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지음, 정유리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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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고등학교 시절,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 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다. 내리 삼 년 같은 반이었던 단짝 친구와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다투고 난 후였다. 내 친구들은 모두 그녀의 친구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친구들 사이에 내가 끼어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함께 밥을 먹을 친구들이 없었고, 쉬는 시간이 되어도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친구가 없었다. 10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길던지,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도 시간은 남았고, 소설책을 펼쳐두고 있어도 한 문장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때 나는 그 긴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냈을까.

친구와 화해를 하고, 다시금 그녀 무리에 섞여 들어가고, 얼마쯤 있다 졸업을 했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 나는 다시 그런 패거리를 만들지 않았다. 마음 맞는 선배들과의 술자리가 지금까지도 계속 되지만, 자기 편끼리 뭉치라고 하면, 나는 혼자 남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낯설고 적막하고 외로운 시간,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삼삼오오 짝을 이루며 피로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 틈에서 적당히 차지할 자리가 없는 곤란한 시간,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은 이 곤란한 시간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다섯 명씩 팀을 이루어야 하는 수업 시간, 나머지가 되어버린 하츠와 니나가와. 그 녀석들이 살아내는 열 여섯의 곤란한 시간들.

열아홉에 아쿠타가와상을 받아버린 와타야 리사라는 젊은 작가는 딱 그만큼의 나이에 맞는 감각으로 나머지 녀석들의 시간을 따라간다. 올리짱이라는 연예인에게 빠져, 그녀의 삶에만 집중할 뿐 도무지 다른 이에게 관심이 없는 니나가와, 그런 니나가와의 웅크린 등짝만 바라보면서 그 등짝을 발로 차 주고 싶다는 욕망에 들뜨는 하츠.

올리짱을 향한 니나가와의 감정과 니나가와를 향한 하츠의 감정, 동경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도, 동정이기도 하고 미움이기도 한 그 감정은 그 나이만큼 생동감 있고, 그 나이만큼 현실적이다. 끈적끈적하지 않은 애정과 노골적이지 않은 적대감, "발로 차 주고 싶은" 그 만큼의 감정 사이에게 니나가와와 하츠가 놀고 있다.

"인정받고 싶다. 용서받고 싶다. 빗살 사이에 낀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걷어내듯, 내 마음에 끼어 있는 검은 실오라기들을 누군가 손가락으로 집어내 쓰레기통에 버려주었으면 좋겠다.
...남에게 바랄 뿐이다. 남에게 해주고 싶은 것 따위는, 뭐 하나 떠올리지도 못하는 주제에."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들 사이에 속하고 싶은 하츠의 솔직함 감정에 있다. 겉멋이 잔뜩 들어 주변을 모두 무시하는 오만한 시선이 아니라, 나와 타인의 차이를 의식하면서도 외로워하는 하츠의 모습. 그건 나머지들의 아주 솔직한 심정이다. 타인을 부정하면서도, 그것이 동시에 자기부정의 이유가 되어 늘 외로운 나머지들 말이다.

무슨무슨 상을 받았다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제목도 표지도 만화책와 비슷한 이 책은, 사실 내용도 일본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것이다. 내 눈에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요즘 아이들과 한 때의 나와 똑같이 절절하게 외롭구나, 실감하면서 누군가의 속내를 살펴보는 재미를 느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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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0-09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좋네요. 이 책......
담담한 리뷰 잘 읽고 갑니다.

선인장 2004-10-09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처음엔 무슨 이런 제목이 있나 했는데, 읽고나니 딱 어울리는 제목이더라구요.

니르바나 2004-10-09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인장님께 그런 학창시절과 주위가 있었군요.
외로움이 생각을 깊게 만들기도 하지만,
골수까지 사무쳐 육신이 쑤시는 고통을 만들기도 합니다.

선인장 2004-10-10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었어요. 워낙에 친한 사람 한두 명이면 족한 성격인지라, 두루두루 친하지 못했기때문에 생겼던, 조금 외로웠던 시간... 생각이 깊어지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골수까지 사무치는 고통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저 좀 곤란했을 뿐이지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