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있다
전여옥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점들을 '르뽀'형식으로 담아서 '화끈'하게 공격하고 있으며 결말에는 저자 자신이 생각하는 우리나라에 대한 희망섞인 전망과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한 제언을 제시하고 있다.

전여옥씨의 글쓰기의 장점은 일단 '화끈솔직하다'는데 있다. 그녀 특유의 직설적인 화법은 독자들에게 정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대단히 용이한 화법인 것 같다. 이니셜로 표기하긴 하지만 분명히 아는 사람일텐데 저렇게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인정사정 보지 않고 펜을 휘두른다. 이러한 솔직함은 그녀 자신의 주위 사람들을 주로 소재로 잡는다는 점과, 자신의 이야기를 좋던 나쁘던 무리없이 녹여낸다는 점이 양념으로 결합하면 더욱 치명적인 매력이 된다. 특히 같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분량에 걸쳐 전업주부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을 읽으면 묘한 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화끈함'으로 일관했다면 지속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강준만 교수를 위시하여 화끈한 필자들은 얼마든지 많다. 그러나 왜 전여옥인가? 그녀가 비판하는 대상들이 대부분 사회 권력층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즉 그녀는 '한국사회 상층부의 르뽀작가'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비아냥거리는 뜻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위치를 충분히 활용하여,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는 계층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또한 특유의 통찰력은 그 안에서 작동하는 한국사회의 매커니즘을 상당 부분 냉철하게 꿰뚫고 있다. 이러한 소재선정은 독자들에게 관음증적인 쾌감을 준다. 한국부르주아의 은밀하면서 지저분한 이야기들을 들려주는데 쾌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요즘같이 빈부격차와 계급갈등이 심한 세상에는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라고 할 수있다. 담담히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을텐데, 통쾌하게 독설을 퍼붓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있을까? 이러한 장점들 때문에 그녀의 책을 읽으면 기분이 후련해진다. 여기까지는 그녀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그녀의 다른 저서를 포함하여) 이 책은 두 번 세 번 곱씹어 읽게 되면 상당히 불편해지나 최소한 맥빠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예전에 나는 전여옥씨가 공적인 이타심이 아니라 사적인 이기심으로 비판을 하는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한 적이 있다. 풀어서 말하자면, 한국 사회의 발전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한국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하지만 비판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동기 자체를 해부하겠다는 생각은 개인의 머릿속을 해부하겠다는 상당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중단해 버렸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불편한 이유 하나는 찾을 수 있었다. 이 책 전체에서 감지할 수 있는 전여옥의 자기모순, 아니 자가당착이 불편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남자를 위로하기 위해 쓰여진 '그들의 저철한 선택-종신보험'의 일부를 보자.

K씨의 마누라는 현재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 유학 중이다. 명문대를 나와 방송국에서 그런대로 자리를 잡은 그의 아내는 '공부를 하겠다.'는 대책없는 지적 허영심에 사로잡혀 미국 유학을 떠났다. 그 엄청난 학비와 생활비를 남편에게 떠넘긴 채, 아침이고 점심이고 저녁까지 회사 식당에서 2500원짜리 식판으로 세 끼를 해결하는 그에게 마누라는 '돈이 모자라 빠듯하다.'는 이메일을 하루에 한 통씩 보낸다.

이 내용에 공감할 수도 있고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뒷표지의 저자의 약력에는 '현재 이화여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중'이라고 당당히 적혀있었다. 한참 웃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가? '대책없는 지적 허영심'과 다른 글에서 쓰여진 표현대로 '이제 벤치에 앉아 자리를 덮히고 있던, 그러나 눈부신 능력을 지니고 있는 여성 인력'을 도대체 누가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만약 제3자가 '공부를 하겠다.'는 지적 허영심에 사로잡혀 이화여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중에 있다라고 그녀를 비판한다면 무어라고 대답할 건가? 나는 '이제 벤치에 앉아 자리를 덮히고 있던, 그러나 눈부신능력을 지니고 있는 여성 인력'이다라고 대답할 것인가? 게다가 전여옥씨도 이화여대라는 '명문대를 나와서' KBS라는 '방송국에서' 일본전문특파원으로 '그런대로 자리를' 잡았던 사람이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와 전여옥씨의 차이점을 발견해내지 못했다. 해외유학을 갔기 때문에, 유학비를 남편에게 부담했기 때문에 나쁜 여자라는 것인가? 냉정하게 전업주부였던 기혼여성이 재취업 내지는 공부를 함에 있어서 자기 돈 가지고 시작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된단 말인가. 전여옥씨 같이 '선택밭은 소수'나 남편에게 손 안 벌리고 공부하는 것이 가능하지, 일반여성이라면 시댁이던, 친정이던, 남편이던 손을 벌려야 할 것이 아닌가. 누누이 이야기하는 여성의 사회진출을 격려하고 싶었다면, 이렇게 막무가내로 비판할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균형감각을 갖추고 이야기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한다.

다른 예. '엽기적인' 그녀의 '염치없는' 초대장 에피소드. 한국의 전업주부를 비판하기 위해 어떤 사장 부인의 어처구니 없는 출판기념회의 풍경을 재미있게 묘사한다. 내용 자체는 의미가 있고 설득력도 상당히 있다. (개인적으로는 위에서 이야기한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는걸까 싶은 초강력 에피소드의 한 편이다.)  그런데, 내가 의아한 것은 그 자리에 전여옥 본인도 있었다는 점이다.

책의 상당수의 지면에서 온갖 종류의 '연'에 대해서 엄청난 독설을 퍼붓는 그녀는 왜 출판기념회에 참석했을까? 설마 저자로써 책의 소재를 찾기기 위해서 방문한 것일까? 그 날의 출판기념회가 우스꽝스러울 것을 미리 알고? 그녀는 사장과의 '인간적 정의' 운운하며 대충 얼버무렸지만,  이 표현 자체가 참석 동기가 사장과의 연 때문이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여기서 또다시 의문이 생긴다. 그녀 자신의 '~연'은 건전한 네트워크인가? 인간적 교분은 학연, 혈연, 지연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비이타적인 따뜻함이란 말인가? 그걸 누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학연, 혈연, 지연을 타파하자고 할때는 이런 류의 '인간적 정의'가 다른 가치를 누르니까 학연, 혈연, 지연 등을 극복하자고 하는 게 아닌가. '선배님' 운운하면서 책 갈피에 써넣은 이야기는 학연이 개입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녀의 화끈함만큼이나 이상한 장면이었다. 차라리 '여성들이여 테러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더럽고 아니꼬와도 기존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라라고.' 충고를 했더라면,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다른 책에서는 이렇게 충고했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안난다.)실제로 김지룡씨의 책에는 이런 류의 글이 있다.

원론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책과 그녀의 관계도 모순적이다. 책 전반에 걸쳐 엄청난 독설을 늘어놓으면서도 다른 지면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은 비판과 비난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다. 물론 악의적인 비난까지 일일히 듣는 적극적인 자세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하자. 그러나 최소한의 귀기울임도 필요없을 정도로 그녀는 완전무결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더 나아가 여성잡지처럼 읽히기 위해서 이 책을 썼는가라고 묻고 싶다.

그녀도 우리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 이러한 책을 쓰는 게 아닐까? 단지 책 많이 팔아 돈 벌자고 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도 남의 말에 무관심하면서 한국사회가 그녀의 화끈한 충고를 받아들여 바뀌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자기모순이다. 생각해 보면, 이 책의 출발부터가 모순이다. 책 제목은 '대한민국은 있다.'인데, 전체적인 내용은 '대한민국은 없다.'에 할애하고 있으니 말이다.

몇 가지 에피소드를 예를 들었지만 그녀의 이상한 모순은 책 전반에 걸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책 말미에 등장하는 대한민국의 긍정적인 모습과 그녀가 제시한 우리나라 살리기를 위한 제언이 상당히 가치가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힘을 얻지 못하는 것은 반드시 분량이 짧아서만은 아니다. 그녀의 텍스트를 꼼꼼이 되새김질하면, 형용할 수 없는 이중적인 모습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모순 속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전여옥씨의 지나친 자신감이다. 특히 여성에 대한 텍스트에서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맨 처음에 언급한 에피소드에서도 내가 느꼈던 것은 '유학간 그녀'에 대한 '전여옥 그녀'의 경멸감이었다. 어떨 때는 자신감이 지나쳐, 균형감각을 잃어가는 것 같다. 그녀의 독설이 독자에게 쾌감을 주는 데는 분명 성공하고 있지만, 자기중심적인 논리의 모순이 최소한 나는 불편하게 한다. 이 점이 처음에 언급했던 그녀의 비판의 진위여부보다는 비판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되고, 더 나아가 그녀에 대한 불편함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을 읽은 내 결론은 다음과 같다.

전여옥씨는 훌륭한 르뽀작가이긴 하지만 훌륭한 사상가는 아니다. 

'대한민국은 있다'는 현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탁월하게 유추해내고 대안 제시도 깔끔하지만, 문제의식에 비해 대안제시에 힘이 실리지 못하고 문제의식 자체도 약간은 갈팡질팡하는 그녀. 조금 안타깝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회의 모습들을, 특히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호평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거기까지라는 것이 문제이다. 그 이상으로 나갈수록 그녀의 단점들이 이 책의 가치를 흐릿하게 만든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오히려 전여옥에 대한 반감은 가신 편이다. 그래도 그녀처럼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라고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개인적으로 바램을 가진다면, 그녀가 현상 파악과 비판에만 몰두하지 않고, 대안제시와 약간의 균형감각을 갖춘 논리에 시간을 할애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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