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역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
이종욱 지음 / 소나무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대학교 한국사 시간에 선생님이 짧게 화랑세기에 대해 언급한 일이 있는데, 시간이 흘러 이 책을 구해 읽을 날이 오리라곤 생각하지 않았죠. 더구나 이렇게 재밌는 책일 줄은 미처.

신라 시대 화랑의 우두머리를 풍월도라고 했는데, 이 책은 풍월도 제도가 없어지기 전까지 1대부터 시작해 역대 풍월도에 대해 정리한 일종의 열전입니다. 누군 이랬다더라 하는 얘기. 그래서 굉장히 술술 읽힙니다.

더구나 지금 상식으로는 놀라운 이야기가 가득하기 때문에 따분하지도 않고, 그냥 마치 드라마 장희빈을 보는 것 같습니다. 색공으로 미실이 유명하지만 그저 특별히 유명할 뿐 미실만 유별나게 그렇게 산 건 아니었습니다. 황후나 후궁이나 사는 방식은 대개가 비슷비슷하던데요.

화랑세기에서 풍월도마다 외모와 출생과 내력에 대한 얘기가 빠지지 않는데, 이건 곧 연애 얘기랑 연결되고, 연애는 또 색공과 연결됩니다. 읽다보면 색공을 반드시 여자가 남자에게만 드린 게 아니라 남자도 여자에게 드린 것 같아요. 여자 남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권력자냐가 중요한 거죠.

하지만 권력이고 뭐고 다 버리고 사랑을 택한 경우도 있습니다. 황후 자리 버리고 자식의 미래도 버리고 목숨까지 걸고 사랑하는 남자와 도망친 분이 계신데 바로 진흥왕의 (아버지가 다른) 동생 겸 부인입니다. 다행히 목숨도 건지고 도망친 남자와 잘 살긴 했지만 그 때문에 자신이 낳은 아들은 태자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아무래도 태자가 진흥왕의 아들이 아닌 것 같다고 신하들이 간언했다네요. 그래서 진흥왕이 총애하던 다른 부인이 낳은 아들이 태자가 됩니다. 조선 시대,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려고 갖은 애를 다 썼던 어머니들이랑 비교되면서 얼마나 웃기던지요. 법흥왕을 찾아 신라로 도망쳐온 백제 공주 얘기는 또 어떻고요. 사람 사는 냄새가 너무 노골적으로 풍긴달까.

이 책이 진짜 원본의 필사본이 맞다고 할 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먼 후세 사람이 쓴 게 아니라 그 당시 신라사람이 썼다는 겁니다. 자기네 가문의 선조 얘기가 들어있기도 하기 때문에 찬양 일색인 경향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자기 시대를 직접 기록한 거니까요. 고려 시대 사람이 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와는 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요. 고대 역사책 중 제 시대에 쓰인 역사책 (이 책은 열전에 가깝긴 하지만)으로 현재 남은 건 이게 거의 유일하지 싶네요.

책은 왼쪽은 원문, 오른쪽은 해석을 싣고 있어서 비교해 보기에 좋습니다. 인쇄도 깨끗하게 잘 됐고. 필사본에서 알아볼 수 없거나 누락된 부분이 많은 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충분히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그 시대에 관한 배경 지식이 별로 없는 사람에게도 추천합니다. 그래도 재밌으니까요. 삼국사기, 삼국유사 읽어본 사람에게는 많이 많이 추천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정말 재밌거든요. 정말 책 두꺼운 줄 모르고 읽는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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