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읽다, 쓰다 - 세계문학 읽기 길잡이
김연경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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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책 감상에 대한 책'은 더더욱 그랬다. 남이 쓴 책 감상문을 읽을 시간에 그가 읽은 그 책을 그냥 읽는 게 낫지 않나? 하고 생각했었다. 뭐, 한 달에 책을 열 권 이상 읽던 때의 이야기다.

몇 살 이상이 되면서부터 앞으로 내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이제까지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시간들보다 짧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는 데도 건강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강해지면서부터는 더 그랬다. 자연스럽게 예전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책에 대한 책'들에 관심이 갔다. 특히 고전을 소개해주는 책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교양인이라면 이 정도는 읽었어야 한다는' 이른바 필독서들 명단을 훑을 때면 어린 시절부터 소설만 편독해온 것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소설을 편독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도 '누구나 한 번쯤은 읽었을 고전 문학 리스트' 따위를 훑다가 못 읽어본 책들이 너무 많이 보이는 걸 깨닫고, 와 나는 평생 이거 못 읽고 죽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던 중 좋은 기회로 김연경 씨가 쓰신 『살다, 읽다, 쓰다-세계 문학 읽기 길잡이』를 읽게 되었다.

『살다, 읽다, 쓰다』는 책 제목 그대로 세계 문학 작품 중 고전의 반열에 꼽혀 여전히 '살아 있는' 것 같은 책들을 '읽고', '쓴' 글들이 엮여 있다. 줄거리나 중심 인물, 작가에 대한 설명을 요약해 열거하는 정보 전달 위주의 글이라기보다는 성실하고 꼼꼼한 독자가 공들여 읽은 작품의 의미를 당대와 현재의 관점에서 두루 살펴본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글은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고 있었는데, 인간의 삶에 대한 연민과 작가에 대한 애정이 함께 느껴지는 부분들이 자주 보여 인상 깊었다. 예를 들면 체호프에 대한 부분.


동시대인들은 그를 아끼긴 했어도 톨스토이와 같은 '위대한 작가'로는 여기지 않았다. 그를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훗날의 문학사이다. 인간과 세계의 '작음'을 '위'가 아니라 그저 '밖'에서 그려 낸 '겸손함'이야말로 그의 천재성의 근거가 아니었나 싶다. 순박한 시골 청년과 예민한 인텔리겐치아가 공존하는 미남형 얼굴, 스물네 살에 처음 각혈을 하고서 평생 골골대다가 모스크바예술극장의 배우와 결혼한 지 3년만에 장결핵으로 사망한, 애달프고도 항망한 삶 역시 그의 문학의 일부가 되었다. (중략) 아들을 잃은 자신의 슬픔만으로도 버거운데 이제 막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고서 분노하는 남자의 푸념을 들어주어야 하는 시골 의사(「적들」), 기강 확립을 내세워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다가 관 속에 들어가서야 평온을 얻는 희랍어 교사 벨리코프(「상자 속의 인간」), 천재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정신 분열증을 앓다가 피를 토하고 죽는 학자 코브린(「검은 수사」)……진부하고도 황망한 상황 속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급기야 엎어지는 그들이 매력적인 것은 어설프고 촌스럽기 때문이다. 체호프가 바로 그런 매력을 지닌 작가이다. (182-183쪽. 이 글을 읽고 으음 그런가 체호프가 그런 얼굴이었나…싶어 새삼스럽게 체호프 사진을 검색해봤음. 아니 원래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었나 싶어 깜짝 놀랐다ㅋㅋㅋㅋㅋㅋㅋㅋ 내 기억 속 체호프는 안경과 수염뿐이었는데…내 기억 도대체 무슨 쓸모????)


책 전체가 360쪽 정도니까 그렇게 두껍지 않은 편인데, 담겨 있는 책 얘기들은 생각보다 꽤 많다. 한 편의 글이 보통 5페이지 정도,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는 분량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읽기 전에는 5장과 6장이 제일 재미있을 것 같았고, 다 읽고 난 후에는 2장과 3장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5장과 6장이 덜 재미있었던 건 아닌데 2장과 3장의 테마가 나에게 더 와닿았나 보다. 수많은 정보들이 오가는 사회에서 시급히 섭취(!)해야 할 지식도 많은데, 실제로 일어난 일도 아닌 문학을, 그저 상상의 산물에 불과한 소설을 굳이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부딪힌다는 느낌이 최근 몇 년 간 많이 들었기 때문인 듯하다. 




한동안 나는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고민했었다. '나는 이제 소설 안 읽어. 너무 뻔하거나 너무 말도 안 돼. 더 못 읽겠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여럿 만나기도 했다.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가 죽을 때까지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소설을 통해 겪어 봄으로써 타인의 삶을 더 잘 이해하고 인간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내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면, 그냥 그 시간에 소설을 읽지 말고 인간에 대해 다룬 과학책이나 철학책, 우리 사회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사회과학책을 더 읽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진지하게 해 봤다.

하지만 지금은 그 고민에서 매우 자유로워졌는데, 나를 자유롭게 해 준 '나의 답'을 이 책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아래와 같은 부분에서. 

죄악을 비껴 가려는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 그것을 무참히 조롱하는 야비한 운명의 테러, 그럴수록 더욱더 거세지난 앎과 자유를 향한 열망, 끝으로 크나큰 죄악 앞에서 행해진 잔혹한 자기 단죄……. 인간 삶의 이 비극적인 아이러니 앞에서 연민과 고통을, 나아가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53쪽)

과학이 이토록 발전했음에도 자연의 힘, 탄생과 죽음의 신비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전율한다. 때문에 자연-신과 인간이 한데 어우러져 생명의 기운을 한껏 뽐내는 『변신 이야기』 역시 여전히 재미있게 읽힌다. (58쪽) 

그러니까 내가 찾은 답이 바로 저것이었던 것이다. 다른 책을 통해서도 인간의 삶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얻을 수 있고, 인간 삶의 비극적인 아이러니에 대한 지식을 구할 수 있겠지만, 소설이 나에게 주는 것만큼의 연민과 고통과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건 쉽지 않다는 것. 과학이 발전하고 사회가 체계화되며 조직화되었지만, 많은 정보를 쌓아야겠지만, 나에게 더 즐거움을 주는 건 신비로운 이야기인 것. 그 앞에서 나는 전율하는 것. 삶을 고통의 동의어라 여기기에 '살아야 하는 시간들'을 조금이나마 덜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가장 손쉽게 재미를 취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지금으로서는 여전히 소설을 읽는 것인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을 읽은 뒤 꼭 읽어야 할 책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었다. 『변신 이야기』에 대한 글을 읽으며 중학생 때까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매우 좋아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다시 읽고 싶어졌고, 삶의 아이러니에 집중하면서 『오이디푸스』와 『리어 왕』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모든 것을 파괴할 뿐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를 향해 돌진하고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리라. 지옥 한복판에서라도 너를 향해 작살을 던지고, 가눌 수 없는 증오를 담아 내 마지막 숨을 너에게 뱉어 주마.라는 구절이 너무 인상 깊어서 『모비 딕』에 다시 도전해봐야 하나 고민했고, 역시 사람이라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어야 하는 건가 싶어 또 고민 중이다.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는 『아Q정전』, 『안나 카레니나』, 『달과 6펜스』도 더 나이 먹기 전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싶다.

사실 나는 세계 문학, 그중에서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세계 문학 '고전'을 진득하게 읽을 수 있는 시기란 역시 10대 시절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페이지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다디단 과실을 탐욕스럽게 받아먹을 수 있는 나이, 이미 굳어진 눈과 제한된 사고로부터 그나마 조금 더 자유로운 나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집중력이 짧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어렸을 때는 책 한 권 붙잡고 있으면 한두시간이 훌쩍 지나갔는데, 요즘은 30분간 책을 쉬지 않고 읽는 것도 쉽지 않아졌다. (쓰다 보니 자꾸 슬퍼진다????) 나 역시 10대 시절에 세계 문학 '고전'을 가장 많이, 가장 열심히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도, 톨스토이도, 샬럿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도, 카뮈도, 카프카도, 셰익스피어도, 고골도, 발자크도, 에밀 졸라도, 찰스 디킨스도, 헤밍웨이도, 찰스 디킨스도, O. 헨리도, 모두 10대에 재미있게 읽었던 작가들이다.

하지만 학교와 학원을 오가느라 정신 없이 바쁜 데다가 스마트폰에 하루 종일 시선을 두고 있는 게 너무 당연한 일상이 되어 버린 요즘 10대들을 생각해 보면, 그들에게 이 '고전'을 진득하게 읽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구나 싶다. 그리고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곰곰이 짚어 보니, 나 역시 20대 이후에 읽었던 책이나 10대 때 읽고 재미있어서 20대 이후에도 여러 번 찾아 읽었던 책들을 훨씬 더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더라. 『오만과 편견』도 그렇고, 『제인 에어』도 그렇고, 『폭풍의 언덕』, 『체호프 단편선』, 『허클베리 핀의 모험』, 『필경사 바틀비』, 『이방인』, 『장미의 이름』도 마찬가지. 그러고 보면 고전이란 그저 유명한 작품이나 오래된 작품보다는 한 번 완독한 후에도 계속 찾아 읽게 되는 작품, 다시 읽을 때마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재미를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에 붙여주어야 할 이름표가 아닌가 싶다. 내게는 이 위에 나열한 그 책들이 아마 '나의 고전'이겠지. 

부디 이 마음가짐이 행동으로 이어져서 올해가 가기 전 이 책 속에 언급된 고전 작품 중 세 권이라도 읽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첫 번째 책을 뭘로 하지…『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안나 카레니나』는 너무 두꺼워서 첫 번째 책으로 삼기 힘들 것 같은데…그만 고민하고 내일 도서관에서 『오이디푸스 왕』을 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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