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평전
박현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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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산 정약용의 전기를 살피다 보니 어느새 정조와 그의 시대로 관심이 번진다. 몇 종류 나와 있는 다산에 대한 전기물들은 후손 정규영이 작성한 사암선생연보를 중심으로 쓰여져 대동소이한 것 같다. 가장 많이 읽히고 있는 박석무의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는 발로 쓴 책이다. 방대한 다산의 사상과 저술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바이오그래피가 아쉽다. '다산학'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아직은 허술한 듯하다. 어쩌겠는가, 한형조(1996). 백민정(2007), 금장태(2012) 등의 저작과 실시학사에서 펴내고 있는 실학총서를 함께 읽을 수밖엔.

2. 우리나라에서도 '18세기 학회'가 구성되어 활동 중인데, 세계사에서 18세기는 전통적 가치와의 충돌, 도시문화의 발달, 열정과 자아의 중시, 여행문화가 발달하는 현상 등에서 인류사적 동질성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영·정조 시대는 이러한 사정과 맞물려 관심이 쏠리고 있는 듯하다. 한국 18세기 학회가 개최한 세 차례 좌담회의 기록, 《위대한 백년 18세기》가 그 한 예다. 계몽주의를 넘어서 18세기는 우리가 근대성이라고 말하는 것, 시장이나 상품성, 근대적 주체, 산업주의, 감시체제, 자본주의 등의 원형적인 면모가 나타난 시대인 바, 오늘날 탈근대론자들이 비판하는 근대성 자체의 왜곡을 연구할 수 있는 계기를 18세기 문화나 역사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3. 이와 관련해 유럽의 의미는 무엇인지, 근대란 어떤 뜻으로 사용되는 말인지, 그리고 근대 유럽의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와 같은 기본적인 문제들을 들여다 볼려면 개설서인 《근대유럽의 형성》을 읽으면 좋겠다. 이 책과 함께 근대성의 기원 또한 유럽에 있다고 말할 수 없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학파의 일원인 잭 골드스톤의 ≪왜 유럽인가 – 세계의 중심이 된 근대 유럽1500~1850≫을 동시에 읽었다. 그는 강대국 유럽의 등장은 어떤 점에서든 세계의 다른 지역 혹은 문명에 대해 가진 우월성 때문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4. 시선을 동쪽으로 돌려보자. 최근 ‘중앙유라시아’ 연구에서 대두한 가장 주요한 논점은, 이 지역 내부에 존재하던 초원 유목민과 오아시스 정주민들의 상호관계를 연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며,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은 한문과 같은 외국어 사료가 아니라 현지인들이 남긴 현지어 사료를 중심으로 연구가 수행돼야 한다는 점에 대한 자각이다. 미국의 중국학계를 중심으로 대두한 이른바 ‘신청사(New Ching History)’ 연구가 바로 이런 연구 경향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피터 퍼듀의 ≪중국의 서진(China Marches West)≫은 신청사 연구를 대표하는 저작이자, 중국 변경사 연구의 걸작이다. 이 책은 중앙유라시아 지역이 15세기부터 18세기 청조에 정복되기까지의 과정을 꼼꼼하게 추적한다. 그의 분석은 중앙유라시아 지역이 유라시아 대륙의 교차로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하는 세계사적 관점에 의해 지지된다. 만주족 왕조인 청조는 그 왕조가 가진 유목주의적 성격으로 인해 군사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으며, 18세기의 인구 증가와 자원 부족 등을 타개하기 위해 ‘(군사)식민주의’의 성격을 아울러 가지게 됐다고 주장한다. 바꿔 말하면 18세기 청의 중앙유라시아 정복은 17~18세기의 세계사적 사건과 궤를 같이하면서 청조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이 ‘만청 식민주의(Manchu Colonialism)’는 18세기의 세계사적 동시대성을 일깨운다. (윤해동)

5. 조선의 사신과 사절단이 북경에 사행한 후 기록을 남긴 연행록 관련 연구논저가 엄청나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조 500년간에 사절단의 명 청조 방문이 1000여 회를 넘고 이들이 남긴 기록 중 저자가 확인된 연행록만 해도 400여 종에 이르기 때문이다. 근래 《연행록 전집》과 같은 기본적인 자료가 정리 출판되고 분야별 연구총서도 간행되었으며, 이제 연행록 자료 집성의 남은 과제로 500여 종 이상의 연행록을 대상으로 定本을 확정 출판하는 것과 原文의 텍스트 입력, 그리고 번역과 주석을 한 역주 정본 연행록전집 출판을 꼽고 있다.(임기중)

연행록을 통하여 壬辰戰爭 이후 확산된 再造之恩에서 비롯하여 小中華, 조선중화주의, 北學, 脫中華로 발전 하는 조선지식인의 중국관을 엿볼 수 있다. 명 청대를 통 한 광범한 자료인 燕行錄은 특히 청대 17세기로부터 18세기 말까지의 중국에 관한 다양한 면모, 만주족 지배하의 한인 지식층의 존재형태, 구체적 생활상을 포함하는 사회상, 지배층에 대한 의식 대처능력 등 생동감 넘치는 역사자료로 주목되고 있다.(최소자)

오늘 살펴보고 있는 주제와 관련하여 정재훈 교수의 <정조와 연행록>이 눈길을 끈다. 연행은 기본적으로 사신행차의 일부로서 국가 간의 외교 교류가 기본이 되는 행사였다. 여기에는 당시 최고의 정치적 주권자였던 국왕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개별의 연행록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실제로 판단을 하였던 주체가 바로 연행의 또 다른 주체라고 할 수 있는 국왕들이었다. 구체적으로 18세기를 살았던 숙종과 영조, 정조가 그들이었다.

정 교수는 연행의 당사자 가운데 하나였던 조선의 국왕이 연행을 어떻게 대하였는가는 이제까지의 연구에서 소홀하였던 부분이라고 지적하며 연행에서 가장 변화가 극심하였던 18세기, 특히 후반의 경우 정조는 연행에 매우 민감하게 관심을 표하고 이를 통해 얻을 정보를 국정에 직접 활용하기도 하였음을 살피고 있다.

연행에서 획득한 정보가 ‘개인의 깨달음’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정보의 획득과정을 거쳐 국정에서 활용되는 정보로서 기능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정조는 그의 정치운영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던 화성의 건설에서, 또 창덕궁의 품계석의 설치에서, 또 군사의 모범을 삼으려는 관심에서 청으로의 연행에 당대 최고의 화원인 김홍도와 이명기를 파견하였다. 18세기의 연행은 조선을 새롭게 만들려던 정조에게도 매우 소중한 창구였다는 것이다.

6. 이렇게 유럽과 중앙유라시아 역사 및 청조와의 교류를 주시하며 정조와 그의 시대를 들여다보면 좀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정조와 정조시대》 또한 그렇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모은 이 책은 정조와 그의 시대를 역사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하나의 지표를 설정하고자 '정조시대의 자아인식'에 주목하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을, 후반부에서는 정조와 조선의 이해를 둘러싼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성격의 책으로는 출간된 지 좀 오래 되었지만, 숙종대에서 영정조대에 걸치는 125년간을 이른바 '진경시대'로 보고 당대의 사상과 문화, 그리고 예술과 예술가들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우리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 1, 2》가 있다. 예전에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박현모 교수의 ≪정조평전≫은 기왕의 연구를 결산하고 있는 듯하다. 근래 정조에 대한 단행본들이 다양하게 나왔다. 정약용, 박제가, 박지원 등을 등용해 18세기 조선의 문예 부흥을 가능케 한, 탁월한 학문 능력을 갖춘 지도자로서 ‘군사(君師)’의 정치를 이끈 군주 정조를 묘사한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정옥자 외), ≪정조의 수상록 일득록 연구≫(정옥자), 정치적으로 소외된 당파였던 남인에서 인재를 발탁해 중용하는 지도자, 즉 탕평군주로서 정조를 묘사한 ≪영조와 정조의 나라≫(박광용), 학자 군주로서의 정조의 면목에 주목한 ≪정조의 경학과 주자학≫(김문식), 정치적 다수파인 노론의 견제를 받으며 왕위에 올라 규장각과 장용영이라는 문무의 지지 세력을 키워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주도면밀한 지도자의 모습에 주목한 ≪장용영: 정조가 만든 조선의 최강 군대≫(김준혁) 등이 그러한 책들이다. 이러한 정조에 대한 긍정적인 서술들과는 달리 박 교수의 연구는 정조의 재위 기간에 추진된 개혁 정책의 성취를 거론하면서도, 정조의 사망 이후 전개된 세도정치에 대해 정치가 정조의 책임을 묻는 부정적인 성격의 것이었다.

저자의 주장은 정조 시대에 이루어진 국왕으로의 권력 집중, ‘고가대족(古家大族)’을 중심으로 전개된 정치 운영방식이 국왕의 사망 이후, 공론정치의 부재와 견제장치의 부재 속에서 세도정치와 쇄국정치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송재혁)

백승종 선생의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은 연구노트를 책으로 펴낸 것인데 블로그에 연재될 때 가끔 들여다봤지만 다시 읽어보니 더욱 새로웠다. 사료를 읽어나가며 연구계획을 밝히고 있는 부분들이 특히 그렇다. 저술에서 이토록 상세하게 연구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예는 드물다.

저자는 근대역사학이 요구하는 역사적 사실관계보다는 예언이라는 사회적 상상력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정조와 강이천을 둘러싸고 펼쳐진 일련의 사건에 대해 새로운 역사적 해석을 가하고 있다. 저자의 시선에 포착된 강이천 사건은 주류문화인 성리학과 천주교 및 정감록 등의 소 문화 집단 간의 대립을 상징하는 것으로, 심각한 '문화투쟁'이 전개되었음을 밝힌다. 거기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서사의 부활이다. 한 편의 논문을 쓰면서 작성한 연구노트가 책으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폭과 깊이만큼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풍부해질 수밖에 없다.

7. 이 시대를 얘기하면서 연암을 빼놓을 순 없다. 그의 아들 박종채가 아버지 박지원의 행장을 각고의 노력으로 기록한 ≪나의 아버지 박지원 (과정록)≫이 있다. 이 책은 한 인간의 전기를 넘어, 그를 둘러싼 동 시대 인물들과의 교류에 대한 기록들은 당대의 사회사를 보여준다. 진작에 강명관 교수는 연암 문학의 연원을 좆다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공작관고》에 주목하여, 청의 문인 김성탄과 원굉도의 혁명적 문학비평을 거론한 바 있다. 김혈조 교수가 새로 번역한 열하일기와 연암집을 독서목록 일 순위에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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