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o 2005-10-24  

최종병기 그녀
를 만화방에 앉아 봤을 때의 나는 최근 몇 년간 그렇게 상심하고 심난한 적이 없을 정도로 안 좋은 날을 보낸 참이었죠. 아마 재작년의 겨울이었을 거에요. 애니메이션의 몇 편을 보면서, 또 만화책을 보면서 내가 굳혀간 심증은 이 만화가 사춘기 - 그것도 연분홍빛의 - 에 관한 거라는 거에요. 주인공의 나이가 그 즈음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고, 그 모든 변화들이 그래 보여요. 이성의 몸 - 이 경우엔 시선이 남성적이니 당연히 여성이죠. 그것도 작고 귀엽고 인격적으로 아무런 위협도 내비치지 않는 작은 소녀 - 에 대한 불안, 혹은 공포. 어쩌면 거세에 관한. 어쩌면 치세 - 아이누어로 '집'이라는 뜻이라는데, 모성을 상징하는 건 아닐까 싶어요 - 는 아버지의 세계, 즉 군대로부터 찬탈해야 할 어머니에요. 끝까지 이 만화를 사춘기에 대한 거대한 은유로 읽었던 기억이 나요. 더 재미있는 독법이 있을 텐데. 으쓱.
 
 
sudan 2005-10-24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종병기그녀. 찝찝한 느낌으로 남아 있는 만화죠.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소녀와 무시무시한 병기(몸에서 칼을 꺼내는 장면을 CLAMP는 끔찍하게 예쁘게도 그렸는데, 등에서 미사일이 톡톡 튀어나오는 치세는 짜증날 만큼 슬펐어요.), 지구 종말 전쟁과 수줍게 연애하는 학창시절, 발육 미달의 소녀와 노골적인 섹스, 심지어는 웃는 얼굴도 우는 표정하고 막 뒤섞여 있었죠. 그 표정이 다카하시 신 특유의 그림체라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어쨌든, 저 어울리지 않는 것들의 결합이 묘하게 강렬한 인상이었는데. 사춘기에 대한 은유라. 듣고 보니 저 만화가 주는 불편한 느낌 중에 하나는 분명 그 이유겠어요.
남기신 글 중에 '독법'이라는 단어는 전 오늘 처음 들어요. 일단 재미있는 만화는-소설도 그렇고-덮어놓고 좋아하고, 그렇게 좋아진 만화는 질리지도 않고 여러번 읽는데-순풍산부인과에서 머리나쁜 사람은 질리는 줄 모른다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윽, 충격이었죠.-좀 더 읽어보다 보면 그제서야, 이게 이런 분석이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_-
반가운 글 보고 냉큼 답글 달아요. 오이스트라흐를 챙겨왔는데, 스산한 퇴근길의 비탈리 샤콘느는 또 어떤 느낌일지. 앗. 퇴근해야

sudan 2005-10-24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되는데. (방명록 답글은 600자가 한계랍니다.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