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 - 알바노동자의 현재와 미래
박정훈 지음 / 빨간소금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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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근처에 아주 작은 편의점이 하나 있다. 10년 넘게 세탁소가 있던 자리에 폐업을 알리는 종이 쪽지가 붙더니 이내 번듯한 편의점이 되었다. 그곳의 점장은 사라진 세탁소 사장의 아들일까? 아니면 어디 좋은 자리없나 알아보다 이곳에 오게 된 걸까. 미스테리하지만 묻지 않는다.

내가 들르는 시간은 주로 5시 반-6시 사이다. 주로 맥주를 산다. 내가 좋아하는 맥주를 점장은 알고 있다. 그때 즈음에는 저녁 근무를 하는 알바생과 점장을 함께 만날 수 있으니까. 알바생은 자주 바뀌지만 점장은 계속 나를 만나므로 다른 맥주를 들고가면 ‘오늘은 다른 거 드시네요.’ 하고 알은체를 한다. 밤에 가면 알바생만 있는 걸 보면 점장이 낮에 근무하고, 알바생이 밤에 근무하는 것이리라.

그 시간의 점장과 알바생의 표정은 늘 밝지 않다. 좁은 카운터 뒤에서 점장은 늘 알바생에게 잔소리다. 보통은 손님이 들어오면 끊어지기 마련인데, 어느 날은 굉장한 기세로 잔소리가 쏟아진다. 앉아서 핸드폰만 보지 말고 뭔가 일을 하라는 것이다. 어디 앉아있을 만한 곳도 없어 보이는 카운터 뒤에 점장과 함께 서서 침과 잔소리를 한번에 받아내는 알바생의 영혼을 잃은 표정.

그런 날은 어색하게 카드를 받아들고 주섬주섬 맥주를 챙긴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그의 목소리 사이를 비집고 점장의 꾸중은 이어진다. 더 큰 소리로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라고.

박정훈님의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를 읽었다. 그러면서 또다른 누군가의 집 앞에 있는 전국 3만여 개의 편의점에서 매일 점장의 잔소리에 시달리는 이런 알바생들이 계속 떠올랐다. 재미있게 읽었다. 통계와 인터뷰, 인용과 상상이 적절히 조화되어 있는 글이다. 맥도날드, 편의점, 여성 알바를 구체적 사례를 들어 언급한 점도 좋았다. ‘알바’로 뭉뚱그려진 그 노동의 사이에서 생동감 넘치는 알바생들이 튀어나와 자신의 경험담을 증언하는 모습이다. 생생한 알바노동의 사회학. 강력추천.

“여기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노동자 혐오가 깔려 있다. 편의점 알바노동자는 나보다 하층 인간이다. 그런데 그런 인간에게 무시당했다는 분노가 폭력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내가 제어할 수 있을 것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행사가 거대한 권력이나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맞서는 것보다 쉽기 때문이다.” 82쪽

“용모 단정이라는 전가의 보도는 의외의 효과를 낸다. 구직자로 하여금 자신이 자격이 되는지를 검열하게 만든다. 그 결과 사장은 두 가지 이점을 얻는다. 스스로 자격을 의심하는 노동자를 손쉽게 다룰 수 있으며, 노동자들이 자격을 갖추기 위해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꾸미기 노동을 한다는 점이다.” 107쪽

“사장들은 자주 ‘화장은 예의’라고 말한다. 여성의 꾸미기가 자기 관리와 노동 조건을 넘어서 인성으로까지 치환되는 순간이다.” 110쪽

“남성은 자신의 고생을 생색낼 수 있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과제를 부여받는다. ‘내가 이렇게 무거운 걸 옮겼어. 이렇게 힘든 일을 해냈어.’ 반면 여성은 늘 타인의 시선을 기준으로 수동적인 과제를 부여받는다. ‘내가 손님에게 예쁘다는 말을 들었어.’ 무엇을 차별이라고 해야 할까? 중요한 것은 누군가는 노동자로 인정받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인형으로 인정받기를 요구받는다는 사실이다.” 121쪽

“알바노동자들의 하루 20분짜리 무료 노동에 대한 문제 제기가 어쩌면 정규직 노동자들의 하루 2시간짜리 무료 노동을 비추는 거울이 될지도 모른다.” 158쪽

“결국 그 사람이 하는 말이 ‘그러니깐 나이 처먹고 알바나 하지’였어요. - 20대에 잠깐 하고야 말아야 할 알바 노동시장에 계속 머물러 있는 50대의 무능력에 대한 비하일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기에 실패한 인생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잔인하다.” 2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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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5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의눈물 2019-01-25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본사와의 계약구조가 개선되어야 점주도 알바도 살기 좋아질 것 같아요. 점주 입장에서 본사에게는 을 입장이니 자신이 갑이되는 알바생을 뜯어먹으려는 것 같아요. 모두가 모두에게 갑질하는 세상이 슬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