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사이
아모스 오즈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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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오즈의 글은 처음이다. 페이스북에서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나의 친구의 친구겠지?) 나의 친구에게 권하는 `좋아하는 작가`의 리스트가 나의 리스트와 매우 닮아 있었다. 필립 로스, 줌파 라히리, 줄리언 반스, ...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댓글을 주목해 보고 있었는데 모르는 작가가 있었다. `아모스 오즈? 누구지?` 그래서 읽게된 책. 잘 모르는 사람의 책장에서 그가 권하는 책을 집어드는 느낌.

인간은 모두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간다. 요즘 학교에서는 마을교육공동체 라는 말도 많이 한다. 정책적으로 내려와 피곤한 일이지만, 마공의 생각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조언의 형태로 요청하지 않은 참견을 할 때나, 잘 알지도 못하며 간섭하는 것은 누구나 싫어할 터. 개인적으로 분절되고 서로 나누어진 지금의 삶에 공동체라는 말은 늘 기름처럼 나의 위에 둥둥 떠있다. 구체적이지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삶으로, 대안으로 다가왔지만 섞이기 어렵다는 느낌이었다. 서로 이야기하고 함께 살지만 그것이 `공동체`라는 명칭으로 묶이는 순간 속박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답답함.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키부츠 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급자족하고, 서로 일을 나누어 하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하는 삶은 유토피아적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림같지 않다. 함께 살아가다보면 사랑에서도, 일에서도 모두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기 마련. 하지만 이런 삶을 당장 실현할 수 없다면 공감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공동체 안에서도 외롭다는 것을, 결국 희생이 전제되어야 모두의 동의가 있는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사랑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결국 공동체 묶어도 그 밖의 삶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니, 이름이 없다 뿐이지 결국 크기가 다른 공동체 안에 우리 모두가 묶여 있음을.

아모스 오즈는 단편 소설을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그 정확한 지점을 잘 알고 있다. 8편의 소설이 모두 좋은 지점에서 끝난다. 여운을 남기기에도, 생각하기에도, 한숨을 짓기에도, 눈물을 흘리기에도 딱 좋은 지점에서. 그래서 그의 글을 더 읽어보기로 정한다.

덧, 에스페란토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은 지인에게서, 한 번은 소설로 이렇게 두 번이나 듣게 되고, 그에 관해 글도 썼는데. 정작 나는 에스페란토를 한 글자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뭔가 이쪽 길을 두드려 봐야겠다는 다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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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가 물었다. ˝왜 세상의 모든 슬픔을 어깨에 지고 곗는 거예요?˝ 즈비가 대답했다. ˝삶의 잔혹함을 못 본 척한다는 것은 어리석고도 죄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최소한 알고라도 있어야죠.˝ <노르웨이 국왕> 중에서

한번은 카르멜라가 햇빛을 받으며 서서 어떤 여자애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모시는 그 곁을 지나가면서 햇빛이 맞은편 벽에 드리운 그애의 그림자를 쓰다듬었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반은 뜬눈으로 지새웠다. <아버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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