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부모님에게 물려 받은 유전자 중 맘에 안드는 게 몇 가지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술 먹으면 빨개지는 얼굴이다. 맥주 몇 잔만 마셔도 얼굴이 벌개지고 열이 나서리... 같이 많이 마셔본 사람들은 신경을 안쓰지만, 첨 술을 마신 사람들은 꼭 묻는다. "괜찮으세요?" 이게 바로 울 엄마 아부지 탓이다. 두 분 다 술 한 잔에 얼굴이 벌개지시는 스탈이시니.
오늘 퇴근 무렵, 목도 가슴도 답답하여.. 맥주 한 잔이 절실했는데, 이미 시간도 늦었고 남은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집에 오는 길 "뚜 뚜르 뚜르르르... 그냥~" 마신다는 맥주 PET 병을 하나 사다 반쯤 마셨는데... 또 얼굴이 벌겋다.
술먹고 얼굴이 빨개지는 건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다.
좋은 점은 머물고 싶지 않은 술자리에서 빨리 탈출할 수 있다는 거다. 벌개진 얼굴로 머리에 손을 짚으며, 휴~, 저는 들어가봐야겠네요.. 하면 붙잡을 사람 별로 없다. 물론 좋은 술자리에서 누군가 "괜찮으세요? 얼굴이 빨갛네요." 얘기하면 눈을 부릅뜨고 자세를 가다듬으며 말한다. "괜찮아요. 제가 원래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잘 빨개지는데.. 끄떡 없어요!"
하지만 '비즈니스'가 개입된 자리에서 얼굴이 발개지는 건 난처하다. 혹여 상대가 나를 하수로 보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화장실에서 분칠을 하며 수습을 해봐도 어쩔 수 없다. 목까지 벌개진 때깔을 어떻게 감출 수 있으리오.
난 여전히 부럽다. 술을 부어라 마셔라 들이키고도 안색 하나 안변하는 사람들... 그러고 꼭 자기 지금 취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그게 내 소원이다. 나 지금 취했다고 박박 우겨 보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