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아멜리 노통의 소설은 의식적으로 피했다. 수많은 서평이 신문과 잡지 등 각종 매체를 장식하는 것도 아니꼽기 짝이 없었고, 소위 '쉬크'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마치 몸에 두르는 명품인 양, 이 작가를 칭송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남들이 다 읽었다는 <살인자의 건강법>도 <적의 화장법>도 인연이 없었다. 아니, 인연을 안 맺으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궁금증은 참을 수 없는 법. 주변의 권유와 자발적인 호기심으로 결국 아멜리 노통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우선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을 읽었다.(사실 남들이 다 추천해 준 <살인자의 건강법>은 괜한 고집에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작가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그냥 편한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읽어 내렸다. 스스로를 신(神)이라 일컫는 한 아이, 일본에서 보낸 정겹던(?) 어린 시절의 처음과 마지막을 읽는 동안 생각이 변하는 걸 느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멜리 노통에 대한 배배 꼬인 마음이 한 여름의 구구콘처럼 녹아 내린 것이다. 그리고 가장 많이 알려진 <살인자의 건강법>과 <적의 화장법>을 연달아 읽었다. 작가의 집요함이 투영된 집요한 사람들, 설명이 극히 제한되어 대화만으로 내용을 풀어가는 작가의 방식은 확실히 경이로웠다.

이제 아멜리 노통을 거부하지 않는다. 거부를 넘어, 어쩌면 남들처럼 최고의 찬사를 보내는데 앞장설 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도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었다. 폴 오스터와 김영하는 남들보다 한참이나 늦게 읽기 시작했다. 꼭 특정작가가 아니더라도 베스트셀러 역시 베스트셀러가 아닌 다음에나 손을 댔다. 취향을 넓히는 데 신중한 건지, 편협한 사고 방식 덕분인지, 아니면 전체적인 흐름에 좌우되지 않겠다는 이상한 고집 때문인지 가늠을 못 하겠다. 일단 아멜리 노통은 읽기 시작했다. 노통의 고비는 넘겼다만, 파울로 코엘료의 압박은 건재하다. 고백하건데 나는 아직도 <연금술사>를 읽지 않았다. 오히려 <강철의 연금술사>가 더 친근하다.

하지만 코엘료의 작품을 읽게 되는 것은 한 참 뒤의 일일 것 같다. 나에게 코엘료와 노통은 분명 다르다. 노통은 좋아할 것 같아 '의식적으로' 거부했다면, 코엘료는 관심조차 가져 본 적이 없다. 무관심이 이래서 무서운 가 보다. 코엘료는 관심이 아예 없으니 읽겠다고 생각해 본 적조차 없다. 아무래도 노통의 나머지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코엘료의 작품을 선뜻 집어들지는 못 할 것 같다. 읽고 싶다는 마음이 빨리 들기를. 모두가 코엘료의 책을 이야기할 동안, 나는 언제나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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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7 09: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한벌레 2005-05-07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그동안 "그것도 안 읽고 뭐 했니?" 란 소리만 듣다가, wohl님 덕분에 힘이 불끈불끈 솟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