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이등병

어제는 엄마와 함께 포천에서 군복무 중인 동생 면회에 다녀왔다. 11시에 동생을 만나 읍내로 나왔는데 할 일이 없었다. 저녁 7시까지만 복귀하면 되었기에 서울이라도 데려와서 좋은 구경, 맛난 음식을 사주고 싶었지만, 면회 외출의 경우 포천 밖으로 나가는게 허락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동면 읍내는 길이로 약 200 m. 2차선 도로를 가운데에 두고 양 옆으로 늘어선 것들이 전부였다. 별 수 있나.. 만나자 마자 밥 먹고, 어슬렁 거리고 비디오 한편 때리다가 또 밥 먹는 수밖에.

이등병의 식욕이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전에도 집에 전화를 해서 "밥 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프다." 심지어 "밥을 먹고 있는 중에도 배가 고프다" 란 불가해한 말을 했다는데... 한번은 집에 보내는 편지에 "바나나 우유, 콜라, 환타, 사이다, 식혜 ... (기타 음료수 이름 줄줄이) ... 꿀꺽~" 이렇게 한 줄을 써서 보냈다고 한다. 후에 왜 그랬는지 물어보니 더워죽겠는데 내무반에 뜨거운 물밖에 없어서였다고. 겨울에도 냉동실에 찬물을 얼려먹는 놈이니 오죽 했을까.

우쨌든 11시 반 점심에, 소갈비 2인분, 냉면 한 그릇, 밥 반공기를 먹는 동생을 흐뭇하게 바라본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 지나지도 않은 4시에 "배가 고프다"더니(난 내가 잘못 들은줄 알았다), 삼겹살 3인분에 밥 한공기를 먹어치운다.

끝도 없이 움직이는 젓가락을 놀라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엄마와 나에게, 젓가락질을 잠시 멈춘 동생이 머슥한듯 묻는다. 왜 안 먹느냐고. 우리 엄마 하는 말씀이 "OO야, 민간인들은 점심에 고기먹고 저녁에 또 고기 먹는 게 쉽지 않어..."
정말 위대한 이등병이다.

- 엄마 마음, 누나 마음

토요일에 서울 올라오신 우리 엄마. 밤이 되기가 무섭게 자리를 펴고 주무실 준비를 한다. 그러고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나보고도 빨리 자라 이른다. 나, 컴퓨터 앞에서 죽치고 앉아 있다가 2시가 넘어 잠든다.

일요일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 부산 떠는 우리 엄마. 아직 한밤중인 날 깨운다. 빨리 일어나서 갈 준비 하라고. 나,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내고 뭉개다 겨우 일어난다.

챙겨서 동서울 터미널로 나가보니 9시 20분 차는 매진이고, 다음 차는 9시 50분. 기다렸다 9시 50분 차 타고 가자는 나의 권유를 무시하는 우리 엄마, 9시 20분 차에 입석으로 가자신다. 흑, 거기가 어디라고 서서 가냐구요. 얼굴까지 노래지며 멀미하는 우리 엄마, 그래도 아들래미 기다리다 목빠질까봐 한시라도 빨리 가고 싶어하는 맘이란.

나, 우리 집에서 지하철 타고 동서울 터미널 가는 법을 엄마한테 열심히 가르쳐준다. "모르면 적어~ 아니야. 내가 나중에 적어서 보내줄께" 혹여 담번에 또 같이 가자고 하실까봐.. -.- 미안하지만 동생 면회는 이게 첨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빠져든다. 엄마 마음과 누나 마음의 간극이란 이렇게 큰 것일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水巖 2004-11-16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이등병 진입을 축하합니다. 胃大한 이등병이 건강하게 잘 있어서 다행이군요.

먹어도 먹어도 배거플때죠. 정말 남의 밥그릇의 밥이 많아보이기만 하죠. 잘 있다가 돌아오길 빕니다.

sunnyside 2004-11-16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다음 달이면 벌써 일등병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꼽아보니 벌써 군생활의 1/4 이 지났네요. 시간 참 빨라요.. 동생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요. ^^

mannerist 2004-11-16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뭐 서니님 동생에 비하면 오방 편한 생활이었다지만 그래도 이등병때 생각이 나네요. 면회 못 가시더라도 휴가 나오면 따뜻하게 맞아주세요. 가능한 한 "또 나왔냐?"란말로 국방색 군바리 가슴에 대못을 박지 마시구요. =)

sunnyside 2004-11-16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네 알겠습니다. 제 친구들한테도 그런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시간 잘 간다, 휴가 또 나왔냐, 란 말이 정말 상처 된다고 그러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