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꽃을
이해경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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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여름, 나는 들국화의 콘서트가 있던 자리에 있었다. 함께 동행했던 지인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슴에 담고 먹먹해 하고 있었다. 나로 말하자면, 특별한 흥분 같은 건 없었다. 들국화의 노래, 참 좋다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들국화, 라서 두근거릴 이유 같은 건 담고 있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서트가 열리는 내내, 나는 좀 슬펐던 것 같다. 무대에 열기가 가득하고, 객석에 번지는 동안에, 나는 처음으로 경험하는 그 세계가 무척이나 슬프게 느껴졌다. 그 슬픔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 수 없어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이유 따위 생각지 않고, 그대로 울어버릴 수 없어, 답답하기도 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그 날처럼 답답했다. 임기의 사연은 마치 직소퍼즐처럼 조각조각 흩어져 그림이 기려지지 않았고, 코디어의 모습은 억지로 맞춘 퍼즐 조각처럼 자꾸만 어긋났다. 화자인 상현은 모든 사연을 알고 있지 못했고,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한 편의 완성된 그림을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포기했다.

완성된 그림이 보이지 않아, 나는 내 슬픔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임기가 죽어서? 코디어도 죽어서? 상현과 미아, 혹은 미아와 코디어의 사랑이 애절해서? 비교적 명확한 줄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의 내용을 간결하게 정리하는 건 너무 어렵다. 상현과 미아의 만남은 너무나 짧고 임기의 사연은 그렇게나 막연하며, 코디어와 미아의 만남은 현실 같지 않다. 아주 현실적인 인물처럼 보여지는 오경택마저도 명확한 이미지를 갖기 어렵다.

아, 이건 결코 소설의 구조에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긋나고 흩어져 있는 관계 때문에 소설의 줄거리를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긋남과 알 수 없음, 알지 못한 채로 덮어두고, 또 어긋난 채로 만들어지는 관계의 불가해함. 1mm의 차이만으로도 바뀔 수 있는 세상이, 1mm의 차이만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사람의 어쩔 수 없음. 우연과 필연이 서로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의 미세한 떨림.

문제의 핵심을 알고자 하는 상현의 의지가 부족할 때마다, 그것을 안타까워하던 어리석은 독자는, 나중에야 숨겨진 문제는 없음을 이해한다. 상현이 부대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면 코디어와 임기의 자살기도를 막을 수 있었을까. 상현이 그 날 코디어를 그렇게 버려두지 않았다면 코디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 상현이 그 날 미아의 눈을 가렸다면? 미아의 병실을 찾아갔다면? 임기의 집을 찾아간 것이 상현이었다면? 그런 질문 따위가 세상에 존재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소설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정작 중요한 것은 1mm,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정작 이 소설을 읽고 또렷하게 남는 들국화의 노래. 나는 며칠 들국화의 노래를 듣고 있다. 그리고 생각한다. 1mm의 차이로 어긋나버린 내 삶의 많은 순간들을. 혹은 1mm의 차이로 나를 찾아온 많은 인연들을. 그리고 이해한다. 직소퍼즐처럼 조각조각 맞출 수 있는 사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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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07-19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운 날씨이기에 시원한 것이 그립군요.겨울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따뜻함을 그리워하겠지만.일년에 몇 번 마시지 않는 코카콜라가 오늘은 좀 생각나네요.즐거운 한 주 보내소서.

선인장 2004-07-20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니케어님> 월요일부터 좀 꼬여버렸습니다. 불필요한 일들로 고민하는 게 싫어서, 좀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행동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복잡한 생각을 요하는 일이 벌어지네요. 자기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그게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가끔은 솔직한 게 미덕이 아닐 때도 있나봅니다. 아무튼 이 난관을 잘 헤쳐나가야 할 텐데... 콜라 마시면 좀 나아질까요?
Paper-X-Ray님> 분명 누군가의 서재에서 뵌 기억이 있는데, 어디었는지 생각이 잘 안 나네요. 클림트의 키스부터 시작해서 1000피스짜리 퍼즐을 맞추던 때가 있었습니다. 작은 조각들을 열중해서 쳐다보면 시간이 참 빨리도 흘렀지요. 며칠 전, 영풍문고에 갔다가 또 하나를 사 왔는데, 언제 시작할지 모르겠네요.

hanicare 2004-08-02 0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여름의 꼬리만 넘기면 다시 가을이 온다는 게 실감이 안나는군요.나는 여름이면 겨울이 영영 안 올거 같아 걱정하는 바보랍니다.다시 가을이 오면 살아 돌아온 가을이 너무 반가와서 눈물이 날 것 같지요.차가운 세숫물에 손을 담글 때 찌르르 울리는 우수같은 것.
아직은 여름하고 더 친해져야 할 사이입니다.선인장님 생각하며 미니 선인장들을 몇 개 샀답니다.너무 귀엽고 깜직해서 껴안아주고 싶은데 이 놈의 가시들은 어떻게 하지요?

선인장 2004-08-03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 일은 많은데, 좀처럼 진도는 안 나가고, 저는 긴 이별 앞에 있습니다. 긴 세월 쌓인 정이야, 마음이야, 이 곳에 두고 간들, 그것 역시 모두 가져가는 것인데,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두근거립니다.
마디마디 가시가 박혀, 그걸 품에 안으면, 하니님 많이 쓰라리겠지만, 그래도 이따금 가시들의 존재 따위는 잊고 꼭 안아주세요. 긴 여름 폭염에 지친 선인장 속에 고인 따뜻한 물 한 모금, 님의 가슴길로 촉촉이 배어들 수 있도록....
동생 보내고, 긴 글로 인사하겠습니다.

2004-08-04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선인장 2004-08-0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귓속말 주신 님>정말 눈물 나게 고맙습니다. 너무 감동이에요... 영혼의 존재야 언제나 믿어왔지만, 인간이라는 이 어설픈 동물의 생이 부디 여기가 끝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저는, 그래도 전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정말로 우리 같은 동네 출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따금 속내 털어놓을 수 있는 나무 한 그루, 곁에 있어 한 여름 시원하고 든든합니다. 저린 어깨 기대고 있으면 한 줌 그늘이 어찌나 시원한지요. 저도 꿋꿋하게 잘 견디겠습니다.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