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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2
모리 에토 지음, 오유리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 다이브(Dive) 1,2 | 모리 에토 | 오유리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9.10
일부러 일본소설을 찾아 읽지 않은지는 좀 되었지만 그래도 신작 소식이 반가운 작가들이 있다. 모리 에토도 그중 한 명이다. 나오키상 수상작이었던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를 통해 그녀를 처음 만났는데 첫 느낌이 참 좋았다. 한창 오쿠다 히데오와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들을 낄낄거리며 섭렵하고 있었을 때라서 차분하고 섬세한 문체로 따듯한 온기를 품는 그녀의 이야기가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런 모리 에토의 신작 소설이 나왔다. 투명하게 출렁이는 파란 물빛과 아찔하게 높은 다이빙 위에 선 소년의 모습을 각각 표지로 담은 자그만한 두 권짜리 장편소설 『다이브(Dive,까멜레옹,2009)』가 그것이다. 제목과 표지 그림만으로도 다이빙을 소재로 한 스포츠 소설이라는 걸 한 눈에 눈치챌 수 있다. 모리 에토가 스포츠 소설을? 조금은 의외였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다이빙이란 스포츠를 통해 성장해 가는 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성장 소설이었다. 역시 모리 에토하면 성장 소설을 빼놓을 수가 없다.
MDC 클럽 소속 다이빙 선수인 도모키와 레이지, 료는 MDC가 문을 닫는 소문으로 마음이 심란하다. MDC는 전직 다이빙 선수로 다이빙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미즈키 사의 회장이 다이빙 계의 꿈나무를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설립한 클럽이지만, 회장이 지병으로 세상을 뜨자 계속되는 적자로 인해 클럽 자체가 존폐위기에 몰린 것이다. 소문이 떠도는 와중에 다이빙 코치 중 한 명이 다른 클럽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고양이 같은 눈동자를 번뜩이는 낯선 여자가 클럽을 찾아왔다. 소년들의 마음이 뒤숭숭해지던 그때, MDC를 지키기 위해 찾아온 그녀가 외친다. MDC를 구하기 위해 찾아왔노라고. 그녀가 바로 MDC의 전 회장의 손녀이자 MDC의 새로운 코치 아사키 가요코다.
아사키 코치의 등장으로 MDC는 또다른 시작을 맞는다. 올림픽 대표 선수 배출을 조건으로 MDC의 폐쇄 결정을 연장시킨 그녀는 겉보기엔 평범해 보이지만 다이빙 선수에게는 천혜인 조건인 이중관절의 유연한 몸과 순간을 잡아내는 다이아몬드의 눈동자를 가진 도모키의 비범한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단련시켜 나간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던 도모키도 곧 마음의 목표를 잡고 아사키 코치의 지도를 성실히 따르고, 점차 숨겨진 재능을 조금씩 내보이며 빠르게 성장해 간다.
MDC의 리더인 고등학생 요이치는 후지타니 코치의 아들이다. 올림픽 국가대표 다이빙 선수 출신의 부모로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물려받은 요이치는 부단한 노력과 철저한 자기 관리로 각종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MDC의 에이스다. 승부욕이 강하고 상대에게는 냉정하지만, 다이빙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후배들을 다독이며 선의의 경쟁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자신의 재능에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는 요이치는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사키 코치의 비밀 카드이자, MDC 삼인방의 마지막 멤버는 바로 시부키다. 재능은 가졌지만 시대의 불운으로 빛을 보지 못했던 전설의 다이빙 선수 오키쓰 시하라의 손자인 시부키는 도모키, 요이치와는 야생에서 다져진 시원스런 다이빙을 선보이며 새로운 경쟁구도를 형성한다. 어렸을 때부터 깍아지른 절벽에서 바다를 향해 다이빙을 하던 시부키에게 풀장의 콘크리트 다이빙대는 여전히 어색하고, 생각지 못했던 통증이 그의 발목을 잡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1.4초의 짜릿한 쾌감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간다.
『다이브』는 다이빙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요이치, 전설의 다이빙 선수의 손자 시부키, 다이아몬드 눈동자를 지닌 도모키가 이야기의 주축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자신만의 열정으로 묵묵히 나아가는 레이지나 다이빙이 아닌 농구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료, 물에 뛰어드는 건 무서워하지만 진심으로 선배들을 응원하는 서포터즈 사치야가 같은 MDC의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가 있다. 핑키 야마다처럼 깜짝 등장해 즐거움을 주는 인물도 있고.
또한 상대방의 장단점을 날카롭게 찾아낼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MDC의 구원 투수인 아사키 코치, 아버지가 없는 시부키에게 서투르지만 순박한 정을 보여주는 오시마 코치, 그리고 MDC의 수석 코치이자 요이치의 아버지로서 중립을 지키면서 조용히 아들을 응원하는 과묵한 후지타니 코치가 그들 뒤에 버티고 있다. 도모키의 여자친구였던 미우와 그런 미우를 가로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도모키의 동생 히로야, 시부키의 정신적 지주인 여자친구 교코 등이 그 주변을 촘촘하게 메꾼다.
『다이브』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라는 공통적인 목표를 두고 있지만, 그에 앞서 자신의 꿈을 위해 나아간다. 뛰어난 기량의 누군가를 꺽으려는 경쟁 의식이 아니라 한계를 박차고 오르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한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가는 요이치, 넓은 미래를 향해 재활에 들어가는 시부키, 자신의 틀을 깨나가려는 도모키 뿐만 아니라 뛰어난 재능은 없지만 열정을 품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레이지와 료, 사치야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핑키에서 그린으로 바뀐 야마다까지도.
'높이 10미터, 시속 60킬로미터, 공중에 떠 있는 시간 1.4초'로 표현되는 순간의 예술 다이빙!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의 빛은 수많은 땀방울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다이브』는 그 1.4초의 쾌감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뜨거운 청춘들의 이야기다. 대중에게는 다소 낯선 비인기 스포츠인 다이빙을 소재로 스포츠맨의 순수한 열정을 다룬 스포츠소설이자 목표를 향하는 동안 겪게 되는 좌절과 성공을 거치며 조금씩 성숙해가는 과정을 따듯한 시선으로 담아낸 성장소설이다. 모리 에토의 특유의 차분하면서도 섬세한 문체는 이책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다이브』는 두려움을 이기고 다이빙대를 뛰어올라 거침없이 공중을 가르며 물속으로 뛰어드는 소년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네 인생을 또다른 면면을 함께 보여준다. 재능과 노력으로 원하는 바를 성취한 이들은 물론이고, 주목받을 정도로 뛰어나지도 않고 재능도 없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고 있는 평범한 우리들 또한 격려 받을 자격이 있다고 어깨를 토닥여 준다. 그렇기에 이책은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는 세 명의 소년 뿐만 아니라 그들 주변의 인물들에게도 따듯한 시선을 멈추지 않는다.
모리 에토의 『다이브』를 읽는 동안 예전에 무척 재미있게 봤던 사토 다카코의 『한순간 바람이 되어라(노블마인,2007)』가 떠올랐다. 다이빙과 달리기라는 스포츠를 소재로 역경을 이기고 조금씩 성장해가는 싱그러운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소설이라는 점에도 두 소설은 비슷하다. 잔잔한 감동으로 기분좋게 책을 덮었던 것까지도. 하물며 손에 쏙 들어오는 자그마한 판본으로 굳이 여러 권으로 나누어 출간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까지 말이다. 참, 이책 『다이브』는 일본에서 영화로도 제작되었단다.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다 보니 만화책으로도 나온 모양이다. 소설의 느낌을 영화가 얼마나 잘 살려냈을지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