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안드레아 - 열여덟 살 사람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다
룽잉타이.안드레아 지음, 강영희 옮김 / 양철북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해 5월에 강남 교보문고에서 친구를 기다리다가 <아들과의 연애를 끝내기로 했다>를 보았다. 간결한 흰색과 녹색으로 이루어진 표지에 끌려 잠시 넘겨 보려 들었는데, 글재주 있는 저자의 입담에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린 뒤 정작 책은 사지 않고 나왔다.


읽는 내내 너무 펑펑 울어서 눈이 벌개진 눈으로 친구와 곱창을 구워 소주를 마셨다. 친구에게는 무슨 책인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아직 미혼인 친구가 이해한다며 토닥여 줄 리 없었으니. 하지만 그 날 그 책을 읽던 자리에서 만큼 스스로를 ‘아들을 둔 아줌마'로 포지셔닝 한 날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껏 '육아의 어려움을 네가 아느냐?'를 주제로 떠들었던 것 같다.


여튼 그 책은 아들을 키우면서 만날 수 있는 소소한, 혹은 커다란 여러가지 에피소드로 무장하고 있었는데 주로 '나는 아들에게 이런 거 해 줬음’ 또는 '나는 아들한테 이거 못해줘서 좀 미안함'의 내용이었다. 애들 좀 키워본 엄마들이 모여앉아 나누었을만한 모험담. 거기에 우리나라 아줌마 정서에 꼭 맞는 '남편은 바빠서 육아 거의 안 함'과 '시어머니 모시고 아들 키웠음’ 두 가지가 더해져 즐거운(?) 에피소드를 거듭 생산하니 울다가 웃다가 참 재미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 글 속에서 아들은 그냥 '아들'이었다. 스무 살이 넘어 자신의 길을 찾아갔지만, 아들에 관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입맛이 특이해서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는 것과 자신을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두 가지 뿐이었다. 아들 하나 키우느라 개고생한 엄마가 있었지만, 아들은 없었다. 울다 웃다 재미있게 읽어놓고 책을 사지 않고 나온 이유다. (결국 다른 이유 때문에 그 책은 e북으로 소유했다.)


맞다. <사랑하는 안드레아>에서는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책에서 엄마 룽잉타이 신중하고 사려깊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아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재미있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새로운 사람을 대하듯 아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글을 읽는 내내 나도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만날 수 있도록 자신에게서 아들을 잘 분리시킨 엄마를 만날 수 있고, 고요한 밤 먼 나라에 있는 아들을 그리워하는 엄마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한 사람의 학자로 엄마를 바라보는 아들, 엄마에게 처음 여자친구와 헤어진 이야기를 하는 아들을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엄마 안에 수 많은 엄마와 여자가 있었고, 한 사람의 아들 안에 수 많은 아들, 딸과 독립적인 남성, 여성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학생을 가르치는 것과 다르다. 누군가 교사는 일생동안 자신의 학창 시절을 반추하며 살아간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학창시절 뿐만 아니라 온전한 나의 역사를 아이를 통해 다시 마주하는 일이다. 그리고 새로운 한 사람의 인생을 옆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일이다. 이 힘든 일을 우리 엄마와 아빠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해왔음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일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과 아이의 질문에 답하는 일상적인 대화가 막막 해질 때 마다 작잖은 절망과 마주친다. 그 절망에 이 책이 작은 다독임을 준다. 아직 멀었다고. 아들과 이렇게 대화할 수 있을 때 그때가 나의 성장의 마지막 부분의 시작이고, 아들의 새로운 성장의 시작이라고.


물론 이 글을 남편이 읽으면 너는 책이나 읽지 말고 애한테 말이나 잘 하고 TV 좀 그만 보여주라고 하겠지. 네네, 그래서 오늘은 우주와 읽을 책을 세 권 샀다. 어린 아들을 둔 지인들에게 <아들과의 연애..>와 <사랑하는 안드레아> 두 권의 책을 모두 선물 해야겠다.

정말로 이 세상에 `저항`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걸까요? 정말로 이 사회에 제가 지난 번 편지에 썼던 것처럼 우리가 `혁명`을 일으킬 만한 불의와 불공평은 이제 없는 걸까요? 우리가 행동할 만한 어떤 이상과 가치는 이제 없는 걸까요? 전 있다고 생각해요. 역시 있어요.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p71

엄마는 성인은 아니야. 엄마는 엄마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야. 도덕의 취사선택은 개인의 일이야. 논리가 끼어들 필요는 없어. p76

안드레아, 엄마는 네 편지에서 불안을 읽었어. 너는 네가 누리는 안락함이 불편했던 거야. 엄마는 네가 네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도덕적으로 불안을 느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몰라. 네가 일곱살 때였을 거야. 우리는 베이징에서 여름을 나고 이썼지. 장사치들이 작은 대바구니에 귀뚜라미를 넣어 팔고 있었어. 사람들은 영원의 시간을 노래하는 듯한 귀뚜라미 소리를 좋아했지. 엄마는 너와 필립에게 한 마리씩을 사줘쏙, 우리 세 사람은 그걸 목에 걸고 자전거를 타고 베이징의 골목골목을 쏘다녔어. 우리가 가는 곳마다 귀뚜라미 소리가 울려퍼졌지. 넓은 잔디밭에 도착하자 네가 갑자기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대바구니 안의 귀뚜라미를 풀어줬어. 그러면서 필립에게도 귀뚜라미를 풀어주라며 고집을 부리는 거야. 세 살짜리 필립이 귀뚜라미를 부둥켜안고 어떻게든 풀어주지 않으려 하자 넌 옆에서 애걸을 했어. "놔주, 놔 주자. 귀뚜라미는 자유를 좋아해. 녀석을 가두지 말자. 너무 가엽잖아…" 생각해보니, 엄마는 그떄, 네 성격과 기질이 어떤지를 알아차렸던것 같아. p79

민주주의사회에서 이런 결정의 순간은 수시로 찾아와. 단지 네가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을 뿐이지. p80

사랑하는 안드레아, 만약 누군가 손에 고무총을 들고 높은 곳에 서서 너와 대치하고 있다면 너는 네가 서 있는 낮은 곳에서 반격할래, 아니면 일단 높은 곳으로 올라간 뒤에 생각해볼래? p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