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죽이기 - 2004 제2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주희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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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문학상", "작가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소설들을 읽지 않았다. 1월 1일이면 바지 주머니에 손 꼭 끼고 나가 문 연 가판대를 찼던 버릇도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심사위원들이 아무런 주저없이 두 편이나 당선작으로 선택할 정도라면, 그 수준을 믿어도 될 것 같았기때문이다. 두 권의 책을 나란히 주문하고서 이 책을 먼저 읽은 건, 이왕이면 참신하고 새롭다는 그 소설의 맛을 보고 싶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비늘, 그리고 그 지독한 비린내.... 이 책에 대한 소개는 그런 기대를 하게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책을 읽는 데 열 흘이 넘게 걸렸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태백산맥을 열흘만에 읽었던 내 독서습관을 고려할 때, 이 책을 읽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소설 속 화자 예규의 등장은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지만, 몇 장이 넘어간 이후로 새로운 일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회로 나아가지 못하고 학교에 갇힌 예규와 영길이의 모습은 나의 이십대 후반과 그대로 겹쳐졌다. 그들은 한 시대의 나였고, 내 주위에서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던 동기나 선배였다. 무기력이 바닥을 쳤을 때의 나, 너무나 한심스러워 눈을 돌리고만 싶었던 선배, 정말로 등이라고 한 대 쳐서 학교 밖으로 내몰고 싶었던 후배.... 어쩌면 너무 쉽게 감정이입이 되고, 너무 쉽게 그들의 일상에 빠져들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그들에게 어떤 애정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예규나 영길이는 그 때 내가 보았던 후배나 선배들의 모습, 혹은 내가 사람들에게 보였던 그 모습, 딱 거기까지만 고민하고 행동한다. 그래, 겉으로는 저래도 속으로는 뭔가 다른 세계를 꿈꾸겠지, 그래 혼자서는 더 많은 고민을 하겠지,라는 내 기대를 무참히 저버리고, 딱 내가 경험했던 것만큼의 세계만을 보여준다. 답답한 지하의 자취방과 몇 번 울리지도 않는 핸드폰, 21세기에 적응하지도 못하면서 20세기의 열정도 없었던 동아리방, 그 진부하고 권태로운 풍경들.

이 세상은 소설가가 만들어낸 한 편의 소설이며, 자신은 그저 한 인물에 불과하다는 예규의 생각은 20대 청년의 헛된 망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이 겪는 세상도, 이들이 생각하는 소설도 막연하게만 느껴진다. 막 소설책을 덮고, 나는 결국 아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정말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예규는 두 번의 연애를 했고, 승태는 거짓말이나 오해로 인해 두 번이나 죽음을 경험했다. 이름을 댈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정작 이 소설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은 사건이 아니라, 변화이다.

등장인물도, 작가도, 책을 읽는 독자도 하나도 변하지 않는 소설, 혹은 변하게 하지 않는 소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과정은 책 속에 등장하는 청춘의 지리멸렬함만큼 더딜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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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07-12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건이 아니라 변화.
마모가 아니라 질적인 변화.
이 리뷰를 보면서 생각하는 말입니다.

선인장 2004-07-12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소설에 대한, 그것도 신인 작가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점차 사라지는 건, 나와 문학과의 거리가 멀어짐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정작 이 소설이 씁쓸했던 이유는 그것이었어요. 어쩌면 소설 속에 너무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독자인 내가 변하지 않아, 어떤 변화도 느끼지 못했는지도...
그곳의 비냄새, 여기와는 다를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