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A 가 요즘 회사 생활의 위기에 봉착했다.

친구는 어떤 에이전시에 다니고 있는데, 친구네 회사의 가장 큰 클라이언트와 의사 소통상 문제가 생겼다. 내가 보기에 큰 잘못은 아닌데,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 할 입장에 처했단다.

가뜩이나 일도 많은데 그런 문제까지 터지니, 정말 회사 다닐 맘에 안날 것이다. 엊그제는 나보고 같이 회사를 때려치고 여행이나 다니자, 는 기찬 제안을 한다. 나야 물론 그걸 꼭 '회사를 그만두고' 해야 할까? 라며 발뺌할 수밖에 없었지만. ^^;

10년째 지켜보는 그 친구는 어쩐 일인지 늘상 오해를 받는다. 사소한 말실수 때문에 회사 상사에게 꾸지람 받고, 친구와 다툼하고, 선배들에게 찍히고... 물론 그 원인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 친구는 너무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면 속에 있는 말을 다 털어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 친구 술 마시는 날이면 내가 다 불안할 정도다.

그런 A 가 첨엔 매우 낯설고, 친해지기 힘들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 1학년 여름, 속초의 한 콘도 옷장 속에서 울다 나온 후엔 (그 시절엔 술 먹고 같이 우는 게 유행이었다. -.-) 더 이상 그 친구를 오해하지 않는다. 요즘도 가끔 섭섭할 때가 있긴 하지만 악의는 아님을 믿기에 쉽게 넘겨버릴 수 있다.

그 친구 곁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몇 년 이상 그 친구와 관계를 맺어왔다. 또한 의리있고 의협심 강하고 남에게 신세지지 않는 독립적인 A를 좋아한다. 하지만 대개 가면쓰고 살아가는 사회생활에서 친구의 그런 속 깊은 모습을 알아줄리가 만무하다. 특히 상하 구도를 띄는 갑을 관계에서 그런 이해를 바라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에 비해 난 어떤가 하면 오해를 병적으로 싫어한다. 한 순간이라도 내가 의도치 않은 모습으로 따른 이들에게 비쳐진다는 생각을 하면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매번 변명하고 노심초사하고 두고두고 기억하고. 그런 내 모습이 또 싫어서 거꾸로 스스로를 세뇌한다. 나는 신경쓰지 않아, 이런 일은 아무 것도 아니야.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크게 손해 날일도 아닌걸.

A 와 나는 좀 섞어서 다시 갈라 놓을 필요가 있다. A 도 사회 생활을 좀더 편하게 하려면 늘상 자신의 진의가 전달될 것이라는 착각 내지는 자신감을 버려야 한다. 같은 말도 돌려서 할줄 알아야 하고, 하고 싶은 말을 참아야 할 때도 있을 거다. 나 역시 모두에게 나를 이해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대범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포기할 건 포기하다 보면 언젠가는 서로를 이해할 기회도 오기 마련이다.

A 에게 전화라도 한통 해봐야겠다. 클라이언트와의 문제는 잘 해결되었는지. 사표 던지기에 대한 갈망은 좀 잦아들었는지. 세계일주는 잠시 미루고, 지금 프로젝트 끝나면 어디 드라이브라도 가자고 제안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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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9-11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나도 서니님 스타일인 것 같아요. 혼자 오해라고 오해해서는, 오해하지도 않은 사실을 그저 미리 사과해 버리고 마는. 그래서 가끔 주변사람들을 황당하게 만들죠.
그나저나, 콘도 옷장 속이라, 인연의 장소 치고는 기묘하네요. 그 친구가 남자분이었다면, 필경 로맨틱한 뽀뽀를 했을 텐데~ *^^*
(뭐냐, 남은 심각한데 혼자 발그레...-.-;)

sunnyside 2004-09-11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하시다니, 반갑고도 다행. ^^;;
전 아예 리스크가 있는 의사소통은 미리 포기해버리는 고약한 버릇까지 있답니다. 우리 자신을 가져요. 불끈!! ^^

mannerist 2004-09-11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생각난건데요, 알라딘 US 물류팀으로 지원하셔서 유에스 각처를 여행하시는 건 어떨까요? ^_^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