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그림자 2004-06-05  

쿡...
멀리 떨어져있는 친구와 참 오랜만에 통화를 했어요. 그 친구는 자기한테 문자 메시지는 보내지 말라는 거예요. 얘기인즉 화장실에 볼일을 보고 옷을 추스리다 좌변기에 폰을 빠뜨렸다는 거예요. 그 순간 더럽고 어쩌고 하는 생각은 안 들었대요. 얼른 폰을 건져 올렸다네요. 그런 살신성인의 자세(!)로 폰을 구출했는데도 불행히 폰이 고장나서 수리를 맞겼대요. 그래도 문자 메시지 수신이나 전송이 안된다는 거예요. 이런 이유로 수신도 답신도 할 수 없으니 메시지 보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막상 말로는 못할 진심이 꽤나 많았나봐요. 그 얘기를 듣고 퍽이나 안심을 하고는 문자 메시지를 거의 줄 잡아 열개 남짓 보냈어요. (휴대폰이 뜨끈뜨끈해지더군요.) 나의 지금 어지러운 마음을,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 알수도 없는 감정을 말이예요.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상소리도 겁 없이 지껄여댔죠. 그런데 한참 있다가 문자 메시지가 온 거예요. 봤더니 그 친구인 거예요. 모른 척할까 하다가 그래도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보낸다고. 우연인지 운명인지 문자 메시지가 받아진다고. 저의 참담함은 이루말할 수 없었죠.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을 들켜버렸으니까요. 그런데 또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넌 지금 니가 너무 싫겠지만 난 니가 참 사랑스럽다,고요. 바보가 된 것 같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웃고 있습니다. 사랑스럽대잖아요. 내가 날 미워하고 있는데도... 쿡...
 
 
선인장 2004-06-07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밀하게 통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었겠지요.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믿음 아래 어떤 말을 내뱉었는데, 그게 그대로 들려버리는 순간. 어쩌면 이따금 혼자서 내뱉는 넋두리라는 게, 그런 순간을 기대하고 나오는 한숨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아무도 듣지 말아야 하지만, 또 누군가는 들어주었으면 하는. 어쩌면 그래서, 신기하게도 문자 메시지가 전송된 것이겠지요.
이따금 님의 안부가 궁금했었는데, 잘 지내시는 건지요.

빛 그림자 2004-06-07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냈어요(?) 뭔가를 잊어 볼 양으로 순전히 어떤 일에 매달려 바쁜 척, 몰입하고 있는 척하고 있었죠. 허겁지겁 활자로 찍한 많은 것들, 책을 비롯해서 광고지까지도 찾아읽기도 했고, (이런 일은 참 드문데)자정에 선배가 술 사달라고 하면 "기꺼이 "라고 말하고 달려나가서, 그리고 새벽녘까지 마시고 새벽에는 놀이터에서 고래고래 노래 불러대다가, 잠깐 자다 멍한 정신으로 또 술 퍼대기도 했고, 이래저래 열다섯개 남직 밀린 과제는 친구 녀석들에게 하나 둘씩 맡겨 놓고 수업 빠지고 하릴없이 쏘다니기도 했다는...

웬만하면 집에나 한번 더 다녀오려고 해요. 그러면 편안함이나 안온함, 여유로움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아서요. 생활의 변화(새로운 마음가짐?) 없이는 지금 지리한 하루를 미워할 것 같네요. ^^ (궁시렁 궁시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