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진실 인양 촉구 문화제 참관기〉
다시 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사진1 : 바다 위의 꽃들로 사라져간 아이들을 기리며〉
‘일 년’이 지난 광화문 광장
“일 년은 별 하나가 태어날 시간 한 우주가 태어나 피었다가 사라질 시간
감나무마다 수천의 새잎 돋고 흰 감꽃 사이로 수백의 어린 감들 이쁜 푸른 엉덩이를 내밀 시간
수천 마리 벌 나비 앙앙거리고 뾰족한 주둥이 꽃가루 칠갑을 하고 어른이 될 시간, 되어 다시 제 새끼를 낳을 시간”
―김사인 「일 년」 중
2014년 4월 15일 오후 9시,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는 카페리 세월호는 승객 447명, 승무원 29명, 총 476명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발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5년 4월 15일, 인천항을 출발한 세월호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은 세월호에는 304명의 생명이 있으며, 아직 아홉의 생명은 몸을 찾지 못했다. 1년이 지났다. 아니 1년이 지났다고 한다. 김사인 시인의 시처럼 “별 하나가 태어날 시간”이 지났다. “한 우주가 태어나 피었다가 사라질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물어야만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생명이 태어날 수 있는 곳인가? 생명이 자랄 수 있는 곳인가? 생명이 잠들 수 있는 곳인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써야 하는가? 이런 물음을 가지고 한국작가회의에서 준비한 ‘4.16 진실 인양 촉구 문화제’에 참여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1년 동안 유가족들이 노숙을 하고 단식을 하고 머리카락를 깎아야 했던 곳, 교황이 다녀가고 정치인들이 다녀가고, 일반 시민들이 다녀갔지만, 대통령은 한 번도 다녀가지 않은 곳, 교차로를 사이에 두고 빨간 앞치마를 두른 이상한 엄마들(‘엄마부대봉사단’)이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생업으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있는 곳, 건물이 저렇게 많은데 노란 리본을 단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곳, 1년이 지난 광화문은 휑했다. 차도를 건너니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서명 운동을 촉구하는 자원봉사자들과 ‘기억의 문’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아이들 이름표가 보였다. 기억의 문을 통과하면 노란 배가 있고 그 속에는 노란 편지들이 담겨 있다. 그 뒤로 시민 한두 명과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헌화를 하고 있었다. ‘누구나 오셔서 함께 기억하자’는 문구가 적힌 노란리본공작소에는 서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민들이 둘러앉아 리본을 만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유가족 단식단과 시민동조 단식단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상 뒤로는 세월호 1주기 제3차 연장전의 하나로 사진가들이 설치해놓은 〈빈 방〉이 있었다. 광장에 들어앉은 빈 방에는 배내저고리와 아이들이 돌아오는 금요일 저녁 밥상에 있어야 했을 세 벌의 수젓가락이, 옷들어 켜켜이 쌓인 여행가방이, 혼자 돌아온 한 짝의 운동화가, 몸을 잃은 교복이, 주인을 잃은 책상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유가족 10여 명이 ‘정부 시행령을 폐기하라’는 피켓을 세우고 밤새 노숙을 한 모습으로 청와대를 향해 앉아 있었다.
〈사진 2 : 고마워, 사랑해, 잊지 않을게. 시를 몸으로 표현하는 마임작가 이정훈〉
그날의 바다, 무너진 일상
기상 악화로 출항이 늦춰져 실랑이를 하고 있었을 그 시간으로부터 1년이 지난 광화문 광장에서는 록밴드 폰부스Ponebooth가 〈바다의 꽃들〉로 〈4.16 진실 인양 촉구 문화제〉의 불을 밝혔다. 이어 하나둘 자리에 앉은 사람들 속으로 세월호 침몰 당시 아이들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이거 보이시죠? 배가 60도 기울었어요. 아, 나 진짜 무섭다, 아, 나, 진짜 살고 싶어.”, “왜 내가 수학여행을 와서. 나는 꿈이 있는데. 나 지금 개무섭다고! 구조대가 오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냐고요? ……진짜 무섭고,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나 진짜 울 것 같아요. 나 어떻게 해요?” 아이들의 음성은 긴박했다. 한 아이가 구궁쿵 소리가 나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라임을 뽐내겠다고 핸드폰에 당시의 심정을 남겼다.
“내가 지금 탄 세월호, 나는 갔어야 했어 넷츠호.
이런 미친놈들의 항해사? 너 때문에 나는 죽사.
이런 길 속에 나는 묻혀? 넌 나를 못 쳐.
내가 니들 뺨을 쳐?
우리가 출발 예정 시간 여섯 시 삼십 분.
우리가 출발한 시간 여덟 씨.
이런 씨발.
니들이 그따구로 이 배를 운전?
지금 배는 85도.
내 머릿속 온도는 지금 100도!”
아이의 머릿속 온도는 1년이 지난 오늘, 광화문 광장을 슬픔의 온도로 채우고 있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참았다. 이어 휘민 시인의 사회로 문화제가 시작되었다. 희생자 정지아 학생이 쓴 「4월의 편지」와 엄마의 답글을 학생들과 김선향 시인이 가족의 애타는 심정을 대신해 읽었다. 마임작가 이정훈은 백승남의 작품 「사랑하는 너에게」를 몸과 손끝으로 표현했다. 시인 정영관과 소설가 이후경은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획단’이 쓴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통해 4.16 이후 무너진 일상을 들려주었다. 허윤옥 선생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한 하루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온다던 봄”에 “기다림마저 잃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했다. 시인 도종환은 아이들의 생일을 기리기 위해 쓰여진 ‘생일시’로 아이들이 사라진 세상의 아픔을 들려주었다. 빛은 어둠을 배경으로 태어난다고 했던가. 광화문 광장에 어둠이 내리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얼굴이 더 또렷이 보였다.
〈사진 3-1 : 참혹한 슬픔과 그럼에도 진실을 건져내기 위해 ‘오직 진실만이 위로’라고 외치는 김해자 시인과 작가들〉
〈사진 3-2 : 4.16 이후 무너진 일상을 들려주는 작가들〉
가라앉는 말, 떠오르는 진실
어둠 속에서 12명의 작가들이 진실이 물에 잠기는 참혹한 슬픔과 그럼에도 우리가 언어를 통해 건져올려야 하는 진실을 풀어냈다. 이영주 시인은 “바다에서 죽지 않는 손이 올라온다”, “그 손을 잡아 끌어올려야 한다”고, 그러기 전에는 “슬픔을 시작할 수 없다”고 시를 통해 선언했다. 신용목 시인은 “세상의 모든 외로움이 밥을 먹을 시간”의 칸마다 아이들의 모습을 새겨넣었다. 이지호 시인은 “사이렌은 대피 신호가 아니라 학살 경고”였다고, “오지 않을 미래가 식어간다”, “자본주의의 거인이 아이들을 잡았다”고 슬퍼할 수 없는 분노를 표출했고, 허은실 시인은 “소풍, 이라고 말하려 했는데/슬픔, 이 와 있”는 막막함을 왔다가 가는 파도의 들고남으로 읊어주었다. 소설가 신혜진은 안산 분향소에 있는 엄마공방의 풍경을 들려주며 “만약 지하철에서 누가 울거든, 버스에서 벚꽃이 흩날리는 바깥을 내다보며 어깨를 들썩이거든 울지 마라는 말 대신에 티슈 한 장 건”네자고 듣는 이들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박일환 시인은 수업 시작종이 울렸는데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교실을 끌고 우리를 진도 앞바다까지 데리고 가서 그곳에서 출석을 불렀다. 김사인 시인은 동덕여대 학생들과 함께 참여하여 지은 시로 “지난 봄의 민들레 씨앗들이 돌아오게 해”달라고, “다음 계절의 별자리를 기다리게 해”달라고 1년 동안 쌓인 울음에 불을 붙이며 소지했다. 나 또한 진실을 바다로 덮어버린 국가의 폭력과 그 폭력을 덮으려고 하는 언론과 언론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본의 협잡을 “바다를 엎어서라도 밝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실 인양 촉구 문화제를 위해 부산에서부터 달려온 김요아킴 시인은 광장에 있는 유가족들의 몸부림을 “곡기 끊은 벌판”에 빗대어 잔잔하게 사람들을 울렸다. 시인 나종영은 “4.16 세월호는 80년 광주의 5.18이었다”고 괴물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을 고발했다. 안오일 시인은 “지독히도 외로웠던 우리들의 주검이/이 나라를 건져 올릴 인양선이 될 때까지” 끝끝내 함께 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마지막으로 김해자 시인은 “삶이 거짓말처럼 참혹할 때 죽음이 더 삶”답다고, 그러니 섣불리 위로하려 하지 말라고, “유일한 위로는 진실”이라고 고통을 끌어안은 위로의 길을 터주었다.
〈사진 4-1 :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고도 차마 애도도 추모도 할 수 없는 참담함을 잊지 않고 끝까지 추궁하겠다”는 한국작가회의 선언문을 낭독하는 문동만 시인〉
〈사진 4-2 : ‘어둠을 뚫고 진실이 길을 밝히기를’ 시민들의 소원을 담은 소원문을 소지하는 정우영, 김사인 시인〉
아직, 깊고 어두운 물 속입니다
밤은 어두워 더욱 깊어졌다. 깊은 어둠 속으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전 멤버인 ‘노래하는 나들’의 추모곡이 울렸다. 나혜철 시인의 “팽목항으로 부치는 편지”와 문화제의 핵심인 한국작가회의 작가들의 다짐을 모은 선언서 낭독이 이어졌다. 문동만 시인은 선언서를 통해 “기억에는 시효가 없고 진실에는 한도가 없다”, “이곳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지옥인지 오래오래 말하겠다”는 다짐을 밝혔으며,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아야 하는 작가의 자세와 “함께 핍박당하고 모욕당했으니 함께 분노하고 요구하자”고 선언하였다. 밤의 공기가 차가웠다. 우리가 마시는 공기가 아이들의 폐에서 뿜어져나오지 않는다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작가들은 미래를 인양하라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시민들의 소원을 담은 소원문이 광화문 광장의 어둠을 밝히며 타올랐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못한 4월의 진실은 거리 곳곳을 돌아 다시 이곳, 광화문 광장으로 귀향할 날을 기다린다. 그때 우리는 우리가 함께 맹골수도 밑바닥을 뒤져 찾아낸 진실을 들고 바다 위의 꽃들을, 꽃들의 가족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세상은 한 뼘은 자라 바다의 꽃들을 피울 것이다.(<내일을여는작가> 2015. 봄호)