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사나이
에마뉘엘 보브 지음, 최정은 옮김 / 호루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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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혼자있는걸 좋아하는 나는 외로움을 즐기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빅토르 에게 했다간 쓴소리를 들을게 틀림없다. 그는 너무도, 정말 너무도 외롭기 때문이다. 빅토르는 뼛속 깊이 사무치는 외로움을 벗어날수만 있다면 간과 쓸개까지도 다 내줄 친구다. 뿌듯해하고 행복해하면서 말이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친구가 딱 한명만 있었으면 하는게 그의 소망이다. 더이상 하루를 혼자보내지 않기를, 같이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커피와 술을 마실수 있는 그런 친구가 생기길 바랬다. 이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졌더라면 그의 삶은 희망적으로 변했을 것이다.

빅토르는 전쟁에서 큰 부상을 입고 전쟁 공로 훈장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전쟁 상이군인 연금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쪽 손이 불편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고 아무도 그를 찾지 않는다. 허름한 7층 옥탑방이 그의 유일한 보금자리이다. 가족 이야기가 없는걸로 봐선 고아일 가능성이 높은 빅토르. 그가 하는 일이라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친구가 될만한 사람을 찾는것이다. 이웃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지도 못하는 그를 보고있자면 불쌍하고 답답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소심하고 나약한 그, 상상의 세계에 빠져드는 그,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소망을 가졌지만 그것조차 이루지 못한 그.

하지만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그는 참으로 한심스러운 인물이다. 아무리 장애가 있다지만 하루종일 빈둥거리는 모습은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에게 불쾌감마저 주었다. 한마디로 게으름뱅이의 전형인 것이다. 그리고 빅토르의 성격 또한 문제였다. 지나치게 소심한 그는 자신과 친구가 될수있는 사람이 보이면 일단 저자세로 나간다. 상대방에게 불만스런 반응이 나와도 받아들이고 꿍꿍이를 내비쳐도 쉽게 넘어갔다. 특히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절망적인 사람을 만나면, 내가 그를 도와줄수 있을 것이고 보답을 받은 그는 나를 진정한 친구로 여길거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걸 잘 알지만 우정에 굶주린 그에겐 친구가 절실했고, 한눈에 봐도 그를 깔보거나 업신여기는 사람에게까지 호의를 베풀었다. 그리고 곧, 또 다시 배신 당했음을 절절히 깨닫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된다.

거기다 그의 망상은 사태를 더 악화시키는데 일조했다. 현실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자신의 모습이 싫은것일까. 그는 누군가를 만나면 핑크빛 미래를 꿈꾸고 망상의 세계에 빠져든다. 그런 기대를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지만 계속 떠오르는 망상은 멈추지 않는다. 특히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고 부자가 되는 상상을 많이 한다. 상상 속의 그는 누구나 우러러 볼만한 인물이고 예쁜 애인이 있다. 잘 꾸며진 식당에 들어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눈을 뜨면 비참한 현실로 돌아온다. 그래서일까. 그는 거울속 자신의 모습을 좋아한다.  잠에서 깬 지저분한 모습이 아닌, 세수를 한 후의 옆모습을 거울에 비쳐본다. 그러면 마치 나의 분신을 보는것 같다고 한다. 이 책에 거울이 많이 나오는건,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픈 빅토르의 심정을 대변하기 때문인것 같다.

그는 "느즈막이 점심을 먹으면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시간이 조금은 짧게 느껴진다" 고 말한다. 빅토르에게 혼자 보내는 하루는 너무나 긴 것이다. 약간의 동정과 사랑을 얻을수 있다면 내가 가진 모든것을 내놓을 준비가 됐지만 아무도 그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딱 한번 그에게도 좋은 일이 생겼었다. 부자 라카즈는 그에게 직장을 알선해주고 양복을 살 돈도 주었다. 이제 빅토르는 성실한 근로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살수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의 '사랑받고 싶어하는 욕구'와 '핑크빛 망상'때문에 단 한번의 기회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이없는 빅토르의 행동 때문에 말이다. 이 부분에서 난 화가 많이 났다. 어쩜 이리도 멍청할수 있냐며 빅토르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다고 갈망한 그는 자기 스스로를 망쳐버렸다. 다른 누군가의 훼방이 아닌,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친구를 만들지 못하고 사회에 융화되지 못한 것이다. "외톨이로 살다가 이대로 죽겠지' 라는 생각을 하는 그가, 자신을 보잘것없고 비참한 존재라고 평한 그가 점점 싫어졌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빠져나와야 한다. 단숨에 포기하고 누군가 날 구조해주기만 기다리는건 어리석은 짓이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다면, 일단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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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
실벵 다르니 외 지음, 민병숙 옮김 / 마고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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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 사람의 아이디어와 용기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이끌어내는지를, 우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알게된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단숨에 깨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그들을 보면 지구의 미래가 암울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책 속에 언급된 80인의 대안기업가 말고도 지구 곳곳엔 멋진 생각을 가지고 일을 추진해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있기에 세상은 좋은 쪽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비록 시작은 미미할지라도 그 파급효과는 점차 커지게 될 것이고, 커지면 커질수록 세상은 살맛나게 될 것임을 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튜와 실벵은 이른바 '대안기업가'들을 만나고 인터뷰하기 위해 1년간의 여행을 준비한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위해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 떠난다.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세계의 영웅들을 만나는 것, 이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였다. 자신의 꿈을 끝까지 쫒아간 사람들을 만나고 행동에 임한 대안기업가들의 이야기는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 한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배울 점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만난 이는 트리스탕 이었다. 영세한 생산자들에게 지속적인 소득과 더 나은 삶의 질 보장을 우선시하는 그는 생산자가 행복해야 생산물이 더 맛있어진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공정무역은 전세계 상거래의 약 0.1퍼센트만 차지하지만 트리스탕 같은 사람이 많다면 앞으로 그 수치는 높아질 것이다. 그래야만 저개발 국가의 농민들에게 미래가 열리기 때문이다. 피터 말레즈는 생태적으로 무해한 환경친화적 세제를 만들고 있다. 일반적으로 세제 하면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 쓸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터는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고 지금은 다른 세제보다 월등한 환경친화적인 세제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요르겐은 한 공장의 폐기물이 다른 공장의 자원으로 쓰일수 있게 공장을 설비했다. 제조업체들의 환경피해를 줄이고, 많은 비용을 절감해서 수익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였다. 80세의 안과의사인 고빈타파는 데이비드그린과 함께 백내장 수술비용을 대폭낮춰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진료를 해주고 있다. 그의 손을 거쳐간 환자만 10만명 이라고 하니 너무도 큰 일을 하고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무료 진료를 할수있는 것일까? 그 답은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에게 진료비를 정상적으로 받고 그 돈으로 가난한 이들을 치료하는 거였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의 저자 무하마드 유누스는 마튜와 실벵이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를 알게되고부터 다른 대안기업가들에게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다. '무담보 소액신용대출' 개념을 만든 무하마드는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고 다른 은행보다 더 튼실한 운영을 하고있다. 전 세계에서 그의 방법을 본따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해 준다고 하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무하마드는 "무엇보다 사슬의 첫번째 고리를 푸는데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죠. 사람에게 희망을 되돌려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사람에 대한 그의 관심이 이 같은 업적을 남겼다.

그 외에 수라이야는 여성들이 아이와 경제적 자립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도록 공장 작업실내 탁아소 설립을 추진했다. 처음엔 기업들을 설득하는게 쉽지 않았지만 공장에 탁아소가 생기면서 생산량이 높아지는것을 보고 많은 곳에서 채택하게 되었다. 아이를 혼자 내버려두고 일을 해야만했던 어머니들이 공장에 아이를 맡김으로써 마음에 평온심을 가졌고 이는 곧 작업의 효율성을 불러온 것이다.

그리고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도브차니의 이야기는 너무도 흥미로웠다. 그는 높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면서도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유명 브랜드 기업들이 제 3세계의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심지어 어린아이의 노동력을 이용해)물건을 만든다는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노동력이 저렴하게 제공되야 제대로 된 품질의 옷과 합리적인 가격을 소비자들에게 줄수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도브차니는 이 이야기에 반기를 들었다. 그가 만든 티셔츠는 다른곳보다 월등한 임금과 복지혜택을 누리는 노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얻는다. '윤리적 티셔츠'라는 슬로건을 넘어서서 '더 인본주의적이고,더 젊고,더 정의로운'회사를 만들고자했던 그의 바램은 허상이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얘기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건 나랏님도 어쩌지 못한다고. 하지만 대안기업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은 남들과 다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결국 놀라운 업적을 남긴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대출해주면 이자도 못 받을거라고 믿던 은행들을 무하마드가 반박했다. 농사는 농약이 있어야만 생산이 잘된다고 말했던 사람들은 다카노의 '오리 농법'으로 입을 다물었다.그들은 더 나은 세상도 꿈꾸는데 만족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 세계를 건설하는데 참여했다. 그들은 진정한 영웅인 것이다.

이제 '지속가능한 발전'은 모든 사람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됐다. 조금만 생각을 전환하면 그동안의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더 좋은 효과를 낼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배우게 됐다. 항상 문제제기를 하고 그 방법을 찾아가는 것, 어렵지만 해결 안되는 일도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대안기업가 들을 통해서 배우게 됐다. 마튜와 실벵은 1년간 이동하면서 방출하게 된 이산화탄소를 계산해 봤더니 11톤 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를 없애기 위해 여행이 끝난 후,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산허리에 1300그루 음핑고를 심었다고 한다. 바로 이거다! 이런 작은 결심과 행동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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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큼의 애정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노재명 옮김 / 다산책방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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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이지만 달달하고 감성적인 이야기가 아닌,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정의가 담긴 책이다. 작가가 말하는 사랑의 정의가 마음에 와 닿아 곰곰히 생각해 보기도 했다. 사랑의 시작과 함께 다가오는 이별이라는 두려움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것이다. 사랑을 하면 서로 닮아가고 정신적인 교류를 통해 둘이 아닌 하나가 되지만, 이별이라는 복병은 단단하게만 여겨졌던 사랑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 사랑하는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여겼고 어떤 일이 있어도 헤어지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결국 헤어지고 만다. 하지만 여기, 아직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채 살아가고 있는 한 연인이 있다.

아키라와 헤어진지 5년. 마사히라는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자에게 큰 배신을 당하고 아직도 그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반면 사업에서는 승승장구해 그가 하는 단팥죽 가게는 8호점을 낼 정도로 성공했다. 이별로 인한 상처를 오로지 일에만 투자하는 그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겁이 많고 우유부단한 그에게 진취적인 사업 활동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답지 않은 일을 벌인것 같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는 자신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업 실패에 대한 걱정을 하면서도 자꾸 지점을 늘리려는 그의 모습속에서 마음의 공허를 메꾸려는 것을 깨닫게된다.

그러던 어느날 아키라에게서 전화가 온다. 헤어졌어도 같은 동네에 살기 때문에 우연히 마주친적은 많았지만 한번도 말을 섞지는 않았기에 그녀의 전화는 뜻밖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건 그녀가 전화한 용건이었다. 서로 우연히 스친지 100번이 됐다며 그걸 기념하는 전화란다. 그녀의 전화는 어떻게보면 너무 뻔뻔했다. 그의 사랑을 배신한건 그녀였고 상처를 준것도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그녀가 그와 100번 스친건 어떻게 안 것일까. 아키라는 매번 기억했던 것일까. 그건 즉, 그를 아직도 마음에 두고있다는 뜻일까. 

아키라의 전화에 불순한 의도가 있진 않을까 걱정하던 마사히라는 결국 그녀의 사연을 듣고 마음을 열게 된다. 남들이 보면 너무 물렁한거 아닌가 싶을정도로 5년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아키라와 만난것이다. 헤어져있던 시간은 길었지만 아직도 그의 마음속엔 아키라에 대한 실망과 미움보단 애정이 더 컸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의 마음을 움직인건 아키라의 지난 5년간의 행적이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그녀이지만 실은 그녀 자신이 더 큰 슬픔을 맛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했기 때문에 마사히라를 떠날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진실. 이별후 5년동안 아키라는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계속 하고 있었다.

사랑했지만 헤어져야 했고, 사랑했기 때문에 진실을 보지 못했던 마사히라와 아키라. 그렇게 그들은 5년후 다시 만나 또 다시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아마 더 이상의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연인은 이별이 주는 두려움과 슬픔을 이미 맛보았고, 5년간 서로를 그리워하기만한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더 단단하고 견고한 사랑을 할것이기 때문이다. 이별이라는 거대한 벽에 겁먹고 두려워한 나머지 사랑을 믿지 않고 포기해버린 실수는 더이상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시라이시 가즈후미 작가와의 첫만남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식상하고 마음에 썩 들진 않았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와 주제는 명확하게 이해가 되는데 그것을 풀이하는 과정이 흔하디 흔한 멜로 드라마를 판에 박은듯 했기 때문이다. 특히 주제와 상관없는듯한 사족이 장황하게 펼쳐져 이야기의 맥이 끊겼다. 앞을 내다보고 모든것을 다 아는듯한 키즈 선생은 문제의 해결을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만 책의 내용을 붕 뜨게 만들었다. 이런 초자연적인 인물을 빼고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몰입이 더 잘됐을 것이다. 많이 실망스럽진 않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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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라푼첼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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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삶에 대한 의욕도 없어보이고 날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시오미. 결혼후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자신의 성안에서만 살고 있는 그녀의 삶은 오로지 혼자뿐이다. 광고일을 하고있는 남편은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매달 정기적으로 생활비만 넣어준다. 사랑해서 한 결혼이지만 이들 부부의 삶은 타인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게 부부인데 그들은 결혼증명서만이 부부임을 입증해줄 뿐이다. 마치 자신을 방치한것처럼 살아가는 시오미. 심심하면 빠찡코에 들러 시간을 죽이고 자고싶을때 자고 빈둥빈둥 하루를 보낸다. 이웃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생활협동조합이 열리는 목요일뿐이다.

결혼한지 6년, 지금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모델 일을 하면서 만난 남편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이젠 사랑이라는 감정도 사라진듯 보인다. 열정과 의욕도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차라리 아이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그건 시오미에게 아픈 상처일 뿐이다. 계속되는 불면증은 그녀의 상태가 어떤 지경인지를 알려준다. 남들이 보면 남편이 주는 풍족한 돈으로 한가롭게 사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신선놀음이다 하겠지만 시오미는 지금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있다. 언제 바닥으로 추락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 당장 끝을 내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크게 다칠수 있으니까.

어느날 남편은 작은 고양이 한마리를 그녀에게 준다. 시오미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덥썩 데려다 놓는다. 그리곤 "그러면 그렇게 알고있을게" 라는 말을 남기며 떠나고 아파트엔 시오미와 고양이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처음엔 불편해하던 시오미도 고양이의 느긋함에 마음을 열게되고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이 있는것을 편안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옆집 루피오와 대니가 그녀의 일상속으로 들어온다. 루피오의 의붓아버지이자 시오미와는 15살 차이인 대니, 그리고 시오미보다 15살 연하인 루피오는 13살의 중학생이다. 대니가 회사에 가지 않거나 루피오가 학교에 가지 않을때 그들은 시오미의 집으로 모인다. 게임을 하고 낮잠을 자고 밥을 해먹으며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집에서는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 대니와 루피오가 시오미의 집에서는 같이 어울리며 편한 시간을 갖는게 이상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시오미의 집에서만 가족의 흉내를 낼수 있는걸까. 어쨌든 이 기묘한 어울림이 썩 나쁘진 않아보인다. 하지만 이 비밀스런 만남이 언제까지나 계속될순 없었다. 시오미에게 "고양이를 키우지 마라"라는 편지가 배달되고 루피오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시오미의 삶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현실의 문제엔 눈 질끈 감아버리며 외면했던 그녀가 옆집부자와 소통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면서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왜 나는 이렇게 살고있는걸까,왜 나는 루피오를 사랑하게 된걸까,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런 나를 참아줄수 있을까?
 
라푼젤을 성안에 가둔건 마녀였고, 시오미를 아파트 속에 집어넣은건 남편이었다. 하지만 라푼젤은 자신의 긴 머리를 이용해 탈출하지 않았다. 그저 왕자가 나타나서 자신을 구해주기만을 바랐다. 시오미 또한 집밖으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찾을 길을 모색하지 않았다. 한가로운 오늘과 같은 내일이 있을거라는것 밖에는 아무것도 알려하지 않는다. 희망이 있다면 언젠가는 현실이 될거라는 믿음은 큰 대가를 치른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 대가가 그녀에겐 약이 되었다고 믿는다. 물론 그녀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스로 갇힌 성을 탈출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그녀를 이해한다. 아니,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 상반되는 감정이 시소를 타듯 계속되었다. 내 마음은 그녀를 이해하지만 이성은 그녀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처음엔 시오미가 루피오에게 느끼는 사랑이 남녀의 것이 아닌, 그저 애정이나 연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오미가 느낀 감정은 지독한 사랑이었다. 난 그녀의 사랑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이 사랑만이 그녀를 구원해줄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루피오와 나눈 섹스는 충격이었고 경악하지 않을수 없었다. 사랑을 할순 있지만 13살짜리 아이와 섹스를 하는건 내 입장에선 받아들일수 없었다. 아무런 대책없이,계획없이 사는듯한 그녀가 답답했다.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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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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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미스터리 장르라고 했는데 중반까지는 미스터리의 미 자도 찾아볼수 없었다. 내가 생각해왔던 추리,미스터리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있어서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현금 100만엔이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야기는 흥미로워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작가는 돈의 행방 보단 고단하고 숨막히는 은행원들의 삶에 더 초점을 맞춘다. 돈을 훔친 범인을 찾는게 목적이 아니라 실적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친 은행원들의 지친 삶에 더 관심을 둔 것이다.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들이 입성하는 은행은 치열한 경쟁과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로 소리없는 전쟁을 치루는 곳이었다. 아! 벌어먹고 산다는건 이리도 힘든 일이구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직장 생활 모습은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 마치 군대처럼 상사의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되고 부당한 일이 있어도 지시한 사항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상사들의 눈 밖에 나 승진시 불이익을 당하고 좌천당하기 일쑤이다. 특히 윗 세대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직장 생활을 해왔기때문에 이 상황에 어떤 의문도 갖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젊은 신입 사원들이 잘못을 지적하기라도 하면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부지점장 후루카와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그는 상고출신 이라는 컴플렉스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고 승진하기위해 무엇이든 했다. 그리고 이제는 지점장 이라는 목표를 이루기위해 더 악착같이 직원들을 들볶는다. 그에게는 '실적'이외에는 어느것도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실적이 낮은 고야마에게 화를내고 인격을 모독하는데, 오히려 고야마는 후루카와에게 투신판매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따진다. 고객에게 불이익이 되는 투신을 왜 팔아야 하는지 알려달라는 고야마의 말은 후루와카에겐 자신과 은행에 대한 반란으로 받아들여지고 결국 폭력 사건으로 치닫게 된다. 고야마의 정당한 의문이 꽉 막힌 후루와카에겐 조직에 대한 반기로 여겨진 이번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오직 실적 만으로 사람의 가치가 평가되는 은행. 도쿄제일은행 나가하라 지점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울고 웃는다. 한창 잘 나가다가 한순간의 실수로 승진을 못하고 있는 도모노는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위해서라도 이번엔 꼭 승진을 해야했다. 후루카와에게 은행에서 최고로 실적이 좋은 다키노의 손톱 때만도 못하다는 질책을 받았기에 10억엔 대출건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성사시켜야 할 건수였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은행과 저울질 하는 사장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비굴하게 빌어야만 했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그에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거래였던 것이다.

더 가슴아픈 사건도 있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엔도였다. 그 또한 화려한 실적을 자랑하는 다키노와 비교가 되며 점차 자신감을 잃게되고 결국 상황은 나빠져만 갔다. 열심히 노력하고 발에 땀나도록 뛰어다니지만 운명의 여신은 그 보단 다키노에게 기울어진 것 처럼 보인다. 그런 그가 결국 정신에 이상이 생긴건 일이 그에게 가져다 준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열심히 일 하지만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상사를 만나기라도 하면 승진은 힘들게 되고, 무능한 상사에 의해 잘못을 뒤집어 쓰기도 한다. 대체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고 뛰어야 하는 것일까? 출세 하기 위해? 아니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아. 무슨 이유이건간에 이건 너무 삭막하고 재미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돈이 있어야 가족과 함께 행복한 미래를 설계할수 있는데 말이다. 

이렇듯 십여명의 은행원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중간중간 실종된 니시키씨의 행방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준다. 어찌보면 니시키씨의 실종은 사람들의 관계를 엮어주는 양념역할을 하는것 같다. 만약 니시키씨가 실종되지 않았다면 은행원들은 각자의 이야기만 했을것이고 이야기는 더 건조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 은행원들이 니시키씨의 사건에 의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나누고 사건을 추리해보면서 짧은 교류를 한다. 하지만 그뿐, 더이상 깊이 알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문 수사꾼도 아니고 탐정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니시키씨의 실종에 열정을 가질 시간도 없다. 또 조금 진전이 있다가도 귀찮은 마음에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니시키씨의 실종은 그렇게 끝이 나는가 싶었다. 모두의 기억속엔 그가 존재하지만 서서히 잊혀지는 그런 상황이 올줄 알았다.

하지만 사건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풀리고 마지막엔 반전도 생긴다. 그러나 놀라움 보다는 슬픔이 밀려들었다. 그는 왜 실종될수 밖에 없었는지, 왜 은행에서 사라져 버릴수밖에 없었는지를 떠올리니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범인에게도 연민이 느껴졌다. 어쩌면 범인 또한 우리 사회가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속한 조직이 그를 벼랑끝으로 내몰았고 낭떠러지로 밀어버린것 같다. 그래서 씁쓸한 뒷맛이 가시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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