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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라푼첼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삶에 대한 의욕도 없어보이고 날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시오미. 결혼후 집밖으로 나가지 않고 자신의 성안에서만 살고 있는 그녀의 삶은 오로지 혼자뿐이다. 광고일을 하고있는 남편은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매달 정기적으로 생활비만 넣어준다. 사랑해서 한 결혼이지만 이들 부부의 삶은 타인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게 부부인데 그들은 결혼증명서만이 부부임을 입증해줄 뿐이다. 마치 자신을 방치한것처럼 살아가는 시오미. 심심하면 빠찡코에 들러 시간을 죽이고 자고싶을때 자고 빈둥빈둥 하루를 보낸다. 이웃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생활협동조합이 열리는 목요일뿐이다.
결혼한지 6년, 지금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모델 일을 하면서 만난 남편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이젠 사랑이라는 감정도 사라진듯 보인다. 열정과 의욕도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차라리 아이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지만 그건 시오미에게 아픈 상처일 뿐이다. 계속되는 불면증은 그녀의 상태가 어떤 지경인지를 알려준다. 남들이 보면 남편이 주는 풍족한 돈으로 한가롭게 사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신선놀음이다 하겠지만 시오미는 지금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있다. 언제 바닥으로 추락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 당장 끝을 내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크게 다칠수 있으니까.
어느날 남편은 작은 고양이 한마리를 그녀에게 준다. 시오미의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고 덥썩 데려다 놓는다. 그리곤 "그러면 그렇게 알고있을게" 라는 말을 남기며 떠나고 아파트엔 시오미와 고양이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처음엔 불편해하던 시오미도 고양이의 느긋함에 마음을 열게되고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이 있는것을 편안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옆집 루피오와 대니가 그녀의 일상속으로 들어온다. 루피오의 의붓아버지이자 시오미와는 15살 차이인 대니, 그리고 시오미보다 15살 연하인 루피오는 13살의 중학생이다. 대니가 회사에 가지 않거나 루피오가 학교에 가지 않을때 그들은 시오미의 집으로 모인다. 게임을 하고 낮잠을 자고 밥을 해먹으며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집에서는 대화를 거의 하지 않는 대니와 루피오가 시오미의 집에서는 같이 어울리며 편한 시간을 갖는게 이상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시오미의 집에서만 가족의 흉내를 낼수 있는걸까. 어쨌든 이 기묘한 어울림이 썩 나쁘진 않아보인다. 하지만 이 비밀스런 만남이 언제까지나 계속될순 없었다. 시오미에게 "고양이를 키우지 마라"라는 편지가 배달되고 루피오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시오미의 삶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현실의 문제엔 눈 질끈 감아버리며 외면했던 그녀가 옆집부자와 소통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면서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왜 나는 이렇게 살고있는걸까,왜 나는 루피오를 사랑하게 된걸까,나는 대체 언제까지 이런 나를 참아줄수 있을까?
라푼젤을 성안에 가둔건 마녀였고, 시오미를 아파트 속에 집어넣은건 남편이었다. 하지만 라푼젤은 자신의 긴 머리를 이용해 탈출하지 않았다. 그저 왕자가 나타나서 자신을 구해주기만을 바랐다. 시오미 또한 집밖으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찾을 길을 모색하지 않았다. 한가로운 오늘과 같은 내일이 있을거라는것 밖에는 아무것도 알려하지 않는다. 희망이 있다면 언젠가는 현실이 될거라는 믿음은 큰 대가를 치른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 대가가 그녀에겐 약이 되었다고 믿는다. 물론 그녀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스로 갇힌 성을 탈출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그녀를 이해한다. 아니,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 상반되는 감정이 시소를 타듯 계속되었다. 내 마음은 그녀를 이해하지만 이성은 그녀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처음엔 시오미가 루피오에게 느끼는 사랑이 남녀의 것이 아닌, 그저 애정이나 연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오미가 느낀 감정은 지독한 사랑이었다. 난 그녀의 사랑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이 사랑만이 그녀를 구원해줄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루피오와 나눈 섹스는 충격이었고 경악하지 않을수 없었다. 사랑을 할순 있지만 13살짜리 아이와 섹스를 하는건 내 입장에선 받아들일수 없었다. 아무런 대책없이,계획없이 사는듯한 그녀가 답답했다.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이래저래 머리가 복잡해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