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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
테오 글.사진 / 삼성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 │ 테오 │ 삼성출판사 │ 2009.07
테오의 케이프타운 여행에세이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의 개정판이 나왔다. 꽤 사랑스런 책이었음에도 1인 출판의 한계 때문이었는지 출간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절판되었다는 소식에 많이 아쉬웠던 터라 개정판 출간 소식이 더 반가웠다. 개정판 역시 테오의 두 번째 여행 에세이인 『당신의 소금 사막에 비가 내리면』이 출간되었던 삼성출판사에서 나왔다. 예전에 블로그에 남긴 책리뷰를 보고 어떤 분으로부터 절판이라 살 수가 없다며 혹시 팔 생각이 없느냐는 쪽지를 받기도 했었는데, 그분 또한 재출간 소식에 반색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 이책을 접했을 때 아프리카에 웬 펭귄?하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뜨거움'으로 기억되는 아프리카에 '차가움'으로 상징되는 펭귄이라니, 이건 정말 너무 아이러니한 조합이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펭귄은 '남극의 신사'답게 남극 대륙에만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아프리카 최남단인 케이프타운에는 정말, 진짜로, 펭귄이 산다. 아프리카임에도 남극과 멀지 않아 수온이 낮고 날씨도 선선하기 때문이란다. 오, 세상에 이런 일이! 그뒤에 읽은 책에서 알게 됐는데 역시나 남극과 가까운 남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 최남단에도 펭귄이 서식한단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한다니깐.
혹시 책제목이나 표지 그림만 보고 이책이 펭귄에 대한 이야기로만 가득한 책이라고 짐작한다면, 그건, 실수다. 책의 전면에 나선 펭귄은 그저 케이프타운을 각인시키는 색다른 미끼이고, 그들의 이야기 또한 다양한 에피소드들 중 하나일 뿐이다.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는 펭귄이 살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도시 케이프타운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로 채워진 여행 에세이다.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들려주는 케이프타운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라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이책에는 케이프타운과 근교의 다양한 명소들이 등장한다. 역사책에서만 보던 희망봉, 정말 테이블처럼 윗부분이 평평한 테이블 마운틴, 커다란 바위가 뚝 떨어진 듯한 모양의 팔락 마운틴을 보며 그곳을 오르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고, 케이프타운의 작은 사막 아틀란티스 샌듄에서 타는 샌드보드의 재미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계속 음식이 나오는 해변의 한가한 랑가방 레스토랑에서 환상적인 랍스터도 맛보고도 싶어졌고, 통조림과는 격이 다르다는 황홀한 맛의 갓잡은 참치뱃살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입에 잔뜩 고인 침을 꼴깍 삼키기도 했다.
무엇보다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에서 가장 매력적인 건 바로 아프리카의 자연이었다.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그와 조화를 이룬 채 땅을 덮고 있는 싱그러운 풀의 색채, 빠져들고 싶은 바다의 빛깔까지 케이프타운을 둘러싸고 있는 아프리카의 자연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그와 함께 주말마다 와인 농장이나 돼지 농장 등에서 가족이나 지인들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며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많이 벌진 못 하지만 동시에 쓸 곳도 별로 없는, 그래서 적게 가지고도 충분히 여유롭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솔직히 부러웠다. 안타깝게도 케이프타운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풍족함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흑인 구역인 하라레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흥미로웠다. 범죄가 우글거리는 하라레의 골목길은 사실은 그냥 여느 골목길과 별다른 것이 없었다. 그냥 그곳도 사람이 사는 동네일 뿐이다. 하라레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을 통해 남아프리카에 아직도 남아있는 인종차별을 엿볼 수 있어 씁쓸했다. 내 기억에는 예전 판본에는 이런 차별적인 면을 살짝 언급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은데(쓰레기 수거같은) 이번 개정판에서는 빠진 것 같다. 요즘 옛 영광을 잃은 채 오락가락하는 내 기억력을 나도 믿을 수가 없는 터라, 만약 개정판에도 그 부분이 실려있다면 살짝 알려주시길! (얼른 수정하게 :)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 덕분에 케이프타운이라는 낯선 도시를 만나고 그곳을 함께 즐길 수 있어 무척 즐거웠다. 남아프리카에 대한 책은 처음이라 아름다운 자연도, 뜬금없어 보이는 펭귄도, 그곳 사람들의 느긋한 모습도, 맛있는 먹거리들도 모두 가슴 두근거리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프리카인지 유럽인지 쉽게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너무나 서구화된 도시의 풍경에서 아프리카 특유의 모습을 찾기 힘들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케이프타운이 얼마전까지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했던 남아프리카에 있는 도시라는 점을 다시 떠올리게 되기도 했고. 물론 이책을 읽을 때 그런 생각의 날을 세울 필요까지는 없다. 그냥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 편안하게 느긋하게 그리고 가볍게 도시를 즐기듯이 돌아보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책의 외적인 면을 간단히 살펴보자면, '개정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재출간된 책은 예전 책과 조금 달라졌다. 우선 책제목이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종이심장,2006)』에서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삼성출판사,2009)』로 바뀌었다. 저자 자리에는 처음의 '장태호'라는 본명 대신 '테오'라는 필명이 새겨져 있고, 표지는 버스를 탄 펭귄 일러스트 대신 앙증맞은 자카드 펭귄 한 마리를 중앙에 세우고 그뒤에 제목을 걸었다. 훨씬 깔끔하고 심플해졌지만 조금은 허전하고 심심한 느낌이 남긴 한다.
글과 사진도 일부 첨삭됐다. 예전 책의 뒷머리에 실려있던 케이프타운에서의 유학이나 이민, 생활 등에 관한 정보성이 짙은 글들은 과감히 들어냈고, 그 자리에 대신 새로운 에피소드 몇 꼭지를 채웠다. 정보성 글을 삭제한 건 시간이 지나면서 정보의 효용성이 떨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여행 에세이에서 급작스레 정보서로 넘어가던 이질감을 줄이기 위한 편집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도 좋은 선택인 듯하다. 그러나 들어낸 글중에서도 「리디아의 고민」처럼 새로운 에피소드로 살아난 글도 있다.
글의 순서도 많이 바뀌었다. 책제목을 이해시켜줄 만한 내용인 동명의 에피소드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를 책의 제일 앞에 배치했고(책제목 변경으로 에피소드 제목도 함께 바뀌었다)고, 이어지던 아프리카 펭귄 글인 「그녀석, 펭귄」은 중간쯤에 그대로 두었다. 두 에피소드는 연이어 배치해도 괜찮을 법한데. 어쨌거나 에피소드의 전면 재배치로 글 전체의 흐름은 전보다 훨씬 매끄워졌다. 예전과 달리 여행 에세이에 오롯이 집중한 점은 칭찬할 만하다.
그러나 사진의 변화는 많이 아쉬웠다. 내가 이책에서 가장 좋아했던 게 바로 눈이 시릴 정도로 싱그러운 아프리카의 풍광들이 가득 담긴 아름다운 사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정판에서는 책에 수록된 사진의 수도 줄었고, 비슷한 다른 사진이나 완전히 새로운 사진으로 교체되기도 했다. 예전보다 더 고급 재질의 속지로 사진의 선명도를 높였지만 예전의 질감을 살리진 못했다. 무엇보다 사진 크기가 전보다 많이 작아져 같은 사진이어도 예전만큼 강한 매력을 발산하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안타까웠다.
사진 만큼이나 아쉬움이 남는 건 바로 책의 제본이었다. 책을 쫘악~ 펼친 것도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책등에 균열이 생겼다. 조금만 활짝 펼치면 책장이 뜯어져 나올 것 같던 예전 판본과 비교했을 때 개정판도 제본에 있어서는 그다지 나아진 점이 없는 듯하다. 또한 같은 출판사에서 개정판이 나오는 만큼 앞서 출간된 테오의 『당신의 소금 사막에 비가 내리면』과 같은 판본으로 해주었더라면 독자 입장에서 소장하는 즐거움이 한층 커졌을 텐데. 책을 직접 맞대고 크기를 비교해 보니 이책에 양장본 커버만 씌우면 두책 크기가 딱 맞다. 세트처럼 나란히 꽂아두고 흐뭇해 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이전과 똑같은 책을 표지만 바꾸고 가격을 올려 개정판으로 판매하는 '무늬만' 개정판인 책들과 달리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는 구석구석을 새롭게 손보고 단장한 '진짜' 개정판이다. 처음 판본과 개정판을 모두 본 독자로서 두 책의 차이점을 간단히 비교해 보았는데, 전보다 더 좋아진 점도 있고 오히려 조금 아쉬워진 부분도 있다. 하지만 절판으로 더이상 독자를 만날 수 없었던 책이 다시 되살아났다는 것만으로도 개정판은 충분히 반가운 존재가 아닐런지.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찾아왔습니다』 또한 마찬가지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잠깐이나마 케이프타운만의 청초한 매력에 풍덩 빠져보는 것도 좋은 피서법이 될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