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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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기 한 평론가는 말했다. 문학은 써 먹지 못하기 때문에, 써 먹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쓸모 없는 문학은 그 쓸모 없음으로 인해 인간을 억압하지 않아서, 쓸모 있어 우리를 억압하는 것들을 반성하게 하고, 되돌아보게 한다고. 그것이 바로 돈도 되지 않고, 밥도 되지 않지만 문학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그가 죽고, 세기가 바뀌었다. 그 사이 문학은 일부 거대한 권력이 되었고, 일부 음흉한 자본이 되기도 했다. 권력을 비판함으로써 더 높은 권력에 가까이 갈 수 있었고, 자본의 모순을 말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또 일부는 비루하고 쓸모 없는 넋두리나 자조적인 한탄이기도 했다. 소통되지 않는 취향의 공유를 강요하거나, 자기 위안을 위한 도구로 쓰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지난 세기 쓸모 없음의 쓸모로서의 문학은 그의 죽음과 함께 서서히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적과 아군이 구분되지 않는 21세기의 서울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아직 문학이 우리는 억압하는 것들을 반성하게 할 수 있었던 시절, 그 시절을 가장 어여쁜 나이로 살아갔던 아이들이 있었다. 해금이, 경애, 수경이, 정신이, 승규, 태용이, 만영이, 진만이, 그리고 환이. 그렇게 평범한 이름을 가졌지만, 누구나 그렇듯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아이들이 청춘의 한 시절을 살아갔다. 가장 예뻤을 그들의 한때에는, 그러나 사람이 숱하게 죽어나갔다. 누구는 그 시절을 힘겹게 통과했고, 누구는 영원히 나이 먹지 않고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가장 예뻤을 모습으로.

태어날 때부터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을 가졌지만, 음악다방에서 우정을 나누고 고적대 단원으로 미모를 뽐내던 아이들이었다. 서울대 진학으로 촌동네 마을 어귀에 플래카드를 걸게 만들었고, 자기 힘으로 동생을 먹이던 야무지고 씩씩한 아이이기도 했다. 포악한 권력의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힘겨움을 심드렁한 대화로 위로할 줄도 알고, 첩질하는 아버지 밑에서 팍팍하게 살았지만 엄마에 대한 연민도 가득한 아이였다. 사랑에 실패해 좌절하기도 하고, 한순간 비뚤어진 양아치질에 몰두하며 다리를 떨던 아이였다. 그저 언젠가는 머리도 벗겨지고 뱃살도 두둑해져 아파트 평수나 승진 문제 따위를 입에 올리는 남루한 어른이 될지라도, 그 시절 청춘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고달프고, 충분히 외롭고, 충분히 가슴 벅차했을 아이들. 그러나 한 도시의 시민을 폭도로 만들어버렸던 80년대의 포악한 권력은 그 어어쁜 아이들이 남루한 어른으로 자연스럽게 자라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통과의례처럼 지나치는 청춘의 터널 속에서 그 아이들은 오래 머물러 있어야 했다. 누군가는 영원히 그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장의 부도덕한 행태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분노보다 어떤 무섬증이 몰려왔다. 인간의 양심이란 것이 사실은 그다지 믿을 게 못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느껴지는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자신이 조금 힘이 세다고, 조금 더 가졌다고, 자신보다 약하거나 자신보다 덜  가진 사람을 간단히 무시해버릴 수 있는 그 마음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막막함 같은 것이었다.  (본문 중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부도덕한 행태를 묵묵히 용인하고, 수긍하고, 혹은 부도덕한 삶을 자신도 모르게 살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나보다 약하거나 덜 가진 사람을 간단하게 무시해 버릴 수 있는 그 마음을 나에게서 발견하는 순간, 나는 어른이 된 것이리라. 그래서 마음 아프지만,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었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친구를 목도하게 된 순간, 수경이에게 세상은 이상해져버렸다. 미안하다고 해야 할 사람은 사과하지 않고, 되려 아픈 사람들이 서로에게 죄인이 되어 고개도 들지 못하는 이상한 세상을 수경이는 견딜 수 없었다. "사는 게 죄는 아닌게로 울지" 말라고, 승희 엄마는 해금이를 다독였지만, 수경이가 세상을 견딜 수 없어서 해금이는 죄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승규도, 정신이도 캠퍼스의 자유를 누리는 대신 최루탄 가득한 거리에 서야 했고, 신분을 속이고 현장에 숨어 들어야 했다.

그들이 그 시절 가장 예뻤던 이유는 싱그러운 이팔청춘의 나이여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죄스러웠고, 자신들이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이 부끄러웠다. 다달이 주어지는 용돈이, 따뜻한 밥을 해 놓고 기다리는 부모가, 어쩌면 당연하게 찾아올 안정된 미래가 견딜 수 없었다. 세상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던 그들, 청춘은 어떤 나이가 아니라 바로 그 견딜 수 없음에 다른 이름일 뿐이다. 

5월이 가고 6월이 왔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변한 것은 없다. 무엇인가 변할지도 모르지만, 그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게 될지 예측하는 것도 어렵다. 이 혼돈의 시절에 책 한 권 겨우 읽어내고, 그저 멍하니 계절이 변하는 것을 지켜본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조금 더 힘이 세다고, 조금 더 가졌다고 자기보다 약하거나 없는 자들은 너무나 간단하게 무시해 버린다. 그러니 경애와 수경이와 승규가 붙들려 있는 그 시대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현실을 이상해 하는 친구들조차 없으니 그 시절로부터 너무나 많이 변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불행에 관심을 두는 것조차도 우스운 자기 위안처럼 느껴지는 시대를 살아간다. 그러나 스물 몇 해 가슴에 품었던 친구들과 이제야 이별하는 작가의 마음이 조금은 아파서, 나는 내가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잠시 잊어 버렸다. 그들과 함께 청춘의 한 시절을 살았다. 그러니 문학이 그 쓸모 없음조차도 쓸모 없어졌다는 생각은 잠시 유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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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9-06-17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만이에요.
살아 계셨군요.
요즘 들어 초창기 알라딘의 서재가 생각나고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 세월을 견디는 게 벅찬데
오랜 서재에서 새 글을 보니 꿈같고
반 가 와 요.

선인장 2009-06-18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해 주셔서 고마워요. 의식하지 못했는데, 살아있는지 궁금할 만큼 시간이 흘러버렸네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사람들이 많네요. 저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