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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다섯 시.

욕실 전구 불빛 아래서,

그녀는 한 생을 벗듯 옷을 벗는다.

타일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발 앞으로 세숫대야를 끌어당긴다.

 

나는 매일 몸을 씻어, 남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이비누 향이 좋지. 며칠 멀리 갈 일이 있으면 오이비누를 꼭 챙겨가.

 

나는 나를 모르지만 내 몸은 잘 알아.

 

내 몸은 내 손만 씻길 수 있어.

다른 손이 씻기는 건 싫어.

 

누가 내 몸을 보는 것도 싫어.

 

질 안에 손가락을 넣으면 배꼽 같은 게 만져져.

나는 질 안에까지 손가락을 넣어서 씻어.

군인 받는 공장에서 그렇게 씻었어, 붉은 소독약 물로.

위생병들이 그렇게 씻으라고 알려주었어.

아흔 살이 넘어서야 배꼽 같은 게 없어졌어.

 

꿈에 또 엄마가 보였어..."

-김숨,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현대문학, 2018)

 

 

*문장의소리 녹음하러 갔을 때 글을 쓰다 후다닥 겉옷만 걸치고 나온 모습으로 하늘색 색연필을 꺼내 세 줄의 글짜를 써서 내게 주었던 소설의 문장. 평생의 시력을 다 쓰고 컴컴한 방에서, 이제야 쪼개진 기억을 이어붙였을 김복동 할머니의 말을 새벽 다섯 시에 읽다. 아마 작가도 이 문장을 새벽 다섯 시에 썼을 것이다. 인용된 부분의 적나라함에 불편한 사람들이 있겠다. 사실 이 책은 잠깐씩 멈추면서 숨을 고르듯, 생각을 돌리듯, 이야기를 마저 들을 수 있는 용기를 배우듯, 여백을 읽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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