리 그의 두 번째 단편집 <악기들의 도서관>은 조금 힘을 뺀 듯 한결 편안하고 따뜻하다. 단편 하나하나가 전해주는 감동이 가슴에 번져와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지는 느낌이란! 작가 김중혁을 다시 보게 됐다.
<악기들의 도서관>은 표제작인 「악기들의 도서관」을 비롯해 총 8편의 단편들이 실려있다. 그런데 각자의 노선을 향해가고 있는 것 같은 단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들을 꿰고 있는 공통분모가 보인다. 바로 ’음악’이다. 「자동피아노」의 피아노, 「메뉴얼 제너레이션」의 오르골, 「비닐광 시대」의 LP, 「악기들의 도서관」의 여러 악기들, 「나와 B」의 전기기타, 「엇박자 D」의 콘서트에 이르기까지 음악을 전면에 내세우느냐, 부수적인 소재로만 사용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직간접적으로 모두 음악과 연결된다.
또한 각 이야기들은 주인공과 장단을 맞출 단짝을 등장시킨다(마지막 평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성 짝패’). 「자동피아노」의 ’나와 비토 제네베제’, 「비닐광 시대」의 ’나와 DJ 코알라’, 「유리방패」의 ’나와 M’, 「나와 B」의 ’나와 B’, 「엇박자 D」의 ’나와 엇박자 D’까지 짝을 이뤄 출연한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세계를 상대와 함께 나누거나 상대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해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대개의 단편집들은 재밌는 이야기와 그저그런 이야기들이 적당히 섞여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모든 이야기가 다 맛나는 단편집을 찾기란 정말이지 쉽지 않다. 그런 책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책이 로알드 달의 <맛>이다. 그런데 이제 함께 떠올릴 책이 생겼다. 바로 이책 <악기들의 도서관>이다. <맛>처럼 짜릿한 반전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독특한 소재나 뛰어난 표현들이 시선을 사로잡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너무나 평범한 인물들을 통해 뜻밖의 훈훈한 감동을 전해준다.
이책에 수록된 8편의 단편들 하나하나가 정말 좋았다. 첫등장부터 묘한 울림을 주며 연주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져줬던 「자동피아노」, 메뉴얼이란 딱딱한 글을 통해 추억을 이야기하는 「매뉴얼 제너레이션」, 신나는 리믹스에서 사이코드라마로 변해가던 「비닐광 시대」, 의미없는 집착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악기들의 도서관」, 한바탕 신나는 웃음을 전해준 갈림길의 청춘들의 이야기인 「유리방패」, 전기기타를 통한 꿈의 이야기 「나와 B」, 미스터리 극장을 보는 듯한 「무방향 버스」 등 각각 매력적인 이야기라 어느 하나만을 꼽기가 힘들 정도다.
그래도 그중 꼭 하나만 택하라면 주저없이 「엇박자 D」를 꼽고 싶다. 8편 중 단연 압권이다. ’2008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엇박자 D」는 평범한 시작과 달리 마지막에 최고의 감동을 전해준다.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혼자 엇박으로 노래를 불렀던 ’엇박자 D’, 그는 세상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소외당하는 이들을 대표적 인물이 아닐까 싶다. ’엇박자 D’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와 함께 콘서트 기획하고, ’엇박자 D’는 콘서트의 말미에 또다른 이벤트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 깜짝 이벤트는 그의 동창인 ’나’를 비롯해 이책을 읽는 독자들에게까지 깊은 감동을 전해준다.
- 쉽진 않았지.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했고, 노래방 아르바이틀르 하면서 방마다 귀를 들이대기도 했어. 그렇게 음치들을 찾아내면 무반주로 부르는 노래를 녹음했어. 웃기는 게 뭔지 알아? 나는 음악선생에게 맞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내가 음치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그런데 대부분의 음치들은 자신이 음치라고 생각하더라. 자신이 알아낸 게 아니고 들어서 아는 거지. 평생 그렇게 세뇌를 당하는 거야. 나는 음치다, 나는 음치다. (270쪽, 「엇박자 D」中)
의미없이 표류하거나 목적없이 방황하던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각자의 꿈을 찾아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한다. 화려한 길은 버렸지만 진정한 연주를 찾아가는 「자동피아노」와 진짜 메뉴얼을 쓰고 싶어하는 「메뉴얼 제널레이션」, 막막한 집착에서 뜻밖의 길을 찾은 「악기들의 도서관」이 그렇고, 충격을 이기고 다시 LP판과 전기기타를 잡는 「비닐광 시대」와 「나와 B」, 사회적 규정을 벗어나 자유롭게 노래하는 「엇박자 D」가 그러하다. 유리방패를 놓아야 할 때를 맞은, 소년과 어른의 경계에 방황하는 「유리방패」의 두 소년 또한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은 ’꿈’을 찾아가는 성장소설인 셈이다.
따뜻한 이야기가 목마르다면 DJ 김중혁이 들려주는 음악 속으로 빠져보는 건 어떨까. 그가 건네주는 <악기들의 도서관>이란 녹음 테이프를 집어들었는가. 그렇다면 이제 파란색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그저 기다리면 된다. 그가 세상에서 붙잡은 이야기들이 음악과 함께 변주되어 곧 당신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테니.

☞ 책의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말.
이야기의 공통분모가 ’음악’임에 착안해 소설가인 DJ 김중혁은 이책을 자신이 녹음한 하나의 앨범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재치있는 작가의 말 페이지인 듯. ^ ^

☞ 자~ DJ 김중혁이 들려주는 소리의 세계로 빠져보자. PLAY 버튼을 눌러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