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 창해 맑은내 소설선 3
이승우 지음 / 창해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믿지 않을 테지만, 왜냐하면 나도 믿지 않았으니까, 광화문 한복판에 땅굴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땅굴이라는 말이 걸리면 터널이라고 옮겨 들어도 상관없다. 그렇지만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땅굴이라고 해야 어감을 제대로 살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터널이라고 바꿔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 대한 광고를 우연히 접했던 날부터 광화문 한복판에 있다는 땅굴의 존재를 믿어버렸다. 땅굴의 모양도, 용도도,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들도 모른체, 그저 믿어버렸다. 몇 년 전 <식물들의 사생활>을 읽으면서 태평양 밑바닥 어디에서 자란다는 나무를 믿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니 나는 소설 속 화자보다 떠 빨리 김소령의 이야기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소설보다 먼저 나오는 작가의 말에서 이승우는 이 소설이 힘든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 땅속으로 나 있는 길을 소개하는 글이라고 고백한다. 사랑하기로 작정한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문득 사랑에 붙들려 이게 뭐지, 내가 왜 이러지, 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 스스로의 몸으로 현실 밖으로 길을 내야 하는 사람들, 열정은 뜨겁지만 착한 사람들, 이 소설은 온전히 그들을 위한 것이라는 고백이다. 작가 스스로 굳이 이런 고백을 하지 않더라고 나는 짐작할 수 있다. 이승우에게 사랑은 원래 그러한 것이었으니까. <식물들의 사생활>에서도 <생의 이면>에서는 인물들은 사랑하기로 작정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랑에 붙들려 어쩔 줄 몰라 했으니까. 그렇게 몇 편의 소설에서 가련한 사랑을 그려냈던 작가는, 이제 그 가련한 인물들이 사랑할 수 있는 틈 하나를 세상에 만들어주려는 시도를 시작한다, 그것도 광화문 한 복판에.

그러나 정작 기대했던 사랑 이야기는 더디 흘러가고, 땅굴의 정체와 땅굴의 사연은 쉽게 공개되지 않는다. 지독하게 완고한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은밀한 두근거림과 애절함을 기대했던 나는 그 사랑의 실체를 담담하게 진단하는 작가의 말에 책을 읽는 속도를 빨리 할 수밖에 없다. 사랑의 이중성, 질투의 속성을 짚어내는 작가의 인식에 동의하면 할수록, 내가 품고 있는 사랑 역시 그렇게 냉정하고 명확해지는 것 같아서, 나는 어떤 감정이입도 스스로 절제한다. 나는 보르헤스의 소설을 통해 확인했던 그들 사랑의 우연성을 나에게로 확장해, 낭만적이고도 애절한 꿈을 꾸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은 그런 내 의지를 자꾸만 배반한다. 너무나 매혹적일 게 분명한 자신의 사연은 자꾸만 숨기고, 사랑에 대한 냉정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는 화자의 운명적인 사랑을 포기하는 대신, 정체 모를 김소령에게, 그리고 소현세자와 묘선에게 기대를 건다.

교보문고에서 종로 소방서 근처에 이르는 길을 인물들과 함께 걸으면서, 이제는 다시 흐르는-그러나 왠지 아무 못마땅한-청계천을 떠올리면서, 나는 그들의 사연을 상상하며 조바심친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내 기대 역시 배반한다. 김소령의 사연은 그의 죽음 이후에, 카페 마담을 통해 너무나 간단히 소개되고, 소현세자와 묘선의 사랑 역시 김소령이 작성한 노트에 담백하게 기술될 뿐이다. 나는 소현세자와 묘선을 사랑을 충분히 짐작하지 못해 언젠가 들었던 단종과 정순왕후의 슬픈 풋사랑을 떠올렸고, 김소령의 사연이 너무나 아쉬워 일찍 결혼한 친구 한 명을 오래 마음에 품었던 친구 후배의 얼굴을 떠올렸다.  

묘선과 아현세자의 목숨과 바꾼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는 가슴에 싸한 아픔을 남겼다. 지하로, 땅속으로, 현실 밖으로 길을 내야만 하는 사랑, 그래야만 겨우 가능해지는 사랑이 있다.

그래서 인물들이 가슴에 싸한 아픔을 느낄 때, 나는 무감각한 내 자신을 조금 한심하게 생각하면서, 자꾸만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떠올린다. <생의 이면>처럼 취화당 일기와 두 인물의 사연과 김소령과 카페 마담의 사연이 조금 더 친절하게 펼쳐졌다면. 이 세상이 허락하지 않은 이 세 가지 사랑 이야기가 이따금 겹치면서 그러나 끝없이 갈라져 세 갈래의 길을 펼쳤다면. 이런 아쉬움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현실의 보이지 않는 뒤쪽. 우리들 사랑의 간절함과 안타까움이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틈. 일종의 블랙홀. 우리는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 틈을 통해 여기로 들어온 걸 거예요. 김소령은 여기가 우리들을 위한 집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곳은 비현실이고, 어쩌면 우리는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몰라요. 모든 게 다 꿈인지 몰라요. 김소령도 취화당도 땅굴로. 심지어 우리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굴, 이 틈은 너무나 매혹적이다. 어느 밤 랜턴 하나와 무릎까지 오는 장화 하나를 준비해 광화문 지하 어딘가에 있을 취화당을 찾아 떠날 마음을 먹게 할 정도로. 김소령이 건네 준 열쇠 꾸러미 없이 어찌 들어갈까, 하는 고민을 오래오래 하게 할 정도로. 어느 날인가 사랑에 붙들려 어쩔 줄 몰라 할 때, 어느 누구의 이해도 어느 누구의 지원도 받지 못해 세상 밖으로 길을 내어야 할 때, 내가 만들어내는 길 말고는 어디로도 발을 딛을 수 없을 때, 나에게도 김소령 같은 이 찾아와 세상에 없는 틈, 취화당의 열쇠를 건네 줄까? 그러면 나는 단 한 번 의심도 하지 않고, 취화당을 찾아 땅 밑으로 향하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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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5-10-24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가뭄에 비오듯 찾아오는 선인장 님의 리뷰로군요. 화들짝 반가웠구요. 역시나 촘촘한 글도 숨가쁘게 읽었습니다. <생의 이면> 이후 읽지 않았던 이승우 씨의 소설. 선뜻 집어들기가 두렵습니다.

코코죠 2005-10-25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인장님은 펜으로 글을 쓰지 않을 거에요. 아마 당신은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지도 않겠지요. 선인장님은

기다란 코바늘 두개만 가지고 있을 거에요. 그래서

온 종일 사유하고 생각한 것들을 길게 풀어내어 그 바늘로 조용 조용히

아주 조용 조용히

오랫동안 천천히 뜨개질을 하는 거에요. 맞죠, 제 말? 깜짝 놀라셨죠? 미안해요, 비밀을 말해버려서. 그런데 저는 밝히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요.

잘 지내셨나요?
저는 무척 그리웠던 거 같아요.



선인장 2005-10-25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님 > 오랜 가뭄에 비오듯, 그렇게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비는 아쉽고, 반갑고, 두근거립니다. 화들짝 반가워해주시니, 너무나 감사해요. 오랫만에 들러도, 늘 안부 물어주시는 님이 있어, 아직은 이 곳이 제 방처럼 느껴집니다.

오즈마님 > 오즈마님이야말로, 늘 촘촘한 뜨개질을 하고 있는 걸요. 오즈마님의 마음 안에서 사람과 사람과 시간과 시간이, 헐거워지지 않고 단단하게 매듭 지어 있는 걸 저는 자주 봅니다. 타인과 몸이 섞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것에 마음을 내주는 걸 어색해하지 않고, 그래서 모든 것들과 한 몸처럼 짜여지는 오즈마님, 잘 지내고 있죠? 저 역시 그리웠습니다. 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