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여행유전자 - 여행유전자따라 지구 한 바퀴
이진주 지음 / 가치창조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 내 안의 여행 유전자 | 이진주 | 가치창조 | 2009.08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즐겁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재밌다. 내가 가지 못한 낯선 장소에서 내가 보지 못한 낯선 사람들과 함께 했던, 몸으로 부딪치고 마음으로 깨달았던 그들을 통해 나 또한 삶의 또다른 이야기를 배울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여행 에세이는, 최소한 내게는, 쉽게 피해가기 힘든 종류의 책이다.

여행에 대한 사람들의 설렘이 표출하는 여름이면 서점가에는 덩달아 여행에세이들이 쏟아진다. 덕분에 정작 여행을 떠나지 못하더라도 다른 이들의 다양한 여정을 만날 수 있어 덩달아 즐거워진다. 그렇게 또 한 권의 여행 에세이를 만났다. 『내 안의 여행유전자』라니, 근사한 제목에 내몸 어딘가에도 잠자고 있던 여행유전자가 팔딱팔딱 뛰쳐나올 것 같다. 

글쓴이 이진주는 책제목으로도 쓰인 여행유전자 - 'travelDNA'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블로거이기 전에 「기아체험 24시」라는 휴먼 다큐멘터리로 한국 방송 대상과 휴스턴 국제 필름 페스티벌 플래티넘 대상을 받았던 방송작가란다. 많은 여행에세이 중에 이책을 선택하는데 그녀의 독특한 이력이 솔직히 한몫했다. 휴먼 다큐의 작가라면 무엇보다 따듯한 온기를 품은 글을 쓸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다고나 할까.


'여행유전자 따라 지구 한 바퀴'라는 부제처럼 『내 안의 여행유전자』에는 그녀의 발길이 닿았던 여러 나라의 다양한 장소가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등장한다. 여섯 개의 큰 꼭지를 두긴 했지만 이책에서 분류는 별로 의미가 없다. 그래서 다른 여행에세이처럼 나라별 또는 시간별 흐름을 기대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지구촌을 다녔던 그녀의 추억의 질량에 따라 분류된 여행의 기록들이 이책을 누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내 안의 여행유전자』는 저자의 일기장 같은 느낌을 준다. 여행에세이라는 것이 원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긴 하지만,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여기저기를 자유분방하게 옮겨다니는 이책의 이야기들은 온전히 글쓴이의 추억과 감정에 충실하게 기대고 있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처음엔 그런 흐름이 좀 낯설고 정신이 없었지만 차차 글 속의 감정 흐름에 마음을 맡기게 되자 이내 그녀와의 지구촌 추억 나들이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이책에는 짧은 글과 긴 글, 여행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과 겪었던 에피소드들이 적절히 섞여 있다. 역시나 방송작가답게 그녀의 글은 유려하다. 별달리 걸리는 것 없이 술술 읽힌다. 그녀의 화려한 언어 구사가 슬슬 부러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따금 지나친 욕심에 수사가 길어지는 문장을 만나게 되면 잠시 한눈을 팔게 된다. 멋드러진 글도 좋지만 조금만 더 담백한 문장을 구사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말이다.

또한 글 사이사이에는 다양한 풍광들이 담긴 크고 작은 사진들이 실려 있다. 그중에는 멋진 사진들도 많다. 모두 저자가 찍은 것들이란다. 대부분의 사진들은 그곳이 어디인지 알 정도의 장소만 적혀 있다. 걔중에는 간혹 친절하게 설명이 달린 것도 있고 , 반대로 무심하게 휙 던져둔 것도 있다. 많은 이야기를 대신하는 한 장의 사진을 보며 그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직접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렇게 펼쳐지는 지구촌의 다채로운 모습들은, 근사하다.

온전하게 지구 한 바퀴라고 하기에는 유럽의 비중이 크긴 하지만, 그래도 각양각색의 사람들 속에서 겪은 에피소드들은 재미있었다. 아무 대가없이 끈 떨어진 가방을 꿰매어 준 인디아 할아버지처럼 낯선 이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훈훈해졌고, 베니스의 가짜 경찰이나 바로셀로나의 시민운동가의 사기 행각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으며, 인도의 택시 나 베트남의 무인도 체험 보트의 당황스러운 일화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라 함께 킥킥댈 수 있었다. 그리고 콜롬비아 재난 지역의 사진들은 마음 한 켠을 묵직하게 만들었다.


여행 당시엔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험난한 사건사고들도 시간이 지나면 용감무쌍한 무용담으로 바뀌고, 온갖 황당한 실수담은 웃음의 재료가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일들은 아련한 그리움을 내뿜는 즐거운 추억이 된다. 그런 추억들과 함께 길을 나섰던 우리들도 조금씩 성장해간다. 다리가 부러져 목발을 짚고서도 길을 나서는 그녀는 진정 여행유전자를 보유한 유랑인이다. 그리고 그녀의 자유분방한 글과 사진은 잠들어 있던 독자들의 여행유전자까지 슬며시 깨우고 지나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 │ 테오 │ 삼성출판사 │ 2009.07  


테오의 케이프타운 여행에세이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의 개정판이 나왔다. 꽤 사랑스런 책이었음에도 1인 출판의 한계 때문이었는지 출간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절판되었다는 소식에 많이 아쉬웠던 터라 개정판 출간 소식이 더 반가웠다. 개정판 역시 테오의 두 번째 여행 에세이인 『당신의 소금 사막에 비가 내리면』이 출간되었던 삼성출판사에서 나왔다. 예전에 블로그에 남긴 책리뷰를 보고 어떤 분으로부터 절판이라 살 수가 없다며 혹시 팔 생각이 없느냐는 쪽지를 받기도 했었는데, 그분 또한 재출간 소식에 반색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 이책을 접했을 때 아프리카에 웬 펭귄?하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뜨거움'으로 기억되는 아프리카에 '차가움'으로 상징되는 펭귄이라니, 이건 정말 너무 아이러니한 조합이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펭귄은 '남극의 신사'답게 남극 대륙에만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아프리카 최남단인 케이프타운에는 정말, 진짜로, 펭귄이 산다. 아프리카임에도 남극과 멀지 않아 수온이 낮고 날씨도 선선하기 때문이란다. 오, 세상에 이런 일이! 그뒤에 읽은 책에서 알게 됐는데 역시나 남극과 가까운 남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 최남단에도 펭귄이 서식한단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니깐.

혹시 책제목이나 표지 그림만 보고 이책이 펭귄에 대한 이야기로만 가득한 책이라고 짐작한다면, 그건, 실수다. 책의 전면에 나선 펭귄은 그저 케이프타운을 각인시키는 색다른 미끼이고, 그들의 이야기 또한 다양한 에피소드들 중 하나일 뿐이다.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는 펭귄이 살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도시 케이프타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로 채워진 여행 에세이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들려주는 케이프타운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라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이책에는 케이프타운과 근교의 다양한 명소들이 등장한다. 역사책에서만 보던 희망봉, 정말 테이블처럼 윗부분이 평평한 테이블 마운틴, 커다란 바위가 뚝 떨어진 듯한 모양의 팔락 마운틴을 보며 그곳을 오르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고, 케이프타운의 작은 사막 아틀란티스 샌듄에서 타는 샌드보드의 재미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계속 음식이 나오는 해변의 한가한 랑가방 레스토랑에서 환상적인 랍스터도 맛보고도 싶어졌고, 통조림과는 격이 다르다는 황홀한 맛의 갓잡은 참치뱃살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입에 잔뜩 고인 침을 꼴깍 삼키기도 했다.

무엇보다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에서 가장 매력적인 건 바로 아프리카의 자연이었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그와 조화를 이룬 채 땅을 덮고 있는 싱그러운 풀의 색채, 빠져들고 싶은 바다의 빛깔까지 케이프타운을 둘러싸고 있는 아프리카의 자연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그와 함께 주말마다 와인 농장이나 돼지 농장 등에서 가족이나 지인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며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많이 벌진 못 하지만 동시에 쓸 곳도 별로 없는, 그래서 적게 가지고도 충분히 여유롭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솔직히 부러웠다. 안타깝게도 케이프타운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풍족함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흑인 구역인 하라레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흥미로웠다. 범죄가 우글거리는 하라레의 골목길은 사실은 그냥 여느 골목길과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냥 그곳도 사람이 사는 동네일 뿐이다. 하라레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을 통해 남아프리카에 아직도 남아있는 인종차별을 엿볼 수 있어 씁쓸했다. 내 기억에는 예전 판본에는 이런 차별적인 면을 살짝 언급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쓰레기 수거같은) 이번 개정판에서는 빠진 것 같다. 요즘 옛 영광을 잃은 채 오락가락하는 내 기억력을 나도 믿을 수가 없는 터라, 만약 개정판에도 그 부분이 실려있다면 살짝 알려주시길! (얼른 수정하게 :)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 덕분에 케이프타운이라는 낯선 도시를 만나고 그곳을 함께 즐길 수 있어 무척 즐거웠다. 남아프리카에 대한 책은 처음이라 아름다운 자연도, 뜬금없어 보이는 펭귄도, 그곳 사람들의 느긋한 모습도, 맛있는 먹거리들도 모두 가슴 두근거리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프리카인지 유럽인지 쉽게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너무나 서구화된 도시의 풍경에서 아프리카 특유의 모습을 찾기 힘들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케이프타운이 얼마전까지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남아프리카에 있는 도시라는 점을 다시 떠올리게 되기도 했고. 물론 이책을 읽을 때 그런 생각의 날을 세울 필요까지는 없다. 그냥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 편안하게 느긋하게 그리고 가볍게 도시를 즐기듯이 돌아보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책의 외적인 면을 간단히 살펴보자면, '개정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재출간된 책은 예전 책과 조금 달라졌다. 우선 책제목이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종이심장,2006)』에서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삼성출판사,2009)』로 바뀌었다. 저자 자리에는 처음의 '장태호'라는 본명 대신 '테오'라는 필명이 새겨져 있고, 표지는 버스를 탄 펭귄 일러스트 대신 앙증맞은 자카드 펭귄 한 마리를 중앙에 세우고 그뒤에 제목을 걸었다. 훨씬 깔끔하고 심플해졌지만 조금은 허전하고 심심한 느낌이 남긴 한다.

글과 사진도 일부 첨삭됐다. 예전 책의 뒷머리에 실려있던 케이프타운에서의 유학이나 이민, 생활 등에 관한 정보성이 짙은 글들은 과감히 들어냈고, 그 자리에 대신 새로운 에피소드 몇 꼭지를 채웠다. 정보성 글을 삭제한 건 시간이 지나면서 정보의 효용성이 떨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여행 에세이에서 급작스레 정보서로 넘어가던 이질감을 줄이기 위한 편집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도 좋은 선택인 듯하다. 그러나 들어낸 글중에서도 「리디아의 고민」처럼 새로운 에피소드로 살아난 글도 있다. 

글의 순서도 많이 바뀌었다. 책제목을 이해시켜줄 만한 내용인 동명의 에피소드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를 책의 제일 앞에 배치했고(책제목 변경으로 에피소드 제목도 함께 바뀌었다)고, 이어지던 아프리카 펭귄 글인 「그녀석, 펭귄」은 중간쯤에 그대로 두었다. 두 에피소드는 연이어 배치해도 괜찮을 법한데. 어쨌거나 에피소드의 전면 재배치로 글 전체의 흐름은 전보다 훨씬 매끄워졌다. 예전과 달리 여행 에세이에 오롯이 집중한 점은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사진의 변화는 많이 아쉬웠다. 내가 이책에서 가장 좋아했던 게 바로 눈이 시릴 정도로 싱그러운 아프리카의 풍광들이 가득 담긴 아름다운 사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정판에서는 책에 수록된 사진의 수도 줄었고, 비슷한 다른 사진이나 완전히 새로운 사진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예전보다 더 고급 재질의 속지로 사진의 선명도를 높였지만 예전의 질감을 살리진 못했다. 무엇보다 사진 크기가 전보다 많이 작아져 같은 사진이어도 예전만큼 강한 매력을 발산하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안타까웠다.  

사진 만큼이나 아쉬움이 남는 건 바로 책의 제본이었다. 책을 쫘악~ 펼친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책등에 균열이 생겼다. 조금만 활짝 펼치면 책장이 뜯어져 나올 것 같던 예전 판본과 비교했을 때 개정판도 제본에 있어서는 그다지 나아진 점이 없는 듯하다. 또한 같은 출판사에서 개정판이 나오는 만큼 앞서 출간된 테오의 『당신의 소금 사막에 비가 내리면』과 같은 판본으로 해주었더라면 독자 입장에서 소장하는 즐거움이 한층 커졌을 텐데. 책을 직접 맞대고 크기를 비교해 보니 이책에 양장본 커버만 씌우면 두책 크기가 딱 맞다. 세트처럼 나란히 꽂아두고 흐뭇해 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이전과 똑같은 책을 표지만 바꾸고 가격을 올려 개정판으로 판매하는 '무늬만' 개정판인 책들과 달리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는 구석구석을 새롭게 손보고 단장한 '진짜' 개정판이다. 처음 판본과 개정판을 모두 본 독자로서 두 책의 차이점을 간단히 비교해 보았는데, 전보다 더 좋아진 점도 있고 오히려 조금 아쉬워진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절판으로 더이상 독자를 만날 수 없었던 책이 다시 되살아났다는 것만으로도 개정판은 충분히 반가운 존재가 아닐런지.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 또한 마찬가지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잠깐이나마 케이프타운만의 청초한 매력에 풍덩 빠져보는 것도 좋은 피서법이 될 듯하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P - 영화광 가네시로 가즈키의 열혈 액션 드라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 SP │ 가네시로 가즈키 │ 김난주(옮김) │ 북폴리오 │ 2009.07 


가네시로 가즈키의 신작이 나왔다. 단지 그의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눈을 반짝이며 냉큼 집어들었다. 아마 나같은 독자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이번엔 소설이 아니라 시나리오집이다. 뜬금없이 웬 시나리오? 그가 시나리오도 썼었던가? 앞쪽의 책날개를 펼쳐보니 깨알같은 글자들 속에 몇 줄이 눈에 들어온다. 이책 『SP』는 일본 후지TV의 인기 드라마 「SP」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집이란다. 

드라마 「SP」는 가네시로 가즈키가 시나리오를 쓰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일본의 인기 드라마 「춤추는 대수사선」의 감독으로 유명한 모토히로가 연출을 맡으면서 방영 전부터 주목을 받았단다. 그리고 그 기대에 답하듯 2007년에 후지TV에서 방영되면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고. 평소 미드나 일드 등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터라 가네시로 가즈키가 드라마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도, 그 드라마가 우리나라에서도 케이블 채널인 MBC 에브리원에서 방송이 되었다는 것도 이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진작 알았으면 한 번 챙겨보는 건데 말이다.


처음엔 책제목인 'SP'가 무얼 의미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표지에 자그만하게 적혀 있듯이 'SP'는 Security Police의 머릿말을 딴 약자다. 직역하자면 '안전 경찰' 또는 '보호 경찰' 정도 되려나. 책에는 '요인 경호관'으로 번역해 놓았는데, 어째 영어보다 번역어가 더 여럽게 느껴진다. 여튼 간단히 말하자면 'SP'란 요인(要人), 즉 VIP급의 중요한 사람의 신변의 안전을 돌보는 경호관 정도를 일컫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여담인데,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SP의 우리말 번역인 '요인 경호관'을 한 번 찾아봤다. 그런데 우리가 평상시에 자주 썼던 '경호관'이란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대신 경호원, 경호인, 보디가드 등으로 나온다. 일반 경호원과 달리 경호관은 경찰 신분의 경호원만을 일컫는 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뜻으로 차별화한 거라면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검색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그것 참, 궁금하다.



각설하고, 시나리오집 『SP』는 테러로부터 마루타이(신변 보호 대상자)를 구하는 네 개의 에피소드와 뒤이어 전개될 에피소드Ⅳ와 관련되어 있는 주인공 이노우에의 과거와 그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을 살짝 노출시키면서 앞으로의 사건에 흥미를 더하는 한 개의 준에피소드(에피소드 zero)로 구성되어 있다. 에피소드마다 각각 다른 사건들이 등장한다.

도코 도지사를 경호하는 에피소드Ⅰ에서는 『SP』의 주인공이자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노우에와 그를 든든한 지지자인 상사 오가타와의 끈끈한 끈끈한 신뢰, 주요 등장인물인 경시청 경비부 경호과 4계의 팀원들과 SP의 주요임무들이 가볍게 소개된다. 전 총리대신을 위기에서 구하는 에피소드Ⅱ에서는 병원을 검거한 테러리스트들이 등장하면서 SP 요원들의 슬슬 몸을 풀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노우에의 특별한 능력도 본격 가동된다.

에피소드Ⅲ에서는 여러 유력 인사들의 돈세탁을 해주던 특급 증인의 신변을 보호하라는 임무가 맡겨진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증인을 죽이기 위해 고용된 킬러가 뒤따라 등장한다. 에피소드Ⅱ에서 엑스트라로 잠깐 등장했던 '리버풀 클리닝' 4인조는 에피소드Ⅲ에서 살인청부업자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주석에서 가즈키는 『SP』 시리즈가 계속 된다면 리버풀 클리닝 멤버를 재등장시키고 싶다며 그들에게 애착을 드러내는데, 어쩌면 가즈키 하면 떠오르는 인기 캐릭터인 '더 좀비스' 만한 캐릭터들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에피소드 zero와 에피소드Ⅳ에서는 그동안 플래시백 기법을 통한 연상 장면으로만 짧게 보여지던 이노우에의 과거를 본격적으로 끄집어낸다. 역 앞에서 생면부지의 괴한의 칼에 의해 부모님을 잃은 어린날의 이노우에가 겪었던 사건의 내막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그와 관련된 아사다 총리와 야마니시, 니시지마 이사관과 오가타 등의 관계도 베일을 벗는다. 『SP』의 에피소드 중 가장 스케일이 크고 복잡하며 앞서 깔아두었던 복선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에피소드라 하겠다.


4.5개의 에피소드와 함께 책은 끝났다. 그러나 그 속의 사건들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맨처음 등장해서 번번이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싱겁게 사라지는 덩치 큰 사내의 정체는 무엇인지, 페인트탄을 쏜 수수께끼의 사내는 왜 경호과 신참으로 재등장 했는지, 니시지마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일을 벌인 건지, 막판에 잠깐 등장하는 오가타의 또다른 얼굴은 무얼 의미하는지 어느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책의 중간중간 달린 '「SP」 시리즈가 계속 된다면..'이라는 작가의 주석을 통해 아직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음을 짐작할 뿐이다. 그의 말처럼 만약 「SP」 시리즈가 계속 된다면 말이다. 이런 미완의 찜찜함이란!



『SP』의 색다른 매력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라는 점이다. 시나리오집을 읽기는 처음이라 약간의 적응기가 필요했다. 인물이나 배경 등을 묘사와 서술로 꼼꼼하게 채워주는 소설과 달리 등장인물의 대사와 지문이라는 기본 골격으로만 구성된 시나리오는 어딘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여백을 감독과 배우, 그리고 여러 스탭들이 자신들의 해석으로 채워가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가는 것이 시나리오의 매력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만의 상상력으로 열심히 빈 공간을 메꿔가며 시나리오를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SP』는 시나리오 중간중간에 달아둔 작가의 다양한 주석을 만나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드라마 캐스팅에 대한 작가의 소견에서부터 그 대사를 쓴 이유, 아이디어의 출처, 시나리오가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변화된 내용, 앞으로의 전개, 캐릭터들의 설명 등 작가의 수다가 이어진다. 소설과는 달리 작가의 속내를 만날 수 있어 재미있기도 했고, 몰랐던 여러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 재밌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지도 않았고, 일본 배우에 대해서도 거의 모르는 나로서는 출연 배우에 대한 설명이나 촬영장의 내용, 드라마 영상에 대한 설명 등은 별로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드라마를 먼저 보고 이책을 읽는다면 각 장면에 대한 작가의 세심한 주석들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듯하다. 


『SP』는 평상시 흔히 접하지 못했던 'SP'라는 특수 직업을 배경으로 테러에 맞서 싸우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오감을 이용해 주변의 모습이나 소리, 냄새 등을 사진찍듯 각인시키는 이노우에의 특별한 능력은 현실에 판타지의 기운을 더한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이노우에는 테러의 낌채를 알아차리거나 위기일발의 상황을 제지하여 보호자의 목숨을 구하는 등 며 사건마다 종횡무진 활약한다. 과연 주인공답다. 하지만 매번 사건의 해결을 이노우에의 특별한 능력에 기대어 해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테러리스트가 너무 쉽게 들통이 나버리거나 기대이상의 반전을 보여주지 못한 채 싱겁게 끝을 맺는다는 점은 아쉽다.

또한 시나리오는 '설계도'에 불과하다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말처럼 아쉽게도 이책 또한 글만으로는 촌각을 다투는 현장의 긴박감이나 아드레날린이 넘쳐나는 화려한 액션을 생생하게 전달해주지 못한다. 가즈키가 좋아하는 액션 영화의 쾌감을 글만으로는 풍족하게 느끼기 힘들었다. 설계도 그 자체가 집이 아니듯, 시나리오 역시 현장 스태프들의 작업이 필요하다. 작가가 그린 설계도에 감독과 배우 등의 영상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계도'가 아닌 '집'에 살아달라며 시나리오로 그치지 말고 완성된 드라마를 봐달라는 작가의 부탁은 그래서 더 공감이 간다.



나름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적지 않은 책이었다. 만약 가네시로 가즈키가 아니었다면, 그냥 일본의 인기 시나리오 작가가 드라마 집필을 맡았다면, 과연 이책이 우리나라에까지 출간이 되었을까? 소설도 아닌 시나리오집이, 게다가 끝도 완전치 않은 미완성인 채로 말이다. 냉정하게 생각할 때 아마도 힘들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우리 영화나 드라마의 시나리오도 책으로 출간되는 경우가 그리 흔치는 않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가네시로 가즈키의 첫 번째 시나리오집인 『SP』는 작가의 기존 명성에 적지 않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거기다 여러가지 의문만 잔뜩 남긴 채 그대로 끝나버린 미진한 결말의 찜찜함이 우울함을 더했다. 차라리 두세 권으로 나뉘더라도 드라마의 에피소드들을 모두 담아 온전히 완성된 이야기로 출간했더라면 이런 찝찝함은 없을 텐데 말이다(일본에서도 이책만 나온 건지 여부는 나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그래서 그의 다음 소설이 어서 출간되기를 기다려 본다.











+ 오탈자?

455쪽(에피소드Ⅳ 中)에 아사다 총리의 가족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나이가 좀 이상했다. 아사다의 아내 유키 나이가 51세인데 '아사다와 유키의 아들'이라 설명된 야스토의 나이가 41세였다. 책의 설명대로 야스토가 아사다와 유키의 아들이라면 엄마와 아들 나이가 10세 밖에 차이가 안 난다는 건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야스토(41세)와 야스토의 아이들(아들 6세, 딸 4세)과는 무려 30년이 넘는 나이차가 나지 않는가. 물론 유키가 10살 때 애를 낳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건 좀.. (-_-). 여튼 이 부분은 둘 중 한 명의 나이가 잘못 표기된 게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란 코끼리
스에요시 아키코 지음, 양경미.이화순 옮김, 정효찬 그림 / 이가서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 어느날 문득, 노란 아기 코끼리가 다가왔다.

매사에 덜렁거리는 기계치인 엄마가 드디어 운전면허를 결심하면서 '나(요군)'에게 새 가족이 생긴다. '노란 아기 코끼리'라는 애칭을 수여받게 된 중고차가 바로 그것. 엄마의 운전면허증보다 먼저 도착한 노란 코끼리는 한 달이 지나서야 바다로 첫 나들이를 떠난다. 엄마와 나, 동생 나나. 이렇게 셋이서.

앙증맞은 제목만큼이나 사랑스런 외모를 갖고 있는 책, <노란 코끼리>. 그냥 휘리릭~ 넘겨보면 첫 느낌은 삽화책 같기도 하고 동화책 같기도 하다. 마티즈를 연상시키는 노란 자동차가 굴러가는 표지 위에 샛노란 띠지를 걸치고 속지까지 노랗게 물들인 귀여운 이 책은, 책 속에 책표지와 같은 그림이 새겨져있는 이쁜 책갈피 선물까지 품고 있다. 작은 걸로 큰 감동주는 센스쟁이!


또래보다 성숙한 아이 요군과 매사에 덜렁대지만 엄청난 낙천주의자인 싱글맘인 엄마의 가족 이야기인 '노란 코끼리'는, 아이의 어른스러움과 시니컬함이 매사에 덜렁대는 엄마의 성격과 서로 상충되며 웃음을 유발한다.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러나 키득대면서도 마음 어딘가가 짠하다.

부모의 행동은 어떤 형태로든 아이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아빠의 외도로 인한 부모님의 이혼 또한 어린 요군을 너무 빨리 애늙은이로 만들어 버린다. 아빠 없는 가정에서 맞는 현실이 녹록찮다는 것을어린 나이에 알아버렸다고나 할까. 요군의 열한 번째 생일에 찾아왔다가 어린 나나의 우산도 마다하고 비오는 거리로 사라진 아빠의 뒷모습을바라 보는 요군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너무 일찍 씁쓸한 어른의 세계를 알아버린 요군의 마음이 그대로 들어나 마음이 찡하기도 하고. 


얼마전까지도 내 운전면허증은 소위 장롱면허였다. 취득한지 벌써 오래지만(녹색운전자,라는 제도가 없어지지 않았다면 나도 어엿한 녹색면허가 되어 있을지도;;). 일년 중에 운전을 하는 횟수가 얼마되지 않는 터라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기라도 하면 무뎌질대로 무뎌진 감각에 바짝 긴장을 하게 된다. 기계치까지는 아니지만 그런 심정을 알기에 <노란 코끼리>의 기계치인 엄마가 콧잔등에 송글송글 땀이 맺히도록 긴장하는 그 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기계하고는 도통 친하지 않은 엄마가 운전을 결심한 건 자신이 지켜야 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무섭고 겁이 나지만 용기를 내어 운전면허증을 따고 결국 자기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는다. 이 책에서 엄마의 운전은 싱글맘으로서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나가려는 엄마의 의지표출이 아닌가 싶다.


엄마의 중고차 '노란 아기 코끼리'가 찾아오면서 시작된 <노란 코끼리>는 그 코끼리를 떠나보내면서 끝난다. 그러나 노란 코끼리가 떠난 자리에는 험난한 현실과 마주할 새로운 용기와 희망이 남아 있다. 두려움에 맞짱뜨면서 운전대를 잡는 엄마는 어쩌면 세상을 향해 홀로서기를 시도하는 모든 싱글맘의 모습이 아닐런지. 

차 안에 열쇠를 두고 문을 잠그는 황당한 실수부터 주차해둔 차를 견인당하고 집으로 들어오고 나가면서 수없이 차를 긁어대고 때론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수난을 겪으면서 베스트 드라이버로 거듭나듯이, 원고 때문에 머리를 쥐어짜고 출판사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날마다 아이들과 한 판 승부를 벌이고 말 안 듣는 아들 걱정이 이어지는 일상을 보내면서 엄마도 아이도 한 뼘쯤 성장해 간다. 


싱글맘이란 쉽지 않은 소재로 이야기를 꾸려나가지만 <노란 코끼리>는 예의 그 미덕인 밝고 경쾌함을 잃지 않는다. 부록으로 웃음도 동반한다. 그렇지만 그 짧은 이야기 안에는 작가가 하고 싶은 많은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래서 그 가벼움이 마냥 가볍게 느껴지지 만은 않는다. 마지막 가족여행에서 돌아오며 엄마가 하는 말은 그래서 더 가슴에 와 닿는다. 

-  엄마는 노란 아기 코끼리를 타고 있을 때면 늘 기분이 좋았단다. 엄마 노릇도 잘 못하고 아내로서도 부족했지만, 복잡한 도로에서 다른 차량의 물결에 섞여 함께 달리다 보면, '어때, 나도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고 잘 하잖아' 하는 기분이 들었거든. 엄마가 그럭저럭 생활을 꾸려갈 수 있었던 건 모두 이 노란 아기 코끼리 덕분이야. 물론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폐를 끼치게 될 지도 모르지만, 우리도 이젠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어떻게든 씩씩하게 살아가야 해. 별 일도 아닌 걸 가지고 놀란 고슴도치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을 수 만은 없으니 말이야. 엄마는 이제 가슴을 펴고 씩씩하게 나아갈 거야.  (218 쪽)





참,,
부모 양쪽 중 하나가 없다고 해서 '결손가정'이라 부르는 것도 하나의 편견이 될 수 있다는 말을 전에 들은 적이 있다. 별 생각없이 흘려듣던 그 단어가 그 뒤로는 조금씩 귀에 걸렸다. 부모 한쪽이 없다고 해서, 우리들과 아주 조금 다르다고 해서 그들의 가정이 '결손'되었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이혼률이 증가와 함께 싱글맘, 싱글대디라는 말이 어느덧 익숙해지고 있는 요즘, 우리들의 생각없는 말들로 그들이 또 다른 상처를 받지 않길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기공룡 둘리 한자대탐험 1 - 매크로파워 용사의 탄생 아기공룡 둘리 한자대탐험 1
김수정 원작 및 총감독, 하이툰닷컴 만화 / 웅진씽크빅 / 2009년 7월
절판


또다시 둘리가 돌아왔다. 총 4개 분야에 걸쳐 시리즈로 나올 계획이라는 둘리 학습만화 중 첫선을 보인 「과학대탐험 시리즈」에 이어 이번엔 「한자대탐험 시리즈」가 출간됐다. 과거 중생대 공룡 시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 공룡에 대해 요모조모를 보여주던 과학대탐험 시리즈와 달리 이번 한자대탐험에서는 네버월드라는 가상의 세계로 떠난 둘리 일행이 사용하는 한자 마법을 통해 다양한 한자와 유래와 음과 뜻, 파생 한자 등을 재미있게 알려준다.

어느날 집으로 배달된 공짜 숙박권에 혹해 룰루랄라 여행을 떠난 둘리와 친구들은 그곳에서 바쁘게 뛰어다니는 토끼를 만난다. 자신을 네버월드의 한자 왕국인 베네이크 왕국의 외무대신이라고 소개한 토끼는 천 년 전에 사라졌다고 전해지는 베네이크 왕국의 전설의 보석을 찾아준다면 엄청난 대가를 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둘리 일행은 그걸 받아들여 네버월드의 모험에 동참한다.


우여곡절 끝에 베네이크 왕국에 도착한 둘리 일행은 왕의 환대 속에 전설의 보석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듣는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왕으로부터 전설의 보석을 이용해 한자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매크로파워 팔찌를 선물로 받는다. 팔찌를 낀 채 마법의 주문과 한자의 음과 뜻을 말하면 그 뜻에 해당하는 마법을 부릴 수가 있는데, 마법의 강도는 사용하는 이의 레벨에 따라 달라진다. 매크로파워 팔찌는 둘리 일행이 앞으로 겪을 험난한 모험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줄 무기이자 한자대탐험의 존재 의의이기도 하다.

베네이크 왕국의 전설의 보석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둘리와 친구들은 시시때때로 여러 위험을 맞게 되고, 그때마다 베네이크 왕이 건네준 매크로파워 팔찌를 통해 다양한 한자 마법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렇게 둘리 일행의 모험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들이 사용하는 한자 마법을 통해 다양한 한자들을 만나게 된다.



「아기공룡둘리 한자대탐험」 시리즈 제 1권인 『매크로파워 용사의 탄생』에서는 동물과 관련된 한자를 다루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한자능력검정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대표 한자 22자를 간추렸다. 둘리 일행이 모험 중에 사용하는 마법 한자는 모두 이런 대표 한자들로, 뜻과 음을 외치면 해당 한자가 큰 글씨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옆에는 마법에 쓰인 한자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적힌 학습박스가 뒤따라 등장한다.


학습박스에는 우선 해당 한자와 뜻과 음이 적혀 있다. 그리고 한자가 뜻하는 동물에서 해당 한자가 만들어지게 된 과정을 동물의 그림 → 갑골문자(전서) → 한자(해서) 순으로 차례대로 실어 놓았는데, 이를 통해 실제 동물 형상에서 지금의 한자가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특히 1권에서 다루고 있는 동물과 관련된 한자가 대부분 상형문자라는 점을 십분 발휘해 설명한 점이 눈에 띈다.


또한 하나의 대표 한자가 등장하면 거기서 파생된 여러 파생 한자들도 함께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대표 한자와 파생 한자의 차이를 다른 색으로 표시해 그 차이를 쉽게 구별할 수 있게 해두었고, 파생 한자 역시 그림문자 → 갑골문자 → 한자 순으로 정리하고 설명을 간략히 첨가해 기본 원리 파악을 통한 한자 학습을 도와준다.

만화 속에서 둘리 일행이 매크로파워 팔찌를 휘두르며 한자 마법을 만드는데 쓰이는 대표 한자가 22자이고, 그에 덧붙여 소개하는 파생 한자가 28자이니 「아기공룡둘리 한자대탐험」 1권 『매크로파워 용사의 탄생』에서만 모두 50자의 한자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특별히 공부한다는 생각 없이 웃고 즐기는 사이 만나는 한자가 50자나 된다니 학습 만화의 위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소단락이 끝날 때마다 만화 속에서 나왔던 한자들을 한 곳에 모아 정리해 둔 학습 꼭지가 나온다. 한자 마법에 쓰인 대표 한자는 물론 파생 한자의 뜻과 음, 한자 형성 과정이 다시 한 번 자세히 나와 있고, 거기에 더해 그것들이 들어가는 유용한 생활 단어들이 그 뜻과 함께 소개되어 있어 어휘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더불어 한자마다 한자능력검정시험에 따른 급수를 적어 놓아 각각의 난이도를 표시해 두었다.


또한 학습 꼭지에서는 앞서 나온 한자의 복습 뿐만 아니라 한자에 대한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기초 상식들도 알려준다. 상형ㆍ지사ㆍ회의ㆍ형성 문자 등 한자의 생성 원리나 한자 공부에서 빠질 수 없는 부수(部首)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은 물론이고, 옛날에는 조개가 돈 대신 화폐로 사용되었던 까닭에 지금도 재물을 나타내는 글자에는 조개 패(貝) 자가 들어간다거나 등용문이나 사족 같은 단어들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를 알려주기도 한다.



책의 마지막에는 1권에서 배웠던 한자들을 이용해 풀어볼 수 있는 간단한 문제들을 실어놓았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문제들이라 복습 차원에서 가볍게 풀어보기 좋다.


또한 한자를 쓰는 순서(필순)에 대해서도 한 꼭지 소개해 놓았다. 문제나 필순 등에는 모두 앞에서 배웠던 한자들을 사용해 반복을 통해 자연스레 익힐 수 있게 했다.



소리글자인 우리말과 달리 한자는 글자마다 제각각 뜻을 갖고 있는 뜻글자다. 한자의 이런 특성을 활용해 위험에 처한 주인공들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뜻을 가진 한자로 마법을 걸고 그 뜻대로 변신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하면서 문자를 이용한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한자 마법은 이야기 속에서 극적으로 긴장된 순간에 사용됨으로써 독자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남기고, 이것이 학습으로 이어진다.


한자 마법 놀이를 통해 재미있는 한자 학습을 이끌어낸 『마법천자문 시리즈』의 대성공 이후 어린이 학습만화에 한자 마법은 하나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 한자 시리즈 또한 이러한 최근의 한자 학습만화의 유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기공룡둘리 한자대탐험」은 둘리와 그의 개성 강한 친구들이라는 이미 검증된 막강한 캐릭터들을 바탕으로 가상의 세계 네버월드에서 흥미진진한 모험을 펼치며 자신만의 특징을 만들어간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와 피터팬의 네버랜드, 로빈훗과 산타 클로스 등 동화의 패러디는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충실한 한자 설명으로 기본을 든든히 했다. 다시 길을 떠나는 둘리 일행을 몰래 지켜보는 스켈레톤 왕은 또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을까. 2권에서 펼쳐질 둘리의 모험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