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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 정일(그림) | 샘터사 | 2009.05
예전에 샘터에서 출간된 여러 작가의 짧은 글들을 엮은 에세이집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를 통해 故 장영희 님의 글을 처음 만났다. ’괜찮아!’라는 아주 짧막한 글이었지만 그 내용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책을 읽은 후 조만간 그분의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내내 인연이 닿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이렇게 고인의 유작 에세이를 만났다. 처음 읽는 책이 그분의 마지막 책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이왕이면 같은 하늘 아래 머무실 때 만날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내 게으름이 못내 한스러워 차마 책을 펼치지 못하고 한참을 만지작거렸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고인의 성품처럼 참 따듯한 책이다. 책 자체로도 충분히 좋았지만 그분의 마지막 유작이라는 점에서 조금 더 애틋한 마음이 든다. 책 첫머리에 등장하는 프롤로그에서 장영희 교수님은 책의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동안 책을 낼 때마다 늘 자신만의 특별한 제목을 짓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다고, 전에도 이번에도 책제목을 짓기 전에 수많은 고민을 했으나 결국 그저 무난한 제목으로 정해져 아쉬움이 남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고인에겐 마음에 안 찰지 몰라도 나는 이책의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김종삼 시인의 시 『어부』의 한 구절을 인용해서 지은 제목이라는 『살아온 기적 살아간 기적』은 이 간단한 단어로 그녀의 삶을 함축적으로 나타내준다.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져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책의 제목은 비단 하늘나라로 떠나신 장영희 님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지 않나 싶다. 프롤로그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장영희 님 또한 자신의 삶이 기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도 전에 서문의 그 문장이 가슴에 콱~ 박혔다.

이책은 장영희 교수님이 그간 월간 「샘터」에 기고했던 글들을 책으로 모아 엮은 거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글에서 시간의 흐름이 묻어난다. 어떤 글에는 글에 실린 지난 일들에 대한 약간의 정정이나 고백, 추가적인 내용을 덧붙여 놓았다. 진단 결과 유방암이 아니라며 희망을 이야기했던 글 뒤에는 사실 그것이 거짓말이었고 그뒤에 조용히 이어갔던 암과의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이 적혀있었다. 또 금방 어디론가 달려갈 듯한 자세에 얼굴에는 웃음을 한가득 물고 있는 빨간 말 그림을 그녀에게 선물했던, 이제는 고인이 되신 화가 김점선 님에 대한 내용은 그 뒤에 추모의 말을 보태어 놓았다. 그녀의 어린 조카들은 책장이 넘어갈수록 어느새 훌쩍 컸고, 창가에서 그녀를 내려다보던 영희 나무는 이사를 하면서 그 위치가 바뀌었다. 시간과 함께 많은 것들이 변해가지만 일상에서 건져낸 그녀의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을 초월해 여전히 우리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처음 접했던 짧은 글에서도 느꼈지만 장영희 님의 글은 참 편안하다. 교수라는 자신의 직업에 얽매이지 않고 단점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솔직함이 매력적이었고, 겸손하면서도 친근하고 항상 밝음을 잃지 않는 명랑함이 읽는 이의 마음까지 환하게 비춰주는 듯했다. 에세이의 특성상 주로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들을 소재들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속에서 자연스레 감동과 여운을 끄집어내어 낯익지만 정겨운 삶의 깨달음을 맛보게 해준다. 한 편 한 편의 글들을 읽으면서 왜 그렇게도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은지! 아, 이런 분들도 나랑 이런 점이 비슷하네?라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코끝이 시큰해지다가도 금세 낄낄대게 하는 그녀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물 흐르듯 술술 읽히면서도 가슴 한 켠에 짠하게 오래 남는 그런 글이었다. 어렵지 않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고수의 글, 바로 내가 추구하는 그런 글이었다.

차분하게 그러나 할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는 그녀의 보석같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그동안 세상에 알려졌던 불굴의 의지로 인간 승리를 보여준 장애인 교수 장영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 장영희’를 만날 수 있었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자기고백적으로 자유롭게 풀어내는 수필의 매력이 담뿍 담겨있는 그런 따듯하고 맛난 책이었다. 더불어 책표지와 책의 중간중간 실려 있는 정일 님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삽화들 또한 이책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준다.
장영희 님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세월의 평범하지만 눈부신 기적들을 하나둘 풀어내며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날 기적들, 또는 만들어갈 기적들에 대해 충분히 감사하라는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전한다.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글들은 우리 곁에 남았다. 그리고 그 글들을 통해 그분은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故 장영희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故 장영희 교수님의 글을 처음으로 접했던 에세이 모음집『견디지 않아도 괜찮아』에 실렸던 글 '괜찮아'를
이책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다시 읽어도 가슴이 짠해지는 글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