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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 - 영화광 가네시로 가즈키의 열혈 액션 드라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 SP │ 가네시로 가즈키 │ 김난주(옮김) │ 북폴리오 │ 2009.07
가네시로 가즈키의 신작이 나왔다. 단지 그의 신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눈을 반짝이며 냉큼 집어들었다. 아마 나같은 독자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이번엔 소설이 아니라 시나리오집이다. 뜬금없이 웬 시나리오? 그가 시나리오도 썼었던가? 앞쪽의 책날개를 펼쳐보니 깨알같은 글자들 속에 몇 줄이 눈에 들어온다. 이책 『SP』는 일본 후지TV의 인기 드라마 「SP」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집이란다.
드라마 「SP」는 가네시로 가즈키가 시나리오를 쓰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일본의 인기 드라마 「춤추는 대수사선」의 감독으로 유명한 모토히로가 연출을 맡으면서 방영 전부터 주목을 받았단다. 그리고 그 기대에 답하듯 2007년에 후지TV에서 방영되면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고. 평소 미드나 일드 등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터라 가네시로 가즈키가 드라마 시나리오를 썼다는 것도, 그 드라마가 우리나라에서도 케이블 채널인 MBC 에브리원에서 방송이 되었다는 것도 이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진작 알았으면 한 번 챙겨보는 건데 말이다.
처음엔 책제목인 'SP'가 무얼 의미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표지에 자그만하게 적혀 있듯이 'SP'는 Security Police의 머릿말을 딴 약자다. 직역하자면 '안전 경찰' 또는 '보호 경찰' 정도 되려나. 책에는 '요인 경호관'으로 번역해 놓았는데, 어째 영어보다 번역어가 더 여럽게 느껴진다. 여튼 간단히 말하자면 'SP'란 요인(要人), 즉 VIP급의 중요한 사람의 신변의 안전을 돌보는 경호관 정도를 일컫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여담인데,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SP의 우리말 번역인 '요인 경호관'을 한 번 찾아봤다. 그런데 우리가 평상시에 자주 썼던 '경호관'이란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대신 경호원, 경호인, 보디가드 등으로 나온다. 일반 경호원과 달리 경호관은 경찰 신분의 경호원만을 일컫는 건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뜻으로 차별화한 거라면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검색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그것 참, 궁금하다.
각설하고, 시나리오집 『SP』는 테러로부터 마루타이(신변 보호 대상자)를 구하는 네 개의 에피소드와 뒤이어 전개될 에피소드Ⅳ와 관련되어 있는 주인공 이노우에의 과거와 그 사건에 관련된 인물들을 살짝 노출시키면서 앞으로의 사건에 흥미를 더하는 한 개의 준에피소드(에피소드 zero)로 구성되어 있다. 에피소드마다 각각 다른 사건들이 등장한다.
도코 도지사를 경호하는 에피소드Ⅰ에서는 『SP』의 주인공이자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노우에와 그를 든든한 지지자인 상사 오가타와의 끈끈한 끈끈한 신뢰, 주요 등장인물인 경시청 경비부 경호과 4계의 팀원들과 SP의 주요임무들이 가볍게 소개된다. 전 총리대신을 위기에서 구하는 에피소드Ⅱ에서는 병원을 검거한 테러리스트들이 등장하면서 SP 요원들의 슬슬 몸을 풀며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노우에의 특별한 능력도 본격 가동된다.
에피소드Ⅲ에서는 여러 유력 인사들의 돈세탁을 해주던 특급 증인의 신변을 보호하라는 임무가 맡겨진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증인을 죽이기 위해 고용된 킬러가 뒤따라 등장한다. 에피소드Ⅱ에서 엑스트라로 잠깐 등장했던 '리버풀 클리닝' 4인조는 에피소드Ⅲ에서 살인청부업자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주석에서 가즈키는 『SP』 시리즈가 계속 된다면 리버풀 클리닝 멤버를 재등장시키고 싶다며 그들에게 애착을 드러내는데, 어쩌면 가즈키 하면 떠오르는 인기 캐릭터인 '더 좀비스' 만한 캐릭터들이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에피소드 zero와 에피소드Ⅳ에서는 그동안 플래시백 기법을 통한 연상 장면으로만 짧게 보여지던 이노우에의 과거를 본격적으로 끄집어낸다. 역 앞에서 생면부지의 괴한의 칼에 의해 부모님을 잃은 어린날의 이노우에가 겪었던 사건의 내막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그와 관련된 아사다 총리와 야마니시, 니시지마 이사관과 오가타 등의 관계도 베일을 벗는다. 『SP』의 에피소드 중 가장 스케일이 크고 복잡하며 앞서 깔아두었던 복선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에피소드라 하겠다.
4.5개의 에피소드와 함께 책은 끝났다. 그러나 그 속의 사건들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맨처음 등장해서 번번이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 싱겁게 사라지는 덩치 큰 사내의 정체는 무엇인지, 페인트탄을 쏜 수수께끼의 사내는 왜 경호과 신참으로 재등장 했는지, 니시지마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일을 벌인 건지, 막판에 잠깐 등장하는 오가타의 또다른 얼굴은 무얼 의미하는지 어느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 책의 중간중간 달린 '「SP」 시리즈가 계속 된다면..'이라는 작가의 주석을 통해 아직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음을 짐작할 뿐이다. 그의 말처럼 만약 「SP」 시리즈가 계속 된다면 말이다. 이런 미완의 찜찜함이란!
『SP』의 색다른 매력은 오리지널 시나리오라는 점이다. 시나리오집을 읽기는 처음이라 약간의 적응기가 필요했다. 인물이나 배경 등을 묘사와 서술로 꼼꼼하게 채워주는 소설과 달리 등장인물의 대사와 지문이라는 기본 골격으로만 구성된 시나리오는 어딘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 여백을 감독과 배우, 그리고 여러 스탭들이 자신들의 해석으로 채워가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가는 것이 시나리오의 매력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만의 상상력으로 열심히 빈 공간을 메꿔가며 시나리오를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SP』는 시나리오 중간중간에 달아둔 작가의 다양한 주석을 만나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드라마 캐스팅에 대한 작가의 소견에서부터 그 대사를 쓴 이유, 아이디어의 출처, 시나리오가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변화된 내용, 앞으로의 전개, 캐릭터들의 설명 등 작가의 수다가 이어진다. 소설과는 달리 작가의 속내를 만날 수 있어 재미있기도 했고, 몰랐던 여러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 재밌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지도 않았고, 일본 배우에 대해서도 거의 모르는 나로서는 출연 배우에 대한 설명이나 촬영장의 내용, 드라마 영상에 대한 설명 등은 별로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 까닭에 드라마를 먼저 보고 이책을 읽는다면 각 장면에 대한 작가의 세심한 주석들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듯하다.
『SP』는 평상시 흔히 접하지 못했던 'SP'라는 특수 직업을 배경으로 테러에 맞서 싸우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다룬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오감을 이용해 주변의 모습이나 소리, 냄새 등을 사진찍듯 각인시키는 이노우에의 특별한 능력은 현실에 판타지의 기운을 더한다.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이노우에는 테러의 낌채를 알아차리거나 위기일발의 상황을 제지하여 보호자의 목숨을 구하는 등 며 사건마다 종횡무진 활약한다. 과연 주인공답다. 하지만 매번 사건의 해결을 이노우에의 특별한 능력에 기대어 해결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테러리스트가 너무 쉽게 들통이 나버리거나 기대이상의 반전을 보여주지 못한 채 싱겁게 끝을 맺는다는 점은 아쉽다.
또한 시나리오는 '설계도'에 불과하다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말처럼 아쉽게도 이책 또한 글만으로는 촌각을 다투는 현장의 긴박감이나 아드레날린이 넘쳐나는 화려한 액션을 생생하게 전달해주지 못한다. 가즈키가 좋아하는 액션 영화의 쾌감을 글만으로는 풍족하게 느끼기 힘들었다. 설계도 그 자체가 집이 아니듯, 시나리오 역시 현장 스태프들의 작업이 필요하다. 작가가 그린 설계도에 감독과 배우 등의 영상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계도'가 아닌 '집'에 살아달라며 시나리오로 그치지 말고 완성된 드라마를 봐달라는 작가의 부탁은 그래서 더 공감이 간다.
나름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도 적지 않은 책이었다. 만약 가네시로 가즈키가 아니었다면, 그냥 일본의 인기 시나리오 작가가 드라마 집필을 맡았다면, 과연 이책이 우리나라에까지 출간이 되었을까? 소설도 아닌 시나리오집이, 게다가 끝도 완전치 않은 미완성인 채로 말이다. 냉정하게 생각할 때 아마도 힘들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우리 영화나 드라마의 시나리오도 책으로 출간되는 경우가 그리 흔치는 않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가네시로 가즈키의 첫 번째 시나리오집인 『SP』는 작가의 기존 명성에 적지 않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거기다 여러가지 의문만 잔뜩 남긴 채 그대로 끝나버린 미진한 결말의 찜찜함이 우울함을 더했다. 차라리 두세 권으로 나뉘더라도 드라마의 에피소드들을 모두 담아 온전히 완성된 이야기로 출간했더라면 이런 찝찝함은 없을 텐데 말이다(일본에서도 이책만 나온 건지 여부는 나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그래서 그의 다음 소설이 어서 출간되기를 기다려 본다.
+ 오탈자?
455쪽(에피소드Ⅳ 中)에 아사다 총리의 가족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나이가 좀 이상했다. 아사다의 아내 유키 나이가 51세인데 '아사다와 유키의 아들'이라 설명된 야스토의 나이가 41세였다. 책의 설명대로 야스토가 아사다와 유키의 아들이라면 엄마와 아들 나이가 10세 밖에 차이가 안 난다는 건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야스토(41세)와 야스토의 아이들(아들 6세, 딸 4세)과는 무려 30년이 넘는 나이차가 나지 않는가. 물론 유키가 10살 때 애를 낳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그건 좀.. (-_-). 여튼 이 부분은 둘 중 한 명의 나이가 잘못 표기된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