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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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곳 도서관에서 시민이 함께 볼 책으로 <잃어버린 여행가방>을 선정하고 저자인 박완서님 초청해 강연회를 개최했었다. 유명하신 분을 직접 뵙는다는 설렘으로 그 강연회에 갔었는데, 수수한 차림에 일흔이 넘은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셨던 그분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특히 수수한 차림새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 모습에 노년의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 강연회에서 들려주셨던 박완서님의 이야기중 자신의 집 마당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 않았는데 그 내용의 대부분을 이 책 <호미>에서 다시 만날 수 있어 나 혼자 괜시리 반가웠했다. ^ ^

<호미>라는 토속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제목만큼이나 표지 또한 단아하다. 박완서님이 자연속에 머무는 자택에서 자연과 함께 하며 쓴 글들을 모아서 엮은 이 산문집은 각각 글들의 첫머리와 끝머리에 녹색의 잎을 달고 있다. 하얀 백지위에 그 녹색 잎 하나로 싱그러움을 느끼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자연의 냄새가 넘실대는 느낌을 받는다.

- 작년에 그 씨들을 받을 때는 씨가 생명의 종말이더니 금년에 그것들을 뿌릴 때가 되니 종말이 시작이 되었다. 그 작고 가벼운 것들 속에 시작과 종말이 함께 있다는 그 완전성과 영원성이 가슴 짠하게 경이롭다. 좁은 마당에 다 뿌리기엔 너무 많은 씨지만 나중에 솎아줄 요량으로 다 뿌릴 작정이다. 씨를 맺은 이상 푸르고 예쁜 싹으로 돋아나 단 며칠이라도 햇빛을 누리게 하고 싶다. (47쪽, 『시작과 종말』)

번잡한 서울에서 조용한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박완서님은 매일 아침 마당에서 흙을 만지며 두어 시간을 보낸다고 하신다. 서로 시간을 정해놓은 듯 일정한 순서로 피어나는 꽃들을 가꾸며 그것들과 함께 대화하고 숨쉬면서 느릿느릿 편안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처음 자신의 마당에 꽃들을 가꾸는 데서 시작한 이야기는 자연과의 대화에서 차츰 범위를 넓혀 사람과 그 관계로 와 닿는다. 책 속에 펼쳐지는 작가의 주변 사람들과 가족의 이야기,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풍경들 속에서 반짝이는 삶의 지혜를 건져올리는 노작가의 안목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 피정이 끝나는 마지막 날 점심시간 마침내 침묵의 계율이 풀렸다. 그 동안 아무도 침묵을 갑갑해하거나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그리워하지 않았건만 혀가 풀리자 마치 폭죽이 터진 것 같았다. 웃고 떠들고 노래 부르고 포옹했다. 그건 말이 아니라 침묵이 터뜨린 폭죽이었다. 침묵이 피워낸 백화난만한 꽃밭. 침묵은 결코 우리를 가두지 않았건만 우리는 해방감을 느꼈다. 만약 갇혀 있었다면 결코 그런 해방감을 못 느꼈을 것이다. 침묵이란 지친 말, 헛된 말이 뉘우치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게 아닐까. (94쪽, 『그리운 침묵』)


작가의 말처럼 일흔이란 나이는 거저 먹는 게 아닌가 보다. 이런 느긋함과 여유로움, 관조의 자세는 그만큼의 세월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비슷하게 돌아가는 일상속에서 매사에 조급하게 발을 동동 구르거나 작은 일에도 화를 벌컥내는 여유없는 나의 마음이 참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사소한 작은 것들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는 노작가 박완서님의 글을 읽으며 그럴 수 있는 그분의 마음이 더더욱 부럽다. 어쩜 삶에서 행복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항상 불행은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에서 시작되었으니까.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박완서님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산문집, <호미>
그 속의 여유로움을 함께 누려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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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벌루션 No.3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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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네시로 가즈키를 알게된 것은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통해서였다. 꽤나 진지한 화두를 던지지만 정작 그것을 접근하는 태도는 날아갈 듯 가볍고 쿨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의 글들은 그것을 접하는 독자들에게도 무겁고 진지하기보단 기분좋은 경쾌함을 선사한다. 우리나라에서 이준기를 내세워 제작되었던 영화 <플라이 대디>의 원작인 <플라이, 대디, 플라이>의 한 축을 이뤘던 재일교포 '순신'과 그의 친구들 '더 좀비스'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레벌루션 no.3>는, 세상의 기준에서 덜 떨어진 삼류 고등학생들의 귀여운(?) 모험담이다.

 일류 고등학교들이 즐비한 신주쿠 구에 외로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류 고등학교와 그곳을 다니는 학생들. 그들은 주위의 잘난 일류들에게서 '시체에 가까운 지능'이라는 뜻과 '죽여도 죽지 않을 것 같다'라는 비아냥이 담긴 별명, '좀비'로 불린다. 그러나 대책없는 긍정적 마인드의 소유자인 그들은 세상을 바꿔보라는 닥터 모로의 선동(?)에 힘입어 '더 좀비스'라는 그룹을 결성하게 되고, 세상을 향해 자신들만의 반란을 준비한다. <레벌루션 no.3>는, '더 좀비스'를 결성과 명문여고 세이와 여고 습격사건을 다룬 '레벌루션 no.3' /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 친구 '히로시'의 만나러 가는 과정에 생긴 에피소드를 담은 '런, 보이스, 런' / 미모의 여대생을 괴롭히는 스토커를 잡기위해 모험에 뛰어드는 이야기 '이교도의 춤' / 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역시나 이야기의 중심에는 항상 천하무적(?) 더 좀비스가 버티고 있다. ^ ^

 일류들만이 대접받고, 그런 일류들이 지배하는 세상. 더 좀비스 같은 삼류들은 좀처럼 사회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힘들다. 그런게 세상이다. 그렇다고 사회의 언저리에 머무르는 그들은 사회를 증오하거나 저주하지 않는다. 그런 세상을 인정하면서 한켠으로 세상을 향한 자신들만의 자그마한 혁명을 꿈꾸고, 그렇게 그들의 소박한 모험은 시작된다. 세상을 바꿔보라는 닥터 모로의 말처럼 더 좀비스의 멤버들은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들은 다만 아직 어린 십대일 뿐이고, 세상을 뒤바꿀 힘도 지혜도 부족하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패배한 것은 아니다. 세상은 여전히 그들을 기죽이거나 길들일 수 없다.  그들은 오만한 세상에 기죽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 속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꿈꾸기를 접지 않는다. 그래서 죽여도 죽지 않는 좀비같은 그들이 더욱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사회적 약자와 강자의 차이를 보여주며 약자의 입장에서 날리는 펀치를 시원스레 보여주었던 <플라이, 대디, 플라이>와 같이 이 책 또한 가벼움의 미학만을 추구하는 책은 아니다.  순신이 주인공으로 나와 수많은 명언들이 흩뿌리던 <플라이, 대디, 플라이>와 달리 <레벌루션 넘버 3>에서는 그런 교훈적인 말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대신 책 가득 쏟아지는 아이들의 심드렁함과 경쾌한 움직임과 심심함과 유쾌한 웃음속에서 언뜻언뜻 보여지는 현재 일본사회가 품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난다. 일본사회의 이방인인 재일교포로서 저자 자신이 직접 겪어왔던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는 흑인 혼혈인 히로시나 재일교포인 순신을 통해 드러난다. - '차별'이란 개념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면, 그 순간에 죽어도 후회는 없다 - 라는 순신의 말을 그냥 흘려버릴 수 없는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읽다가 순신과 함께 등장하는 '더 좀비스'의 유쾌함에 반해 찾아보게 된 그의 대표작, <레벌루션 넘버 3>. 이 책에서도 일류주의 세상에 기죽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삼류 루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본래 말하고자 하는 바를 흐리지 않으면서도 가볍고 경쾌하게 풀어나가는 가네시로의 톡톡튀는 감각이 돋보인다.  곧 읽게될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더 좀비스'는 계속해서 적은 분량이라도 출연한다고 하니 벌써부터 그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 ^;

 세상이 따분한가. 그럼 세상을 향한 자그마한 그들의 혁명에 빠져보시라. 더 좀비스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 ^



- 너는 고된 인생을 살지도 모르겠다. 상처받아 좌절하는 일도 있겠지.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춤추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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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명진출판사) 1
신웅진 지음 / 명진출판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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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에 큰 사건(?)이 있었다. 온국민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던 북핵만큼 놀라웠던 일이 뭐가 더 있냐고? 있었다. 그것도 꽤나 놀랍고도 기쁜 경사였으니, UN 회원국 중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UN사무총장을 배출해 냈다는 것이다. 반기문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솔직히 나는 'UN 사무총장'의 지위와 영향력에 대해 세세한 부분까진 잘 모른다. 그렇지만 세계를 대표하는 국제기구 UN을 총지위하는 자리라는 점 만으로도 그 대단함을 느끼며 이 일이 얼마나 축하할 일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당당히 선출된 반기문 전 장관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충청도 산골에서 자랐던 소년 반기문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저 공부가 좋아서, 배움의 기쁨에 취해 공부에 빠져들었다.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영어를 배웠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언어 영어는 그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렇게 소년 반기문은 영어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어머니가 다니시던 공장의 미국 기술자들을 찾아다니며 영어를 배울만큼 적극적으로 영어에 파고 들었고, 고등학교 시절 그런 그를 눈여겨 본 선생님의 추천으로 비스타(VISTA: visit of international Student of America) 시험에 응시하여 미국 방문의 기회를 얻었다. 그것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자 외교관으로서의 길을 굳히게 된 사건이었다.

그저 좋아서 공부했던 영어는 그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열어주었고 그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 주어질지 모르는 기회를 위해 항상 준비된 자세로 임했다. 그의 청소년기는 공부벌레라는 말이 딱 맞을 거다. 있는 머리에 약간의 노력을 더 보태면 된다고 말했다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뛰어난 머리를 활용할 줄 알았고 노력으로 그 능력을 키워나가는데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준비된 자들은 기회가 언제 어디서 오든지 잡을 수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 후 그는 자신이 꿈꾸던 외교관이 되었고 피나는 노력으로 일을 하면서도 한결같은 겸손함으로 주위사람들을 배려를 잊지 않은 채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두 가지는 '노력''배려'였다.

상황을 미루어보아 그는 원래 공부머리를 타고난 듯 하지만 지금의 그를 만들어낸 것은 9할이 그의 '노력'일 것이다. 누군가와 경쟁하여 이기려고 하는 공부가 아니라 지적 충족에 기인한 공부를 하였기에 공부를 즐겼던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도 그 배움에 대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독일에선 독일어를 배워 독어로 연설을 하고, 오스트리아에선 수많은 사교모임을 위해 몸치임에도 불구하고 춤을 배우고, 보다 많은 정보를 위해 영어 다음으로 외교무대에 많이 쓰이는 프랑스어를 배우는 등 그의 배움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끝이 없다. 유엔 사무총장 선거를 앞두고 그 바쁜 시간을 쪼개어 30여년 만에 다시 프랑스어를 배우는 그를 모습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엔 이미 너무 늦은게 아닐까 자포자기 하려는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

또한 그의 멘토 '노신영' 전 외교부장관이자 국무총리를 통해 배운 그의 '배려'에는 사람들을 감동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있다. 사람이 지위가 높아질수록 오만해지고 거드림을 피우기가 쉽지만, 반기문은 아무리 바빠도 자신에게 온 편지에 자필 서명이 담긴 답장을 하고, 상대가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부하일지라도 그 사람의 입장을 배려하고 존중하려 한다. 그러한 그의 마음 씀씀이는 지금의 그를 만든 또다른 원동력이 되었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진심은 결국 상대에게도 통하는 법이니, 그가 진심으로 대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의 유엔 사무총장으로 선출에 밑거름으로 돌아왔다.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작년 베스트셀로로 떠오른 한상복의 <배려>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 책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열정과 노력과 인품을 어울어진 그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가슴에 꿈을 품고 그 꿈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 반기문. 그의 모습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다시 희망의 불꽃을 불 태우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나갈 수 있길 바래본다. 더불어 그가 보여준 공직자로서 깨끗한 사생활을 부디 이 땅의 수많은 비리 정치인들이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그러나 평소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그의 인품을 흠모하던 기자가 써내려간 이 글은, 때때로 인간 반기문을 너무 완벽한 사람으로 만들어 오히려 현실과 동떨어진 사람처럼 느끼게 하는 면이 없잖아 있다. 또한 그의 삶에서 보여지는 교훈들을 너무 강조함으로써 청소년 계몽도서를 읽는 듯한 느낌도 지울 수가 없다. 없는 일을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그에 대한 저자의 존경심에서 비롯된 것들이기에 어느정도 이해는 되지만 살짝 아쉬운 건 사실이다. 어쨌거나 이 책은 지금 막 꿈을 품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가는 청소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책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꿈을 향해 끊임없는 노력으로 나아가는 사람, 반기문. 그의 모습이 아름답다.
더불어 2007년, UN 사무총장으로서 임기를 시작한 그가 앞으로 어떤 활약을 펼쳐나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 ^


반기문 UN사무총장님~ 힘내세요!
우리나라의 온 국민이 사무총장님을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답니다.!!
우린 당신을 믿어요~!! 화이팅!!!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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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 정글 1
캔디스 부쉬넬 지음, 서남희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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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다른 이유 다 제쳐 두고 그 유명한 'sex and the city'의 작가라는 이유 만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아마 이 책에 눈길을 잡힌 많은 분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 ^ 실은 난 아직 'sex and the city'의 원작 소설 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안 봤다. 그런데 무슨? 그래도 눈과 귀는 있어서 그 작품의 명성과 내용과 메시지는 대략 알고 있다는 거~! ㅎㅎ 사실 워낙 유명해서 보고는 싶으나 드라마라는 것이 원체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지라(더구나 미국 드라마는 시즌별로 엄청나다!) 도저히 엄두를 못 내고 있지만, 글두 그 언젠가 꼭 보리라는 희망(?)은 품고 있다. ^ ^;;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립스틱 정글>을 먼저 집어 들었고, 이 책은 캔디 부쉬넬과 만나는 첫 번째 책이다. ^ ^

독특한 제목이 아주 흥미롭다. 립스틱과 정글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두 단어는 신기하게도 나란히 있으니 뭔가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는 느낌이다. 헬기를 타고 뉴욕을 내려다 보던 니코가 마치 립스틱이 숲을 이룬 것 같다고 표현했 듯이 이 책의 제목 '립스틱 정글'은 바로 뉴욕시를 지칭하는 말인 듯 하다. 립스틱을 바른 그녀들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도시, 뉴욕. 적자생존이라는 생존법칙이 여전히 유효한 이 거대한 도시는 또 하나의 정글일 테니까 말이다.

- 헬리콥터가 순간 하강을 하면서 립스틱들이 숲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드높은 빌딩들이 지나갔다. 니코는 성적 흥분과 비슷한 떨림을 느꼈다.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만들어진 눈에 익은 풍경을 볼 때마다 드는 느낌이었다. 뉴욕 시는 아직 전 세계에서 가장 멋진 곳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 같은 여자들이 살아 남고 지배도 할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곳이라는 곳도 분명하다. 헬리콥터가 윌리엄스버그 브리지 위를 낮게 날 때, 그녀는 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는 내 거야." 아니라면, 어쨌든 내 것으로 만들 거야. 그것도 곧. (59 쪽)


제목에서 알 수 있 듯이 <립스틱 정글>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대부분의 권력을 휘두르는 남자들을 비집고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에 이른 세 명의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이 책은, 세 명 모두 '성공'이라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지만 각자의 삶은 꽤나 다르게 펼쳐진다. 아름다운 미혼의 패션 디자이너 빅토리 포드는 기존과 다른 색다른 패션을 시도했다가 경영의 위기를 맞고, 매년 수많은 히트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사의 사장인 웬디 힐리는 전업주부인 남편과도 문제가 발생하며, CEO의 야망을 품고 있는 잡지사 편집장 니코 오닐리는 가부장적 권위로 자신을 짓밟으려는 남자들에게 맞서 매일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공감하기엔 다소 거리가 있는 화려한 캐릭터들이지만, 그들이 겪는 위기와 고민들은 '여자'라는 점에서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가 형성된다. '사회적'인 면으로만 성공을 평가하는 남자와 달리, 여자에게는 '사회적'인 면과 동시에 '가정에서의 여자 역할'이라는 이중적 잣대를 들이댄다. 그래서 둘 중의 하나라도 만족되지 않으면 쉽사리 성공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아직도 이 사회가 사회활동 유무를 떠나 가사노동은 여자의 '기본적인(?)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즈 펄의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127~8쪽의 글에서 비슷한 언급이 나온다;;) 자신의 일에선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지만 가정으로 돌아오면 늘 뭔가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웬디에게서 이런 문제를 발견할 수가 있다.

- 대부분의 여성들은 '법칙'이란 자신을 제자리에 놓기 위한 규칙이라고 생각한다. '친절하다'는 건 사회가 여성들에게 너희가 그 안에 있으면 (그 '친절'이란 상자에서 나와 방황하지 않는다면) 안전할 것이라고 말하는, 위안을 주는 아늑한 상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안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안전이란, 특히 비즈니스에 있어서는 거짓말이다. 진짜 법칙은 권력과 관계되어 있다.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법칙. 그리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건 자기가 권력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269~270 쪽)


능력있는 그녀들의 일에 대한 열정과 성공을 향한 야망, 그리고 사랑과 배신을 적절히 요리하며 주인공들을 통해 다양한 삶을 담아내는 이 책은, 세 명이 각자 그려내는 이야기의 중간중간에 적절하게 교차점을 만들어 줌으로 자칫 산만해 질 수 있는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 준다. 사업에 위기와 동시에 백만장자와 사랑에 빠진 빅토르, 살벌한 조직에서는 냉철함을 잃지 않지만 매력적인 청년과의 불륜엔 정신없이 빠져드는 니코, 사랑하지만 지쳐가는 남편과의 트러블에 설상가상으로 전력투구하던 영화촬영까지 문제가 생겨 진퇴양난에 빠진 웬디. 작가는 그녀들의 삶을 통해 40대 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감정과 고민들을 보여준다.

1권에서는 사건이 한창 벌어져 진행중인 채로 끝났는데 2권에서는 그녀들 주변엔 맴도는 남자들이 혹시 음모를 품고 그녀들에게 접근한 것은 아닌지, 언제 배신이라는 카드를 내미는 것은 아닌 지 궁금하다. 또한 빅토르는 다가오는 가을 컬렉션을 성공시킬 수 있을 지, 니코는 매력적인 청년과의 관계를 들키지 않을 지, 웬디의 영화는 성공적일 지도 함께.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어서 2권을 사야겠다. ^ ^

- 비즈니스에서 이것만은 꼭 기억해. 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반드시 거울에 비친 네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야만 해. 물론, 자신의 행동 중에 무엇을 용납하고 무엇을 용납할 수 없는 지를 아는 게 그 비결이지. (166 쪽)

- 네가 실패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진정한 시험이란다.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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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이야기 마시멜로 이야기 1
호아킴 데 포사다 외 지음, 정지영 외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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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이야기.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때.
이런저런 일들과 그 일들의 실패에 치여있던 나는 책을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또한, 제목은 들어봤지만 갠적으로 자기계발서를 그닥 즐기지 않는 터라 더더욱 눈길이 안 갔다.
그냥저냥 비슷한 책들이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를 쏘고 있을 때 블로그 이웃 한 분이 이 책을 추천했다.
읽었는데 꽤 괜찮았다고 언제 시간나면 보라고 이웃님의 안부글에 동해서.
어느날 나는 바로 이 책을 주문했다.


작년 5월쯤이었나..
당시 나는 정신적 좌절감과 마음의 압박으로 상당히 힘들었던 때라 어떤 것이든 붙들게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만난 책이 바로 <마시멜로 이야기>였고. 별다른 기대 없었던 이 책에서 나름의 위안과 힘을 얻었었다.
많은 종류의 자기계발서들이 그러하듯이 이 책 또한 흔히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비슷한 이야기지만 예전과 달리, 이번엔 그 이야기들이 보다 현실적으로 들렸다.
그러고 보면 어떤 말이건. 중요한 건 받아들이는 사람의 차이인 듯 하다.


<마시멜로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한 순간의 달콤한 쾌락을 위해 오늘이라는 마시멜로를 낭비하지 말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나만의 마시멜로를 찾아 인내하고 저축하라' 라고 말할 수 있다.
조나단의 운전기사로 어제오늘을 비슷비슷하게 낭비하듯 보내던 찰리가.
자신의 마시멜로를 계획하며 오늘의 마시멜로를 모으기 시작한 그 순간..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오늘의 마시멜로는 달다.
그걸 먹어버리면 그것은 단지 오늘의 달콤함으로 끝난다.
그렇게 그렇게 마시멜로를 먹다보면 어느날.. 마시멜로는 바닥이 난다.
우리들의 삶도 그렇다. 당장 삶의 유희와 쾌락을 즐기는 그 순간은 즐겁다.
그러나 젊음은 영원히 내 곁에 있어주지 않고 나의 삶 또한 앞선 사람들이 그러했듯 한정되어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마시멜로가 전부 바닥나기 전에 오늘의 마시멜로를 모을 줄 알아야 한다.


마지막. 진정한 자신의 삶을 설계한, 자신만의 마시멜로를 찾은 찰리처럼.
나도. 나만의 마시멜로를 찾길 바란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오늘이라는 마시멜로를 참을 수 있길 원한다.
찰리가 536,870,912개의 마시멜로로 인생의 방향을 바꿨 듯
나도, 내 삶의 새로운 전환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

 
너무나 간단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
이제 내게 남은 건. 앎으로 인한 실천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꿈을 찾은 찰리를 생각하면서. 다시 나만의 마시멜로 모으기를 시작하려한다.

 
인내는 쓰다, 그러나 열매는 달다.
나의 열매도, 당신의 열매도. 모두 달콤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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