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가 마침내 알라딘 주간 베스트 1위로 등극했다. 대통령이 그 책을 읽겠다고 언론에 밝힌 날, 우연히 찾아온 신문기자에게 미리 말은 해두었지만, 확인하고 나니 재미가 있다. 하기사 나도 발표 후 그 책을 다시 꺼내보았으니, 왜들 이러나 싶지는 않다.

대통령이 그 책을 '또' 읽는다니 한편으로 우려스럽고, 한편으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려스러운 것은, 설마.. 혹시.. 대통령이 이순신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김훈이 그려낸 이순신에는 분명 거부하기 힘든 매력과 카리스마가 있다. 변명하지 않고, 피하지 않고, 열세인줄 알면서도 일자진으로 적을 맞아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영웅의 모습이 있다.

헌데... 대통령은? 무인이 아니라, 정치인이다. 이순신이 혐오해 마지 않던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인은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사람들을 설득하고 자신의 신념을 전파하고 이의 관철을 위해 나름의 정치 시스템에서 통할 수 있는 힘을 모으는 사람이다. 민주주의에서의 힘이라면 의정의 좌석수도 되겠고, 선거에서 지지하는 유권자수도 되겠고, 물론 광화문에 촛불을 불러모을 수 있는 힘도 포함될 것이다.

이순신은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 수 있었는지 몰라도 조정의 정치인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누군가를 처형한 날 일기에도 '아무개가 군령을 어기기에 베었다'(끝). 자신과 정을 통한 여인의 시체를 눈앞에서 보고도 '내다 버리라'고 명령하는 무심한 사람이었다.

난 이런 대통령을 원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현 상황은 모두 대통령이 의도하고 기획한 것이다! 라는 황당한 주장을 믿지 않는다면 여기에 오기까지 대통령도 일정한 부분의 책임이 있다. 자신의 신념을 펼칠 수 있는 (현 시스템에서 통하는) 정치적 힘을 가지지 않은 책임이다. 이 부분에 대한 성찰이나 전략 없이 다시 대통령 자리에 돌아온다면 끊임없는 정치적 공방 속에서 또 다시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대통령이 "<칼의 노래>를 다시 읽겠다"라고 언론에 발표한 것 자체는 높은 수준의 정치적 행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 '신'의 경지에 이른다. ^^;)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노무현=이순신'이 등치되는 순간 '노무현을 탄핵시킨 야당=이순신을 끌어내리고 귀향보낸 정치 모리배들'이 되어버린다. <칼의 노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이기에 그를 귀향보낸 이들의 입장은 살필 필요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읽기에 그 책을 읽게 된 많은 사람들 역시 <칼의 노래>를 다시 읽는 노무현 대통령의 속내만을 헤아릴 뿐, 그 이상은 필요치가 않은 것이다.

우쨌든 <칼의 노래>라도 잘 팔리니 다행이고.. ^^; (탄핵 이후 인터넷 서점 매출 OO% 하락-.-) 대통령이 그 책을 통해 원칙과 소신의 힘, 그리고 나라를 운명을 자기 것으로 받아안는 소명의식만을 배웠으면 좋겠다. 변명하지 않음(변명.. 말구 변론, 또는 해명이 필요할 때는 적극적으로 해야..), 대의만을 생각하느라 작은 것들을 보살피지 않음(많은 사람들은 작은 것들에 울고 웃고 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시고..) 같은 것들은 배우지 않았으면 한다.

** 토요일 광화문 집회에서 무대에 설치된 스크린에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몇차례 비쳤다. 그리고 사람들은 열광했다. 히야.. 이건 뭘까? 아이러니다. 과거 '말많은' 문인들에 맞서느라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동상이 바로 광화문의 이순신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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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우산 2004-05-10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순신 동상에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