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한 정리법 - 세계적 베스트셀러 <심플하게 산다>의 실천편
도미니크 로로 지음, 임영신 옮김 / 문학테라피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1. 무엇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나요?
'무언가'를 많이 가졌다는 것보다, 무언가를 '많이 가졌다'는 것에 더한 충족감을 느끼던 때가 분명히 있었다. 비싼 옷이나 화장품, 이른바 '명품 백' 같은 것을 전혀-_- 구입하지 않는 나에게 재산은 이런 것들이리라고 생각하며 별 감흥 없던 책도, 더이상 듣지 않는 CD도, 받은 지 10여년이 훌쩍 넘은 쪽지도, 어릴 적 끄적거렸던 낙서조차도 모아 두었다. 

언제부턴가 이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다 쓰지 못할 것 같은 검정색 펜들이 가득 들어있는 필통을 보면 숨이 턱턱 막혔다. 손 댄지 오래된 책들과 CD를 내다 팔고 이젠 필요 없는 자료들을 분리해 내는 건 쉬웠지만 그 이상은 잘 되지 않았다. 잡동사니들을 정리해 보겠다며 책상 서랍을 뒤집었다가 이건 그 때 걔가 준 거야, 이건 또 언제 필요할 지 몰라, 이건 나 말고 필요한 사람한테 줘야지…하며 하나하나 물건을 늘어놓다가 하나도 버리지 못하고는 지쳐 버리기가 일쑤였다. 누군가 잘 버리는 방법을 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용서를 원체 안 읽다 보니 뭘 읽어야 할 지 감이 안 잡혀 '정리'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책들을 무작정 골라 읽었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정말 실용적인 정보'보다 그 실용적인 방법이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책들이 많았고, 그게 내가 실용서를 싫어하는 이유이다 보니ㅠㅠ '왜 정리를 해야 하는가?' '왜 버려야 하는가?' '왜 물건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도 정리해야 하는가?' 등등에 대해 책의 70% 이상을 적어놓고 있는 책들을 통독한 후면 허탈함에 몸서리쳤다. 아오 인제 그만 읽을까…싶을 때쯤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한 정리법을 만났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중얼거리며 읽기 시작했고, 결과는 비교적 만족스러웠다 ;)


2. 물건 대신 '나'를 채우는 삶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인생의 필요 없는 것들 정리하기'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1부에서는 '단순함'이 인생에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서술하고, '단순할수록 미래는 더 안전하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2부에서는 직접적으로 정리를 시작하기 전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1, 2부의 전체적인 주장을 요약하자면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낭비하지 않으며 좋은 것들을 골라서 취하고 자신을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삶을 살기 위해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일들을 피하고 우리를 어지럽히는 것을 소유하지 않기로 결단하라.'정도일 텐데, 사실 쉬운 얘기는 절대 아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심플한 삶이란 그 어떤 물질도 소유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편의와 즐거움을 위한 최소한의 것 이외에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삶이다. 그런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먹고 입고 쓰는 데 편안함을 느끼는지, 무엇을 하고 듣고 읽고 즐길 때 내 정신이 충만해지는지, 내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 이상이라고 느끼는 '과도한 것들'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즉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인지를 잘 알고 있어야만 심플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지, 타인의 눈을 신경쓰며 살아가는 데 익숙해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라면 심플한 삶 자체를 욕망하지조차 못하리라는 것.

무상의 우아함은 먼저 자기 자신을 소유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자기 자신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다른 사람의 취향에 영향을 받기보다 자기 자신의 취향을 만들어나가야 하며, 자신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견하고 실제와 다른 어떤 존재인 양 가장하지 않아야 한다. (30쪽)


인간 관계에서도 이 정의는 그대로 적용된다. 함께 있는 순간에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이지, 더이상의 욕심은 부려서도 안 되고 부릴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현재의 순간에 만족했다면 그것으로 끝. 과거가 된 행복을 현재의 것이라 착각하고 집착해선 내가 추해질 뿐이다. 욕망의 대상이 인간이든 물질이든간에 '내 것'이라 생각하며 소유하려는 사람은 덜 성장한 것이므로 더 성숙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저자의 말이,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한다고 믿는 나에게 좋은 가르침이 되었다.

많이 소유할수록 우리는 더 쉽게 상처받게 된다. 반면 영적으로 더 진보할수록 소유나 사람에 대한 욕망은 줄어든다. 물질적으로 초연해지는 것은 그것과 얽힌 관계까지 포함하여 모든 영역에서 자유로워지도록 해준다. "지금 나는 이 사람과 있어서 정말 행복해. 하지만 그를 소유한 것은 아니야. 내가 감옥의 간수도 아니고, 나와 함께 있든 떠나든 그에게는 자유가 있어." (33쪽)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려고만 들지 않는다면 필요 이상으로 자신을 혹사시키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심지어 사랑조차도 늘 소유하려 든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우리의 삶에 전반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 요행을 바라며 세상으로부터 헛된 기대를 품다 세상을 원망하거나, 사람이나 물건으로 우리의 욕구를 채우려 애쓰다 정작 우리 스스로를 잃고 상처받게 된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바깥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늘 우리 자신 안에 있다. (36쪽)


그렇다면 지금 여기 내게 필요한 것만이 가져야 할 물건일까? 이에 대해서도 저자는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하여 '쓰잘데 없는 건 다 버려라'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려준다.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은 사용할 때마다 즐거움을 주고 공간에 생동감을 불러일으켜주는 물건, 즉 애정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므로, 기능성이 최고의 가치는 아니라는 것. 이 애정을 돈을 잃는 것 같은 두려움이나 가난하게 보일 것에 대한 두려움, 나중에 후회할 것에 대한 두려움과 착각해선 안 된다는 충고까지 덧붙인다. 

자신의 물건에 왜 이렇게 많은 애착을 갖는지, 어떤 가치가 결부되어 있는지 자문하라. 우리가 버릴 물건 중에는 어쩌면 버리고 나서 후회하게 될 물건도 한두 개쯤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107쪽)



3. 심플한 정리법, 실전!
가장 마음에 들었던 3장의 제목은 '심플한 정리법'! 1, 2장이 이론이라면 3장은 실전이랄까. 그야말로 정리를 위한 실용적인 팁들이 가득가득 들어 있다. 부엌에 꼭 필요한 물건은 무엇이며 있으면 좋아 보이지만 별로 필요하지 않을 것이 뻔한 물건은 무엇인지, 손님을 대접할 땐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장식품은 어떻게 구비해야 할지, 도저히 뭘 못 버리겠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하는 것이 좋은지 등등. 잡동사니를 담을 서랍은 한 칸만 마련하라, 수량의 상한선을 두라(중복해서 물건을 갖지 말아라), 물건을 그룹화하라, 계절에 따라 버려라, 결정은 아침에 내려라, 소비에 시간을 투자하지 마라, 여행을 버리는 기회로 활용하라 등등. 이사나 독립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선물해 주면 딱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자신에게 어떤 정서적 의미가 없거나 적은 외부의 물건, 물질적인 것들부터 비워나가기 시작하라. (207쪽)

잡동사니로 가득 찬 서랍 한 칸이나 상자 하나를 공략할 떄는 탁자나 바닥 위에 내용물을 모두 쏟아놓자. 이렇게 모든 물건이 한눈에 드러나면 몸은 저절로 반응해서 그것을 원래 있던 곳에 집어넣는 대신, 내용물의 90퍼센트를 버리게 된다. (208쪽)

어떤 물건을 버리기 전 아직 애착이 느껴지거나 더 이상 필요하지않으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을 경우…그 물건을 정성껏 포장해서 차고나 지하실에 이런 물건을 모아둘 장소를 정해놓는 것이다. 그리고 상자에 날짜를 써두라. 1년 동안 그 상자의 물건을 찾으러 가지 않았다면, 그것은 버려도 된다. (209-210쪽)

사고 싶은 물건의 목록을 적어서 30일을 기다리자. 시간이 다 될수록, 그 물건을 왜 그토록 원했는지 더 이상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263쪽)

감정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스트레스와 육체적인 고통까지 불러일으키는 물건들을 주의하자. (244쪽)

소비를 줄이는 것은 지구를 구하기 위해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사회 참여라고 할 수 있다. (272쪽)

결국 이 책 전체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지점은 변하는 물질과 의미 없는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존재에 집중함으로써 정신적 충일함을 맛보고 성숙한 인간이 되라는 것이리라. 이제까지 쥐어 왔던 쓰레기들-물질과 기억 모두-을 치우고, 내 안에 빈 공간을 마련해 놓고,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삶을 살아나가려고 노력하라는 메시지. 되돌아가지 않고, 멈춰있지 않고, 천천히 성장하는 인간이 되어야 할 테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는 데, 이 책이 두 걸음 정도는 도움을 준 거겠지? :D
 


물건은 순환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보다 더 오래 남아 있다가 빛이 바래고 낡아서 아무도 울어주지 않는 가운데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자고로 물건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잠깐 맡은 것이며 계속 순환되어야 한다. 자신이 맡았을 때 잘 누리면 된다.

-리디아 플렘의 『수런거리는 유산들』 중에서, 도미니크 로로의 책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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