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북
이산하 지음 / 양철북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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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 즐거운 선물을 받았습니다. 양철북에서 나온 양철북을 받았다고 하면 어떤 양철북을 받은 것인지 참 헷갈리는 그런 책입니다. 이산하 시인의 성장소설입니다. 2003년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양철북 출판사에서 다시 펴낸 것이라고 합니다.


데미안보다 더 데미안스러운 책입니다. 경기도에서 나고 서울에서 자란 것이 컴플렉스인 저는 사투리를 따라잡기 위해 한 문장을 두어번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화 글에 ‘말'이 살아있어 쉽게 읽힙니다. 하지만 그 내용만큼은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음을 고백합니다.


누군가의 삶을 읽는 다는 것은, 그것이 허구이거나 허구가 아니거나 그 절절한 현실감에 마음이 시리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의 삶이 다른 이의 삶과 비교될 수 없는 하나의 유일한 모습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고요. 이산하 시인이 어떻게 살았는지 찾아보고, 인터뷰도 차근차근 읽어보며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많은 인물들이 그와 어떤 연결점을 갖고 있는지도 찾아보았습니다. 그가 어린시절에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사람들과 만났는지 조금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책에 등장하는 많은 고전들과 그것을 읽어낸 철북이(또는 이산하 시인)의 마음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달걀은 어떻게 깨어지는가'에 나오는 법운 스님의 편지와, 후기는 그냥 읽어 넘기기 힘들었습니다. 그 필체가 담담해서 더 그랬습니다. 누구든, 읽고 나면 '나는 언제 알을 깨고 나왔는가 혹은 나오게 될 것인가’ 질문하게 될 글입니다. 계속 여운이 남네요. 저라도 욕심내어 다시 펴내고 싶은 책입니다. 제가 조금 더 나이 많았다면(한 스무 살 정도?) 우리 시대의 데미안이라고, 소개하고 싶었을것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밝지도 탁하지도 않은 책 표지의 색과 그림, 그리고 장 마다 그려진 나무 그림도 의미있고 좋습니다.


얼마전, 노트북을 집에 두고왔다며 집에 계시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거는 신규 선생님을 보며 아빠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존댓말로 썼습니다. 하하

일요일마다 동네 뒷산 꼭대기로 올라가 마른풀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고는 하염없이 동네를 내려다보았다. 이 추운 겨울, 모두 행복한데 철북이 혼자만 불행한 것 같았다.아니, 모든 불행을 철북이 혼자 뒤집어쓴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도 책도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2학년 때 도서관에서 읽었던 안톤 체홉의 단편소설들만 자꾸 떠올랐다. 그것도 이상하게 소설의 마지막 구절들이었다. 그의 소설은 이렇게 끝나는 게 많다.
"그리고 죽었다."
그런 철북이에게 유일한 위안은 밤마다 휴대용 트랜지스터라디오에서 나오는 가수 김정호의 노래들이었다. 늦가을의 무덤 위로 흩날리는 가랑잎 같은 그의 노래들은 아픈 자는 더욱 아플 것이고, 슬픈 자는 더욱 슬플 것이라는 메시지로 들려 좋았다. 그랬다. 아픔과 슬픔은 더 큰 아픔과 슬픔으로부터 위안받는 것이지, 적당히 가불한 희망으로부터 위안받는 것은 아니었다. 127

앞으로 넌 펜으로 힘껏 북을 쳐라. 양철북, 이름대로 그게 니 팔자다. 단, 글을 쓸 때는 항상 연필을 뾰족하게 갂아서 쓰고. 228

끝을 뾰족하게 깎으면 정의로운 창이 되고, 구부리면 밭을 일구는 호미가 되고, 구멍을 뚫으면 아름다운 피리가 되는 대나무처럼 네 몸과 마음을 항상 걸림이 없도록 하여라. 그리하여 네가 어디에 있든 작고 낮고 가볍고 그리고 느린 것들의 두 손을 번쩍 들어주며 그들의 이름을 크게 불러주는 사람이 되거라. 절대고독의 중심에 우뚝 선 자, 그가 곧 수도자요, 작가가 아니겠느냐.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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