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이 세상이 아무리 무섭고 험난하다 하더라도

그래도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은 살아야 하고

살 수 있어야 하고 살 수 있도록 도우며 살아야 하는 것이

생명 가진 사람의 의무이다.

 

고백하자면 작가 공선옥에 대한 나의 애정은 당위적인 것이었다. 그녀의 고향은 나의 본적지이고, 그녀는 80년 광주를 경험했고, 그녀는 고단한 노동의 현장에 있었으며, 그녀는 농촌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소설에는 소외 받는 사람들이 나와 고단한 삶을 살아냈고, 그녀의 소설에는 낯뜨거운 현실에 대한 생목소리가 존재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공선옥의 소설에 매혹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습관처럼 책을 샀고, 여러 권 산 책 중에 가장 먼저 그녀의 책을 손에 들었다. 그건 의무감에서 비롯된 행동이기도 하고, 내 삶에 대한 변명이기도 했다. 그저 그녀의 작품을 읽는 것으로, 그 작품에 나오는 어떤 삶에 아주 작게 반응하는 내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나는 이기적인 내 시간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위로받음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해서, 나는 공선옥의 작품을 빨리 읽어냈고, 동시에 빨리 잊어버렸다. 그녀의 언어는 섬세하기보다 투박했고, 그녀 작품에 나오는 삶은 눈 돌리고 싶은 비루한 현실 그 자체였다. 나는 그녀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 되기 싫었고, 그런 주인공을 만들어내는 그녀 같은 작가는 더더욱 되기 싫었다. 그저 그런 작가가 있다는 것, 그런 작가의 작품을 외면하지 않고 읽고 있다는 것, 공선옥은 그런 의미로 내게 존재했다.

그녀의 새로운 산문집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를 읽으며, 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물을 쏟는다. 그녀가 관심을 기울이는 삶이 그 전과 특별히 다르지 않음에도, 그 삶을 대하는 관점이 특별히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그렇다고 삶에 대한 나의 인식이 특별히 깊어지지 않았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쏟아지는 눈물이 나는 좀 당황스럽다. 여성작가들의 산문집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떨림 같은 건 고사하고 촌철살인의 적확한 비유 하나 없이 당위적인 소리들을 내뱉고 이 산문집. 그런데도 나는 조용히 울다가, 울다가, 문득 그녀에게, 그리고 이 책 속에 나오는 많은 이들에게, 그리고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열 몇 살 먹었을 그녀의 딸에게 편지 한 통을 쓰고 싶어졌다.  

어떻게 읽으면 이 산문집은 그녀 스스로 인정하듯이 상투성, 구태의연함, 계몽성 글에서 풍기는 매너리즘이 가득한지도 모르겠다. 공선옥은 산동네의 오밀조밀한 채송화, 시금치 화분에 대해, 오래 전 시골길의 추억에 대해, 그저 단어만으로 상투적인 인권에 대해, 너무나 투박하게 이야기한다. 시골길을 추억하는 그녀의 문장들은 왼쪽 가슴 아래께를 간지럽게 하는 미사여구 하나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과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문장들은 당위를 넘어서는 구호와 같다. 동화적 발상과 같은 "나눔의 철학"을 문제 해결의 대안으로 천연덕스럽게 제시한다. 그러나 그 상투성과 구태의연함과 매너리즘이 가득한 글 안에는 삶의 가장 밑바닥을 들여다볼 줄 아는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이 존재한다.

공선옥은 어지러운 간판이 난무한 도시의 거리를 비판하지 않고, 그런 간판을 내걸어야 하는 현실을 이해한다. 불 밝힌 네온사인과 그저 상호만이 커다랗게 적힌 현란한 간판 너머의 사연을 바라본다. 그런 작가의 눈길을 의식하는 순간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고, 지나치게 상업적인 간판들이 천박해 보인다고, 보다 깨끗한 거리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오던 나의 짧은 생각이 부끄러워진다.

공선옥은 화학조미료의 해악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미원의 달디 단 맛에 대해 말한다. 다시마와 멸치와 버섯을 갈아 천연조미료를 만들 만큼 삶이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맛이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그저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 것이 조금 더 인간에게 이롭지 않겠느냐고만 생각해 왔던 나는 미원의 달디 단 맛에 위로받는 사람들의 입맛에 마음이 시큰해진다.

친구와 다투고 들어 온 아이에게서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우고,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그 아이가 당당한 이탈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 당당해져야겠다고 다짐하는 이 엄마에게서 나는 그저 당위적인 관점에서만 교육문제를 비판해 온 내 관점의 한계를 깨닫는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가 이왕 먹고 살기 어렵다면 먹고 살기 어려운 속에서도 살아보려고 한번 애쓰는 것, 내가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가지고 있는 '존엄한 인간'이라는 자존심은 지니고 살자, 책 한 권 손에 드는 것은 바로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의 사람들이 그나마 버릴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챙기는 것의 일종이 아니겠는가"하고 역설하다가도, 금방 책 한 권 읽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며 그런 생각 자체도 오만임을 인식하고 자신의 말을 뒤짚는 작가의 인식에 동의하고 만다.

구걸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주머니를 뒤질 때,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저런 사람들에게 돈을 주면 안 된다고. 그러면 저 사람은 평생을 저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금 당장 돈을 주는 것보다 그들이 살 수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 말에 나는 언제든 동의한다. 그렇지만 지금 내 삶이 전부인 나는, 누군가가 구걸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이 사회의 구조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혹 그걸 안다고 해도, 오늘 하루 구걸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어떤 이에게 그 구조가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내 주머니를 뒤져 몇 푼의 돈을 그들에게 건네는 것.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가치들이 무엇인지를 인식하는 것. 그것 뿐이다.

사회의 모순에 대해 지적하고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무척 쉬운 일이기도 하다. 분노하고 비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삶에 손을 내미는 것. 우연히 떠난 버스여행에서 만난 고단한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주고, 이주노동자의 아이를 초대해 주고, 그 삶에 귀 기울여 주는 것.

작은 실천이라는 상투적인 대안이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것인지, 공선옥은 참 낮은 목소리로 전하고 있다. 삶의 주변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은 너무나 섬세해서, 타인의 삶에 손을 내미는 그녀의 손길은 너무나 고와서, 투박하고 강건하기만한 그녀의 문장들은 조금씩 가슴을 흔들고, 끝내 눈물을 쏟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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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5-10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인장님, 너무 좋은 리뷰예요.
저도 지금 저 책 오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선인장 2005-05-10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 칭찬, 감사해요...^^ 이 책, 참 좋더라구요. 님도 이 책과 더불어 좋은 시간을 보내실 수 있을 꺼에요...

hanicare 2005-05-1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선인장 2005-05-1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하니케어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