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 자크 상뻬 지음, 김호영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햇살박이 씨가 가장 좋아한다고 떠들고 다니는 책인,
장 자끄 상뻬의 『얼굴 빨개지는 아이』가 얼마전에 개정판이 나왔답니다.
가장 좋아하는 책인 만큼 개정판은 어떤지 또 궁금하여 바로 장만했답니다. :)




왼쪽이 '별천지'에서 나온 개정판, 오른쪽이 '열린책들'에서 나온 기존판, 이젠 구판이 된 책이랍니다.
지금부터 두 책 - 개정판과 구판을 비교해 보려고 해요. ㅎㅎ


일단 개정판은 출판사가 '열린책들'에서 '별천지'로 바뀌었어요.
상뻬의 책들이 열린책들,에서만 나오는 걸 생각할 때 이게 웬일? 할 수 있지만,
알고보면 '별천지' 또한 '열린책들'의 임프런트랍니다.
즉, 어린이 책들을 전문으로 출간할 열린책들의 서브 브랜드인 셈입지요.

기존의 상뻬 책은 열린책들,과 미메시스,에서 출간되어 있답니다.
열린책들에서는 위의 사진과 같은 반양장본과 특대형의 양장본이 나온다면,
미메시스에서는 핸드북 크기만한 작은 책들이 나온답니다.
두 브랜드에서 나온 책들 중 몇 권은 겹치기도 해요.
열린책들에서 상뻬의 책들을 왜 이렇게 각각 다른 판본으로 출간하는지는 내내 의문이랍니다..;


여튼, 이번에는 '열린책들'에서 여전히 잘 나가고 있는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굳이 출판사 이름을 바꿔 '별천지'에서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했답니다.
현재 온라인 서점에서는 한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절판으로 주문불가랍니다.
이책에 이어 상뻬의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도 얼마전에 '별천지'에서 개정판으로 출간되었지요.
문제는 두 권 모두 상뻬 책들 중 가장 잘 팔리는 책이라는 거죠. ㅎㅎ





우선 책표지 일러스트가 달라졌답니다.
그래도 개정판인데, 구판과 똑같은 표지를 쓰긴 좀 그렇지요. ㅎㅎ

주인공의 이름인 Marcellin Caillou(마르슬랭 까이유)라는 원제와 얼굴이 빨개진 까이유 그림이 놓여있던 구판과 달리
신판은 원제는 지우고 구판의 아이의 크기를 키워 중간에 두고 주변에 까이유이 다른 모습들을 채워 넣었어요.
프랑스 원서의 표지와 다소 비슷한 느낌이랍니다.




개정판도 여전히 반양장본인데요.
구판이 코팅 재질이었던 반면 개정판은 코팅이 되어 있지 않아요.
손으로 잡았을 때 느낌은 좋지만 때가 쉽게 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요.




책의 크기는 똑같답니다. (주문한 책이 저렇게 굽실거리며 도착했네요. 쩝,)




출판사는 '열린책들'에서 '별천지'로 바뀌었지요.
까만 바탕을 안고 있다는 점은 비슷하네요~




책등 디자인도 기존의 원제는 빼고 우리말 제목만 적어두었답니다.
책표지나 책등의 제목 글자체도 좀 더 귀여워졌어요.

제 짐작에 원제를 뺀 거나 글자체를 바꾼 건
'별천지' 브랜드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의 뒷면이에요. 왼쪽이 개정판이랍니다.
그림과 바코드의 위치만 달라졌을 뿐, 허무하게도 똑같지요.




물론 가격은 달라졌습니다. ㅎㅎ
게다가 개정판이라 할인률도 제한을;; -0-;;





책을 펼쳐보았답니다. 

책날개의 상뻬 할아버지 사진도 달라졌고,
내용은 앞과 뒤는 같은데, 중간 단락의 책내용 소개를 '상뻬'에 대한 설명으로 바꾸었더군요.




이제부터 시작될 색감의 변화~!
책표지를 넘기면 이렇게! 색깔이 달라진답니다.
채도가 낮은 짙은 빨강이었던 속지 앞면이 정말 '빨간'색으로 바뀌었어요.




속지에 적힌 제목.




역시나 원제를 뺀 것과 출판사 이름 외엔 똑같답니다.





본문의 첫면이에요.
얼핏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까이유 얼굴의 빨간색의 농도 정도가 달라졌답니다.
요건 뒤에서 다른 그림으로 살펴보구요, 왼쪽을 잠시 보면..




개정판에는 이렇게 책의 제본 방식에 대한 설명이 덧붙어 있었어요.




접착식이라 책을 쫘악~ 펼쳤을 경우 책장이 뜯어질 수도 있었던 구판과 달리,
개정판은 찢지 않고는 책장이 떨어지지 않는 실로 꿰매는 사철 방식으로 제본되었답니다.
차이가 눈으로 보이죠?

아무래도 책의 대상을 '아이들'로 맞추다 보니 제본 방식도 달라진 것 같아요.
아이들은 아무래도 책을 쫘악~ 펼쳐서 보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ㅎㅎ




위에서 살짝 봤었는데요,
개정판과 구판의 확연한 차이는 바로 까이유의 '얼굴색'이 아닐까 싶어요.

구판이 '얼굴 빨개지는 아이'라는 제목과 달리 얼굴색이 좀 묽었(?)다면,
개정판은 확연히 '빨간색'으로 까이유의 얼굴을 물들여 놓았답니다.




이렇게, 까이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얼굴까지 '제대로 된' 빨간색을 찾아주었어요.
이외에도 황달 걸린 까이유의 노란 얼굴은 '더' 노랗게 나왔고,
그외 다른 색감들도 구판보다는 한결 선명하고 진한 원색으로 표현되었더군요.

이것 또한 알록달록 선명한 원색을 선호하는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춘 걸까요?




책의 마지막 장이랍니다.

책날개 앞의 상뻬 이름이 빨개진 것처럼 뒷장의 제목 또한 빨간색으로 입혔어요.
그외 다른 내용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출판사 이름이 바뀌었건만, 대표 전화번호는 여전히 그대로네요. 홈피 주소까지. ㅎㅎ







개정판이 나왔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라는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혹시 저처럼 개정판은 어떤지, 뭐가 달라졌는지 궁금하신 분들이 있으실 것 같아 글 올려보아요~

결론은,
출판사 이름, 책표지와 제목 글자체, 제본방식, 인쇄 색감의 차이만 빼고
다른 부분은 개정판이나 구판이나 속내용은 모두 똑같답니다!
아, 개정판인 만큼 가격과 할인율도 달라졌지요. ㅎㅎ

현재 '별천지' 브랜드에서는 상뻬 책들 중 가장 인지도와 판매율이 높은 
『얼굴 빨개지는 아이』와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가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답니다.
그러나 '별천지'가 어린이 브랜드인 만큼 상뻬의 다른 책들이 여기서 새로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지요.

책을 장만할 계획이셨던 분들이라면 지금 한 권 장만해 두시는 것도 좋을 듯해요. 
조금 더 비싸도 개정판을 원하신다면 그걸로 사셔도 물론, 무방하답니다. ㅎㅎ







마지막으로 살짝 알려드리자면,
『얼굴 빨개지는 아이』는 현재 한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절판으로 판매중지가 되었어요.
구판이 사라지기 전에 소장하고픈 분들은 거길 부리나케 달려가시면 되구요,
조금 비싸도 신판이 좋다!하시면 그냥 주문하면 된다지요. :)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는 현재 대부분의 서점에서 절찬리에(?) 판매중이던데,
이책 또한 개정판이 새로 나온 만큼 재고가 다 팔리면 자연스레 판매가 중지되겠죠.
이것 역시 기존판을 간직하고 싶으신 분은 얼른 고고씽하세용~ ㅎㅎ

참고로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는 상뻬 책들 중 가장 잘 나가는 『얼굴 빨개지는 아이』에 맞추기 위해 제목이 바뀌었어요.
원래는 『자전거포 아저씨 라울 따뷔랭』으로(원제는 라울 따뷔랭), 저는 이책을 갖고 있답니다.
그래서 지금 절판되기 전에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버전을 하나 챙겨둘까 고민만 하고 있답니다. :)

더불어 정확하진 않지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얇은 책들도 새로 나올 준비를 하는 것 같더라구요.
찾아본 결과 몇몇 책들이 몇몇 서점에서 서서히 품절이 되어가더라구요.
요것들도 챙겨둬야 하나 또 고민이 늘고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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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요리 따라하기 - 후다닥 누가해도 맛있는, 집밖에서 해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요리가 들어있어요!
박미란 지음 / 웅진웰북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 후다닥 누가해도 맛있는 아웃도어 요리 따라하기 | 박미란 | 웅진웰북 | 2009.10


야외로 나들이를 계획할 때 가장 큰 고민 중의 하나가 음식이 아닐까 싶다. 웬만한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집과 달리 제한된 상황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최소한의 도구와 재료로 음식을 해야하는 까닭에 바깥에서의 요리는 늘 만만치 않다. 준비하기도 쉽고 먹기에도 푸짐한 고기 구이가 야외에서 단연 인기 최고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 까닭에 대학 시절 MT를 가면 항상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바로 삼겹살과 김치찌개, 그리고 라면이었다. 보통 점심은 라면 등으로 간단하게 먹고, 저녁엔 삼겹살 파티에 술잔을 곁들여 깊은 밤을 보낸 후 해가 중천이 될 때까지 시체놀이 하다가 겨우 일어난 다음날 아침엔 아침 겸 점심으로 후다닥 끓인 김치찌개로 속을 달래는 게 거의 정해진 코스였다. 집이었다면 뻔한 메뉴이지만 야외에서 먹는 음식맛은 또 다른지라 매번 아이들과 경쟁적으로 수저를 놀리다 보면 순식간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곤 했다.

그러던 중 요리를 잘 하는 후배가 들어오면서 우리의 엠티 요리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별식으로 카레라이스도 과분했던 전과 달리 삼계탕, 잡채, 된장찌개, 닭매운탕 등 거한(?) 음식들이 매 끼니 때마다 쏙쏙 등장해 주시니 어찌 감격하지 않으랴! 각종 재료들과 다양한 양념통 꾸러미는 물론 집에서 된장까지 퍼온 그녀의 정성에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난다. 야외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거침없이 멋진 요리를 만들어내던 그 후배로 인해 그저 간편하면 최고라고 생각했던 아웃도어 요리 메뉴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삼겹살 구이는 이제 그만! 야외에서도 맛난 요리를 해먹자!,라고 외치는 박미란의 『후다닥 누가 해도 맛있는 아웃도어 요리 따라하기(웰북,2009)』는 제목 그대로 야외에서 할 수 있는 요리들을 소개하고 있는 요리책이다. '집밖에서 해먹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요리가 들어있어요!'라는 부제처럼 이책에는 바깥에서 할 수 있는 100가지를 훌쩍 넘기는 풍성한 요리들이 실려있다. 닭볶음탕처럼 비교적 무난하고 친숙한 메뉴부터 와인과 함께 먹을 퐁듀까지 생각지 못한 요리와 레시피들이 가득하다.

헉, 소리가 절로 나오는 저자의 아웃도어 요리 자랑질이 가득한 프롤로그와 아웃도어 요리를 할 때 알아두면 좋은 팁들, 책에 사용된 요리의 계량법과 양념과 도구 들의 소개가 끝나면 이책의 목차가 나온다. 머무르는 곳이 어디인가에 따라 할 수 있는 요리도 달라진다. 비교적 취사시설이 잘 갖춰진 오토캠핑이나 펜션, 콘도미니엄인지, 아니면 완전히 야외에 가까운 산행이나 계곡 및 바닷가인지, 또는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가뿐한 코스를 위한 도시락 메뉴인지에 따라 요리를 선택하고 준비해야 한다. 이책 또한 상황별로 적합한 요리들을 분류해 필요할 때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해두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것이 과연 밖에서 해먹는 요리인가?라는 의문이 절로 생긴다. (내 경우엔) 집에서도 자주 하지 않는 온갖 다양한 요리들이 책의 면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이런 요리를 해먹다니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저자는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고, 조금만 준비하면 누구나 야외에서 근사한 요리를 맛볼 수 있다고 말한다. 마음이 동해 레시피를 들여다 보면 의외로 요리법이 생각보다 그리 번잡하지 않다. 물론 어떤 요리든 레시피로 볼 때는 다 수워보인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다만 다른 요리와 달리 아웃도어 요리는 물이 부족한 야외에서 하는 음식인 만큼 떠나기 전날 재료를 미리 잘 손질해서 꼼꼼하게 준비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책에 실려있는 음식 사진들은 모두 실제 야외에서 저자가 직접 찍은 것들이라고 한다. 보통의 요리책들처럼 스튜디오에서 찍은 반짝반짝한 사진들은 아니지만 야외에서 직접 요리하고 찍은 현장의 생생함이 사진 속에 그대로 살아있다. 아웃도어 요리를 소개하는 책인만큼 야외에서 직접 찍은 음식 사진들이 떠남의 설렘을 더욱 크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혼자서 짐 싸고 떠나서 요리하고 사진까지 찍느라 저자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는 하나 이렇게 근사한 요리책 한 권을 완성했으니 그보다 더 뿌듯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디론가 여행을 갈 때 우리가 떠올리는 메뉴는 아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후다닥 누가 해도 맛있는 아웃도어 요리 따라하기』을 보면 밖에서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요리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평소 요리와 산행을 즐긴다는 저자는 다년간 집밖에서도 거의 모든 요리를 할 수 있다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책을 펴냈다고 한다. 그녀의 노력 덕분에 이제는 바깥으로 떠나는 많은 이들이 야외에서도 맛있고 다양한 요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요리와 안 친한 나는 맛난 요리를 척척 해내는 그녀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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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 88만원 세대에게 전하는 한기호의 자기 생존 솔루션
한기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 │ 한기호 │ 다산초당 │ 2009.10월 


처음엔 제목만 보고 자기계발서인줄 알았다. 아니면 글쓰기의 컨셉을 잘 잡는 법을 알려주는 글쓰기 관련책이거나.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책읽기를 통해 자신의 경쟁력을 키워나갈 것을 강조하는 책이었다. 말하자면 인문학적 글쓰기 자기계발서라고나 할까. 그러나 책 속에서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다양하고도 폭넓고 풍성한 책이야기들은 접하다 보면 마치 인문학 산책을 나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책의 저자 한기호는 출판평론가다. 출판사에서 15년을 일했고 그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를 설립해 운영중이다. 출판전문 격주간지 '기획회의'를 발행하고 동시에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오랜기간 출판 관련 일들을 해온 저자는 소위 출판과 출판 마케팅의 '타짜'라고. 오랜 기간 출판계에서 잔뼈가 굵은 타짜답게 이책에서는 그는 책과 출판계의 흐름을 통한 날카로운 세상 읽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책표지를 넘기면 가장 먼저 『88만원의 세대』 저자로 유명한 우석훈의 추천글을 만나게 된다. 사실 조금은 의아했다. 책으로 바라보는 세상이야기, 20대에게 책을 통한 자신만의 컨셉을 가질 것을 강조하는 이책에 뜬금없이 왜 '88만원 세대'의 거론과 우석훈의 추천사가 등장하는 걸까. 그런데 본격적인 책읽기에 들어가면 그 궁금증은 바로 풀린다. 한기호가 이책에서 '컨셉'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기에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보다 더 명확한 건 없기 때문이다. 


책은 크게 3개의 꼭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컨셉력으로 세상을 읽고 분석하라'에서는 20대를 88만원으로 내몰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분석하고 있다. 졸업만 하면 정규직으로 취직해 평생 직장을 보장받던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신 자유주의의 무한경쟁 체제로 숨가쁘게 넘어가면서 이젠 아무리 화려하고 높은 스펙을 갖추고 있다고 할지라도 비정규직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저자는 20대를 이런 절망적인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으로 '컨셉력'을 제시한다.

2부 '컨셉력으로 생존의 솔루션을 찾아라'는 1부에서 언급한 신 자유주의가 장악한 시대의 생존 솔루션으로서의 컨셉력에 대해 말한다. 학문의 금자탑을 쌓는 곳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대학과 최고의 직업으로 각광받던 일부 직종들의 붕괴 등을 예로 들며 새로운 시대에는 기존의 고정관념이나 선입견과는 다른 자신만의 시선과 해법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이들이 제시하는 이미 정해진 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자기만의 컨셉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 저자가 이렇게 강조하는 '컨셉력'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3부 '지독하게 컨셉력을 갈고 닦아라'에서 저자는 컨셉력을 간단히 말해 '편집을 잘 하는 힘'이라고 정의한다. 아마나시 히로카즈의 글을 인용해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일정한 방향하에서 정보와 다양한 소재를 모으고 정보와 정보, 물건과 물건의 관계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짜 맞춤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작업'으로, '다양한 소재를 조합해서 각각의 소재의 가치를 끌어내면서 그 조합을 통해 더욱 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140쪽)'이라고 설명한다.

1,2부에서는 전반적인 사회의 상황과 흐름을 언급하며 왜 자신만의 컨셉력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거론했다면, 3부에서는 출판업계에서 일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그 글들을 모아 책을 내며 또다른 삶의 길을 개척해낸 저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그런 컨셉력을 기르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들을 들려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책읽기와 글쓰기로 귀결된다. 책읽기도 글쓰기도 많이 할 수록 좋다.

저자는 1,2부에서 말한 불안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신만의 컨셉력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 많은 책을 접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책들을 통해 얻은 지식들을 편집하고 재창조함으로써 자신의 컨셉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책에서는 이제 곧 사회와 맞닥뜨려야 하는 20대를 겨냥해 대학시절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읽기를 권한다. 철학, 역사, 심리학, 인류학 등의 인문학 서적 100권과 다양한 인간 군상을 엿볼 수 있는 고전문학작품 100권, 이렇게 200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면 인간을 이해하는 기반지식을 갖춤은 물론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갈 길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글쓰기를 하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책을 읽고 블로그에 서평을 올려라, 글을 쓸 때 책을 펴낸다는 각오로 써라, 모든 책의 컨셉을 한문장으로 요약하는 습관을 가져라,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키워라, 보편적인 감성을 울리는 컨셉을 찾아야 한다, 하나의 문제에 대해 다각도의 접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등을 노하우를 제시한다. 꾸준히 책을 읽고 글을 쓰다보면 어느새 자신감이 생기고 자유로운 생각과 상상이 가능해진다는 저자의 말은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이책에서 저자는 출판계와 책읽기, 글쓰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저자처럼 책을 내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이책에서 알려주는 것들은 불확실한 이 시대에 자신만의 길을, 방향을, 삶의 컨셉을 찾을 수 있는 방법들이기에 충분히 흥미로웠다. 더불어 이책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제목만 들어본 다양한 책들의 존재와 내용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즐거웠다. 평소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책들마저 이책을 읽고나니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본문에 앞서 프롤로그에 저자가 미리 양해를 구했듯이, 이책에는 우리나라보다 일본 출판계나 서점의 사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일본의 책이나 저자, 출판 사례 등이 자주 거론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보다, 출판계와 서점의 흐름을 통해 출판계의 미래는 물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에 지배된 대형 서점의 판매대와 인터넷 서점의 과도한 경쟁 흐름 등 때문에 쉽지 않다는 저자의 말에서 묻어나는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왔다. 

프롤로그가 끝난 책의 말미에는 찾아보기,를 마련해 두어 책속의 내용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해두었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어느새 우리에게 친숙해진 검색형 독서를 책에서도 쉽게 실천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고나 할까. 덕분에 미처 표시해 두지 못했던 책 속에 인용된 책의 제목이나 작가 등을 쉽게 찾을 수 있어 좋았다. 다만 초판이라 그런지 단순 오타가 종종 눈에 띄었다. 책상에 앉아서 읽은 게 아니라 일일이 찾아서 표시를 해두진 못했지만 다음 쇄에서는 모두 수정되기를 바라본다.


저자는 이책 『20대, 컨셉력에 목숨 걸어라』을 통해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드는 20대에게 말한다. 세상의 기준에 휩쓸려 토익 점수나 각종 스펙을 채우기에 급급하지 말고 자신만의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는 컨셉력에 목숨 걸라고,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컨셉력을 키우기 위해 가능한 많은 책을 읽고 그것들을 요약하고 변형시켜 확실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슬픈 초상인 88만원 비정규직 세대에 편승하지 않고, 조금 느리더라도 자신만의 컨셉이 있는 삶의 방향을 찾기를 권유한다. 그 모든 것은 책과 그것이 주는 상상력에 있다는 말과 함께.


- 자, 내 생각은 이렇다. 누구나 가는 길을 추구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10차선 도로를 달리면 가장 빨리 목적에 도착할 수는 있겠지만, 모두가 그 길을 달린다면 곧 도로는 막힐 수도 있을 것이고, 남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아는 오솔길을 걷는다면 그것은 경쟁 없이도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마케팅에서도 세분 시장에서의 절대적 우위를 점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서 나만이 당당하게 걸으면서 나만의 장점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길은 진정으로 자신이 걷고 싶은 기리면서 자신만이 가장 잘 아는 길어어야 한다. (15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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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6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집 근처 정류장 앞 제과점은 24시간 불을 밝히고 영업을 한다. 드나드는 손님에 비해 많은 양의 빵을 만드는가 싶더니 대량의 박스가 포장되어 택배차에 실려나간다. 낮 동안 가게를 지키는 어린 소녀와 빵을 고르며 재료를 묻는 손님에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갓난아이의 간을 말려 빻은 가루, 까마귀의 눈알 시럽, 라푼젤의 머리 비듬 등 황당무계한 소리를 늘어놓는 (소년의 판단에 따르면) '또라이 기질이 있는' 제빵사이자 주인이 구성원의 전부다. 바로 마법사의 빵집, 위저드 베이커리(wizard barkey)다.

엄마가 자살하고 아빠가 재혼을 하면서 소년은 새 엄마와 그녀의 어린 딸과 함께 살게 된다. 처음에는 제법 단란해 보이던 가정은 무심한 남편과 전처에 대한 새 엄마의 불만이 커지면서 점차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새 엄마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소년은 점점 더 말이 없어지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안전 지대를 찾아 숨어든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관계인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은 소년이 기댈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급기야 이복 동생의 성추행범이라는 누명을 쓴 채 집에서 도망친다.

자신을 지키려는 보호본능에 무작정 집을 나선 소년에게 유일하게 떠오른 안식처는 바로 '또라이' 제빵사가 있는 위저드 베이커리였다. 무턱대고 숨겨달라는 소년을 제빵사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제빵실의 오븐 안으로 인도하고, 그곳의 문을 연 순간 소년은 그곳에 숨겨져 있던 또다른 마법의 세계를 만난다. 그렇게 마법사 제빵사와 낮 동안 사람이 되는 파랑새 소녀, 그리고 가족을 피해 숨어든 소년의 동거가 시작되고, 평범하게만 보이던 '위저드 베이커리'의 숨겨진 비밀들이 하나둘 드러난다.


- 틀린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야. 선택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지라는 뜻이지. 그 선택의 결과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너의 선택은 더욱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란 말을 하는 거야.


미운 상대를 골탕 먹일 수 있는 '악마의 시나몬 쿠키', 100% 화해하게 해주는 '메이킹 피스 건포도 스콘', 학교나 회사에 땡땡이치고 싶은 날 도플 갱어를 불러주는 '도플갱어 피낭시에', 짝사랑 상대를 내것으로 만들어주는 '체인 월넛 프레첼' 등 이름만 들어도 구미가 당기는 이런 마법의 빵과 쿠키들은 마법사 제빵사가 운영하는 '위저드 베이커리 닷컴'에서 거래되는 품목들이다. 아, 상대에게 저주를 퍼붓는 '부두 인형'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타임 리와인드' 같은 강력한 제품도 홈페이지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

과연 이런 걸 믿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마법의 힘을 빌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사람들의 주문은 끊이질 않는다. 위저드 베이커리 닷컴의 모든 품목에는 마법의 힘을 사용시 그 힘이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지만, 마법의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결과와 그에 따른 책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 결과 마법의 쿠키는 귀여운 장난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종종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 감당하기 힘든 사건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접하며 소년은 인간의 숨겨진 욕망의 씁쓸함과 마주하게 된다. 


- 지금껏 잘 견뎌왔다. 앞으로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타임 리와인더를 쓰지 못하게 한 불의의 사고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걸 안다. 누군가 씹다 뱉어버린 껌 같은 삶이라도 나는 그걸 견디어 그 속에 얼마 남지 않은 단물까지 집요하게 뽑을 것이다.


마법을 쓴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고객의 딴지로 위저드 베이커리는 위험에 처하게 되면서 소년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진다. 그리고 소년은 다시 집으로 향한다. 한 손에는 새 엄마가 자신을 저주하기 위해 주문한 '부두인형'을, 다른 한 손에는 마법사가 던져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타임 리와인드'를 들고서. 그러나 집으로 들어간 소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고, 모든 사건의 전말이 명확하게 밝혀지지만 또다시 새로운 위험에 봉착한다. 타임 리와인드를 쥔 채 선택의 기로에 놓인 소년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소설은 원하는 때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타임 리와인드'를 든 소년의 선택이 낳을 수 있는, 한때 인기를 끌었던 티비 프로그램인 「인생극장」의 주인공처럼, 두 가지 버전의 결말을 함께 보여준다. 시간을 다시 과거로 되돌렸다고 하더라도 예전과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도 있고, 현실의 난관을 견디고 이겨냄으로써 새로운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에 어떤 선택이 옳았다고 함부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하든 그에 따른 책임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 지금 주어진 삶은 이제껏 자신이 해온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판매되던 모든 마법의 빵에 새겨져 있던 경고이기도 하다.


- 추억이라니. 환상이라니. 그 모든 것은 내게 있어서는 줄곧 현재였으며 현실이었다. 마법이라는 것 또한 언제나 선택의 문제였을 뿐 꿈속의 망중한이 아니었다. (중략) 지금은 나의 과거와, 현재와, 어쩌면 올 수도 있는 미래를 향해 달린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마법의 빵집 '위저드 베이커리'를 중심으로 신비한 힘을 가진 마법의 빵을 만드는 마법사와 가장 친밀한 대상인 가족에게서 상처입고 방황하는 소년, 그리고 마법의 빵을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통해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이는 중산층 가정의 어두운 속내와 현대인들의 뒤틀린 욕망에 대해 폭로한다. 판타지와 미스터리, 호러의 요소가 적절히 뒤섞인 흡입력있는 이야기는 탄탄한 구성과 맞물려 한순간 독자들을 섬뜩하게 만든다.




구병모의 장편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는, 작년에 평단과 독자 양측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성장소설로 우뚝 섰던 김려령의 <완득이>에 이어 '제 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의 행운을 거머쥔 수상작이다. 방황하는 십대의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는 전회 수상작인 <완득이>를, 판타지를 기본 바탕으로 뒀다는 점에서는 팀 보울러의 <리버보이>를 떠올리게 하지만, <위저드 베이커리>는 <완득이>보다는 무겁고 <리버보이>보다는 어둡다. 그러나 이 불편한 판타지는 우리 삶의 숨겨진 이면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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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충무공 이순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거북선, 임진왜란, 한산도 대첩, 노량 해전 등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명량 해전 출전을 앞두고 쓴 “必死卽生, 必生卽死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라는 글귀와 노랑 해전에서 전사시 남긴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유언, 그리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자리잡고 있는 위풍당당한 동상도 떠오른다. 세종 대왕과 더불어 온국민의 열렬한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는 성웅의 이미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난세의 영웅 이순신' 말고 '자연인 이순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분 또한 영웅이기 이전에 부모를 둔 아들이었고, 아내의 남편이고, 아이들이 있는 아버지였고, 강함 속에 나약함을 지닌 한 명의 남자였을 것이다. 사소한 일상을 맞을 때, 턱없이 부족한 군선과 무기와 군량으로 적을 향한 전쟁을 준비할 때, 자신을 믿지 못해 의심의 칼날을 번뜩이는 임금을 바라볼 때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절망했을까, 아님 그럼에도 한 줄기 희망을 품었을까. 몽글몽글 일어나는 호기심은 끝없이 이어진다.


여기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오직 임금과 백성만을 생각해 온몸을 던졌던 성웅으로서 이순신의 행적이 아닌, 적의 칼과 임금의 칼을 함께 받으며 전쟁의 현실 속에서 한없이 고뇌하고 또한 절망했던 인간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김훈의 <칼의 노래>다.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렸던 전직 대통령이 읽던 책으로 화제가 되었고,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티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원작 소설로 유명세를 얻으며 '소설가 김훈'의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칼의 노래>는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작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한창 이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책장 한 귀퉁이에서 곱게 잠재웠던 책을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곱게 꺼내들었다. <개>, <남한산성>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나는 김훈의 책이다. 꽤나 오랫만에 다시 만났지만 그의 문장은 여전히 강하고 단순하고 담담하고 치밀하다. 절제된 문체는 단단하다. 미사 여구를 걷어내고 바로 핵심을 내지르는 공력에 감탄할 수 밖에. 그러나 이책 역시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책장이 쉬이 넘어가질 않는다. 문장들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따끔따끔하다.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곱씹고 되새기며 행간 사이를 배회하며 그렇게 천천히 읽었내렸다.


이야기는 정유년에 관직을 삭탈당하고 의정부로 압송되어 죽을 위기에 처했던 이순신이 다시 풀려나 백의종군하는 시점에서 시작된다. 이순신의 뒤를 이어 삼도수군통제사에 오른 원균이 칠전량 해전에서 적에게 크게 패한 후 전사하자 서해안 항로가 뚫릴 것을 염려한 조정은 어쩔 수 없이 이순신을 복직시킨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에게는 칠전량 패전에서 간신히 남은 12척의 군선과 120명의 군사만이 주어졌다. 그는 그것으로 전열을 재정비해 다음 전투를 준비했고, 명량 해협에서 12척의 전선으로 수백 척의 적을 맞아 크게 승전했다. 명량 대첩이었다.

조선의 구원 요청으로 출정했으나 강화도에 들어앉은 명나라 부대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려는 속셈으로 전면전보다 일본과의 강화 협정을 기대하며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무력한 조선 조정은 그저 조바심만 낸다. 크고 작은 전쟁이 이어지던 쯤 양란(兩亂)을 이끌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이 알려지고, 혼란에 빠진 왜군은 일본으로의 철수를 시작한다. 명나라 장수 진란에게 뇌물을 보내 퇴로를 도모하지만 이순신의 반대로 결렬된다. 퇴각하는 적이 노량을 통과할 것을 예측한 이순신은 명군과 함께 퇴로를 차단해 적들을 섬멸하지만 도망가는 왜의 군선을 추격하던 중 관음포에서 적의 총탄에 전사한다. 


왜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의 뼈대에 작가는 상상력이라는 살을 붙여 이야기의 형체를 완성해간다. <칼의 노래>는 전투의 규모나 과정, 승패같은 표피적인 면보다 그것을 대면하는 이순신의 내재적인 면에 집중한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책 속의 '나'는 곧 '이순신 자신'이 된다. '나'의 시선을 통해 인간 이순신의 내면을 짚어낸다. 내면을 부유하는 번민과 갈등과 울분같은 흔들림을 드러내고, 전쟁의 길고 지난한 시간과 나약하고 의심많은 임금을 함께 견뎌야했던 절망을, 그리하여 바다 건너 적의 칼과 조정에서 겨누는 임금의 칼에 동시에 맞서야 했던 이순신의 처절한 고독을 끄집어낸다. 

그런 까닭에 이순신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거북선의 대활약이나 왜적들과의 스릴 넘치는 전투, 통쾌하고 짜릿한 승리의 기쁨 등을 기대하며 이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적잖이 실망할 수 밖에 없다. 민족의 자긍심이 된 거북선은 그저 스쳐지나듯 몇 번 거론될 뿐이고, 적과 맞서는 전투는 자극적인 묘사보다는 그저 춤추듯 쉬지 않은 칼의 흔들림과 아득한 피비린내만이 진동으로 채워진다. 쓰레기 더미처럼 여기저기 쌓인 시체와 사람 머리통을 생선 대가리 자르듯 툭툭 베어내는 전쟁의 참혹함이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힘든 하루하루가 있을 뿐이다.


<칼의 노래>는 또한 사건 전개에 있어 그리 친절하지 않은 소설이다. 이야기는 총체적으로 이순신의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 해전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곳에 이르기까지 한산도 대첩을 비롯해 임진년에 바다에서 벌였던 많은 전투, 왜의 칼에 베여 죽은 아들 면과 죽은 여진, 첫 발령지였던 함경도에서의 여진족 토벌, 누명을 쓴 채 고문을 당하며 죽음을 기다리던 감옥에서의 처참한 기억 등 과거와 현재의 무수한 기억들이 등장하고 이어지고 뒤섞여 하나로 녹아든다. 그래서 이순신의 행적에 무지한 채로 책을 집어들었다간 수시로 넘나드는 임진년과 정유년의 전투들을 구별하지 못해 현재와 과거 회상를 헛갈릴 수도 있고, 등장인물들 간의 갈등과 정치적 관계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이순신의 행적을 이미 꿰고 있는 독자가 아니라면, 책을 시작하기에 앞서 임진왜란시 충무공이 지휘했던 전투와 주변의 인물 관계도를 개략적으로나마 접하기를 권한다. 이책의 뒷면에 실려있는 충무공 연보를 읽어도 좋고 인터넷 위키백과의 내용을 참조해도 좋다. 충무공이 지휘했던 전투의 지명과 순서, 몇몇 인물 관계 정도만 알아도 이야기 전체의 흐름을 잡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미 읽었던 부분을 다시 뒤적여 되짚어 읽기를 반복하면서 전체의 흐름을 완성해가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난중일기』, 『이충무공전서』, 『선조실록』 등 여러 사료들의 내용을 바탕으로 짠 얼개 위에 작가는 자신의 상상력을 얹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이순신을 만들어낸다. 거칠 것 없는 영웅 이미지의 이순신이 아니라, 역사의 틈바구니에 끼인 자신의 운명에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의 면모를 보여준다. 전투를 앞두고 밤마다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나거나 적과 임금 사이에 설 자리를 잃고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절망감에 혼자 울음을 삼키는 이순신의 모습은 조금 낯설었지만 많이 애잔했다. 영웅이기에 앞서 그도 우리와 같은 불완전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미사여구를 배제한 김훈의 절제된 문장은 그 모든 과정을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얼마전 <칼의 노래>가 100만부를 돌파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우리 시대의 신고전'이라는 출판사 카피에는 온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이순신의 또다른 면을 보는 눈을 틔워주었다는 점에서 이책은 제 나름의 의미를 품고 있지않나 싶다. 김훈의 <칼의 노래>는 이제껏 우리가 고집해왔던 '영웅 이순신'에서 벗어나 '인간 이순신'을 만나는 즐거움을 선사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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