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허핑턴 포스트 통해서

신경숙 소설 표절 의혹 제기


이응준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

http://www.huffingtonpost.kr/eungjun-lee/story_b_7583798.html



여기서 언급한 부분을 옮긴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미시마 유키오, 김후란 옮김, 「우국(憂國)」, 『金閣寺, 憂國, 연회는 끝나고』, 주우(主友) 세계문학20, 주식회사 주우, P.233. (1983년 1월 25일 초판 인쇄, 1983년 1월 30일 초판 발행.)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신경숙, 「전설」, 『오래전 집을 떠날 때』, 창작과비평사, P.240-241. (1996년 9월 25일 초판 발행, 이후 2005년 8월1일 동일한 출판사로서 이름을 줄여 개명한 '창비'에서 『감자 먹는 사람들』로 소설집 제목만 바꾸어 재출간됨.)















6월 17일


신경숙 작가와 창비 입장 올라옴


<신경숙 작가의 입장>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 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



<창비 문학출판부의 입장>

언론과 독자분들께 <전설>과 <우국> 두 작품을 다 읽고 판단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 두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짤막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미 시마 유키오는 일본 내 극우 성향의 민족주의자고, 1970년 쿠데타를 주장하는 연설을 한 뒤 45세의 나이로 할복자살한 작가이다. 1960년에 발표한 <우국(憂國)>은 작가의 말년의 삶을 예견한 단편이라고 봐도 무관한데, 작품의 주인공은 천황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남성주의에 빠진 극우민족주의자이다.
시대적 배경은 1936년 천황 직접 통치를 주장하며 쿠데타(2월 26일)를 일으킨 세력이 3일 천하로 실패한 날이다. 쿠데타의 대의에는 동조했으나 신혼인 점을 고려한 친구들이 배제하는 바람에 거사에 참여하지 못한 주인공(신지 중위)이 할복을 결심하고, ‘천황 군대 만세’라는 유서를 남긴 뒤 자살하는 세세한 과정(창자가 쏟아져나온 뒤에도 죽지 않자 스스로 단도로 목을 찔러 죽어가는 과정의 묘사)을 아내(레이코)로 하여금 눈앞에서 지켜보게 한 다음, 레이코 역시 그의 신념이 당연하다는 듯 뒤따라 단도로 목을 찔러 자결한다는 결말로 끝이 난다. 성애묘사가 두드러지는 남성주의적인 판타지로 볼 수도 있는 단편이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집 <<감자 먹는 사람들>>에 수록된 단편 <전설>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뛰어난 작품으로,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의 작가가 쓴 거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직핍한 현장감과 묘사가 뛰어나고 인간의 근원적인 사랑과 전쟁 중에서의 인간 존재의 의미, 인연과 관계의 유전 등을 솜씨있게 다룬다.

사실 두 작품의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다.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부부가 등장한다는 정도이다. 또한 선남선녀의 결혼과 신혼 때 벌어질 수 있는,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데다가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따라서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표절시비에서 다투게 되는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을 가지고 따지더라고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개정판 제목에 대한 언급이 있어 답을 드린다. 이응준 씨는 개정판 제목을 바꾼 것을 가지고 무슨 문제가 있는 듯한 논조로 이야기하는데 유감스러운 일이다. 구간 개정시에는 작가뿐 아니라 출판사 내외부의 의견을 수렴해 더 어울리거나 그 시기에 맞는 제목으로 바꾸기도 하는데 이를 표절시비와 연관지어 문제 삼는 건 도를 넘어선 억측임을 밝힌다. (2015년 6월 17일)






창비의 입장을 뜯어 보면


사실 두 작품의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다.


애초에 작품 자체를 베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게 아닌데

왜 두 작품의 유사성을 언급할까?



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


베끼긴 했지만 창의적으로 베꼈다는 소리로 들린다.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따라서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작품에서 중요한 장면이 아니면 베껴도 된다는 건가?

해당 장면과 문장을 베낀 게 맞지만

(우린) 그걸 표절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로 들린다.





표절이 아닌 걸 설명하는 데 이렇게 길게 쓸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창비의 입장, 글이 너무 길다.

입장이 아니라 변명 같아.



다른 건 몰라도

창비에서 논술 관련 책을 내고 있다면 그건 보지 않는 게 좋겠어.







그리고


위 허핑턴 포스트의 글에는 신경숙 작가에 대해 예전에 제기된 다른 사례들도 나와 있다. 그 중 하나가 아래.



한계레 1999년 9월 21일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

왜 신경숙씨 '딸기밭'에 남의 글이 그대로 담겼나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9092100289124008&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9-09-21&officeId=00028&pageNo=24&printNo=3614&publishType=00010



한겨레 기사 중 일부 (사실은 대부분)를 옮긴다.



귀하./저는 이제는 고인이 된 안승준의 아버지입니다. 그의 주소록에서 발견된 많지 않은 수의 친지 명단 가운데 귀하가 포함되어 있었던 점에 비추어, 저는 귀하가 저의 아들과 꽤 가까우셨던 한 분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귀하께서 이미 듣고 계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저는 그의 아버지로서 그의 돌연한 사망에 관해 이를 관련된 사실들과 함께 귀하께 알려드려야만 할 것 같이 느꼈습니다.


91년에 숨진 재미 유학생 안승준 유고집 "살아는 있는 것이오" (1994, 삶과꿈)에 서문을 대신해 실린 부친 안창식 씨의 글



귀하./저는 이제 고인이 된 유의 어머니입니다. 유의 수첩에서 발견된 친구들의 주소록에서 귀하의 이름과 주소를 알게 되었습니다. 귀하의 주소가 상단에 적혀 있었던 걸로 보아 저의 딸과 꽤 가까우셨던 사람이었다고 짐작해봅니다. 귀하께서 이미 알고 계실는지도 모르겠고, 참 늦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마는 그의 어머니로서 그의 돌연한 사망에 관해 알려드립니다.


신경숙, 소설 '딸기밭' (문학동네, 1999년 여름호)




바위 언덕에서 추락하면서 뇌에 손상을 입는 바람에 얕은 개울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다고 사망 원인을 서술하는 부분 역시 대동소이하다. 두 개의 글을 비교해 보면, 모두 여섯 문단에서 동일하거나 거의 유사한 문장과 표현이 발견된다.


'딸기밭'은 안승준씨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작품이다. 젊은 여자들 사이의 동성애라는 금지된 사랑의 관능을 그린 이 소설에서 '유의 어머니'가 '귀하'에게 보낸 편지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소설 전편을 통해 간헐적으로 삽입되는 여섯 문단의 편지 전부가 안창식씨의 편지를 약간 변형한 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이다.



"그는 평소 인간과 자연을 깊이 사랑하였으며, 특히 권위주의의 배격이나 부의 공평한 분배 및 환경보호와 같은 문제들에 관해 다양한 관심과 깊은 의식을 가졌습니다."(안창식)


"저는 평소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인간과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 기아 문제와 부의 공평한 분배, 그리고 환경 보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신경숙)



작가 신씨는 "승준씨의 어머니에게서 책을 받아 읽고 너무도 슬프고 감동적이어서 언젠가 소설로 써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유족에게 누가 될까 봐 출처를 밝히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필요하다면 창작집을 낼 때 출처를 밝히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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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나온 경우도, 두 작품의 유사성은 없다는데?


애초에 이번 표절 논란이

두 작품의 유사성과는 상관 없는 문제인데도

작품의 유사성이 없다는 걸 길~게 언급해서

논점 흐리기라는 인상을 주면서

베껬다는 걸 오히려 인정하는 꼴이 됐지.


아니, 대놓고 인정할 수는 없어서

돌려 말한 거라면

창비, YOU 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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