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야 이 책을 읽었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
백 명의 추천을 받고, 또 세 명에게 선물한 뒤 갖은 감사치레를 받은 후에야 겨우 날 위해 이 책을 집어들었다. 기대가 큰 만큼 좋은 날 읽으려 아껴 두었다고 되지도 않는 변명을 갖다 붙여 본다.

호젓한 일요일 오후, 동구 덕분에 난 실성한 여인네처럼 히죽거리며 웃다 눈물짓다를 반복했다. 동구가 기쁠 땐 나도 가슴을 열어 기쁜 숨을 쉬었으며, 동구의 기특한 생각엔 나도 모르는 미소를 지었고, 아픈 일들을 이겨내는 동구를 볼 때엔 안타까움에 가슴이 에여 왔다.

이렇게 사정 없이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아이. 삶에 지친 나보다 훨씬 깊은 속내로 내 맘을 보듬는 이 아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의심스러운 것은 내가 책이 아니었다면 이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내가 박영은 선생님이었다면 과연 동구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이 책은 내게 이야기를 넘어선 하나의 경종으로 들린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의미의 울림. 세상 보기좋은 것, 편한 것, 화려한 것, 강한 것, 새로운 것들 사이에서 혼동 없이 아름다운 것을 발견하고 소중하게 간직하라는 가르침이었다. 살아가는 현실 - 세상은 투쟁적인 것이고, 힘쎈 것이 옳은 것이라는 가치가 지배하는 - 속에서도 동구의 인내와 헌신을 '모자라는 짓', '바보같은 짓'이 아닌 아름다운 것 자체로 발견할 수 있는 마음을 견지하는 것... 당장의 내 앞에 던져진 초라한, 하지만 절실한 숙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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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은 후 작은 의문이 들었다.

작가는 분자생물학을 공부한 자연과학도였다. 그런데 다른 학문도 아닌 '분자생물학'을 공부한 이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 분자생물학이라면 인간의 마음조차도 진화의 산물이라거나 사람의 성품 역시 날 때부터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는 것, 등을 공부하는 학문이 아니었던가? 한때 분자생물학 관련서를 몇 권 읽고 인간의 본성에 대한 혼란에 휩싸인 적이 있는 나로선 (아직도 별로 해결되진 않았지만) 작가의 이력이 생각할수록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나서 다시 작가 후기를 읽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런 구절이 있다.

"어린 나이에, 스스로가 제일 약자에 해당하는 상황이면서도 촉촉한 인내와 헌신으로 주변을 끌어안는 그들의 모습은 나에게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주었다. 한쪽 성(性)의 전유물로 칭송되는 많은 미덕들이 실제로는 거짓이나 허상에 불과하며, 가치 있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미덕'임을 소년들은 담담하게 보여주었다. 나와 다른 쪽의 성(性)을 가진 사람들을 오로지 적으로만 여기고 어떻게 싸워 이길까만을 연구했던 나 자신의 태도가 참으로 옹졸함을 느끼게 하는, 그들은 나의 어린 스승들이었다."

내가 했던 고민을 좀 섞어 작가의 충격을 유추해 보자면 이런 거다. 인내와 헌신, 타인에 대한 배려와 같은 가치는 여성성 안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소년들은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미덕을 견지하고 있었다. 오직 건설하거나 부수는 것만 아는 남성들 - 아직 소년이긴 하지만 - 안에도 이런 것들이 있다니... 수만년을 이어왔다는 DNA 나사구조보다도 내가 만난 이 인간의 미덕이 더 고귀한 것이다, 라는 가르침을 얻은 건 아니었을까.

그런 가르침이라면 감히 스승이라 부르기에 충분할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증거를 찾으려 애썼고, 그럴 때마다 작은 기쁨을 맛보기도 했지만 아직 그 반대를 뒤집을만큼 충격적인 경험을 하진 못했다. 아니, 경험하고도 작가처럼 소중히 품지 못했을 테지.. 그래서 작가의 깨달음엔 작은 부러움이 인다. 언제쯤 난 이 모순들을 깨치고 명쾌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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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12-26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를 제가 갠적으로 안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뿌듯하죠^^

sunnyside 2004-12-2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 여기 동네에 그 분 팬 100명 있거든요. 만나면 꼭~ 좀 전해 주시구요. 그 작가분 세번째 작품 나오면... 싸인본, 아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