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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기술과 한국문명 ㅣ 한국의 과학과 문명 21
염정섭.소순열 지음 / 들녘 / 2021년 12월
평점 :
1. 우리 농업사를 일목요연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개설서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농업사를 통해 한국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농업에서의 근대는 그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이겠다. 하기에 이 책의 출현은 반갑기 그지없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한국의 과학과 문명' 시리즈의 한 권으로 쓰여져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는 듯해 아쉬움이 없지 않다.
저자는 서문에서 ‘농업기술’을 중심으로 한국 문명을 해명하는 연구 작업으로서 한편으로는 통사를 지향하여 ‘농업기술로 본 한국문명사’로 자리매김하고자 기획하면서, 또한 다른 한편으로 ‘한국 농업기술문명사’라는 분류사로서 농업, 기술 등에 특화되는 지향점도 병행하여 추구하고자 하는 명확한 연구목적과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구분에 있어 ‘근세사회론’과 ‘근대전환론’을 시론,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하면서도 일견 기왕의 논의("역사의 진보와 발전에 대한 확신 및 그에 의거한 根本的 變革의 전망과 지향"이라는 목적론적 역사학)을 답습하고 있으며, 농업기술사 서술에서 나아가 농업생산을 위한 국가의 제도, 정책, 농정운영, 농정사상 등 농업 전반에 걸친 ‘한국농업사’를 온전히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 염정섭 교수는 학위논문인 <조선시대 농서 편찬과 농법의 발달>2000이 가진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최근 <조선후기 경영형부농론을 사학사에 내려놓기>2018, <1960~70년대 조선시대 농업사 연구와 내재적 발전론, 근세사회론>2019, < 한국사 시대구분론의 전개와 과제>2021 등 일련의 작업을 통해 본격적인 다음 저작을 준비하고 있는 듯해 그를 기대하게 한다.
2.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은 저자가 펼치고 있는 논지의 대척점에 서있는 글들을 다시 찾아보게 만든다. 예컨대, 윤해동이 김용섭의 ‘내재적 발전론’을 비판하고 있는 <’숨은 신’을 비판할 수 있는가>2006, <에피고넨의 시대, ‘내재적 발전론’을 다시 묻는다>2008와 같은 글들이 그렇다. 그는 이 글들에서 근대, 민족주의, 역사해석 등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근대는 서구적이면서도 지역적인 것이다. 서구를 근대의 원형으로 간주함으로써, 근대를 단일한 의미로 고정해서는 안 된다. 곧 이분법적 범주화가 가진 폭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구의 사회변동에 근거한 규범적 가치와 사회적 조건의 체계 곧 근대성은, 각 지역에서 수용될 때 지역적이거나 전지구적인 맥락에서 선택적으로 이용 재구성되거나 거부 회피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근대성은 단일하지 않지만, 서구적 근대성과 완전히 결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구 근대는 일종의 헤게모니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도구화된 이성, 자본주의 경제, 부르주아적 대의정치 제도와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적인 가치이다. 그럼에도 그 헤게모니적 요소들은 지역적 맥락에서는 그 헤게모니적 성격을 변화시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요컨대 근대는 이분법적으로 범주화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닐뿐더러, 식민주의와 동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근대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혹은 근대에 적응하거나 근대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 때, 그 근대는 식민주의를 표상하는 것으로 귀결될 따름이다. 근대는 식민주의와 동일한 속성의 양면을 구성하는 것이자, 상호 재생산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 따름이다. 오히려 대안적 근대성은 근대성의 다원성과 중층성을 인정하는 데서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서구적 근대성과 비서구적 근대성에 각기 보편성과 특수성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성은 본원적으로 식민지성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대성 자체도 다원적이라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덧;
한국사 개설서에서 일반적으로 19세기 중⋅후반을 기점으로 하고
1945년 해방을 종점으로 잡는 근대라는 시대 규정은 근대 역사학 도입
이래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한국사 연구의 전개과정, 한국의 정치적⋅사회적 변화에 따른 구성물이다. 서양 역사학의 modern age는 19
세기 일본에서 근세(近世)로 번역되어 한국에 소개되었고, 한국사에서
근세는 대체로 조선시대와 등치되었다가 1950-60년대 이후 근세와 근대가 별개의 시대로 분리되며 근세=early modern age, 근대=modern age로
위치 지어졌다. 이른바 '근세사회론'은 일본 동양학이 가지는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으로 인한 것이다. 거칠긴 하지만 다음 메모를 참조하시라. https://blog.naver.com/dalsan21/221386688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