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맞을 용기 - 세상이 당신의 선을 넘으려 할 때, 기꺼이 ‘지랄맞을’ 용기를 내십시오
조영훈 지음 / 모티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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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


이 책을 보자마자 제목이 참 용감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면 이럴 용기 쉽게 생기지 않으니까 말이다.

사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목과 같은 행동을 많이 해본 사람 중 하나인 것 같다.

터무니 없게 용기가 많이 생겼던 때가 있다.

전엔 그냥 앞만 보고 달렸기 때문일까? 주변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래서 한동안은 내 자신을 누르고 살아본 적도 있었다.

근데 역시나 나에게 맞지 않았다.

나는 이 용기를 버리면 안된다는 것을 최근에 느꼈다.

그 이유는 요즘 온 세상이 내 기준에서의 선을 자꾸 넘으려 한다. 

과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 기준에 맞춰서 살아 갈 이유는 없다.

나에게 맞게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 만으로도 에너지를 쓰기에 부족할텐데 다른 사람들을 먼저 위하기엔 내 에너지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튀는 행동을 하면 사회 부적응자 혹은 문제아로 찍히는 요즘 세상에 사실 그게 사회 부적응자 혹은 문제아로만 낙인 할 수 없는 것 같다.

나다움이 사라지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튀는 행동을 납득 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은 의견이라는게 조금씩 다를 수 있지 않은가 싶다.

요즘은 어떤 말이나 행동에 있어서 조금이라도 타인의 의견과 어긋났을 때 받아들이는 방법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사실 100명 중 1명의 의견이 다를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100명 중 100명이 같아야 한다는 룰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항상 매번 그렇지 않더라도 가끔은 모두가 말하는 정답에서 벗어날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가십은 끝도 없이 생긴다. 심지어 아주 작은 무리에서도 생긴다.

그걸 이미 알고 있지만 마리 퀴리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더 크게 느껴졌다.

그 당시 일어나면 안돌 일을 마녀사냥 당하면서도 끝까지 본인의 생각대로 이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 가십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끝까지 해나갔다는 것에 다시 한 번 나도 생각을 해봤다.

전에 나 역시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주변에서 오해를 하고 이야기를 떠들곤 했었는데 난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 이야기가 진실이 아닌데 내가 그 얘기에 반응해서 무엇하겠는가 싶었다.

그저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결국 그건 그냥 조용히 사라진 이야기로 변했던 일이 있었다.

세상이 억까 하더라도 그저 흘러가게 두고 내가 할 일에 집중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빈센트 반 고흐 역시 자신의 고집대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나로써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 책속의 위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세상이 말하는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는 신념을 가지고 사는 것이 너무 중요해졌다.

나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는 힘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하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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