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코가 뜬다 - 제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권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상이라는 거에 혹해 이 책을 읽은 건 아니다. 한겨레문학상의 권위 같은 건 생각도 안 했다. 최민식과 홍명보를 닮았다(?)는 작가의 인상에 조금 혹했고, 그 선한 인상과는 달리 도발적인 제목에 호기심이 일었다. 지루하고 창백한 관념보다는 치기 어린 젊은이의 냉소가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오난이의 빈정거림은 날카롭지 않고 둔하다. 낯설기만 할 뿐 새롭지 않다. 이 사회의 갑갑함에 대한 분노는 그저 나의 것일 뿐, 나는 작가의 분노에 동참하지 않다. 슬프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고, 안타깝지도 않고, 재밌지도 않다.

다자이 오사무와 보르헤스, 이방인과 안나 까레리나. 그 외에 등장하는 수많은 작가와 작품과 수많은 예술가들과 그들의 음악. 물론 예술이란 것이 특별한 권위와 존경의 대상일 필요는 없다. 그저 시시껄렁한 드라마를 이야기하듯, 우리는 얼마든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말할 수도 있다. 술잔을 건네며, 그저 그 시간을 떼우기 위해서 문학에 대한 진지한 열정을 토로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그 많은 것들은, 한 순간의 수다라고도 여겨지지 않는다. 프롬에 대한 작가의 각주는 참으로 기가 막히다. 새로운 세대의 글쓰기라는 형식에 동서고금의 독서 편력을 자랑이라고 늘어놓는 불필요한 현학취. 작품 속 오난이가 그렇게도 혐오해 마지 않는, 고등학교 학습서 같은 지적 편력과 역시 마찬가지로 혐오할 듯한 사이버 공간의 말장난으로 점철된 소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나보다 어린 세대들의 차가운 냉소도 뜨거운 반항도 경험할 수가 없었다.

세대차이라고? 좋다, 뭐. 그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도, 흥미도 느끼지 못한 내가 정답에만 익숙해진, 모범시민이라고 인정하자. 그래도 좋은 소설이라면, 나같은 모범시민의 뒷통수를 한 대쯤, 제대로 쳐 주어야 하지 않을까? 거 봐라, 쨔샤. 니가 아무리 잘난 척 해도, 우리한테는 안 통해! 그 날선 음성을 제대로 들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어느 밤, 뒷골목에서 만난 술 취한 젊은 아이들에게 느끼는 신선한 두려움 정도는 느끼게 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식상하고 재미없는, 그래서 여전히 어린아이의 투정 같이 느껴지는 소설을 읽고, 그네들의 도발을 두려워할 모범시민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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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5-03-22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

선인장 2005-03-22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 사실 이 리뷰를 쓰고 마음이 좀 불편했습니다. 이 곳이 좋은 책에 대한, 좋은 감상으로 충분한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거든요. 굳이 이 글을 쓴 건, 이 글에 담은 내용보다 훨씬 더 많이 짜증이 났기 때문일 꺼에요. 그런데 지금 문득 든 생각, 그냥 안 읽으면 될 것은 뭐 이렇게 화를 내며 이 책을 끝까지 읽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