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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빠져 미국을 누비다 - 레드우드 숲에서 그랜드 캐니언까지, 대자연과 함께하는 종횡무진 미국 기행
차윤정 글.사진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 숲에 빠져 미국을 누비다 | 차윤정 |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 2009.05
지금은 연락이 뜸하지만 예전에 열심히 드나들던 인터넷 영화 카페에서 친해진 친구가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가족을 따라 LA로 이민을 간 이후에도 틈틈이 주변을 여행하고 그 사진들을 카페나 블로그에 올리곤 했다. 이젠 현지인이 된 그 친구가 올려준 사진들 중에는 톰 크루즈 부부가 출몰한 다저스의 야구 경기장이나 친구가 다니는 IVY 리그의 대학 축제 모습 등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단연 내 눈길을 잡아 끄는 건 '미국의 자연'이었다. 화려한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만날 수 있는 숲이나 바다의 한가로운 모습은 빌딩숲에 가려진 또다른 미국의 모습이었다.
친구의 여행 사진 중 레드우드 공원에서 찍은 사진들에는 눈으로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규모의 나무들이 사진에 박혀 있었다. 수령이 천년이 훌쩍 넘는다는 그 거대한 나무 옆에 서자 건장한 체격의 친구조차 장난감처럼 왜소한 존재일 뿐이었다. 인간이 아무리 잘난 척을 해도 자연 앞에 서면 저렇게 작은 존재일 뿐이 아닐까, 그 사진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천 년의 시간을 견디고 지켜온 그곳의 나무들은 그 존재 자체로 큰 감동이었다. 그리고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로 느껴졌다.
숲 생태전문가가 미국 숲을 여행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숲에 빠져 미국을 누비다』가 내심 반가웠던 건 친구의 여행 사진을 통해 보던 미국의 여러 숲들을 본격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또한 나같은 일반인들은 모르는 숲의 매력과 그와 관련된 다양한 지식들의 향연을 만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책을 읽기 전부터 마음이 설렜다.
1년 6개월 동안 미국에 머물며 공부할 기회를 얻은 저자는 미국에 머무는 동안 미서부로의 열흘 동안의 자연 여행을 계획한다. 한국인의 식성을 대변하는 전기밥솥과 김치 등의 먹거리와 그외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들로 가득찬 렌트카에 한국에서 날아온 남편이 합류하면서 여행이 시작된다. 그러나 출발 전 완벽한 준비를 요구하는 남편과 넓은 미국에서의 여행에서 모든 것을 준비할 수는 없다는 저자 사이에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서 그들의 여행은 출발부터 삐걱댄다. 설상가상으로 여행 첫날 생긴 아들의 무릎 상처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내내 마음을 쓰게 만든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 가족을 실은 자동차는 미국 서부 곳곳을 열심히 달린다. 거목들의 천국인 레드우드 숲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미항으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바다코끼리를 만날 수 있었던 캘리포니아 중부 해안,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있는 로스 앤젤레스를 거쳐 화려한 밤의 도시이자 사막의 기적인 도시 라스 베이거스, 미서부 최후의 개척지이자 자연의 경이로움의 극대치를 경험하게 해주는 그랜드 캐니언,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풍광이 가득한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발을 내딛는다. 빡빡한 열흘 간의 일정 동안 그들의 이야기는 그대로 이책에 남겨졌다.
전기밥솥과 김치, 남편과의 의견 충돌 등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된 여행은 첫 번째 여행 목적지인 레드우드 숲에 다다르자 분위기가 반전된다. 숲 생태전문가답게 레드우드 숲을 이루는 수종과 숲에 대한 다양한 지식들이 이어진다. 레드우드는 씨앗 뿐만 아니라 뿌리에서 맹아가 발생한다는 것이나 키가 커서 낙뢰에 노출되어 윗부분이 불에 타는 일이 흔하다는 것, 특히 우리나라에도 있는 메타세콰이어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세 종류의 레드우드 중 하나이며 살아있는 화석 식물이라는 점 등이 흥미로웠다.
그러나 숲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다. 곧 그들 가족의 이야기가 이어지더니 샌프란시스코와 캘리포니아 중부 해안을 지나치면서 화제는 금문교나 샌프란시스코항, 바다코끼리가 출연한다. 급기야 LA에서는 숲 기행의 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유니버설 스튜디오 관람기가 등장하고, 라스 베이거스와 그랜드 캐니언 같은 미서부 지역의 유명 관광지에 발도장을 찍는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저자는 생태학자로서의 입장을 유지한다. 바다의 생태나 캘리포니아의 물부족에 대한 견해, 라스 베이거스의 낮에 만나는 기적의 녹지, 그랜드 캐니언이 발생하기까지의 역사 등이 줄줄이 나온다. 그러나 그들 가족 이야기의 비중은 여전하다.
다행히 마지막 여행지는 다시 숲으로 돌아와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다. 요세미티 공원에 대한 이야기는 레드우드 숲보다 더 충실하다. 공원의 모습 또한 레드우드 숲보다 더 환상적이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이책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 그 수려한 풍광은 그들의 여행지 중 단연 최고였다. 관광객들이 가장 사랑하는 곳이 그랜드 캐니언이라면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곳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인상적인 곳이었다. 요세미티 계곡 또한 그랜드 캐니언 못지 않게 자연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숲 사진으로 꾸며진 표지와 『숲에 빠져 미국을 누비다』라는 제목을 보며 이책이 '숲을 제대로 살펴보기 위해 미국의 여러 숲을 찾아다닌 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역시나 첫 목적지인 레드우드 숲, 전문가답게 술술 이어지는 저자의 숲 이야기를 경청했다. 거목들에 대한 이야기에 한창 신이 났는데 벌써 다음 목적지로 출발한단다. 아쉬웠지만 다음엔 어떤 숲을 방문할까라는 기대에 부풀어 그들을 따라나섰다. 그런데 그뒤로 그들은 숲이 아닌 바다와 도시, 사막과 협곡을 찾는다. 그곳에서 대부분의 여정을 보낸 뒤에야 마지막 일정으로 다시 숲을 찾는다. 숲의 규모에 걸맞게 처음보다 더 풍부하고 깊이있는 설명이 이어진다. 그리고, 여행이 끝났다.
『숲에 빠져 미국을 누비다』라는 제목의 첫인상과 달리 이책은 한 마디로 '미서부 지역으로 떠난 가족 여행기'라 말할 수 있다. '숲'은 목적이라기 보다는 긴 여정의 한 부분일 뿐이다. 첫 시작부터 전기밥솥과 남편과의 갈등, 아이의 상처로 풀어내는 이야기는 이책이 숲보다는 가족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거쳐가는 곳마다 생태학자의 시선으로 그곳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긴 여정을 통해 변화되어가는 가족들의 모습 또한 놓지 않는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전기밥솥은 여행에서 일상의 모습을 발견하게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아물어가는 아이의 상처처럼 부부의 갈등도 조금씩 아물어가며 삶의 또다른 깨달음을 전해준다.
『숲에 빠져 미국을 누비다』는, 내용의 질적인 면에 대한 것보다, 책에 대한 기대치와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오는 실망감이 큰 책이었다. 차라리 이책의 제목이나 홍보 방향을 '미국 숲'이 아니라 '미국의 자연을 보기 위해 떠난 한 가족 여행기'로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훨씬 더 재미있게 그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들 가족의 이야기 중간중간 더해지는 자연에 대해 저자가 풀어놓은 지식을 충분히 즐기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