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어요. 그즈음엔 매일 밤 꿈을 꿨던 것 같아요. 형체는 보이지 않고 소리만 있는 그런 꿈. 어둠뿐인데 소리가 들렸죠.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는 듯했어요.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고. 짐승이 보이지 않는데 짐승의 소리가 났어요. 고양이 울음소린가 하면 오소리 발자국 소리로 변했어요. 후드득! 저건 물결을 차고 날아오르는 가마우지의 날갯짓을 닮았어요. 간혹 미끄러운 소리도 들렸어요. 네, 미끄러운. 소리에도 촉감이 있답니다.
(...)
한번은 고막이 찢길 듯 지나치게 높고 큰 소리가 들렸어요. 아주 절박한. 포식자에게 쫓기고 있는 짐승이었겠죠? 그렇지 않고서야 그리 절박한 소리를 낼 리가 없으니까요. 뒤엉킨 소리를 헤치고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저마다 감정이 숨어 있어요. 슬픔 비슷한. 그래서 모든 감정은 슬픔으로 환원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죠."
강진, <멸종의 기록> 중, 《하티를 만난다면》(강, 2018)
*콜센터에서 일하는 내가 “소리를 들을 수 없어 멸종된 동물이 있다”는 오래 전 당신과의 통화 기록을 돌려 들으며 동물의 뼈를 맞추듯 '이야기'의 원형을 복원하고 짜맞추는 장면이 멋지다. 강진 소설가의 소설을 처음 보는데 이야기가 풀리는 방식과 단백한 문체에 막 빨려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