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위한 독서클럽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도쿄 도심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여학교 성마리아나 학원이 있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시설을 갖춘 이 학원은, 20세기 초 파리의 수도원에서 파견온 성마리아나 수녀에 의해 설립된 이후 명문가 자녀들이 거쳐가는 영향력있는 재원들의 산실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세상과 완벽하게 차단된 성마리아나 학원에도 세월이 지나면서 다양한 성향을 가진 소녀들이 등장하고, 조신한 소녀들의 낙원에서 그녀들은 성마리아나 학원의 '전설'로 남게 되는 여러 사건들을 일으킨다.

매년 소녀들의 최고의 선망과 흠모의 상대인 미소녀를 뽑는 '왕자'에 치밀한 계획하에 만들어진 '가짜 왕자'가 뽑히는가 하면, 명문가 규수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파격적인 패션과 구호를 앞세워 학원을 장악한 장악한 '귀족'을 향해 쿠데타를 일으키는 신흥재벌인 '부채소녀'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때론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한 소녀가 미셸의 딸기 향수가 보여준 환상에 취해 자신의 또다른 내면을 만나 록밴드의 스타로 변신하고, 평범한 소녀가 재미삼아 한 일이 '의적'이 되어 소녀들 사이에 최대의 이슈로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특히 파리에서 건너와 학원을 세우고 한평생 학원을 위해 일해왔던 성마리아나 수녀의 실종사건은 성마리아나 학원의 최대 미스터리다.

학원의 공식기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런 '전설'들을 기록하고 보관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독서클럽'이다. 권력의 변두리에 쥐죽은 듯이 존재하는 독서클럽은 학원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몇몇 사건들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무대의 중심 또는 가장자리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목격한 사건의 전모를 자신들의 '비밀일지'에 기록해 보관함으로써 한때 성마리아나 학원을 휩쓸었던 암흑의 역사를 보존해간다. 최대 이슈인 성마리아나 수녀 실종사건의 비밀 역시 그들에 의해 밝혀져 독서클럽의 비밀일지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이 소설은 학원의 설립자 성마리아나 수녀의 개인적인 비밀과 학원의 소녀들이 벌이는 네 개의 에피소드가 더해져 모두 다섯 개의 이야기를 담고있다. 모두 다른 시간대에 다른 인물들이 등장해 벌이는 사건들은 제각각 독립적으로 진행되지만, 다섯 편의 에피소드 모두 '독서클럽'과 성마리아나 수녀가 받은 '미래의 계시'와 미묘하게 연결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다양한 '전설'들을 목격했거나 글로 남겼던 특이한 소녀들이 오랜 세월 지난 후 다시 한 자리에 모여들어 마지막 비밀일지를 남기면서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띠로 크게 묶여진다.

<청년을 위한 독서클럽>은 우선 '소녀들의 낙원'이라는 독특한 배경으로 남자들은 제거된 '소녀'들의 이야기라는 점과 특정한 소녀들의 세계를 이야기하면서도 그속에 복잡한 세상의 이야기들을 담아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또한 사건을 파헤쳐가는 일련의 과정들이 독서클럽의 비밀일지라는 형식에 맞춰 전개된다거나 다소 황당한 사건 전개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오버 행각을 펼치는 소녀들의 모습 속에 뜻밖의 심오한 철학들이 곁들여진다는 것도 이책의 매력이다.

책속이 소녀들은 세상과 격리된 자신들의 세계에서도 세상의 모습을 드러낸다. 대중의 이목을 끌거나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진실을 조작하거나 자신의 배경을 내세우고 언론을 이용한다. 정치 권력을 독점한 기득권자와 그것을 빼앗으려는 신흥세력의 암투가 발생하고, 대중스타들은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가십거리를 던지고, 때론 자신의 인기를 위해 주변의 친구를 이용하기도 한다. 소녀들의 이 작은 세계에서 경험하는 시끌벅적한 일련의 사건들은 곧 그들이 맞닥뜨리게 될 세상사의 축소된 한 부분인 셈이다.

이책을 읽으며 이제는 아련해진 나의 학창시절을 되돌아봤다. 너무나 범생이스런, 기껏해야 야간자율학습을 조금 일찍 탈출(?)하는 정도의 스릴밖에 즐기지 못했던 조용한 학창시절을 보냈었기에 이책의 시끌벅적 요란한 사건사고들처럼 추억할 거리가 별로 많지 않음이,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좀 더 즐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진다. 그 아쉬움을 이책 속의 유별난 소녀들의 소란스런 사건들을 통해 대신 채워본다.

사쿠라바 가즈키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그 느낌이 꽤나 독특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품이 소녀를 주인공으로 소녀들의 이야기에 천착한다는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언제 기회가 닿는다면 더 만나보고 싶다. 흥미로운 작가다.


- 젊은이들은 슬프도록 먼 길을 헤매면서도 씩씩하게 살아간다. 우리는 이토록 늙었지만, 내일은 언제나 누군가의, 다시 말해 당신의 빛나는 미래인 것이다. 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것은 살아있다는 것이 아닌가? (중략) 소녀여, 그리고 청년이여, 영원하라! 세상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시궁쥐처럼 계속 달려라. 티끌이 되어 사라질 그날까지. 슬퍼도 씩씩하게 서로 도우며 살아라.(269쪽)






+ 오탈자

- 55쪽 2째줄 : 씌 → 씌 ( * 참고 : http://blog.naver.com/tea119/130032384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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