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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 ㅣ 참 우리 고전 4
홍대용 지음, 김태준.박성순 옮김 / 돌베개 / 2001년 8월
평점 :
조선 실학자 홍대용의 북경여행기인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방대하다. 중요한 내용들은 이미 아래 서평을 쓰신 독자께서 잘 소개를 하였으므로, 오히려 나는 개인적인 감상을 통해 아직 읽지 않은 분들께 책의 분위기를 전할까 한다.
나는 사실 실학자들이건 우리 고전에 대해서건 크게 아는 바가 없다. 예전에 홍대용에 대해서 배웠을 것이고, 아마도 이 여행기에 대한 언급을 본 적이 있을 지도 모르겠으나 기억에 없다. 다만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또 다른 실학자이자 홍대용과 절친했던 박지원의 글을 읽은 후였다.
연암 박지원이 날카로운 상황 인식과 절묘한 표현력을 가진 운치 있는 선비라면, 담헌 홍대용은 그야말로 정도(바른길)을 중히 여긴 기개높은 선비라고 느껴진다.
사실 이 책은 원전을 상당 부분 줄여가면서 현대인을 위해 부드럽게 다듬었다고는 하지만, 양도 많고 생소한 표현들이 만연해서 읽기에 쉽지는 않았다. 초반부에서 다양한 인물, 풍경, 구경에 대한 묘사들은 이 여행이 저자에게 얼마나 새롭고 흥분되는 것인지를 알려줄 뿐 그 내용이 속속들이 나에게 흥미롭지는 않았다.
초반부 말미에서 천주당에 나가 서양인들을 만나고 대화한 내용들부터가 비로소 관심가는 부분이었는데, 홍대용이 단지 옛글에 사로잡힌 선비가 아니라, 사물의 실상을 파헤치고자 하는 과학적 태도를 가진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홍대용은 서양인들의 태도와 예법에 적잖이 실망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책에서 나로 하여금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 부분은 중반부를 넘어서야 등장하는 엄성과 반정균이라는 두 중국 선비와의 만남이다. 첫만남 후부터 후일 다시 만날수 있을지 기약하지 못하여, 슬퍼하다 못해 눈물까지 보이는 이들의 행적에는 다소 놀랍기도 하였다.
하지만 마지막이 아닐까 조마조마하여 매번 영영 이별하는 것을 슬퍼하면서 수 차례 다시 만날 때마다 기뻐하고, 온갖 회포를 풀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우정을 즐거워하는 장면들은 정말 인상적이다. 이것이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방인들 사이에 단지 붓으로 종이에 글을 써서 대화한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만남의 초두에 언급되었던 육비라는 선비마저 극적으로 함께 하게 된 장면에서는 (좀 과장스러울지 모르나) 감격적이기까지 했다.
이미 박지원이 홍대용에 대해 쓴 글에서 중국 선비들과의 우정을 부러워한 대목을 읽어보았지만, 이 책을 읽어보고서야 정말 이것이 사람의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천애지기의 만남임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비록 시대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지금이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우정이 가능한지 한 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