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학사
여인석 외 지음 / 의료정책연구소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의학사와 의사학 분야에 대한 글들을 찾아 읽으며 좀 많이 궁금했다. 의학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의학의 생성과 변천 과정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의학공부의 근본이 되기도 할텐데, 도무지 일반인들이 읽을 수 있는 의학사는 눈씻고 찾아봐도 잘 보이질 않는다는 사실이. 이 책 역시 개설서로는 미키 사카에(三木榮)의《朝鮮醫學史及疾病史》와 김두종 선생의《한국의학사, 1966》가 나온지 거의 반세기만에 출판된 게 아닌가.

 

이런 사정은 서양의학사 연구 분야 역시 마찬가지여서, 90년대 이후에야 대학에 의사학 교실이 개설되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역사학쪽에서 의(醫)의 폭넓은 주제들을 다루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이젠 다루는 주제와 방법도 다양하여 이즈음의 논문들은 질병사, 제도사, 병원사, 우생학, 의학사상, 정신의학, 의철학, 식민지의학, 환경의학, 심지어 열대의학과 의료지리학 등 여러 주제에 관련되지만, 아무래도 연구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는 서구의 서양의학사의 역사(historiography)에서 보이는 연구방법, 연구 내용과 관점에 대한 논쟁과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오랜 산고 끝에 나온 이 책은 그간의 연구성과를 반영하고 있으며, 특히 의학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의학사의 시대구분에 있어 한국사학계의 빈약한 연구결과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에, 집필자들이 표명하는 만큼의 시대구분론에 입각한 설명을 서술 내용에서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 부분은 생명의학을 지향했던 미키가 결론적으로 식민사관에 빠져들었다든가(김호, 2005),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김두종 선생이 문화사적으로 고립되지 않는 의학사를 서술하려 했으나 단선론적 진보사관으로 일관했던(여인석, 1998) 두 경우를 비교해보더라도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이런 것들을 떠나, 언제쯤이면 우리 선조들이 사유했던 몸에 대한 고급한 담론의 역사를 읽어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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